오랑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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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수령지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31길 9, 2층
ISBN
9791191438741
출판사
돌베개
저자
김기협 지음
발행일
2022-08-19
오랑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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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명 간 대립과 영향, 대륙의 초원과 바닷길을 넘나드는
2000년의 역사 이야기

중화제국과 오랑캐의 대립 및 교섭의 역사를 통해, 단일국가의 역사적 프레임으로 한정할 수 없는 중국 및 변경의 역사 그리고 동아시아 문명사를 다룬다. 나아가 중국 및 동?서양과 모두 교류한 이슬람세계의 성취, 근대 이후 서양의 흥기와 침략까지 세계의 역사를 폭넓게 포괄한다.
이 책은 ‘오랑캐의 역사’를 통해 중국과 그 밖의 세계 역사를 서술한다. 중국문명권이 중원과 변경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중원은 ‘화’華로, 변경은 ‘이’夷라고 불렸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중국사는 ‘화’의 입장에서 쓰였다. 저자는 중화제국 내부만 보아서는 “중국의 특성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원의 국가와 변경의 오랑캐들이 어떻게 교섭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중화문명권 또는 동아시아문명권의 형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문명권 차원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오랑캐의 역사’에 초점을 두었다.

목차

서문-근본 못지않게 지엽도 중요하다

Ⅰ. 천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1. 만리장성은 왜 북쪽에 있을까?
중국문명의 본질은 농업문명|중원에 대한 북방의 특별한 의미|장성이 뚫려서 명나라가 무너진 것이 아니다

2. 춘추전국시대에 빚어져 나온 ‘천하’
춘추시대, 주변부의 강대국이 성장하다|시대의 모순을 상징한 오자서伍子胥|파촉巴蜀문화권의 진면목을 드러낸 삼성퇴 발굴

3. 흉노가 강성해진 까닭
직업군인을 키워 제국을 건설한 묵특 선우|망명객들의 대안이 된 흉노|한나라가 공세에 나서기까지|장건張騫의 진정한 역할은?

4. 한 무제의 손으로 준공된 ‘천하제국’
한 무제는 북쪽만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한반도가 중국에 흡수되지 않은 이유|동서 교역의 한 단계 발전|왜 험악한 지형의 실크로드가 선택되었을까|‘대일통’大一統과 ‘정통’正統

5. 문명과 야만은 자전거의 두 바퀴
부각되는 오랑캐의 역할|앞바퀴와 뒷바퀴의 서로 다른 역할|부견?堅의 성공과 실패|동북방 오랑캐 선비족의 등장|호ㆍ한胡漢 이중체제를 넘어

6. 돌궐의 성쇠와 당 태종
호ㆍ한 통합을 위해 필요했던 ‘법치’法治|태종, 황제와 천가한天可汗을 겸하다|‘외경外境전략’과 ‘내경內境전략’|만주와 한반도 사이의 ‘북고남저’北高南低

7. 무력국가에서 재정국가로
“술 한잔에 군대 내놓기”|균전제와 양세법의 차이|당나라 공신집단의 몰락|돈으로 평화를 사는 정책|서희의 담판이 성공한 이유

8. 틈새를 찾은 동북방 혼합형 오랑캐
농경과 유목의 관계|당나라의 쇠퇴와 유목제국의 소멸|혼합형 오랑캐를 위한 또 하나의 틈새|뒤늦게 시작된 중국의 해상교역|남중국해를 배로 다닌 승려들

9. 내륙의 바다, 사막
중국 소수민족 분포의 비대칭성|‘내부 유라시아’를 하나로 보자는 제안|“순수한 유목민은 가난한 유목민”?|바다와 사막, 정주定住 세력이 없는 공간

Ⅱ. 천하 밖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10. 몽골제국에서 ‘근대성’을 찾는다
문명권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세계사’의 출현|문명사의 전개에서 경계境界지역의 역할|이슬람의 ‘노예 전사’와 몽골제국의 ‘친위대’|유목사회 간의 접촉 확대가 제국 건설로

11. 종이가 필요 없던 유럽의 후진성
‘다문명제국’의 출현|유럽중심주의의 반성|인도양 항로의 발전|바다와 초원의 유사성과 차이|“거기는 종이가 없었잖아!”

12. 항전 아닌 투항으로 중국문명을 지킨 야율초재
두 문명권의 전통을 아우른 몽골제국|칭기즈칸의 독창적 조직 원리|약탈 대상에서 통치 대상으로|원나라와 일칸국, 초원을 벗어나다

13. 문명권 경영에 나선 몽골제국
송나라가 끝까지 지킨 남중국의 경제기반|‘천하’의 뼈대가 된 대운하|초원제국과 정복왕조의 분화|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의 친위대원?

14. 중국문명과 페르시아문명의 통합 시도
쿠빌라이 최측근 볼라드의 특이한 사명|최초의 ‘세계사’를 만들어낸 최초의 ‘세계제국’|몽골제국의 문화적 용해도

15. 지중해문명과 유럽문명 사이의 거리
흑사병이 드러낸 문명권의 경계선|앙리 피렌이 본 ‘유럽’과 ‘지중해세계’|8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유럽문명’|베네치아는 ‘유럽’에 속해 있었나?|유럽은 15세기까지 노예 수출 지역이었다

16. 이슬람세계, 서양인가 동양인가?
유럽의 ‘타자’他者였던 이슬람세계|타밈 안사리가 생각하는 ‘중앙세계’|‘서양사’는 ‘유럽사’가 아니다|육상ㆍ해양세력의 각축으로 보는 서양사|서양의 ‘천하통일’에 접근한 이슬람제국

17. 십자군의 진짜 표적은?
교황의 권위가 세워지기까지|교황과 황제의 관계|동로마제국과 이슬람제국|무력이 횡행하게 된 이슬람세계|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동로마 황제

18. 빛은 동방에서
이슬람 선진문명의 유럽 전파 현장|십자군은 ‘문명 간 대결’이 아니었다|‘이슬람 황금시대’는 서양문명의 범람원|이베리아반도의 특이한 번역문화|‘바다오랑캐’를 기다리며

Ⅲ. 천하는 어떤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는가?

19. 세계제국과 천하제국 사이에서
원나라 색목인의 역할|이재파理財派와 한법파漢法派의 충돌|재정 정책의 혼선이 말해주는 것|교역의 세계화에 그친 몽골제국

20. 쿠빌라이의 꿈을 실현한 영락제의 함대
원나라의 ‘세계제국’을 선망한 영락제|더 넓어진 천하를 향한 관문은 바다에!|정화鄭和 함대의 일곱 차례 출동|‘대항해시대’를 필요로 하지 않은 명나라

21. 16세기의 왜구 아닌 왜구
왜 ‘해금’海禁을 ‘쇄국’鎖國이라고 부르나?|제국의 통제 범위를 넘어선 교역 확
장|후기 왜구는 해적보다 무역업자|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16세기 왜구

22. 포르투갈이 인도양을 휩쓴 이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달려든 포르투갈인들|인도양에 처음 나타난 악질 해적|애초 향료를 찾아온 것이었지만…|해상제국도 일종의 ‘그림자 제국’

23.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유럽과 일본
육로에서 해로로 옮겨진 동ㆍ서 교역|유럽중심주의는 가치관에서 시작한다|16세기 일본의 급속한 발전|서양인들을 경탄시킨 동아시아의 ‘질서’

24. 명나라의 심복지환은 북로北虜 아닌 남왜南倭
명나라는 북방 오랑캐만 걱정했지만…|원나라 후예들은 중원 탈환을 노리지 않았다|동전에서 지폐를 거쳐 ‘은銀 체제’로|타이완의 정성공鄭成功 세력이 끝까지 버틴 힘

25. ‘닫힌 제국’으로 돌아간 중국
질서와 균형을 중시한 중화제국 운영 기조|무력武力만이 아니라 재력財力도 질서에 대한 위협|바라지도 않던 ‘천명’을 받은 청나라|입관 40년 만에 ‘제국’을 완성한 청나라

26. ‘니덤의 수수께끼’
동ㆍ서 간 새 통로를 연 예수회 선교사들|유럽중심주의의 밑바닥을 흔든 니덤의 업적|노동력 절약형 기술 발전과 자원 절약형 기술 발전|세계를 바꾸려는 영국과 천하를 지키려는 중국

27. ‘대동아공영권’의 허실
증기선이 동아시아에 몰고 온 ‘개항’ 압력|‘국민국가’ 건설을 향한 일본의 근대화|문명권의 울타리를 무너트린 근대 제국주의|만주 탈취로 완성된 일본 제국주의

28. 다민족국가와 민족국가
청나라의 ‘약한 고리’ 타이완|중화인민공화국의 민족 식별 사업|국가체제의 순간출력과 연료효율|“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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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기협 지음

출판사리뷰

“지금 중화제국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 오늘날 중국은 또 한번 ‘천하’를 도모하는가?

‘혐중’과 ‘친중’ 사이, 가깝고도 먼 중국
- 중국 역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중국사를 동아시아 문명사의 차원에서 바라보기!
중심과 변방의 교섭, 중화와 오랑캐의 관계로 중국사를 새롭게 읽기!

■ 중국사와 동아시아 문명사에서 서양의 흥기와 침략사까지 아울러
『오랑캐의 역사-만리장성 밖에서 보는 중국사』는 중화제국과 오랑캐의 대립 및 교섭의 역사를 통해, 단일국가의 프레임으로 한정할 수 없는 중국과 변경의 역사 그리고 동아시아 문명사를 다룬다. 나아가 중국 및 동ㆍ서양과 모두 교류한 이슬람세계의 역할, 근대 이후 서양의 흥기와 중국 침략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폭넓게 아우른다.

■ 중국의 역사를 오랑캐의 역사로 겹쳐 쓰는 이유
이 책은 ‘오랑캐의 역사’라는 주제를 통해 중국과 그 밖의 세계사를 서술한다. 중국문명권이 중원(중심)과 변경(변방)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중원은 ‘화’華(중화, 화하)로, 변경은 ‘이’夷(오랑캐)로 불렸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중국사는 ‘화’의 입장에서 쓰인 것이다. 저자는 제국 내부만 보아서는 “중화제국의 성격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10쪽)고 말한다. 중원의 국가와 변경의 오랑캐들이 어떻게 교섭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펴봄으로써 중화문명권 또는 동아시아문명권의 형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문명권 차원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 ‘오랑캐의 역사’에 초점을 두었다.

■ 중국사는 중화제국과 오랑캐의 대립과 영향, 교섭의 과정으로 보아야
중국인은 자기들이 사는 세상을 ‘세계의 중심’으로, 나머지는 모두 ‘오랑캐’로 인식했다. 이른바 화이론이다. 중국(中國)이라는 명칭도 중화사상에 근거한 것인데, 이 말에는 중국 한족이 중화문명을 면면히 계승했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이 과연 과거의 중화제국을 계승한 것이며, 중국문명은 오랑캐문명을 배제한 순수한 중화문명으로 이루어졌을까? 화이론에 기반한 이분법적 인식이 여전히 중국사를 이해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는 문명사 차원에서의 중국사 이해를 가로막는다.
저자 김기협은 중국의 역사, 다시 말하자면 중국 영토 안팎에서 일어나고 스러진 민족들과 국가들의 역사는 유목사회(오랑캐)와 농경사회(중화제국)의 대립과 영향, 끊임없는 교섭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중국사는 한족 중심의 중화제국 역사로 협소하게 볼 수 없고, ‘중심’과 ‘변방’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고 확장되어온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그림자 제국’으로서의 오랑캐, 중화제국과 함께 ‘천하체제’를 확장시키다
중화제국은 자신의 국가와 영토가 그 자체로 자족적이고 완전하다고 보았다. 중국은 스스로를 부족할 것이 없는 세계, 즉 ‘천하’로 인식했다. 이른바 ‘천하체제’다. 중화문명은 기본적으로 농경사회의 결과물인 데 비해, 오랑캐의 영토는 집약적 농경이 이루어지기 힘든 유목사회 또는 수렵과 채집, 농경이 공존하는 혼합형 사회였다. 동아시아의 오랑캐는 중원의 농경문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의존의 형태는 침략과 교섭, 영향 등으로 나타났다. 황량한 초원에 거주하는 유목회에서는 식량자원의 안정적 공급, 농경사회의 기술과 문화가 필요했다. 이들은 중원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중화제국에게 무력을 제공하기도 했는데(가령 돌궐이 당나라에 그 역할을 했다), 소위 ‘내경전략’(inner frontier strategy)이다. 유목사회는 기동력 있는 조직과 함께 무력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 김기협에 따르면, 오랑캐의 침략(외경전략outer frontier strategy)은 사실 중원에 대한 의존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동아시아 오랑캐의 성쇠는 중원 국가의 성쇠와 반대로 일어나는 과정이다. 중원의 국가가 강력할 때 유목사회는 중화제국 안에 진입하는 내경전략을 취하고, 중원이 혼란스럽거나 힘이 약해졌을 때는 제국을 침략하는 외경전략을 취했다. 북위, 요, 금, 원, 청은 오랑캐 정복왕조로서 중국을 지배한 경우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동아시아 오랑캐를 ‘그림자 제국’이라고 칭한다. 중원의 상황과 역학관계에 따라 오랑캐 국가의 노선과 흥망이 결정되었다. 요컨대 동아시아 오랑캐는 중화제국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천하체제’를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서양을 ‘바다오랑캐’로 간주한 것이 화근
중국은 일찍이 서양(특히 유럽)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 쿠빌라이를 만났던 일이나,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에서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함께 책을 펴내고 역법을 만든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은 서양을 ‘양이’(洋夷)라고 불렀는데, 서양을 ‘바다오랑캐’쯤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국이 동아시아 오랑캐를 ‘천하체제’에서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 것처럼 서양도 그렇게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는바, 중국인들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19세기의 서양세력은 훨씬 더 무시무시한 ‘오랑캐’였다.

■ 근대 서양과 중국의 운명은 세계관의 차이에서 기인
근대 이전까지 세계사의 변방에 불과했던 서양(유럽)이 흥기하는 역사적 기점을 ‘대분기’(Great Divergence)라고 한다. 서양의 비교 대상은 중국이었는데, 그때까지 중국과 대적할 수 있는 문명은 없었다. 케네스 포멘란츠 등이 밝힌바, 서양의 흥기는 석탄을 활용한 자원집약적 발전,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개척이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서 저자 김기협은 근대 유럽의 노선인 ‘열린 시스템’이 서양의 흥기와 세계 제패의 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유럽은 대항해 시대 이후 배를 타고 새로운 영토로 진출하기를 멈추지 않았다(‘진출’은 ‘침략’이었다). 석탄 같은 자원을 무한정 활용하는 발전 전략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열린 시스템’이 여전히 세계를 작동시키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그에 비해 중국은 많은 인구를 활용하는 노동집약적 발전을 선택하는데, 대표적으로 ‘벼농사 경제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의 ‘천하체제’에 따르면, 중국이 세계 그 자체이므로 이 세계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세계에 한계가 있다면 자원은 무한정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아껴 써야 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끝내 ‘닫힌 시스템’을 고수했다. 중국인들의 ‘닫힌 시스템’은 명나라 영락제 시기 정화 함대가 인도양 원정을 중지하고 이후 해금(海禁) 정책을 시행하는 데서도 분명히 보여진다. 원나라 시대 세계제국을 건설할 수도 있었던 중국은 결국 ‘세계’로 나아가지 않고 ‘천하’에 안주한다. 유럽과는 다르게 외부 식민지에서 자원을 얻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열린 시스템’이 결국 역사에서 승리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저자 김기협은 현재 전 지구적 기후ㆍ생태 위기의 원인으로 ‘열린 시스템’을 지목한다. ‘열린 시스템’에서는 제한과 한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실 그렇지 않다. 이 세계는 유한하다.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발전 전략, 근대화, 전 세계의 서양화는 ‘탈근대’ 논의에서 ‘근대’(또는 ‘근대성’)를 비판하는 핵심적 요소이다. 어떻게 보면 서양의 ‘열린 시스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서양은 ‘열린 시스템’을 선택함으로써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게 되었지만, 그 결과 ‘열린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저자 김기협은 탈근대를 논의하는 현 시점에서 중국의 ‘닫힌 시스템’의 역사적 의의를 다시 성찰해보자고 제안한다.

상품필수 정보

도서명 오랑캐의 역사
저자/출판사 김기협 지음,돌베개
크기/전자책용량 214*152*13
쪽수 224
제품 구성 상품상세참조
출간일 202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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