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감정’의 인문학적 향연!
이 책은 저자가 평생 연구해온 문학과 정신분석학, 뇌과학에 기반해 인간 감정의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 기념비적 시도다. 그중에서도 ‘따뜻함’과 ‘친근함’의 힘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따스함과 친근함으로 삶의 서사를 써라
“너의 삶을 놓치지 말고 경험하라. 매 순간을 따스하고 친근한 감정으로 느끼고 기억하라. 그것이 네가 살아서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다.”
사랑, 기억(회상), 감정, 느낌을 핵심적으로 다루며 문학, 정신분석학, 뇌과학 연구를 섭렵하는 이 책은 감정의 깊고 넓은 수원을 보여준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감정을 저장하는 편도체, 기억을 입력하고 출력하는 해마를 중심으로 점점 회상에 잠기게 된다. 그리하여 중년과 노년에서 회상은 한 인간의 인격이자 지식이며, 선택이고 모든 것이 된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은 70퍼센트의 부정적 감흥과 30퍼센트의 긍정적 감흥으로 나뉜다고 한다. 즉 인간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소외, 분노, 절망 등 부정적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 『감정 연구』의 저자는 ‘인지’와 ‘감정’이 끊임없이 협조하도록 독려함으로써 ‘따스함’과 ‘친근함’으로 우리 삶의 서사를 써나가자고 말한다.
노년에 이르면 지나온 기억이 온통 삶을 지배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와 타인의 뇌를 궁금해하고, 자의식도 더 파고들게 된다. 저자는 그중 삶을 가장 충실하고도 기름지게 만들어줄 유일한 감정으로 ‘사랑’을 꼽으면서 이것이 어떻게 학문적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미학적 감상의 대상이 되는지 추적한다. 이 책은 삶의 필요들을 충족시키는 데 직선 코스로 가지 말고 에둘러 갈 것을 청하면서, 문학작품을 통해 우회적인 답변들을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목차
서문_일곱 개의 키워드: 감정이 풍부해지면 판단이 정확해진다
1장 사랑은 감정의 모든 것이다
감정 논쟁: 사랑은 감정인가 생각인가 | 감정도 진화한다 | 우연성과 추구 시스템 | 감정은 가치를 평가한다 | 감정은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 사랑이 우연처럼 느껴지는 이유
2장 감정은 이미지다
마이웨이 | 나는 울기에 슬프다: 윌리엄 제임스의 물질성 | 이미지 형성의 두 단계: 프로이트의 무의식 | 유아기 성욕 | 이미지의 전략: 실수를 통해 배운다 | 느낌은 감정의 이미지 | 자존감이란? | 감정과 느낌의 차이
3장 감정은 생명이다
사랑과 우정은 우리를 살게 하고 슬픔은 병들게 한다
기억과 감정은 이웃이다 | 항상성이란 무엇인가 | 항상성 높이기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 장님은 지팡이로 본다 | 인공지능은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실수를 통해 배운다
4장 감정은 생각이고 판단이다
감정의 시간 | 「대미지」와 데이지 | 안다는 확신을 버려라: 바로 내가 찾던 너 | 풍부한 감정은 판단을 정확하게 한다 | 원근법에 대한 저항은 의식에 대한 저항이다 | 최초의 이미지 메이커: ‘상상계’ | 세상을 즐겁게 경험하라 | 자유간접화법 | 감정을 메마르게 하는 공부 | 시간은 정말 어디로 가나 | 고전 예술 치료법
5장 감정은 건강한 몸이다
세상과 관계 맺기
감정은 세상과 나의 관계 맺기다 | 기질 혹은 기분 | 합리적 사고로 감정을 극복하기 힘든 이유 | 행복한 기질은 즐겁고 적절한 동요 | 자의식 과잉과 자의식 결핍 | 자존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 감정은 생리 현상이다: 마음의 병은 몸의 병이다 | 왜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할까? | 슬픔과 우울증, 그리고 유머 | 숲속을 걷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이유 | 감정 훈련: 생각이 몸을 움직인다 | 감정을 로봇에 심을 수 있을까?
6장 감정은 예술이다
공감 치료를 위하여
예술의 형식 | 예술을 생리학적으로 보면: 감각을 인지하는 즐거움 | 거꾸로 가는 열차를 타고 | 생물학은 미학이다 | 감정의 여분, 이미지의 여분: 유령 | 칸트의 숭고함과 제임스의 프린지 | 예술은 감정을 인지하는 방식이다 | 예술이 감정을 사랑하는 방식 | 거울뉴런 | 공감 치료를 위하여
7장 공감 치료
헨리 제임스와 사랑의 기술
독창성이란?: 왜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왕』이고 라캉은 『안티고네』일까 | 사랑은 금기에 의해 숭고해진다 | 공감 치료: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 | 두려움: “나는 모든 것에 의해 영향을 받아요” | 완벽한 조건을 갖춘 구혼자 | 세상은 아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 공감 여행 | 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반전
맺음말_따스하고 친근한 감정으로 느끼고 기억하라
저자
권택영
출판사리뷰
회상하는 인간, 기억은 인간의 전 재산
“사랑도 해봤고, 웃기도, 울기도 했지요. 지나온 모든 걸 회상하며, 당당히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요. 난 내 방식대로 해냈어요라고.”
위의 문장은 프랭크 시나트라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부른 [마이웨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나는 사랑 때문에 가슴 벅차하고 버림받아 눈물도 흘렸던 적이 있지만 매 순간 힘을 다해 산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자부한다. 굴욕적이지 않게, 나만의 방식으로 모든 패배를 감내하면서. 이런 말은 삶의 커튼이 내려지기 전에 과거를 돌아보며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숱한 예술작품은 과거를 떠올리며 서사를 구축한다.
회상은 전 생애를 돌아보는 때만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일어난다. 경험을 어느 정도 비축한 중년에 이르면 행복할 때는 불행했던 일을 떠올리고, 불행할 때는 행복한 순간을 떠올린다. 나이가 더 들면 지난날 구질구질하고 힘겨운 일이 많았음에도 아스라하게 아름다운 색채로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이 인간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나이가 들면서 강해지는 것은 회상 능력이라서, 살날이 점점 줄어들자 자신의 기억을 아름답게 왜곡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이처럼 경험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회상 능력은 뇌가 갖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다. 마치 은행에 돈을 저축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것처럼.
매 순간의 경험들 중 어떤 것을 뇌의 전두엽에 저장해놓지 않았다면 노래도 춤도 소설도 사랑도 가능하지 않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로부터 갈라서는 전환점은 기억을 갖게 되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자서전적 기억’이라 불리는 이것이 진화론적으로 발전해온 인간의 전 재산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이면서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게 진화된 기억의 소유자다. 그런데 이런 기억력은 오로지 인지 기능이라기보다 ‘감정’에 의해 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를테면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내가 자전거에서 떨어졌을 때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아주었던 그 사람, 아플 때마다 배려해주던 다정한 마음, 눈 오는 날 들른 카페에서 그가 했던 어떤 말……. 단순히 고마웠던 일이라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란 이유로 반복해서 떠오른다. 감정과 기억의 아이러니다.
이런 기억은 상처가 깊어지는 것이라 때로 잔인하지만, 출구는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퇴색되고 변형이 일어나며 결국 경험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만이 가진 삽화적 혹은 서사적 기억이다. 감정이 사적일수록,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일수록 깊이 각인되고 시간에 의해 변형된다.
저자는 베르그송, 윌리엄 제임스, 프로이트 등을 통해 이 기억의 문제에 천착해 들어가며, 특히 제임스에 주목한다. 제임스는 의식이 나와 타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른다고 말했다. 타자란 무엇인가. 의식이 흡수하지 못하는 이물질, 의식의 저편, 우리가 다가서지 못하는 감각, 감정, 몸, 물질의 세계다. 타자가 내 기억과 생각의 일부인 것은 그 힘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이를 인간에게만 있는 ‘이차적 기억’(삽화적 기억)이라 부른다. 이차적 기억은 내 사적 저장소에 저장됨으로써 내 감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중 ‘따스함’과 ‘친근감’이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걸 제임스는 강조한다. 동생 헨리 제임스의 걸작 『정글 속의 짐승』은 형 윌리엄 제임스의 이런 사상이 반영된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감정 연구』는 헨리 제임스의 작품에 별도의 장을 할애해 윌리엄의 심리학이 어떻게 작품 속에서 구현되고, 이것을 읽는 독자가 어떻게 자기 삶 속에서 따뜻하고 친근한 서사를 완성해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기억은 마음의 재산인 까닭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끼는 사람은 결국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는 혹은 세속적으로는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괴로운 날들이 지나면 두고두고 꺼내 보는 풍성한 일기장이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들 연구들에 이어 저자는 정신분석학 연구자로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통해 감정을 살펴본다. 프로이트는 이미 100년 전에 지각뉴런과 저장뉴런을 말하면서 기억의 원리에 대해 밝히려 시도했다. 그가 요즘 뇌과학 연구에서 재조명을 받는 이유이며, 제임스의 의식과는 다른 층위를 논하므로 이 또한 주목해야 한다.
감정 없이는 판단도 없다: 감정과 인지의 상관성
약 38억 년 전, 지구상에서 박테리아가 생존하고 번영하며 진화했다. 실제로 사람 몸 안에서 박테리아는 세포 수보다 더 많이 생존한다. 유기체는 자발적으로 하품하고 딸꾹질하고 숨 쉬고 근육을 움직인다. 보고 듣고 만지는 감각을 통해 외부 환경을 인지하면서 진화해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이 다른 모든 유기체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순간이 온다. 그 결정적인 도약은 바로 경험을 저장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서사적 기억의 발달이다. 서사적 기억은 ‘감정’을 나의 ‘느낌’으로 만든다. 느낌은 항상성이 제대로 조절되고 있는지 진단하는 생리적 장치이기에 수명은 물론 문명을 창조하는 지적 기능의 모티브가 된다. 긴 시간에 걸쳐 유기체는 오감과 느낌을 통해 신경계와 연결된다. 자율신경계와 행동계를 연결하여 온몸을 모니터링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고대의 플라톤이나 근대의 데카르트처럼 감정을 억누르면 이성이 활성화되리라는 이분법은 맞지 않는다. 느낌은 이미 판단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감정이 빈약한 사람은 인성도 빈약할 뿐 아니라 지적 능력도 빈약해진다고 한다. 외적 자극에 대한 내적 균형을 취하려는 느낌은 인지와 판단에 영향을 주는 진화의 꽃이다.
저자는 조지프 르두, 안토니오 다마지오 등의 연구를 좇으면서 이 책의 주제인 ‘감정’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핵심적인 부분임을 밝혀나간다. 진화는 뇌의 하부로부터 상부로 올라오면서 이루어진다. 감정을 저장하고 몸으로 반응하는 부분은 다른 동물들처럼 주로 뇌의 아랫부분에서 처리된다. 그리고 해마가 진화하여 서사적 기억을 저장하고 학습과 배움을 통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기능은 뇌의 상부에서 주로 맡는다.
편도체는 의식이 진화하기 이전 몸의 기억인 감정 기억, 즉 암묵적 기억을 구성·저장·관리한다. 명시적 기억은 해마가 발달한 이후에야 생긴다. 기질, 정서, 감각, 감정이 몸에 저장되지 않는다면 해마는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암묵적 기억에서 명시적 기억으로 진화하는 것은 몸의 반응에서 ‘나’라는 개체의 느낌으로 진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감정기억을 구성하고 저장하는 편도체와 그 옆에 붙은 해마는 인간을 여느 동물들과 다르게 만든 진화의 본부인 셈이다. 감정은 해마에 의해 전두엽으로 이동하고 어떤 감정인지 진단이 내려진다. 전두엽에 저장된 과거의 개념들 가운데 가장 적절한 감정이 구성되고 그에 따른 인지와 판단이 이루어진다. 이런 경로를 거쳐서 오직 인간만이 ‘감정’을 ‘느낌’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경험이 부족하면 감정의 저장고가 빈약하고 그럴수록 더 쉽게 ‘안다’고 확신하게 된다. 제임스를 비롯한 인지와 감정을 다루는 뇌과학자들이 “감정은 인지의 한 형식”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감정과 이성(인지)을 배타적으로 보면 이성의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착각을 우려해서다. 감정은 대상에 대한 몸의 반응이지만 변연계를 거쳐 전두엽에 저장된 경험을 바탕으로 느낌이 되고 이는 인식과 판단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감정과 사유는 큰 차이가 없다.
문학과 예술은 왜 생존에 도움이 될까
“세상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가능하면 세상을 직선으로 걷지 말고 감정으로 돌아가 우회해야 한다.”
우리는 많은 오류와 실수와 깨달음을 얻는다. 이는 바로 전두엽이 원하는 것이다. 더 많은 오류와 실수를 통해 학습과 배움을 얻고 새로운 예측에 의해 의식은 현실에 더 정확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 저자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잘 짜인 예술의 감상은 치명적인 오류와 실수를 피하는 길을 알려준다고 말한다. 작품을 보며 ‘느끼는 것’이 나를 삶의 주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와 연극, 책을 보면서 그 작품을 해석하거나 개념화하려고 시도한다. 그렇다면 보면서 느끼는 감각(감정)과 감각을 개념화하는 과정 중 어떤 것이 더 즐거울까. 후자다. 즐거움은 느낌의 영역으로, 오직 의식과 전두엽의 개념화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번스타인은 개념화 작업이 감각적 정보보다 더 기쁨을 준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뇌의 관련 부위에 아편 제재에 반응할 때와 같은 쾌감 수용체가 가장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감정을 논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문학작품과 영화를 끌어들이는 이유다. 알고자 하는 욕망, 감지한 것을 인지하는 연결 고리는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중요한 속성으로 인류가 가장 강한 종으로 살아남는 데 공헌한다.
칸트는 가장 나중에 쓰인 『판단력 비판』에서 개인의 주장이나 개념보다 예술의 형식(플롯)을 경험, 즉 미美가 우리에게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예술작품의 감상은 사적인 것이지만 이익과 상관없이 즐거움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적인 경험은 타인에 대한 공감을 통해 보편성에 이른다. 작품의 형식을 통해 감정을 연습하고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사적이면서도 제한을 받고, 모호하면서도 타인과 공유하는 경험이 된다. ‘안다’는 확신에서 벗어나는 연습이다.
서사 예술은 이상적이다. 몸과 의식, 혹은 느낌과 인지 판단을 융합하기 때문이다. 잘 짜인 서사 예술을 감상하는 일은 즐거움, 활력, 깨달음을 준다. 저자가 논픽션보다 픽션에 더 공감하는 이유는 픽션에서 긴장의 고조, 반전, 발견이라는 형식의 매개를 통해 우리의 감정이 좀더 조절 받을 수 있고 공감능력을 키우게 되기 때문이다. 예술은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모호성을 존중하면서 그곳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감정 연습의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