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미학을 완성하다
홍차 애호가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건 따끈하게 데운 티팟에 잘 우려 제대로 된 잔에 따라낸 차 한 잔이다. 아무리 근사한 홍차 책이라도, 그것이 차 자체의 풍미를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홍차 애호가들에게 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앎’이 홍차의 미학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차 한 잔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바로 차를 우리는 이, 마시는 이의 취향과 그것을 한 잔의 차에 제대로 구현해내는 유희의 기술이다. 1982년 처음 출간된 제임스 노우드 프랫의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는 바로 이 ‘뭔가 특별한 것’을 위해 세상에 나왔다.
목차
들어가며│문명인이 누려온 가장 오래된 즐거움
제1부│작은 잎이 일상의 동반자가 되기까지
1장│차의 기원
문명만큼 오래된 차의 역사
차의 성인, 육우
불교도들의 감로, 마음의 영약
당나라, 송나라, 몽골제국의 차
일본의 다도
국경의 차
2장│차, 동양과 서양을 잇다
유럽, 신비의 음료를 만나다
차의 매력에 빠지다
러시아에서 꽃 핀 차 문화
동인도회사, 탐욕과 패권 경쟁의 시작
영국, 차 무역의 중심이 되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몰락
커피하우스와 티 가든의 유행
교양인의 마음을 사로잡다
도공들의 집념과 본차이나의 탄생
밀수꾼의 시대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다
티 파티,“대표 없는 과세는 무효!”
보스턴 항에 차를 던지다
“우리는 차를 끊었답니다”
제국주의의 수단이 된 중국차
영국 악마들과의 추잡한 거래
중국인을 아편 중독에 빠뜨리다
차 독점 사업의 성장과 몰락
제국의 바다를 질주한 쾌속선들
영광의 항해, 전설의 레이스
3장│차나무를 찾아 모험을 떠나다
인도에서 차를 발견하다
동인도회사의 인도 통치
아삼에서 새로운 차를 기르다
로버트 포천의 위대한 모험
아삼 컴퍼니의 탄생
잔혹한 영국인들, 다원을 독점하다
기계가 차를 만들기 시작하다
세계 곳곳으로 전파된 차나무
홍차의 유행
토머스 립턴, 홍차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중국의 몰락
4장│차의 새 시대를 열다
깊은 잠에 빠진 홍차
차 문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다
진정한 차 문화의 번영을 위하여
삶의 에너지, 우정과 사랑의 매개
21세기의 홍차
진귀한 경험으로의 초대
제2부│차에 관한 모든 것
5장│중국차
‘1만 종의 차’
녹차
백차
우롱차
중국 홍차
보이차
가향차
6장│일본 차
차와 상상력이 만났을 때
7장│타이완 차
아름다운 차의 섬, 포모사
8장│인도 차
세계 최대의 홍차 생산국
인도 홍차의 시작, 아삼
전통과 자부심, 다르질링
수수하고 그윽한 성인의 맛, 닐기리
그 외 지역의 홍차
9장│실론 차
저지대에서 고지대까지
10장│새로운 차 생산지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러시아, 터키, 이란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11장│정통 블렌딩과 차 브랜드
영국의 사랑스러운 베스트셀러들
허브 음료는 차가 아니다
제3부│제대로 된 차 한잔을 위하여
12장│차 한잔의 즐거움
물, 찻잎, 시간의 미학
홍차
녹차
우롱차
옮긴이의 말│차 애호가를 위한 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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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제임스 노우드 프랫
출판사리뷰
“차 애호가들이 잘난 척하는 집단이 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잘난 척하지 않는 차 애호가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특별하고 까다로우며 젠체하는 사람들로 여겨지기도 한다. 맞다, 우리는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은 즐거움에 관한 책이다. 그 즐거움이란 5000여 년간 문명인이 누려온 예술 중 하나에 관한 것이다.” _프롤로그
한 잔의 차에는 그 차에 담긴 역사와 재배지의 기후 조건, 그 차를 만든 인간의 정신이 담겨 있다. 제임스 노우드 프랫이 선별한 차에 관한 사실들은 우리가 마시는 차에 의미를 부여하고, 풍미를 더해주며, 우리의 후각과 미각을 일차원적인 것 이상으로 끌어올려준다. 차에 관한 한 취향은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탄생하고, 가꿔진다. 이 차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마셔왔는지, 어디에서 재배된 차인지, 어떻게 마실 때 본연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지…… 모르는 이에게는 그저 떫기만 한 차도 아는 이에게는 각양각색의 맛으로 다가온다. 적어도 홍차의 세계에서만큼은 차 자체보다 공들여 가꾸어진 취향이 고양된 기쁨을 가져다준다.
유난스러운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 마시던 맛 모를 음료였던 홍차는 이제 번화가에서 몇 블록에 한 군데씩 보이는 거대 프랜차이즈부터 유서 깊은 티하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맛볼 수 있는 음료가 됐다. 차 관련 정보에 대한 애호가들의 수요도 그만큼 높아지고, 또 깊어졌다. 그러나 홍차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전문가의 영역에 있거나, 혹은 흔해빠진 대중 음료이거나 둘 중 하나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막 그것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관심이 깊어져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것을 발견하고 싶을 때, 내가 우린 홍차에 디테일한 해석을 더하고 싶을 때…… 각 단계의 징검다리가 되어줄 제대로 된 안내서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우리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1980년대 초 미국에서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게 이 책이다. 와인 소믈리에였던 저자는 1세대 차 애호가이자 전문가로, 차의 세계에 발을 들인 뒤 30년 넘게 여러 매체와 기관에서 관련 저술과 강의를 해오고 있다. 이 책도 그 기간 동안 저자가 새로이 보탠 자료를 통해 여러 차례 진화했다.
수천 년 된 중국의 차나무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홍차 책에서 다뤄지는 서구 열강의 무역 장악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거대한 역사 속에서 자칫 소홀하게 다뤄지기 쉬운 중요한 인물들과 ‘차’라는 기호품의 내밀한 역사에 주목한다. 거기에는 육우, 센노 리큐, 토머스 립턴, 로버트 포천 같은 잘 알려진 인물뿐 아니라 최초로 본차이나를 만드는 데 성공한 유럽의 도공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 미국에 처음으로 전통 중국차를 소개한 데번 샤와 로이 퐁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도 포함된다. 한편 차 시장이 세계적으로 성장하게 된 주요 계기마다 세세한 설명을 달아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손으로 일일이 채엽하던 차를 어떻게 기계로 따서 대량으로 가공할 수 있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캔?병 음료가 홍차 문화에 들어와 널리 퍼지게 됐는지, 세계의 여러 다원이 어째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련번호를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등 다른 책에서 깊이 다뤄지지 않는 내용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이런 ‘앎’의 바탕에서, 차 우리는 법을 설명함으로써 저자는 홍차의 미학을 완성시킨다.
“차는 약, 음료, 화폐와 공유처럼 세계인의 보물이 된 기적의 식물이요, 제국과 산업, 예술의 원천이다. (…) 우리 차 애호가들은 형제애를 공유한다. 우리의 우애는 문자 그대로 피라미드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우리 모두는 차가 우리 몸에 좋다는 걸 알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우리가 차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차는 그야말로 언제나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고, 더 문명화된 느낌을 준다. 이만하면 충분한 이유가 된다.”
_제임스 노우드 프랫
홍차의 르네상스를 열다
미국의 차 문화는 역사적 특수성을 지닌다. 독립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보스턴 티 파티’의 기억 때문에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이 일종의 상징적 의미를 띠었던 까닭이다. “우리는 차를 마시지 않는다. 그 대신 커피를 마신다.” 미국인들은 의식적으로 차를 거부해왔다. 전국적 불매운동이라는 이 암흑기를 가쳐 홍차가 르네상스를 맞게 된 데는 한 세기 가까이 차 문화를 지키고 보존해온 일부 애호가들의 헌신이 있었고, 뒤이어 그 문화를 널리 알린 차 산업 종사자와 전문가들의 공이 있었다. 제임스 노우드 프랫의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초판은 1982년에 출간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차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미국에서 차의 역사를 새로 쓰고, 증언하며 이 책은 스스로 차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시대에 뒤처진 채 잠들어 있는 미국의 차 시장을 깨운 새로운 차 애호가”라는 평을 받는 제임스 노우드 프랫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 책은 독일에서 『애호가를 위한 차: 잔에 담긴 영혼Tee fur Geniesser: Vom Geist in der Tass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미국 차 산업 분야에서 트레이닝 매뉴얼로 활용된다. 3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개정판은 여전히 서양의 많은 차 애호가에게 바이블처럼 읽힌다.
책의 출간과 함께 프랫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차 전문가가 되었다. 사실 그는 와인 소믈리에였다. 직업상 매일 술에 취해 있어야 했던 탓에 건강을 위해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차야말로 자신을 위한 음료임을 깨달았다. 프랫은 아메리카에서 차에 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1970년대부터 차의 매력을 진지하게 탐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처음 문을 연 전통 중국차 티하우스를 비롯해 수많은 티숍과 티하우스를 찾아가고, 낯선 한자어권의 서적들과 그 번역서를 읽으며 1차 문헌을 수집했으며, 티백부터 프리미엄 티까지 모든 차종을 닥치는 대로 시음했다. 많은 사람이 커피나 코카콜라에 빠져들 때에도 여전히 숨은 보석 같은 차의 세계를 탐험했다. 대량생산되는 티백과 캔 음료 업계, 프랜차이즈 홍차점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에도 전통 있는 다원과 개성 넘치는 브랜드에서 나오는 스페셜티 차를 꾸준히 소개하며 공동체를 구성하고, 대안적인 차 문화를 지켜왔다. 그 과정에서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글을 기고했고,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방송에 출연해 차에 관한 자문을 제공했다. 프랫은 그 과정에서 모아온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이 책에 펼쳐놓았다.
진화하는 차 문화
차가 제국주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서구 열강에 의해 동남아 여러 국가의 땅이 차 생산지로 개간되고, 많은 사람이 노동을 착취당했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 다르질링, 아삼, 실론처럼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차 생산지의 차를 맛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다음은 어떨까? 전통 깊은 차 회사들의 오래된 메뉴야 그렇다 치더라도, 더 멀리 봤을 때 차 산업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신구 차 문화의 비교와 대조는 차에 관한 안목을 넓혀주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 차를 이야기할 때 제국주의의 야망과 잔재로 점철된 근대사뿐 아니라 대기업과 프리미엄 제조사들이 이끄는 현대사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포트넘앤메이슨, 립턴, 트와이닝스, 잭슨스 오브 피카딜리 같은 영미권의 유수한 차 브랜드뿐 아니라 새롭게 차 산업을 주도하는 티바나나 아다지오 같은 대표적인 차 회사에도 시선을 준다. 또 윈난, 우지, 다르질링, 닐기리 같은 전통적 차 재배지의 새로운 대항마로 떠오르는 타이완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지의 다원들도 함께 소개한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처럼 예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아온 차뿐 아니라 타이완의 버블티와 인도의 마살라 차이, 터키의 차이, 모로칸 티 등 새롭게 주목받는 특정 지역의 차 문화도 두루 살핀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전통을 제대로 즐기는 방식뿐 아니라 그것이 각 문화권에서 혹은 산업 전반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널리 퍼지는지도 한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