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국에 투영되어 있는 거대한 공자를 문묘를 통해 만나다
공자문묘의 역사와 특징을 촘촘하게 연구, 정리한 기념비적 대작
공자문묘는 봉건국가가 공자를 봉사(奉祀)함으로써, 공자사상을 표창(表彰)하고, 추숭(推崇)한 예제(禮制) 문묘(廟宇)이다. 공자문묘의 제사가 국가 사전에 편입됨으로써 새로운 왕조가 건립될 때마다 오직 공자문묘에서만 사용한 제의(祭儀), 음악(音樂), 무용(舞踊)을 제정(制定)하였다.
이 책은 중국의 공자문묘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총망라한 결정판이다. 중국에서 공자문묘가 탄생하고부터 당·송대를 거쳐 확대되는 과정, 요·금·서하·원대의 침체기를 거쳐 명·청대에 전성기를 맞는 과정과 민국(民國) 이후 공자문묘가 파괴되는 양상,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복원되는 상태까지 전체 역사를 촘촘히 정리하였다. 또한 문묘의 건축 양식, 제사 양식과 그 발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현재로 이어지는 공자문묘의 보존 및 복원 상태와 의의를 조망하였다. 이 과정에서 총 300여 장의 사진자료를 실어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였다. 유교사상 연구에서뿐 아니라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일독해야 할 흥미로운 대작이 아닐 수 없다.
목차
제1편_ 중국 공자문묘의 역사
제1장_ 공자문묘의 탄생: 전국(戰國) 시대
제2장_ 공자문묘의 정초: 한대(漢代)
제3장_ 경사(京師) 공자문묘의 출현: 동진(東晉) 시대
제4장_ 지방학교 공자문묘의 시작: 북제(北齊) 시대
제5장_ 공자문묘의 확대기: 당대(唐代)
제6장_ 공자문묘의 성숙기: 송대(宋代
제7장_ 공자문묘의 침체기: 요(遼)·금(金)·서하(西夏)·원(元)
제8장_ 공자문묘의 중흥기: 명대(明代)
제9장_ 공자문묘의 전성기: 청대(淸代)
제10장_ 공자문묘의 쇠퇴기: 청 말(淸末)
제11장_ 공자문묘의 파괴: 민국(民國) 이후
제12장_ 공자문묘의 복원: 개혁개방 이후
제2편_ 중국 공자문묘의 제도
제1장_ 공자문묘와 학교의 배치관계
제2장_ 공자문묘의 건축구조
제3장_ 공자문묘의 건축제도
제4장_ 공자문묘의 봉사제도(奉祀制度)
제5장_ 공자문묘의 제사제도
제3편_ 중국 공자문묘의 현황
제1장_ 공자문묘의 보존 현황
제2장_ 공자문묘의 이용
제3장_ 대표적인 공자문묘
부록
부록 1_ 중국 공자문묘 대사기[中國孔子廟大事記]
부록 2_ 양무에 배향된 선현 일람표
부록 3_ 양무에 배향된 선유 일람표
부록 4_ 숭성사(崇聖祠)의 봉사인물 일람표
부록 5_ 중국 학교문묘 일람표
부록 6_ 그림 차례
저자
공상림, 공철 (지은이), 임려, 장윤정, 이향화, 왕위령 (옮긴이)
출판사리뷰
역대 왕조들의 공자문묘에 대한 정책 그리고 흥망성쇠를 보다
중국 공자문묘의 역사
제1편에서는 중국 역사 속에서의 공자문묘를 살펴본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은 공자를 기념하기 위해 공자의 옛집에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옷가지[衣]와 모자[冠], 서적[書], 거문고[琴], 타고 다닌 마차[車] 등을 보관했다. 그 뒤로 공자의 옛집은 그를 제사 지내는 문묘(廟宇)로 바뀌었다. 한 무제(漢武帝)가 “모든 학파를 배척하고 오직 유학만을 존숭한다(罷黜百家, 獨尊儒術)”라는 정책을 실시한 후, 공자사상은 국가의 지도사상이 되었다. 당대(唐代) 정관(貞觀) 4년(630), 당 태종(唐太宗)은 각 주(州)·현(縣)의 학교에 모두 공자문묘를 건립할 것을 명하였고, 이때부터 공자문묘는 중국 각지에 보급되었다. 이후 역대 왕조는 수시로 학교의 공자문묘를 수리하도록 했으며, 청대(淸代)에 이르러서는 국자감(國子監), 부학(府學), 주학(州學), 현학(縣學), 청학(廳學), 향학(鄕學) 등 각급학교에 공자문묘가 1740개소 이상 존재하게 되었다.
청(淸)나라 광서(光緖) 32년(1906) 과거(科擧)제도 폐지로 공자문묘도 타격을 받았다. 또한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辛亥革命)에 의해 청(淸)나라가 전복되고 봉건 군주제(郡主制)가 폐지된 뒤로부터 현대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하여 과거 관청(官廳) 주도의 학교들은 대부분 신식학교로 바뀌었다. 이어서 1919년에 일어난 ‘5·4 운동’에서는 “공자 사상을 타도하자(打倒孔子店)”라는 구호를 외치고 봉건 시대의 옛 예교(禮敎)를 비판하면서 공자문묘의 제사가 폐지되었다. 공자문묘는 그때부터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공자문묘의 건축과 봉사(奉祀), 제사 제도의 양상과 변화를 총괄하다
중국 공자문묘의 제도
제2편에서는 중국 공자문묘의 제도적인 면을 총괄하여 분석한다.
학교 공자문묘는 출현 당시부터 국가 사전(祀典)의 예제건물에 포함되었다. 공자의 사상은 학교를 통해 전파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기에 학교 건축과 공자문묘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국은 예제를 매우 중시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대대로 공자문묘에 관한 사전(祀典)이 매우 중시되었으나 의외로 공자문묘의 건축 제도에 대한 일관된 규정은 미비했으며 건축 양식은 기본적으로 대동소이했다. 이 책은 공자문묘의 건축을 전도건축(前導建築), 봉사건축(奉祀建築), 부사건축(附祀建築)과 기타건축(其他建築)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역대 왕조마다 제사 제도는 상세하고 통일되어 있었다. 공자문묘에서 제사를 지낸 인물의 숫자, 제사 복식, 제사 방법, 심지어 제사 인물의 좌향(坐向)까지도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국가에서는 문묘의 제사 등급 및 명칭도 명확하게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제사 예식을 비롯하여 사용하는 제사 용품, 음악, 무용 등도 규범화하였다. 이 책에서는 역대 왕조마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 발전 양상을 풍부한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문화예술적 자산이 축적되어 있는 공자문묘의 보존 가치를 주목하다
중국 공자문묘의 현황
제3편에서는 중국 공자문묘의 현상태와 보존 의의를 살펴보고 문묘의 사례를 조망한다.
공자문묘는 본래 최고의 문화시설로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문화 예술 자산이 축적되었다. 이 책에서는 현존하는 공자문묘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본다. 첫째, 공자문묘의 시설을 복원하여 사회 교화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 공자학당이다. 둘째, 문물부서 관리하에 사무실이나 문물창고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공자문묘이다. 셋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공자문묘이다. 일부 공자문묘는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지만, 해당 부서에서 현재 보수할 여력이 없어서 비바람에 방치되고 있는 유형도 적지만 남아 있다.
모든 공자문묘는 그 자체만으로 박물관이나 다름없으며, 건물, 비석, 예기(禮器), 악기, 제사용 예의, 음악, 무용 등이 모두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공자문묘는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완전하거나 비교적 잘 보존된 문묘는 대부분 박물관으로 개조되거나, 일부는 학교나 다른 용도로 전용되면서 보존 발전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