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관광지의 맛이 아닌 ‘맛보러 떠나는 여행’
그 첫 미행지(味行地) 목포
우리나라 맛 문화 1번지 전라남도. 그중에서도 ‘개미(갯맛)’의 집산지, 호남 맛의 진수라는 목포. 그곳에는 가슴 답답한 중년의 ‘힐링 푸드’ 홍어가 있고, 일제강점기 부두 노동자의 눈물이 담긴 콩물이 있으며,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조기가 있다. 베테랑 다큐 PD 세 사람이 근현대사 유적이 살아 숨 쉬는 목포 구도심을 거닐며 발견한 우리 맛의 속살을 느낄 수 있다.
목차
맛보러 떠나다
남도 맛의 정체를 찾아서
목포 스케치
목포를 맛보다 / 목포의 대표 음식
― 귀족 물고기 민어, 목포의 얼굴
― 마음 뚫어주는 소울 푸드, 홍어
― 목포는 낙지요리 천국
* 목포 식후경
별미를 맛보다 / 목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
― 목포의 눈물, 아니 콩물
― 목포 생선의 왕자, 조기
― 당신은 게 맛을 아는가
* 목포에서 만난 사람-아코디언 연주자 김광호 선생
― 힘이 담긴 한 그릇, 팥죽
―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갈치
* 목포의 간
그리움을 맛보다 / 목포라서 특별한 음식
― 한정식 안 부러운 백반
― 생장어탕, 준치, 꼬리곰탕
* 온금동 골목길
― 디아스포라의 음식
* 나홀로 목포 여행
* 목포 어디서 잘까
여행을 마치며
감사의 말
저자
홍경수, 손현철, 서용하 (지은이)
출판사리뷰
관광지의 맛이 아닌 ‘맛보러 떠나는 여행’
그 첫 미행지味行地 목포
우리나라 맛 문화 1번지 전라남도. 그중에서도 ‘개미(갯맛)’의 집산지, 호남 맛의 진수라는 목포. 그곳에는 가슴 답답한 중년의 ‘힐링 푸드’ 홍어가 있고, 일제강점기 부두 노동자의 눈물이 담긴 콩물이 있으며,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조기가 있다. 베테랑 다큐 PD 세 사람이 근현대사 유적이 살아 숨 쉬는 목포 구도심을 거닐며 발견한 우리 맛의 속살.
미각 중심주의 여행
우리는 여행지에서 숲이나 사찰, 도심을 걷다가 허기가 지면 근처 식당에 들어간다. 보통의 여행에서는 볼거리가 먼저다. 찾아가볼 식당을 미리 정해놓고 주변 명승지나 방문지를 추가하지는 않는다. 맛을 느끼는 일은 보고 듣는 일보다 순위에서 밀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맛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늘어나고 있다.
시청각보다는 미각을 우위에 두는, 여행에서의 감각 비율 재조정이 활발히 일어나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최초의 도시 미식 기행 책이며 한 도시 음식의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 민족지)라 할 만하다.
왜 목포인가
미각 여행은 미각과 후각의 만족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따라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널리 돌아다닐 욕심을 거둬야 한다. 아침 일찍 KTX 열차로 내려가서 1박 2일간 최소 다섯 끼의 색다른 음식을 맛보고 각 끼니 사이에 도보로 주변 볼거리를 구경하는 일정을 짜기에 목포만큼 완벽한 곳이 없다. 시식 순서를 기다리는 훌륭한 식당들이 근거리에 밀집해 있다. 게다가 목포는 항구와 역 중심으로 발달한 구도심과 유달산을 걸어 다니면서 근대와 현대, 자연과 역사가 뒤섞인 모습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도시다.
-‘맛보러 떠나다’ 중에서
맛보러 떠나다, 미각 중심주의 여행
맛집 열풍이다. 식도락은 인간에게 손꼽히는 즐거움. 텔레비전에서도, 서점가에서도, 전국 곳곳의 맛있는 식당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런 맛집 탐방은 내용적으로 다음과 같이 굳어져 있다. 먼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에서 발견한 맛집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관광지가 우선이고 그곳에서 먹는 즐거움도 곁들여보자는 식이다. 또 하나는 입맛 당기는 음식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집을 찾아 식욕을 채우는 게 유일한 목적이 되곤 한다.
이 책의 이름에도 ‘미식기행’이란 표현이 있다. ‘맛보러 떠난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와이너리 투어 등이 각광을 받고 있듯이 미식을 목적으로 삼은 여행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맛집 탐방과는 거리가 있다. “여행지에서의 맛 체험은 그 땅과 바다, 숲에서 나온 식재료를, 우리 몸이 물리적 거리를 없애고 접촉해서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식재료에 가해진 현지인들의 조리 솜씨를 느끼고, 그를 통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맛보는 행위”인 것이다. 바로 이 한 마디에 이 책의 독특함이 잘 드러난다. 달리 표현하면 “최초의 도시 미식 기행 책이자 한 도시 음식의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 민족지)”이다.
이 책을 쓴 세 명의 PD는 다큐멘터리 PD로 시청자들에게 굵직한 프로그램을 선보인 바 있고 다큐멘터리 3일 역사스페셜 차마고도 등을 제작한 경험으로 다큐 PD 특유의 ‘현상에 감춰진 역사적 흐름을 파헤치는 호기심’이 원고에 가득하다. 또 방송물을 제작하면서 겪은 여러 에피소드들이 PD들의 독특한 시선을 간접체험하게 해준다.
왜 목포인가, 한국 맛 문화 1번지
세 PD가 미행지(味行地)의 으뜸으로 꼽은 곳이 목포다. 목포는 남도에서만 맛볼 수 ‘개미(갯맛)’의 집산지이기 때문이다. ‘개미’는 남도 해안 개펄의 풍성한 영양을 듬뿍 먹고 자란 어패류, 천일염의 깊고 감기는 맛을 뜻한다. 목포는 ‘한국 맛 문화권의 제1 번지’라 할 만큼 남도의 ‘개미’가 풍부한 식단과 개성적인 맛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참기름’은 맛을 통합하는 기능을 하며 삼합 같은 발효음식은 ‘맛의 오케스트라’로 그 진수를 보여준다. 1897년 개항한 이후 작은 어촌이던 목포는 주변 섬 지역과 내륙을 연결하는 중심지, 호남 맛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맛 집결지로 발전했다.
또 미식기행은 미각과 후각의 만족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에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널리 돌아다닐 욕심을 거둬야 하는데, 아침 일찍 KTX 열차로 내려가서 1박 2일간 다섯 끼의 색다른 음식을 맛보고 각 끼니 사이에 도보로 주변 볼거리를 구경하기에 목포만큼 완벽한 곳이 없다. 시식 순서를 기다리는 훌륭한 식당들이 근거리에 밀집해 있다. 게다가 목포는 항구와 역 중심으로 발달한 구도심과 유달산을 걸어 다니면서 근대와 현대, 자연과 역사가 뒤섞인 모습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도시다.
미식기행은 빈속에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넣는 생물학적 욕구 충족의 여행이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낸 그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맛보는 과정이다. 목포는 주변 바다의 자연 풍광과 근대의 문화유산들이 함께 어우러진 특이한 도시다.
역사를 통해 재발견하는 목포의 음식
민어
목포에는 ‘민어의 거리’가 있다. 세 PD는 민어를 목포의 대표 음식으로 꼽으며 ‘귀족 물고기’라고 부른다. 민어는 언제부터 귀해졌을까. 조선 시대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민어는 흔히 잡혔다. 민어가 고가의 생선이 된 데는 일제강점기의 오랜 남획이 원인으로 보인다. 1934년 민어 어획고는 7만 4천 톤. 10톤 트럭 7천 4백 대가 날라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일제강점기에 잡힌 민어의 대부분은 일본으로 실려가 고급 어묵의 재료가 됐다. 그렇게 많이 잡히던 것이 1972년이 되면 997톤으로 크게 줄어든다. 목포가 일제 수탈의 본거지였음이 민어의 어획량 감소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민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지 않는 ‘선어회’의 대명사인데 일제시대 목포 거주 일본인들의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목포의 대표적인 민어 요릿집 ‘영란횟집’의 민어 한 상 차림이 꾸려진 데에도 역사가 있다. 한 상 차림에는 데친 부레와 회처럼 썬 껍질이 나오는데 이는 재일동포 손님의 조언으로 시작된 메뉴다.
홍어
홍어는 언제부터 삭혀먹기 시작했을까. 멀리 고려 말 조선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왜구의 잦은 침략에 조정은 섬의 거주민을 내륙으로 피신시키는 공도정책을 펼쳤다. 이에 흑산도 옆 영산도 사람들은 배를 타고 육지로 들어왔는데, 이들이 정착한 곳이 고향 영산도의 이름을 딴 영산포다. 시간이 흘러 이들 중 일부는 고향 영산도로 돌아갔고, 영산포에 남은 사람들은 틈틈이 고향에 들렀는데 다녀오는 길에 선물로 가져온 생선들이 더운 날씨에 거의 대부분 상해버렸다. 하지만 홍어만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 홍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 이야기다. 문순득은 1801년 12월 신안 우이도에서 흑산도로 홍어를 사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유구(일본 오키나와)로 표류했고,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풍랑을 만나 필리핀, 마카오, 중국을 거쳐 3년 2개월 만에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정약전은 그의 경험을 정리해 『표해시말』을 집필했다.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문순득의 마카오 경험을 근거로 화폐 개혁을 주장했다.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는 문순득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럽형 범선과 조선의 배를 비교분석한 『운곡선설』을 집필했다. 홍어에서 비롯된 사건이 조선 시대 실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콩물과 팥죽
목포에는 ○○○이 있다. 바로 ‘페트병에 든 콩물’이다. 목포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콩물을 마신다. 유명한 콩물집도 있다. 왜 그렇게 콩물을 많이 마실까. 그리고 왜 다른 지역처럼 콩국이 아니라 콩물이라 부르는 걸까. 세 PD는 목포의 물 사정에 주목한다. 예전부터 목포에는 식수가 귀했다. 1897년 개항하고 주변 농촌의 인구가 부두의 일자리를 찾아 몰리면서 유달산 밑에는 움집이 무질서하게 들어섰다. 가장 큰 문제는 상수도. 물지게나 양동이를 들고 길게 줄을 서서 물 받을 차례를 기다리는 일이 목포 조선인 구역의 일상 풍경이었다. 유달산 기슭 밑 북교동에는 ‘쌍샘거리’라는 지명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곳에 공동 식수터인 샘이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샘에 종일 물을 길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단다. 목포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물을 사서 먹어야 했다.
세 PD는 한편으로 식량난에도 주목한다. 옛 문헌을 보면 목포의 가난한 조선인들은 쌀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1930년대부터 일본이 만주를 침략,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각종 물자의 징발령을 내린 뒤 더 심해졌다. 심지어 만주에서 질이 한참 떨어지는‘수재에 저진(젖은) 쌀을 114만 1천 2백 근’수입해야 했다. 그야말로 ‘목포의 눈물’이 아니라 ‘목포의 콩물’이었다.
팥죽도 콩물과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다. 목포의 분식집에 빠지지 않는 메뉴가 팥죽이다. 팥죽도 그냥 팥죽이 아니라 새알심이 동동 뜬 동지팥죽이다. 팥죽도 힘들고 어려웠던 목포 사람들의 사연을 담고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1897년 개항 후 호남 지역의 쌀, 면화, 소금 이른바 세 가지 하얀 물품(三白)의 수출항이 된 목포는 가마니를 지고 배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고된 노동에 많은 열량을 필요로 했던 그들에게 후루룩 들이켤 수 있는 팥죽만큼 좋은 음식은 없었을 것이다. 세 PD는 선창가를 따라 팥죽을 파는 수레나 가게가 늘어서고 휴식 시간이면 팥죽을 먹는 노동자들로 붐볐을 목포를 그려낸다.
백반
남도 하면 백반. 한정식과 백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로 ‘밥’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개항 후 조선을 찾은 외국인의 눈길을 좇아보자.
1리터가 넘는 쌀로 밥을 하면 엄청 많은 양인데, 이게 일꾼들의 한 끼 식사다. 옆에 밥을 맛나게 먹기 위해 반찬을 차린다. 다진 고추, 간장,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젓갈, 김치, 해조류, 소금에 절인 생선, 튀긴 해조류 등을 밥과 함께 먹는다. -이자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1898년
조선인들은 어릴 때부터 많은 음식을 먹도록 길들여졌고, 또 먹을 수 있는 만큼 기꺼이 먹는다. 한번은 쌀밥, 보리밥을 잔뜩 먹고 배가 너무나 불러 걷지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또 한번은 한 엄마가 밝은 표정으로 터질 것 같이 배부른 아이를 보여준 적이 있다. 나는 걱정이 돼서 ‘배가 찢어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물었다. 그러자 그 엄마는 ‘괜찮아요.’하면서 밥 서너 숟가락을 더 아이의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헨리 새비지 랜더,『 Corea or Cho-sen』, 1895년
한정식과 백반의 결정적 차이는‘밥’의 우선순위이다. 한정식에선 밥보다는 밥 이전에 나오는 전채와 주요리에 해당하는 지역 특산물이 더 중요하다. 밥은 맨 나중에 찌개, 굴비와 함께 차려진다. 그러니까 밥은 이미 온갖 산해진미로 입맛을 길들인 뒤 곡기 보충 차원에서 나오는 수준이란 말이다. 가뜩이나 배부른데 밥맛이 살아날 리가 없다. 백반은 다르다. 식단의 이름이 벌써 흰밥(白飯)이다. 그러니까 밥이 주요리고 나머지 반찬은 보조가 된다는 뜻이다
콩자반이나 고등어자반처럼 삶거나 구워 짭짤하게 절인 반찬을 ‘자반’이라 하는데, 그 어원이 재미있다. 조선 왕실의 의례 규범을 기록한 『의궤』를 보면 밥 옆에 차려지는 찬을 좌반(佐飯)이라 표시한다. 그 한자어를 풀면 ‘밥 먹는 것을 돕는다’는 뜻. 결국 반찬이란 밥의 섭취를 보좌하는 먹을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