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누구에게나 불안은 있다
인문학으로 읽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정신분석은 인간이 왜 고통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해명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신경증자가 되어야 더 나은 삶을 희구할 수 있고, 정신증자가 되어야만 더 나은 삶을 욕망할 수 있다. 『불안은 우리를 삶으로 이끈다』는 프로이트를 두 가지 차원에서 겹쳐 읽는다. 첫째, 그야말로 프로이트식으로, 즉 프로이트의 분석틀을 통해 프로이트의 저작을 읽어낸다. 둘째, 데리다를 비롯한 현대철학의 새로운 사유의 길을 따라, 프로이트 텍스트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 생략된 것, 왜곡된 것이 프로이트 이론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본다.
목차
책을 펴내며
1강 누구에게나 불안은 있다
신경증 | 불안 | 분석치료 | 프로이트 이론의 전개 | 쾌원리 |
나르시시즘의 발견 | 무의식의 의미화
2강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심리 모델 | 리비도 경제 | 자아와 이드 | 초자아
3강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표상과 감능(感能) | 충동의 원리 | 반복강박과 죽음충동 | 억압의 새로운 의미 | 전치와 응축
4강 그때는 그런 줄 몰랐어요
거르기와 묶기 | 표상의 대체 | 리비도 철회 | 거울단계
5강 나를 지켜보는 또다른 나
꿈 이론 | 소망성취 | 퇴행 | 현실성 검사
6강 금지가 욕망을 만든다
가족 로맨스 | 거세불안과 남근선망 | 동일시 | 여자의 성 | 동성애
7강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비애와 우울 | 나르시시즘적 우울 | 자기처벌 환상 | 합체
8강 우리는 왜 고통을 원하는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 수치심 | 우울의 정치성 | 프로이트의 방법 | 조울
9강 나의 아픔은 당신의 불안
도착 | 아이가 매를 맞고 있어요 | 남성의 여성화 | 도덕적 마조히즘 |
마조히즘의 정치성 | 여성의 마조히즘
10강 그대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다
사랑의 심리학 | 사랑의 환상 | 나르시시즘적 사랑 | 인식론적 전환 | 이론의 재구성
11강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모래인간』 | 기이함 | 프로이트의 요약 | 실명공포와 거세불안 | 올림피아
나오며
프로이트 주요 저작 목록 | 참고문헌 | 프로이트 연보
저자
강우성
출판사리뷰
프로이트로 돌아가기
무의식, 욕망, 억압 등 프로이트가 만들어낸 정신분석 개념들은 오늘날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익숙함과 이해는 다르다. 우리는 과연 프로이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 문화에서 프로이트는 주로 의학이나 성(性) 담론으로 간주되었기에 프로이트의 사상적 측면에 대한 평가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학계의 관심은 프로이트보다 그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라캉의 정신분석에 더 쏠려 있었다. 라캉의 주요 저서가 제대로 번역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라캉이 관심을 끈 데에는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의 영향도 컸다. 지젝을 경유한 라캉 정신분석의 유행은 프로이트를 더욱 낡은 사상가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라캉조차 자신의 사상적 모토로 삼았던 것은 바로 프로이트로의 회귀였다.
해체론과 비평이론을 연구해온 서울대학교 영문과 강우성 교수는 수년에 걸친 ‘문학과 정신분석’ 강의를 통해 프로이트 이론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해체적으로 독해했다. 그 산물이 이 책이다. 저자는 우선 프로이트 이론의 맥락으로 돌아가 프로이트의 저작을 프로이트 방식으로 읽어낸다. 그다음 데리다, 들뢰즈, 라캉 같은 현대철학을 경유하여 프로이트 이론의 공백과 틈을 발견하고 거기서 프로이트 자신이 회피하고 불완전하게 봉합해둔 지점들까지 들여다본다. 들뢰즈의 말대로 철학의 핵심이 개념의 발명에 있다면, 프로이트 정신분석은 철학에 가장 근접한 사상이다. 그것은 삶의 증상을 분석하여 새로운 인간 이해로 이끈다.
“모든 인간은 신경증자다”
프로이트는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는 신경증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경증은 반드시 고쳐야 할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삶이 ‘불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삶을 한마디로 ‘불안과의 동거’로 규정한다. 이 불안을 관리하는 핵심 심리기제가 바로 ‘억압’이다. 인간의 자아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한 ‘이드’의 움직임을 억누르고자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신경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정신증(Psychose)은 자아가 이드에 압도되어 현실의 압박을 끊어버리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정신증자에게는 불안이 존재하지 않는데, 현실과 유리된 채 자기만의 환상 속에서 불안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증자의 치료에서는 환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불안 유발이 과제가 된다. 이처럼 불안의 제거가 아니라 불안을 통한 증상과의 동거가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지향점이다.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이런 정신분석적 사유는 인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우선 무의식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인간이 의식을 지닌 사유의 주체로서 세상의 주인이라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무너뜨린다.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인간은 자발적으로 고통과 불쾌를 감내하는 존재로 제시된다. 불안이 야기하는 불쾌와 고통을 삶의 조건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때 억압은 충동을 제거하고 고통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삶을 위해 오히려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유지하는 과정이 된다. 이를 저자는 ‘근원적 마조히즘’이란 개념으로 갈무리한다.
인간은 왜 고통을 원하는가
저자가 이 ‘프로이트 세미나’의 화두로 삼은 주제는 ‘인간은 왜 고통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핵심 저서 『쾌원리의 너머』(1920)에서 ‘쾌원리’와 ‘죽음충동’ 개념을 통해, 왜 인간은 죽음을 향한 쾌에 지배되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제기하기보다 왜 인간은 고통을 자발적으로 감내하는 방식으로 삶을 추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바로 여기에 프로이트의 사상적 위대함이 있는데, 왜 인간은 쾌원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필요로 하는가 물음으로써 쾌와 불쾌, 죽음과 삶을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사유해온 서양철학의 이분법적 형이상학에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쾌원리란 불쾌를 유발하는 긴장의 최소화나 불쾌의 완전한 제거가 아니라 쾌와 불쾌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경향을 말한다. 불쾌가 무화되는 죽음을 지향하거나 어떤 적극적 쾌락을 추구하는 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욕망이 자극하는 불쾌를 최소화하려는 죽음충동과 불쾌를 통해 만족을 찾으려는 삶충동 간의 항구적 긴장 상태를 지향하는 인간의 심리 기제가 곧 쾌원리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저자는 억압을 제거하고 욕망을 해방시키는 일이 아니라 고통의 필연성을 통한 항상적 중용 상태에 대한 이런 열망에서 프로이트 정치학의 목표를 발견한다. 프로이트의 문명론이 담긴 『문명과 그 불만』(1930)은 이런 관점에서 읽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해설 너머의 해설
이 책에서 소제목들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주요 개념어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신경증, 불안, 쾌원리, 나르시시즘, 충동과 억압, 자아와 이드, 거울단계, 거세불안과 남근선망, 비애와 우울, 마조히즘, 기이함…… 따라서 이 책을 일종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사전처럼 활용하여 필요한 때 해당 개념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해설 너머의 해설이기도 하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텍스트 자체가 근본적으로 해체적 글쓰기였다고 본다. 프로이트의 글은 당대 과학 담론의 글쓰기 유형과는 매우 달랐다. 특히 문학을 다룬 글과 신경증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는 넓은 의미의 문화비평에 가깝다. 이 책은 이런 프로이트의 주요 저작을 일종의 ‘문학 텍스트’로 읽는 이론비평이기도 하다. 저자는 때로 프로이트를 허구적 ‘서술자’로 간주하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일종의 꿈,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실현되지 못한 소망충족의 서사로 분석한다. 이런 시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호프만의 소설 『모래인간』에 대한 프로이트의 분석을 다룬 11강이다. 여기서 저자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글 「기이함」에서 『모래인간』을 자신의 이론에 따라 어떻게 폭력적으로 ‘전유’하는지 살피고, 프로이트 이론의 서사적 완결성이 배제의 논리에 기대고 있음을 규명한다. 하지만 이런 신경증 분석 시도의 실패 사례를 통해 저자는 오히려 프로이트 자신의 무의식에 다가간다.
『모래인간』을 통해 프로이트가 설파한 거세불안과 다른 종류의 두려움과 낯섦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독자를 나타나엘의 강박에서 떨쳐나오게 만드는 문학의 불온성을 입증할 가능성이 큽니다. 기이함을 통한 프로이트의 신경증 분석 시도의 실패는 언제나 이론보다 더 풍부한 문학의 창조성에 대한 무의식적 인정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408쪽)
이처럼 이 책은 충실한 해설에 머물지 않고 프로이트 이론의 공백과 틈을 발견하여 거기서 프로이트의 억압기제와 무의식을 읽어내고, 미처 프로이트가 열어 보이지 못한 미답의 영역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한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나의 무의식과 욕망은 무엇인가. 나는 왜 그의 책을 읽고 가르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가. 인간주의와 휴머니즘이 바닥을 치고 있는 지금,
그는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조용히 묻게 합니다.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인가. 왜 우리는 고통을 필요로 하는가.
프로이트는 이런 낯선 물음 앞에 우리를 마주서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