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독일문학사 최초의 환경문학의 문제작!
독일 시적 사실주의의 대가 빌헬름 라베의 두번째 선집이다. 역사적 문제를 사실주의로 그려냈던 저자는 독일이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넘어가는 소용돌이 속에서 겪어야 했던 정치, 경제, 사회 체제의 변화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정체성 혼란, 역사인식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산업문명과 자본주의의 가속화가 불러온 생태파괴 문제가 큰 화두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독일문학사에서 이를 최초로 건드린 환경문학과 생태문학의 문제작이자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고도 산업자본주의 사회인 오늘날, 무너지는 생태계 속에서 이 소설이 주는 교훈은 그 어느 때보다 짙을 것이다.
성장과 부패가 절창을 이루는 여름, 베를린의 김나지움 선생인 에버트 피스터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는 결혼 첫해의 여름휴가 기간에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온다. 지난겨울, 설탕 공장 크리커로데의 폐수로 인해 대대로 이어져온 피스터 방앗간은 폐업했고, 그 충격과 실의에 아버지도 눈을 감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방앗간 전체의 땅이 산업문명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 마지막 단골손님이자 오늘의 기록자로서 역사의 물레방아 가락과도 같은 피스터 방앗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펴 그린다. 스물두 장의 종이로 구성된 소설은 서정적 문체로 이어져 작가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일기이자 시대적 전언으로 읽어 낼 수 있다.
목차
피스터의 방앗간 _009
주 _215
해설 _227
빌헬름 라베 연보 _249
저자
빌헬름 라베
출판사리뷰
“내게 저 물은 생명체와도 같아, 저 물의 맥박을 재기 위해 의사를 불러야만 한다고. 피스터 방앗간의 맥박이 서서히 멈춰가고 있어, 에버트 피스터!”
독일 최초의 생태소설이자 환경문학의 문제작
19세기 말 산업자본주의와 맞선 스물두 장의 절박한 그림엽서
이 작품은 내적 온기를 발산하는 다정다감한 소설이다. _헤르만 헤세
라베는 자신의 꿈을 작품에 구현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사실주의자다. 그는 꿈과 꿈의 실현을 현실과의 생생한 연관성 속에서 본다. _게오르크 루카치
이 작품은 19세기 말에 대한 급진적 진단을 통해 오늘날의 복지사회가 종말론적 조명하에 놓인 원인은 산업화로 인한 자연 파괴임을 입증하고 있다. _게르하르트 카이저
유머를 이해하는 작가는 누구인가? 벽 또는 고상한 관중의 두뇌에 미세한 바늘을 꽂는 사람, 자신의 시대와 지나간 모든 시대의 옷가지를 거기에 거는 사람이다. _빌헬름 라베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문학동네의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은 문학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지성과 사유의 씨앗이 된 작품들, 인문 담론과 창작 실험을 매개한 작가들로 꾸려진 상상의 서가다. 사회적 인식과 개성적 상상세계를 교차시키고 캄캄한 관념의 갱 속에서 빛나는 사유의 광맥을 캐낸 작가들, 기존 분류체계에 갇히길 거부하는 글로 무한한 영감을 준 작품들의 서가다. 우리는 이 서가에서 제도권 지식의 얼어붙은 내면에 인식의 도끼를 내리꽂고 사유의 개화를 이끈 창조적 정신과 만난다. 이 만남을 통해 시대를 진단 ? 비판하고 인간을 되물었던 (인)문학의 본령을 되찾고자 한다. 숨은 작가, 낯선 작가, 바깥의 작가들을 조명하고, 문학과 인문학의 행복한 넘나듦을 감행한 그들을 축복하고자 한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선집 형태로 소개하는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에서는, 이미 독일 시적 사실주의의 대가 빌헬름 라베Wihelm Raabe의 『포겔장의 서류들』을 국내에서 처음 출간한 바 있으며, 이어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의 실험성 높은 작품들을 필두로, 사회 문제를 비판적 의식의 정갈한 문체로 다뤄 긴 여운, 깊은 울림을 주는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타부키Antonio Tabucchi, 상속받은 재력을 바탕으로 일평생 유희하는 광기의 글쓰기를 보여준 레몽 루셀Raymond Roussel, 역사와 문학의 박학다식을 절제된 산문으로 풀어내 르네상스적 인간 면모를 느끼게 하는 이탈리아 작가 클라우디오 마그리스Claudio Magris,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의 보츠와나 작가로 인종차별에 맞서며 내재화된 정치 현안을 감성적 삶과 결부시킨 베시 헤드Bessie E. Head, 중국 현대문학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킨 문제 작가 옌롄커閻連科의 작품들을 속속 출간할 예정이다.
〈빌헬름 라베 선집〉 02 『피스터의 방앗간―여름방학 공책』
빌헬름 라베(Wilhlm Raabe, 1831~1910)는 19세기 독일문학사에서 역사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던 사실주의 작가 중 하나다. 로렌스 스턴, 장 파울, 찰스 디킨스, 토마스 만 등에 비견되는 그는 역사적 인물을 창조하기보다는 한 개인의 삶에 녹아든 역사성을 심도 있게 탐구했다. 19세기 독문학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라베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에 이르는 역사관을 자신만의 문학적 언어로 비판적으로 성찰해낸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피스터의 방앗간』(1884)은 『포겔장의 서류들』(1896, 라베 선집 1권)의 연장선상에서, 독일이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넘어가는 소용돌이 속에서 겪어야 했던 정치, 경제, 사회 체제의 변화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정체성 혼란, 역사인식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산업문명과 자본주의의 가속화가 불러온 생태파괴 문제가 큰 화두로, 독일문학사에서 이를 최초로 건드린 환경문학의 문제작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라베가 독자에게 띄우는 인간과 문명에 관한 전언이자 태곳적 고향을 상기시키는 애틋한 그림엽서다. 공장 폐수와 시내 오염으로 피스터 방앗간이 사라지기 직전, 아내와 함께 마지막 여름을 보내기 위해 고향에 온 에버트 피스터는 역사의 물레방아 가락과도 같은 이곳의 어제-오늘-내일을 시적詩的 사실주의의 필치로 스케치해간다. 지구의 환경오염과 인류의 미래가 어느 때보다 더 염려되는 오늘날, 이 묵시록적 생태소설의 맥박을 짚어야 한다!
독일 환경소설·생태소설의 효시, ‘고통스러운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시작하다
“이 책은 세상에 나올 때 매우 지독한 저항을 견뎌내야 했고 나에게 결코 적지 않은 근심을 안겨주었다”―라베
작가는 프로이센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벌인 전쟁과 소독일 통일(1871), 산업혁명 등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대변혁의 시기를 살았다. 1884년(53세)에 출간되기까지 이 책은 여러 번 출간을 거절당했고, 이를 작가는 ‘고통스러운 오디세우스의 항해’에 비유했다. 1882년 설탕공장 폐수로 인한 시내 오염, 물고기떼 익사, 인근 방앗간 폐업 등을 목격한 작가는 실제 사건을 작품화했다는 이유로 숱한 시련을 겪었다. 당시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보를 부르짖던 자본과 문명세계의 기득권자들에게 그는 시대를 역행하는 눈엣가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은 훗날 “당시 사회를 묘파한 날카로운 비평가”(헤르만 헬머스), “시민사회의 세속화된 현실에 개입하려고 애쓴, 당시 독일의 유일한 사실주의 작가”(요아힘 보르트만)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19세기 독문학사에서 최초의 생태소설, 환경문학의 효시로 불리게 되었다.
스물두 장의 종이, 인간과 문명에 관한 전언이자 태곳적 고향을 상기시키는 애틋한 그림엽서
『피스터의 방앗간』에는 ‘여름방학 공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성장과 부패가 절창을 이루는 여름, 베를린의 김나지움 선생인 에버트 피스터는 결혼 첫해의 여름휴가 기간에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온다. 지난겨울, 설탕 공장 크리커로데의 폐수로 인해 대대로 이어져온 피스터 방앗간은 폐업했고, 그 충격과 실의에 아버지도 눈을 감았다. 그는 방앗간 전체의 땅이 산업문명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 마지막 단골손님이자 오늘의 기록자로서 역사의 물레방아 가락과도 같은 피스터 방앗간의 어제-오늘-내일을 살핀다. 총 ‘스물두 장의 종이’로 구성된 이 소설은, 마치 앉은 자리에서 스케치북을 북북 찢어 써내려간 듯 절박한 심정이 그려진 스물두 장의 그림일기이자 독자에게 띄우는 전언(유언)이 담긴 애틋한 그림엽서다. 그리고 그 서정적 문체는 인간 역사의 태곳적 심장에 청진기를 갖다대는 듯하다. 이는 온갖 것을 놓치지 않고 되살려내기 위해 기록해나가는 『포겔장의 서류들』에서 칼 크룸하르트가 보여준 고행의 글쓰기를 연상시킨다. 『피스터의 방앗간』에 등장하는 기록자 에버트 피스터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사를 관통해나가는 한 인간의 고뇌와 시련, 그 체험 속에서 한 시대의 방향 모색을 위해 이야기의 주인공 피스터, 그리고 작가 라베는 펜을 들어 글쓰기(문학)가 곧 역사(현실)화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산업자본주의 이전의 목가적인 세계와 이후의 세속화된 현실 사이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가는 이 소설에서 당대 독일 사회의 제반 문제와 정면으로 맞대응했다.
등장인물들이 중개해낸 최후의 역사 풍경화, 역사를 역사이게 하는 자들의 초상화
게오르크 루카치는 라베가 작품에서 그려낸 인물 군상―작가 스스로가 한 개인의 인생 체험에 녹아든 역사성에 주목했듯―을 살피면서 당대 사회와의 “화해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그 인물이 처한 “사회적 한계”를 언급한다. 그리하여 모든 제약과 작가적 패배를 감안하고서라도 시대의 거울로서 아름답고 추한 모든 것을 공존?보존시키면서 꿈과 그 꿈의 실현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진정한 사실주의자”라고 라베를 평가했다. 헤겔과 포이어바흐에 이르는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성찰해내어 자신의 문학세계로 가져온 라베의 이 전략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자에 대한 최후의 초상화를 그려내고자 하는 바람에 다름없다. 이 소설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 피스터의 후견을 받으며 자란 고아이자 서술자 에버트의 개인교사였던 아담 아셰는, 오늘날 화학박사이자 세탁산업의 공장주로 부상해 피스터 방앗간의 멸망 원인을 캐내는 탐사자가 되는 동시에 전통을 보존하고 미래를 가장 잘 책임질 미래의 인물로 그려진다.
에버트는 후세대를 가르치는 직무 속에서 아버지 세대의 사라져가는 전통을 기록하고 새기고 일깨워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듣는다. 이외에 베를린 도시에서의 현실과 생활을 다독이고 꾸려나가는 아내 에미, 아버지 피스터 방앗간의 역사와 함께한 늙은 가정부 크리스티네와 궂은일을 마다않고 충직하게 일해온 늙은이 잠제의 삶에 대해서도 작가는 누구보다도 특별히 묘사해내고 있다. 그리고 태곳적 심장을 지닌 시인 펠릭스 리폴데스의 자살과 성실하고 인내심 많은 그의 딸 알베르티네와 아담의 결혼을 통해 작가는 미래의 더 나은 쪽으로, 실천이 가능한 한에서 최선을 다해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간다. 마치 자기가 왜 이것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탐구해나가듯, 왜 방앗간이 침몰해가는 낙원으로 변해가게 되었는지를 밝히려 하는 이 소설 속 인물들과 같이.
묵시록적 생태문학의 메아리, 오늘날 라베 작품의 현재성
라베는 “모든 시문학은 상징적이다. 현실에 대한 묘사는 기껏해야 재미있는 읽을거리에 불과하다. 나는 심연에서 지속적인 것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일상의 현실 위로 들어올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그의 이런 문학관은 인물들이 자아내는 후모어Humor와 더불어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넘어서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즉 성서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데 교회’에 대한 비유를 비롯해, 작품 전반에 인용되고 있는 신학적 세계의 픽션적 요소와 실화 사건의 현장을 탐사하듯 화학자, 변호사가 방앗간 물 오염의 원인을 추적하는 다큐적 요소의 결합 역시 기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오늘날 산업자본주의의 무자비한 팽창·개발과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묵시록적 소설로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기의 문학작품들이 군데군데 언급되고, 이탈리아 시인 자코모 레오파르디, 독일 시인 슈네츨러의 시 「쓸쓸한 물방앗간」의 반복되는 율동적 모티프는 스물두 개의 장을 물레방아 가락처럼 느껴지게 한다.
피스터 방앗간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가축과 짐승, 들판의 나무와 의자들 역시 이 무너져가는, 그러나 가슴에 영원으로 기록되는 이상향으로서의 전원 그림을 완성해내는 데 모두가 빠짐없이 동참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구절 “그 그림들 다 어디 갔지?”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고 있다. 라베는 이 그림을 스케치해내기 위해 회상 기법과 낯설게하기 기법을 오가며 우리의 현실 인식과 역사적 각성을 부단히 되묻고 있다. 고도 산업자본주의 사회인 오늘날, 우리가 라베의 이 질문을 피한다면 어떻게 역사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은 그 질문이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독서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