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진秦나라 발흥에서부터 서로마 패망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양쪽 대척 지점의 1,200년 역사 비교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양쪽에 있는 진(秦)·한(漢)제국과 로마제국의 발전 과정을 비교한 책. 두 제국의 흥망성쇠를 실마리로 삼아, 양대 제국의 정치·경제·군사·민족·사상·관습 등 다방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총체적으로 탐구했다. 특히 두 제국의 같고도 다른 유산이 제국 멸망 후 지금까지 동·서양 세계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을 강조하면서 그간의 역사적 교훈과 대국 통치의 방법을 총괄했다.
목차
추천의 글 지식의 향연 006
중국어판 머리말 2,000년 전 동·서 웅자, 진·한과 로마제국 026
머리말 용 모델, 독수리 모델 034
제1부 춘추전국과 로마공화정
제1장 민족들의 각축장
제1절 고대문명 054
제2절 포용의 장점 060
제3절 중국의 지형과 민족 067
제4절 동주열국東周列國과 ‘오랑캐’ 072
제5절 이탈리아의 지형과 민족 084
제6절 라틴 식민지들과 ‘야만인’ 088
제7절 정벌과 회유 095
제2장 건국과 제도
제1절 철과 피, 정치와 사상 100
제2절 기술과 경제 109
제3절 전통과 사회 119
제4절 로마의 신분투쟁 127
제5절 확장의 부작용 133
제6절 로마공화정은 민주적이었나 139
제7절 주나라의 종법 봉건제도 151
제8절 춘추풍우春秋風雨, 백가쟁명百家爭鳴 164
제9절 인치人治와 법치 法治 172
군자와 소인
인사와 제도
의義와 이利
제10절 귀족정에서 중앙집권으로 208
제11절 노예와 자유민 216
제3장 정벌과 병탄
제1절 변방에 이는 전운戰雲 225
제2절 진과 육국 六國의 합종연횡 231
제3절 세력 균형에서 통일로 241
제4절 로마와 카르타고의 쟁패 249
제1차 포에니 전쟁
제2차 포에니 전쟁
제3차 포에니 전쟁
제5절 자유로 포장한 제국주의 269
제6절 의전義戰과 성전聖戰 276
제7절 전쟁의 시대, 전사의 나라 287
제8절 전쟁과 군기 296
제4장 처음 맞는 평화
제1절 제국의 내란 308
제2절 로마공화정의 쇠락 315
제3절 원수元首에서 황제로 323
제4절 진시황의 십년천하 335
제5절 항룡유회亢龍有悔 344
제6절 단절과 연속 379
제2부 진·한황조와 로마제국
제5장 사해안정四海安定, 팍스 로마나Pax Romana
제1절 창칼을 녹여 보습을 392
제2절 공화제의 탈을 쓴 전제정 402
제3절 세상을 안정시킨 군국주의 411
제4절 로마의 내란을 다시 평정하다 420
제5절 한나라 초기의 봉건제 회귀 426
제6절 독존유술獨尊柔術 432
의義와 이利
경전주석심리
무책임한 이상주의
제7절 동한문덕東漢文德 462
제8절 역사학이라는 색안경 473
제6장 정치체제
제1절 제국의 특징 483
제2절 군주와 백성 490
제3절 황제와 황위皇位 500
제4절 정부와 엘리트 509
제5절 내조內朝와 외정外廷 523
제6절 지방 행정 530
제7절 정부의 규모 538
제8절 경제와 세금 545
제9절 법률 질서 553
법치와 인치
도덕과 법률
공의公義와 인정人情
지성과 도그마
제7장 외교 책략
제1절 기원후 유라시아대륙의 형세 590
제2절 선위사막宣威沙漠 603
제3절 서역 관문을 닫다 617
제4절 끝없는 제국 로마 626
제5절 로마의 외화내빈外華內貧 635
제6절 제국의 책략 643
제7절 패권 수완 651
제8절 변방 방위 665
제8장 제국의 쇠망
제1절 찬란한 석양 676
제2절 야만인과 오랑캐 688
제3절 사회 분화 698
제4절 정치 부패 708
제5절 내부 분열 718
제6절 군웅할거 731
제7절 흉노의 보복 740
제8절 훈족의 서진西進 744
제9절 로마 최후의 날 752
제10절 불씨가 전해지다 765
[부록 1] 한나라와 로마는 서로 알았을까 772
[부록 2] 실크로드 무역 779
[부록 3] 진나라의 장성長城 공사 788
주 793
[부록 4] 참고지도 850
[연표 1] 동서 세계 대사건 868
[연표 2] 중국 진·한황조 대사건 870
[연표 3] 로마제국 대사건 874
[연표 4] 진, 한, 서진 황제 878
[연표 5] 로마 황제 879
참고문헌 881
옮긴이의 말|두 제국 진·한과 로마제국 906
찾아보기 911
저자
어우양잉즈 (지은이), 김영문 (옮긴이)
출판사리뷰
지금껏 이런 비교사史는 없었다!
‘두 세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아홉 가지 통찰
중국계 미국인, 물리학 교수 출신으로 문사철·사회과학 겸비
‘실증’을 무기로 역사·정치외교·경제경영의 경계를 넘나들다
공통점 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흔히 진·한 제국은 기원전 221년 진시황의 천하통일부터 기원후 220년 후한 멸망까지 400여 년, 로마제국은 기원전 27년 제정(帝政) 성립부터 기원후 476년 서로마 멸망까지 500여 년 존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제국이 어느 날 갑자기 성립한 것은 아니다. 제후국 진은 춘추(春秋)시대 시작 한 해 앞선 기원전 771년에 책봉되었고, 진·한제국은 삼국시대(위·오·촉)를 거쳐 동진(東晉)이 멸망한 419년에 실질적으로 소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로마제국의 씨앗은 신화시대와 초기 왕정을 거쳐 기원전 509년 공화정 성립 때 뿌려졌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듯이 진·한과 로마, 두 제국은 동시대 유라시아 대륙의 동과 서를 나누어 호령한, 말 그대로 ‘천년제국’들이었다.
공통점 ② 내부로부터 무너졌다
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듯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도 않았다. 중국 중원의 북쪽에는 ‘오랑캐(夷狄)’가 있었고, 로마의 북쪽에는 ‘야만인(Barbar)’이 있었다. 이민족과의 간단없는 전쟁과 평화는 제국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으나, 막상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적이었다. 한나라와 로마가 인구와 물산 모두 빈약한 흉노와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한 것은 제국 내부의 압제와 부패, 전략 부재의 치국책으로 서서히 국력을 소진한 결과였다.
공통점 ③ 제국은 사라져도 유산은 남았다
‘백가쟁명, 백화제방(百家爭鳴, 百花齊放)’의 전국(戰國)을 통일한 진·한은 유가(儒家) 사상과 통치철학을 만대에 유산으로 남겼다. 로마가 자체개발한 법치와 동방에서 받아들인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서구 문명을 떠받치는 두 개 기둥으로 건재하고 있다. 진시황이 처음 만든 ‘황제’와, 제국의 결정적인 기틀을 놓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의 이름은 동서 양쪽에서 제국 통치자의 호칭에 아직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시진핑 ‘시황제’, 카이저, 차르).
차이점 ① 국경이 긴 로마가 불리했다
진·한 이전부터 이후까지 중국 중원의 외적 방비는 육상경계선 방어만으로 충분했다. 하나의 땅덩어리인 진·한은 자연스럽게 강력한 중앙집권을 견지할 수 있었고, 중앙의 통제가 흔들릴 때마다 제국은 위기를 맞았다. 반면 지중해를 호수처럼 차지한 로마는 육지 사방은 물론 바다의 적들로부터도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적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잦은 원정은 국력을 고갈시켰고, 그에 따른 분할통치는 중앙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부패와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 군사력을 위해 이민족 용병을 쓴 것은 로마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차이점 ② 인치(人治) 대 법치(法治), 지성 대 도그마
흔히 중국과 동아시아는 인의(仁義)를 중시한 사람의 지배[人治], 로마와 서구는 정의를 중시한 법의 지배[法治]가 특징이라며, 인치보다 법치를 앞세운 것이 서구 문명 번영의 비결인 것처럼 설명한다. 중국과 미국 ‘두 문화’의 경계에 서서 양쪽을 들여다보는 저자는 이 통념을 일단 수긍하면서도 더 심층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요는 표면상의 ‘인치냐 법치냐’가 아니라, 인치든 법치든 그 바탕에 지성(intellect)이 있을 때 사회가 번영하고 존속되며, 지성 대신 도그마(dogma)가 횡행할 때 결속은 무너지고 사회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
차이점 ③ 유럽은 분열했고 중국은 통일했다
서로마 멸망 후 유럽은 다시 통일제국을 이루지 못했다. 신성로마제국은 이름뿐이었고 러시아제국은 변방의 대국에 불과했으며, EU에 의한 유럽통합은 요원하다. 반면 중국은 짧은 분열기(삼국, 남북조, 오대)를 거치고 나면 어김없이 거의 300년씩에 이르는 당(唐)·송(宋)·명(明)·청(淸) 대제국의 통치가 회복되었고, 그 정치단위는 거의 그대로 오늘날의 중국까지 이어지고 있다.
통념을 깨다 ① 진秦나라 있었기에 한漢나라 가능했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은 폭정으로 무너졌다고들 한다. 저자는 농업생산력, 조세, 군역, 형벌 등에 관한 당대 기록을 실증적으로 논구 비교하여, “법가(法家)를 채택한 진나라 통치는 결코 다른 나라보다 가혹하지 않았고, 유가를 채택한 한나라 통치는 결코 진나라보다 자비롭지 않았다”고 결론 내린다. 진나라의 경제력과 정치제도는 오히려 뒤이은 한나라가 400년을 존속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으며, ‘단명(短命)한 통일에 뒤이은 강성제국의 구도(단-장)’는 진?한에 이어 수(隋, 29년 존속)?당(唐, 289년), 원(元, 97년)?명(明, 276년), 중화민국(38년)?중국(1949~ )으로 도식처럼 복제되고 있다.
통념을 깨다 ② 계급차별·빈부격차는 로마가 더 심했다
실증을 중시하는 과학자 출신 저자의 특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대목. 흔히 귀천(貴賤)과 빈부의 엄격한 격차가 중국의 제국들을 쇠퇴하게 만든 주원인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저자는 당시 기록과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이 통념을 뒤집는다. 단적으로, 서력 기원 무렵 전한제국의 최고 통치 관리는 241명, 그 한 사람의 녹봉은 일반 병졸 46명의 밥값에 해당했지만, 2세기 중엽 아우렐리우스 시기 로마제국의 최고 통치자는 230명으로 비슷하지만 그 한 사람 소득은 병졸 1,196명의 밥값에 해당하여, 부의 집중도가 26배나 차이 났다는 것.
통념을 깨다 ③ 미·중 G2는 21세기의 용과 독수리가 될 수 있을까?
서로마 멸망 후 1,600년가량 지나 서구에는 미국이라는 절대강자가 등장해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듯했다. 19세기 중엽~20세기 전반까지 치욕의 한 세기를 겪은 늙은 중국은 21세기 들어 ‘굴기(?起)’를 선언하며 G2의 한 자리를 꿈꾼다. 저자는 미국이 세계사의 68번째 제국, 공산 중국은 69번째 제국임을 밝히며, 그러나 “대제국이 소국과 다른 것은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고 단정한다. 과연 중국과 미국은 21세기의 용과 독수리가 될 수 있을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