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고통과 상실감과 그리움을 헤쳐나가기 위한
애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한 개인의 자살이 주변, 그리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크다. 자살 사별자의 범위를 직계가족으로 제한하면 대여섯명에 불과하지만 그 범위를 넓히면 친척, 친구, 동료, 간접적으로 영향받거나 노출된 사람들까지 크게 늘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수십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우리 사회에서 자살자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을 위로하는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가 출간되었다. 자살은 ‘흔한’ 죽음의 방식이지만 우리는 그 죽음을 다루는 데 서툴기만 하다. 자살 유가족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면 좋을지 몰라 외면해버리거나, 조언한답시고 상처가 될 뿐인 무례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특히 유명인이 자살한 경우 그 원인을 두고 무분별한 추측이 난무하거나 유가족이 원치 않는 내용이 기사화되는 등 스캔들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저자 고선규는 2014년부터 3년간 중앙심리부검센터 부센터장으로 근무하며 자살자의 사망 전 상황을 분석해 자살 원인을 추정하는 심리부검 면담 프로토콜을 개발한 자살 문제 전문가로, 전국의 자살 유가족을 만나 애도상담을 진행하고 사별 당사자와 자조모임을 이끌고 있다. 저자는 현장에서 마주한 무수한 사례를 바탕으로 자살 사별자가 고인을 온전히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건너야 할 여정,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들을 대할 때 취해야 하는 태도를 차분히 소개한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애도는 당연하고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 책이 고인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슬퍼하기 위한 여정의 든든한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목차
내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그의 흔적을 함께 걷다
자살 사별을 이야기하다
갑작스러운 상실을 마주한다면
그저 남의 일인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고통을 어떻게 헤쳐나가나요
자살 사별자의 범위
유명인의 자살
은폐되는 죽음, 자살
장례식에서
왜 알지 못했을까
만약 그랬더라면
가족이 애도의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약이 되지 못할 때
애도는 단계가 아닌 과정이다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변화에 그대로 반응하기
의미 만들기라는 지도를 가지고
신발 신고, 걷고, 벗기
상실을 위로하는 영화
자살 사별자에게 위로를 건넨다면
상담사에게 보내는 답장: 애도상담 1년을 정리하며
에필로그
저자
고선규
출판사리뷰
극단적인 선택 뒤에 남겨진 사람들
안타깝게도 자살은 우리 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죽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2003년부터 2019년까지 2017년 한해를 제외하고 매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매일 수십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만큼 수많은 사람이 자살자 뒤에 남겨져 고통과 상실감을 호소한다. 자살 사별자들은 일반인보다 우울증 발병률이 18배, 자살 위험이 최고 9배 높은 고위험군임에도 이들의 아픔을 살피는 사람은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사람이 자살로 사망하는 경우 5~10명의 주변인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발표했고, 우리나라는 자살 사망자의 배우자와 2촌 이내 직계혈족에게 국가 차원의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가족뿐만이 아니다. 친한 친구, 가까운 직장 동료 역시 커다란 상실감을 느낄 수 있으며, 범위를 좀더 확장하면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나 소방관, 현장을 발견한 목격자 역시 감정적 흔들림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공인이나 유명인의 자살사건이 발생하면 그들을 간접적으로 아는 수많은 사람이 상처 입고, 실제로 자살률이 높아지는 등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자살 유가족’이라는 말보다 ‘자살 사별자’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제안하며, 누군가의 자살에 노출된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지적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물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 역시 충분히 힘들고 신경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은폐되는 죽음, 자살을 낙인 없이 대하는 태도
자살은 종종 사고사나 돌연사로 둔갑한다. 사별자들은 대부분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며, 실제로 어린 자녀나 주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기도 한다.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식이 은폐되는 원인은 우리 사회가 자살자와 사별자에게 보내는 불편한 시선과 태도에 있다. 우리는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쉽게 단정하고, 그 죽음을 막지 못한 주변인을 질책한다. 그러나 자살은 완전히 예측하기도 막아내기도 어려운 죽음이다. 이러한 비난은 사별자들의 말 못할 고통을 가중시킨다.
죽음의 원인이 감추어지면 고인에 대한 애도는 첫 단계부터 어그러진다. 장례식은 고인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이 슬픔을 표현하는 애도의 장인데, 유가족들은 죽음의 이유를 감추는 데 급급하다보니 마음껏 슬퍼하기 어렵고, 사망 원인을 제대로 모르는 조문객들이 건네는 위로는 와닿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사별자가 애써 숨기려는 죽음의 방식을 들추고 그 이유를 무례하게 캐묻는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그 죽음을 설명해야 할 책임이 없다. 저자는 사별자들이 무례한 언사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와 함께, 우리 사회가 자살자와 사별자를 사려 깊은 태도로 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애도는 단계가 아닌 과정이다
마음껏 슬퍼하고 그리워해도 괜찮아
사별로 인한 상실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이며, 일반적인 사별의 경우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그러나 급작스럽고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린 사별의 아픔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특히 자살 사별은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 사별과 크게 다르다. 남겨진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추측할 뿐이다.
저자는 애도상담을 진행하며 만난 수많은 사별자가 ‘그날 이후’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되짚어보며 사별자가 통과한 치유의 길을 또다른 사별자에게 전달한다. 떠나간 이의 마지막 모습을 끝없이 되새기는 사람, ‘만약 그랬더라면’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가정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 고인이 생전 주고받던 메시지와 이메일을 밤새워 찾아 읽는 사람, 남겨진 가족들과 갈등을 겪는 사람 모두에게 다른 이들이 이 고통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들려주고, 함께 애도의 여정을 떠나자고 손을 내민다. 애도는 순차적인 단계가 아닌 치열한 노동이자 과정임을 강조하며,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변화에 반응하기 위한 방법을 소개한다.
모든 사별 경험은 고유하다. 누군가는 이 책에 소개된 사례를 읽고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고 해서 그 경험과 감정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개개인의 경험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며, 남겨진 사람들은 그들의 삶 가운데에서 고인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슬퍼해도 괜찮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제가 만나지 못한 우리 곁의 자살 사별자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고인의 삶에도 열렬히 살았던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 사람의 끝과 함께, 삶의 열렬했던 순간도 떠올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서 고인의 이름을 부르고 마음껏 그리워해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_「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