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기, 새로운 빛깔을 펼치는 어린이를 보라!
용감하고도 사려 깊은 노랫소리를 담은 동시집
2009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유진 시인이 두 번째 동시집 『나는 보라』를 펴낸다. 그간 다채로운 서정을 넘나들며 섬세하게 언어를 조탁해 온 시인은 첫 동시집 『뽀뽀의 힘』(창비 2014)의 개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더한층 원숙해진 시 세계를 펼친다. 동시집에는 운동화를 신고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고, 선명한 보랏빛 색채를 뽐내며 용감하게 자기 존재를 선언하는 어린이의 목소리 60편이 담겨져 있다. 섬세하고도 유희적인 감각이 노니는 동시집은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의 내면에 숨어 있던 사랑의 감각을 흔들어 일깨울 것이다.
목차
머리말 | 어린이 독자님께
제1부 이따 만나
곰돌이 쿠키 먹는 법
한겨울 직박구리처럼
담쟁이, 다른 길로
달려
책을 줘요
샤워
누나
고장 난 저울
이따 만나
잠옷 주머니
꽃의 순서
분홍 바늘
나는 보라
어린이가 이기는 법
빨간 모자가 늑대에게
제2부 내가 노래 불러도 되나요
노래가 될게
아직
울음 파도
할머니 무덤
병어조림
4월의 엄마들에게
엄마 하느님
벌새의 날갯짓이 보이는 시간
여러 번 안녕,
마지막 날 밤의 고백
눈물 어항
그제야, 다람쥐
천천한 포옹
꿈에서 만난 귀신
어두운 밤
제3부 누군가는 우주선을 타고
팔팔파랄파르를파랄
엄마 미워
은행나무와 욕하다
용서할 수 있는 때
비둘기 집
해피 엔딩
헨젤과 그레텔의 유괴 작전
결혼 축하해, 이모
첫 급식 날
부석사 연등
누군가는
밖으로 나오면
출입문에 관한 안내
안심
산타는 있다
제4부 소리처럼 살아요
일기 쓰는 법
소리처럼
아까시나무에 바람 불 때
반딧불이
달님 물결 잠자리
깊은 산속 토끼탕
검은 바다 검은 고양이
별의 음악
나무가 되는 집
언제나 사랑이 이기는 법
북두칠성
밤눈
목화솜꽃
가장 작은 눈송이 하나
산마을 푹푹 눈이 내리면
해설|어린이가 보는 보랏빛 세계를 보라_김지은
저자
김유진
출판사리뷰
더 높이, 더 멀리 새 길을 걷는 어린이
김유진 시인은 첫 동시집 『뽀뽀의 힘』을 펴내며 “지금 어린이들의 심리와 감각에 알맞게 섬세하면서도 발랄하고 맛깔스러운 언어를 구사한다”(김은영)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 7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동시집 『나는 보라』는 시인의 고유한 개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몇 폭은 더 원숙해진 시 세계를 선보인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며 세상으로 나왔던 아이는 7년의 시간 동안 훌쩍 자라나, 자기에게 꼭 맞는 운동화를 신고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는 어린이가 되었다.
흙먼지 이는 길, 뭔가 숨어 있는 풀숲, 비 온 뒤 얕게 고인 웅덩이 조심조심 가리지 않고 이 운동화만 신으면 자꾸 달리게 돼. 엄지발가락이 앞코까지 빡빡하게 닿아도 내 발 모양대로 꺾이고 주름진, 색 바랜 운동화가 나를 달리게 해. ― 「달려」 부분
7년의 시간 동안 어린이가 달라진 것은 성큼 커진 보폭뿐만이 아니다. “엄마 발자국 뒤를 가만가만 따르다”가 “엄마와 다른 길을 새로 걸어요”라고 결심한 어린 담쟁이(「담쟁이, 다른 길로」)는 “꽃 필 날은 내가 정해요”(「꽃의 순서」)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그리고 “똑똑하지 않다는 똑똑한 예상을 / 뒤엎는 // 어린이가 항상 이긴다”고 여유롭게 흥얼거린다(「어린이가 이기는 법」). 어린이 고유의 감정과 주체성이 쉽사리 무시당하곤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에,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어린이상을 다채로운 시어로 표현해 준 시인의 용기가 반갑다.
섬세하고 유희적인 감각이 노니는 동시집
『나는 보라』에 실린 60편의 시를 읽다 보면 독자는 감각이 활짝 확장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 『뽀뽀의 힘』에서 “보라색 머리핀 하나”를 욕심내다 보라색 구두와 보라색 양말, 보라색 가방과 모자의 세계에까지 매혹되어 버린 어린아이(「보라색 머리핀 하나 사고 싶었는데」)가 두 번째 동시집의 표제작인 「나는 보라」에서 자신만의 오롯한 정체성을 확립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특히나 큰 즐거움이다. 시인은 빨강과 파랑과 함께 어울리며 선명한 보랏빛 색채를 뽐내는 어린이를 통해 특유의 섬세하고 유희적인 감각을 자유자재로 펼친다.
빨강빨강보라였다가 빨강보라였다가 / 파랑보라였다가 파랑파랑보라였대도 // 보라는 보라 // 빨강 옆에서 빨강을 알게 하고 / 파랑 옆에서 파랑을 보여 주며 // 빨강과 파랑을 만드는 // 보라― 「나는 보라」 부분
김유진 시인은 색채뿐만 아니라 시간 또한 예민하게 감각한다. 방과 후 빽빽이 들어찬 학원 일정 때문에 친구와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은 채 30분도 허락되지 않는다. 짧다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만, 어린이들은 쉬이 투덜대기보다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만남을 기약한다. 자그마한 시간의 틈새에서 유희하는 시인의 발랄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4시 45분부터 5시 10분까지 맞지? / 나 발레 끝나고 / 너 영어 가기 전에 // 학원 차가 아파트 정문에 서니까 / 정문 놀이터에서 보자 / 더 많이 놀 수 있게 // 그럼, / 이따 만나 ― 「이따 만나」 부분
시간을 늘이고픈 마음은 사회적인 애도로도 확장한다. 시인은 「벌새의 날갯짓이 보이는 시간」을 통해 “1초가 1분으로 흐르는 시간 / 벌새의 날갯짓도 보이는 시간”을 구한다. 이제는 꿈에서밖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픈 슬픔은 “시곗바늘을 뒤로 감아” 60번의 초침소리를 가만가만 들음으로써 조금이나마 위로받는다. 시각과 청각, 촉각 등 여러 감각들이 공명하는 체험을 통해, 독자들은 마치 목화솜꽃 안에서 “솜사탕 같은 잠”을 자는 듯한 휴식(「목화솜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는 언제나 사랑으로 이긴다
『나는 보라』에 등장하는 어린이 화자들은 현실의 서늘함을 이미 깨우쳤다. “키 재기 눈금은 / 칸칸마다 아빠 주먹으로 뭉개졌는데 / 용서가 그걸 바꿀 수” 있을지 회의하고(「용서할 수 있을 때」), 어른들이 꾸며 낸 해피 엔딩엔 위선적인 구석이 있다는 것도 안다(「해피 엔딩」). 그럼에도 어린이들은 무지몽매한 어른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언제나 이기는 것은 사랑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일깨운다. 시인은 첫 동시집의 표제작 「뽀뽀의 힘」에서 뽀뽀 한 방으로 어른을 반짝 일으켜 세우는 “뽀뽀의 힘“을 그려 낸 바 있다. 『나는 보라』는 그 핵심 메시지를 여전히 간직한 채, ‘해님과 바람’ 우화를 재치 있게 변주해 낸다.
나그네를 다시 만난 바람 / 그때 일이 분해서 / 휘이 휘이 휘이 세차게 내달렸더니 // 어? 나그네가 외투를 벗는다 // 추워하는 친구에게 건네고 / 어깨동무하며 다시 걷는다 // 오늘은 바람이 이겼다 / 언제나 사랑이 이기는 법 ― 「언제나 사랑이 이기는 법」 부분
아픔 속에서도 씩씩하게 자라난 어린이는 원숙해진 감각으로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미움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어른들은 따라 하지 못할 노래다. 이토록 속 깊은 마음을 가진 어린이 앞에서, 이제 어른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젊은 할머니는 / 꼬마 엄마에게 // 어른 엄마는 / 늙은 할머니에게 // 책을” 주며 함께 마음을 나누고(「책을 줘요」), “길이 길로 이어진다 / 길이 길을 열어 준다”고 믿는 삶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밖으로 나오면」). 김유진 시인의 용감하고도 사려 깊은 노랫소리는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지은의 말대로 어린이와 어른을 잇는 “공유의 열람석”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