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이와 어른 모두가 사랑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동시집
태어나서 자란 섬진강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고향 마을의 풍경과 정서를 시로 옮겨 온 김용택 시인의 동시집 『은하수를 건넜다』가 나왔다. 시인은 어린이가 사라진 동네에서 심심함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쓴 시를 묶어 동시집 한 권을 완성했다. 빗소리에 귀 기울이다 잠이 들고, 연필 끝에 내려앉은 잠자리와 인사하며 자연을 친구 삼아 노래하는 시인의 따사로운 시선이 동시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림 작가 수명은 연필 하나만으로 정성을 다해 시 너머의 풍경까지 섬세하게 그려 내, 동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목차
머리말
1부 내가 잘했을까요
내일 비 온다는 거야
내가 잘했을까요
별명
딴짓을 하면 안 돼요
어쩌라고?
자운영꽃
살구
참으로 이상한 일
성은이
꾀꼬리가 공부 잘하래요
우리 교실
소풍날 김밥이 모두 일곱 개
이름이 이름이래요
1학년 다섯 명
2부 정말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 봤다
환한 얼굴
그러게요
지난밤
정말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 봤다
환한 엄마 얼굴
우리 선생님
꽃
이 꽃을 누구에게 줄까
크게 웃다
캄캄한 밤을 주세요
매미야
도시 매미는 밤에도 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시골 멧돼지
3부 걷는 소를 만났다
걷는 소를 만났다
콕콕 쫀다
알밤이 나를 때렸어요
쌍둥이
느티나무
달밤
샘으로 가는 길
장날
혼자 먹는 밥
할머니랑 둘이서
다 운다
개구리
심심한 우리 동네
참새들의 하루
4부 내가 모를 줄 알고?
혼자였다
시골 우리 집
빗소리 듣다 잠들었어요
가을
예쁜 내 이름
내가 모를 줄 알고?
은하수를 건넜다
살구꽃
다람쥐와 도토리나무
논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했어요
착해지는 내 마음
옛 마을
5부 아버지의 발소리
콩 세 개
빈 밭에 눈이 와요
할머니 집 마루
들길
옹달샘
애벌레랑 잤습니다
당숙모네 깨밭
싸운 날
할머니는
졸업식 날
할머니의 정신
엄마 아빠 없는 날
아버지의 발소리
저자
김용택
출판사리뷰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탄생한 동시
간결하고 편안하면서 담담한 문체로 정직하게 마음을 담아 노래하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동시집 『은하수를 건넜다』가 나왔다. 40년 가까이 교직에 몸담으며 어린이 곁을 지켜 온 시인. 그의 동심은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쭉 이어지고 있다. 총 5부, 68편으로 이루어진 이 동시집 안에는 절판된 동시집 『내 똥 내 밥』(실천문학사 2005)에서 새롭게 고쳐 쓴 시 43편이 함께 담겨 있다. 공부하다가 연필 끝에 내려앉은 잠자리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참으로 이상한 일」), 돌담 밑에서 봉숭아 새싹이 올라오길 기다리고(「정말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 봤다」), 개구리가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지켜 주는(「딴짓을 하면 안 돼요」) 등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볼 줄 아는 다정한 마음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의 마음을 울린다.
무당개구리가 찻길로 나왔어요 / 가던 방향으로 조심조심 뒤를 따라 / 길을 건네주고 허리를 폈습니다 / 무당개구리는 위험을 느끼면 / 몸을 배 쪽으로 또르르 말아 / 검정 무늬가 박힌 진홍색 자갈이 되어요 / 작아도 좀 으스스해요 / 한참을 기다려야 몸을 펴고 폴짝 뛰어요 / 정말, 한참을 잊고 / 기다려야 해요 기다릴 때 / 딴짓하면 안 돼요 ― 「딴짓을 하면 안 돼요」 전문
언제나 어린이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
김용택 시인의 동시집에는 그가 가르쳤던 제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교단을 떠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시들이 있다. 숙제를 깜박하고 안 해 왔다는 아이에게 ‘임깜박’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고(「별명」), 노랗게 익어 가는 살구를 보며 군침 흘리는 아이에게 다 익으면 따서 같이 나누어 먹자고 하고(「살구」), 소풍날 도시락을 안 싸 온 친구를 위해 반 아이들과 함께 김밥을 하나씩 내어 준다(「소풍날 김밥이 모두 일곱 개」). 아이들과 겪은 일을 풀어낸 동시들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하고, 그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써 내려간 일기 같기도 하다. 특히 「우리 선생님」은 모교에서 27년을 교사로 머무르며 아이들을 가르쳐 온 시인만이 쓸 수 있는 동시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못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일컫는 구절에서 시인의 겸손함이 돋보인다.
우리 선생님은 / 우리 아빠도 가르쳤대요 / 우리 선생님은 / 우리 엄마도 가르쳤대요 / 우리 선생님은 / 우리 고모도 가르치고요 / 우리 삼촌도 가르쳤대요 / 내가 이따금 물어봐요 / 선생님 근데요 / 우리 엄마 학교 다닐 때 / 공부 잘했어요? / 그렇게 물어보면요 /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 너처럼 공부도 안 하고 / 말도 안 들었다고 해요 / 그러고는 웃어요 / 참 이상하죠? / 그럼 우리 선생님은 / 그때도 못 가르치시고 / 지금도 못 가르치시나? ― 「우리 선생님」 전문
작은 생명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김용택 시인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봄으로써 인간의 이기심을 되돌아보게 한다. 「크게 웃다」에서 날개 대신 다리로 통통 뛰어가는 귀여운 참새의 모습을 묘사하다가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서는 사람이 만든 유리창에 새가 부딪혀 숨을 거둔다. 「환한 얼굴」에서 동네 앞산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달빛의 모습을, 「은하수를 건넜다」에서 강물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별빛들을 그리지만, 「캄캄한 밤을 주세요」와 「도시 매미는 밤에도 운다」에서는 인공조명 때문에 진짜 밤을 빼앗겨 버린 동물의 시선에서 이야기한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고, 인간에게는 익숙한 것들이 다른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이렇게 대비를 이루는 동시들을 통해 보여 준다. 시인은 조그마한 콩을 심더라도 새와 벌레가 먹을 것까지 심는 농부의 삶을 보여 주면서(「콩 세 개」) ‘작고 낮고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심심한 일상에 친구가 되어 주는 동시집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놀 곳도 부족하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지 못해 심심함을 호소하는 어린이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감염병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줄어드는 인구 탓에 심심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곳도 있다. 김용택 시인의 오랜 삶의 터전이자 섬진강이 흐르는 작은 산골 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내가 사는 산골 마을에 어린이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없는 마을은 정말 심심합니다. 나는 너무 심심해서, 가는지 마는지 모르는 그러면서도 어디만큼 가고 있는 달팽이를 내려다보고 앉아 있기도 하고 뒷마당에 놀고 있는 참새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다가 어, ‘저놈’은 아까 앞마당에서 통통 뛰놀던 그놈 아니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심심함이 이렇게 시가 되었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시인의 말처럼 『은하수를 건넜다』에는 유독 어린이 홀로 등장하는 시가 많다. 아이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기가 부른 자기 이름에 본인이 대답하고(「어쩌라고?」), 학교에 유일한 졸업생이 되는 바람에 온갖 상을 몽땅 차지하기도 한다(「졸업식 날」). 그런데 이 화자들이 심심해 보일지라도 쓸쓸해 보이지는 않는 이유는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이용해 재치 있게 놀이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혼자 걸어가다가 논두렁에 있는 개구리와 눈치 싸움을 벌이거나(「개구리」), 뽕잎에 숨은 청개구리를 발견하고는 개구리에게 “내가 모를 줄 아니?”하고 능청스럽게 말을 건넨다(「내가 모를 줄 알고?」). 오직 오랜 기간 심심함에 단련된 시인만이 건넬 수 있는 진심 어린 위로이자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