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전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상상력!
어린이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동시집
제2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시 부문 대상 수상작
『괭이부리말 아이들』 『기호 3번 안석뽕』 등 주옥같은 창작동화와 숱한 화제작 들을 발굴해 온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의 제23회 동시 부문 대상작 『내 심장은 작은 북』이 출간되었습니다. 공모를 시작한 지 23년 만에 탄생한 첫 동시 수상작입니다. 송현섭 시인의 날카로운 호기심과 기발한 상상력은 독자를 순식간에 낯설지만 친근하고 기묘하면서도 특별한 동시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유머와 그로테스크가 넘실대는 동시는 어른이 만든 고정관념을 부수고 어린이 독자의 마음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목차
머리말
제1부 내 심장은 작은 북
제2부 열두 개의 밤톨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제3부 바퀴 없는 자전거를 꿀꺽 삼켜요
제4부 누구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해설|‘어마어마한 거인’들을 위한 시_김제곤
저자
송현섭
출판사리뷰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기묘하고 매력적인 상상력
『내 심장은 작은 북』의 송현섭 시인은 제23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동시 부문에서 대상을 받고, 이에 앞서 같은 해에 제6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동시계에 등장했다. 전에 없던 작품을 쓰며 우리 앞에 나타난 송현섭 시인의 동시 세계는 독특하다. 이질적면서도 친근하고, 시어 하나마다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시인은 놀라운 상상력으로 독자를 지금 여기가 아닌 새로운 어딘가로 데려간다. 개성적인 시 세계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나 점차 범상치 않은 세계관에 빨려들게 된다. 원숭이를 잡아먹는 마녀(「마녀의 수프 끓이기」), 아이들을 위협하는 그림책 속 괴물(「외눈박이 괴물의 충고」), 주인 할아버지의 발을 물어뜯고 싶어 하는 개(「어느 개의 고민 상담」) 등은 기존의 동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소재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시인은 어린이를 낮추어 보지 않고 새로운 생각과 힘을 지닌 ‘어마어마한 거인’으로 보며 시의 세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뱀 쇼’처럼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에게는 금지된 볼거리를 시의 공간으로 망설임 없이 불러온다.
엄청, 정말 엄청 / 겁 없는 개구리들이 / 뱀 쇼를 보러 가기로 했어. // “한번 가 보는 거지 뭐.” / “관객인데, 우릴 어쩌겠어?” // 미끈거리는 다리를 꼬고 / 개골개골 앉아 있는 / 개구리들을 보자 / 뱀은 자존심이 꼬일 대로 꼬였어. // ‘세상에, 개구리들을 위해 쇼를 하다니. 다른 뱀들이 알면 나를 뭐로 보겠어.’ // 쇼에 집중할 수가 없었던, 뱀은 / 꼬리 끝에서 머리끝까지 꼬불꼬불 화가 난, 뱀은 // 조련사가 활짝 웃으며 / 아가리에 손을 넣었을 때 / 꽉 물고 말았지 뭐야. // 조련사의 빨간 비명 소리가 / 개골개골 개골개골 / 사방으로 튀었지 뭐야. ? 「뱀 쇼」
어린이는 천진난만하면서도 곧장 폭발할 듯 어마어마한 힘을 품고 있는 존재다. 그러나 마음속 힘에 비해 현실의 ‘나’는 서툴고 어리기에 답답한 기분이 든다. 시인은 개구리가 뱀을 골리고, 화가 난 뱀이 자신을 다루는 조련사를 꽉 무는 상황, 즉 약자와 강자의 위치가 뒤바뀐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억눌린 어린이의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 또한 그의 시에서 시의 화자는 마법사가 되어 코스모스를 토끼로, 가시덤불을 늑대로 바꾸는가 하면(「내가 마법사가 되어」), 침대와 책상이 전부인 자그마한 ‘나’의 방은 전봇대와 암소 한 마리, 어미 개와 새끼 여덟 마리가 들어와도 좁지 않을 만큼 넉넉해진다(「자그마한 방」).
독창적인 작품에 숨겨진 묵직한 질문
동시집 『내 심장은 작은 북』은 기발함을 넘어 깊은 시적 울림을 준다. 캄캄한 밤, 홀로 공포와 싸우는 아이의 두려움은 점점 작아지는 방의 모습으로 그려지고(「내 방은 그럴 거야」), 저물녘에 잠자리와 달팽이를 벗 삼아 시냇가를 거니는 쓸쓸함은 시냇물의 눈물로 표현된다(「저물녘 시냇물아」). 동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구절이 담긴 시 「노래를 부를 거야」는 슬픔과 답답함을 떨쳐 내려는 듯 숨차게 달리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두근대는 심장의 고동을 작은 북에 비유하여 시를 읽는 독자에게 가슴 뛰는 감동을 준다.
내 심장은 작은 북 / 내 귀는 두 마리의 작은 새 / 내 코는 볼이 부풀어 오른 개구리 / 내 입술은 두 갈래의 풀잎 // 노래를 부를 거야. / 눈물에 빠진 두 눈을 위해 // 노래를 부를 거야. / 두 손아, 얼굴 가리지 마. // 노래를 부를 거야. / 공기가 까매질 때까지 // 두 마리의 작은 새와 개구리와 풀잎과 / 작은 북을 둥둥 두드리며. ? 「노래를 부를 거야」
송현섭 시인은 타인의 고통과 괴로움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는다. 타인의 비극은 곧 독자 자신의 비극이 되어 절절히 다가온다. 시인에게 아우슈비츠는 과거에 비극이 벌어졌던 장소가 아닌, 현재 우리의 비극을 사유하게 만드는 공간이다(「아우슈비츠 마을」). 무자비한 수족관 주인의 뜰채를 하느님의 축복으로 오해하는 물고기는 좁은 세계에 갇혀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수족관」). 그러나 이들 작품 속 약한 존재는 비극적 상황에 맥없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들은 마음속에 한 줄기 결기를 품고 있다. 아우슈비츠에 갇힌 나무 사람과 종이 사람은 불에 타 연기가 되어도 결코 아우슈비츠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아우슈비츠 마을」), 닭은 머리가 잘려서도 멈추지 않는 생명력을 발산하며 마당을 뛰어다닌다(「엄마의 사냥법」). 가죽이 헐렁헐렁할 만큼 마르고 볼품없는 길고양이도 지붕 위를 바람같이 날아다니며 생존을 위해 애쓴다(「검은 고양이 조로」).
『내 심장은 작은 북』에는 죽음을 다룬 시도 여러 편 실려 있다. 화자인 바위가 검은 구름에서 아빠의 그림자를 보고 목 놓아 울고(「울보 바위」), 길고양이는 담담한 모습으로 죽은 새끼를 묻는다(「죽은 발」). 시인은 죽은 자들을 애도하며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시인은 묘비도 없이 사라져 간 보통의 존재들을 노래하며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초록 풀잎과 푸르고 노랗고 붉은 나무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속을 날아다니던 / ……새들, // 버찌 같은 새들, / 나는 버찌를 안 먹는다네. // 마지막 비행을 끝내고 / 공중에 쪼그만 마침표를 찍고 // 초록 풀잎과 푸르고 노랗고 붉은 나무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속으로 날아간 / ……새들, // 버찌 같은 새들, / 내 친구도 버찌는 안 먹는다네. // 모하비 사막에는 비행기 무덤이 있고 / 하늘에는 새들의 무덤이 있고 // 밤마다 하늘의 숲은 우거지고 / 버찌 같은 새들, / 반짝반짝 반짝이는 새들, // 내 친구의 친구도 버찌는 안 먹는다네. ? 「새들의 무덤」
송현섭 시인의 시는 ‘동시’ 하면 익숙한 다정하고 순진한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시인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구속받지 않는 상상력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숨통이 트이는 듯한 해방감을 준다. 그러면서도 인생의 그림자를 성찰하는 진지한 자세로 나와 타인의 삶을 사유하게 한다. ‘어마어마한 거인’인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려 온 새로운 동시다.
앞으로도 송현섭 시인은 우리 동시가 보여 주지 못한, 어마어마한 거인들이 모두 환영할 시를 계속 보여 줄 것이다. 말하자면 『내 심장은 작은 북』은 앞으로 쓰일 시들을 위한 서시(序詩)이다. _김제곤 아동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