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아픔을 다독여 주는 동시집
아이들의 마음을 섬세하고도 재치 있는 언어로 표현해 온 김개미 시인의 동시집 『레고 나라의 여왕』이 출간되었습니다. 시인은 이번 동시집에서 당당한 ‘레고 나라’의 여왕을 꿈꾸면서도, 자신을 자그마한 ‘인형의 집’에서 살아가는 처지에 비유하는 아이의 속 깊은 세계를 그려 냈습니다. 너무나 힘들지만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환상 세계와 결합해 내는 시인의 언어를 통해 어린 독자들은 조금씩 마음이 치유되고 단단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프고 외로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다독여 줄 동시집입니다.
목차
제1부 상상 속의 나
벙어리장갑
상상 속의 나
침대 사 주세요
분신
레고 나라의 여왕
재투성이 소녀의 인형 놀이
난 주인공이 아니야
레고 나라
어떻게?
인형 놀이
병원에서
잃어버린 인형
제2부 인형의 집
우리 엄마
나만 그러나
동생 그림
따지는 거 아니야
아빠에게 따지자!
엄마가 술을 먹고 들어왔다
인형의 집
인형처럼
우리 집에 가고 싶어
엄마랑 나랑은
현관
개미는,
제3부 아빠 없는 시간
수염 요정아, 어디 있니
나의 안부
우리의 안부
내일 아빠가 온다고 해서
아빠 없는 시간 1
아빠 없는 시간 2
아빠 없는 시간 3
아빠 없는 시간 4
아빠 없는 시간 5
아빠 없는 시간 6
꿈꾸기 싫어
가을 하늘
제4부 엄마 생일을 까먹자
삼촌 오는 날
할머니의 모기 쫓기
동생과 놀아 주기
코끼리 그려 주기
엄마 생일을 까먹자
옆집 사람
새내기 선생님을 원해요
졸라맨
눈 오는 날
물 밑의 언니
살구
달걀
해설|다섯 번째 아이와 벙어리장갑_송선미
저자
김개미
출판사리뷰
여왕님과 재투성이 사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동시집
『레고 나라의 여왕』은 그간 아이들의 세계를 유쾌하고도 엉뚱한 필치로 그려 내 호평받은 김개미 시인의 이전 작품들과 사뭇 다른 결을 지닌다. 이 동시집의 주인공은 상상 놀이 속에서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얼음 나라의 왕비님이자(「상상 속의 나」), 스무 명이나 되는 졸개를 거느린 레고 나라의 여왕이다(「레고 나라의 여왕」). 유년 시절에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장난감 블록인 ‘레고’라는 상징을 통해, 시인은 독자들을 알록달록한 상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오늘처럼 야단을 많이 맞은 날은 / 레고 나라에서 자고 싶어. // 필통만 한 레고 기차를 타고 가면 / 레고 나무, 레고 꽃이 멋진 레고 정원, / 지붕이 빨간 레고 집으로 들어가는 거야. // 레고 빵, 레고 과자를 먹으면서 / 야단 같은 건 절대로 절대로 안 치는 레고 엄마랑 /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 「레고 나라」(24~25면)
그렇다면 아이는 상상 속에서 마냥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레고 나라의 여왕』은 끝내 떨칠 수 없는 현실을 지속적으로 환기함으로써 독특한 슬픔의 정서를 획득한다. 아이는 바닥이 아닌 침대에서 자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일찍 잠들 것만 같고(「침대 사 주세요」), 막대 인형으로 인형 놀이를 하는 재투성이 소녀의 처지에 놓여 있다(「재투성이 소녀의 인형 놀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던 시인의 언어는 끝내 그 경계를 부수고, 외면하고 싶은 아픔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그리고 아픔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아이의 주체성을 꼿꼿하게 드러낸다.
명작 동화 속 주인공은 / 마음이 약하고 시간이 많아서 / 엄마가 아프면 아무것도 못 하고 울기만 하던데, / 그런 게 어딨어. / 그건 다 거짓말이야. // (…) // 엄마가 아플 때 난 / 아주 씩씩한 아이었어. / 눈물은 다 오줌으로 나왔을 거야. / 그땐 참 오줌이 많이 마려웠어. / 역시 난 / 명작 동화 속 주인공이 아니야. - 「난 주인공이 아니야」(22~23면)
그리움과 사랑 속에서 아이는 자란다
가족 간의 애틋한 감정을 보여 주는 동시집
『레고 나라의 여왕』을 관통하는 주요 정서는 ‘그리움’과 ‘사랑’이다. 동시집에 등장하는 아이는 늦게 잠드는 날이 많아서 열두 살 중에 제일 나이가 많고(「나의 안부」), 겨우 잠이 들면 여전히 꿈에서 아빠를 만난다(「꿈꾸기 싫어」). 하지만 아이는 끝없는 슬픔 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아빠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 울다 잠들다가도, 자신만큼이나 힘들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줄 안다(「아빠 없는 시간 5」). 그렇게 아이는 매일 조금씩 단단해져 간다.
인형을 전부 창고에 갔다 뒀어. / 이제 나는 어린애가 아니야. / 징징거리는 건 내가 아니야. / 인형들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야. / (…) / 그렇지만 인형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 그걸 사 준 사람이 생각나. / 강해져야 해. / 울면 지는 거야. / 인형들은 자꾸 나를 약하게 만들어. - 「아빠 없는 시간 6」(72면)
연작 동시 「아빠 없는 시간」으로 드러나는 아빠의 부재와 더불어, 『레고 나라의 여왕』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아이와 엄마 사이에 형성된 독특한 유대감이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언젠가 멋진 집에 살게 될 날을 헤아려도 보고(「엄마랑 나랑은」), 친구들과 노는데 자꾸만 전화를 거는 엄마를 원망하기도 한다(「따지는 거 아니야」). 또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엄마의 생일을 끝내 까먹지 못하는 아이다움이 반짝이기도 한다(「엄마 생일을 까먹자」). ‘사랑’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가족 간의 애틋한 감정을 다층적으로 보여 주는 시인의 깊이 있는 시선이 믿음직스럽다.
작년에 엄마가 / 내 생일을 까먹어서 / 복수를 다짐했어요. // 며칠에 한 번씩 / 달력을 들춰 보면서 / 복수를 다짐했어요. // 아, 너무 열심히 다짐했나 봐요. / 드디어 내일이 엄마 생일인데 / 잠을 못 자겠어요. // 까먹어야 해……. / 까먹어야 해……. / 까먹어야 해……. - 「엄마 생일을 까먹자」(84면)
오래오래, 희망을 응시할 줄 아는 아이
다정한 눈길로 아픔을 다독이는 동시집
자신의 슬픔을 내보이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레고 나라의 여왕』에서 슬픔의 언어가 빛나고 진실되게 느껴지는 것은 시인의 마음이 아이의 마음과 꼭 닮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형을 사랑해서 / 아주 많이 사랑해서 / 인형이 우는 소리를 만질 수 있어. / 분홍 배 속에 가득한 / 고요한 슬픔을 들을 수 있어. / 자장가를 아침까지 불러 주고 / 푹신한 구름 뒤에서 / 온종일 인형을 돌볼 수 있어. / 나는 인형을 잘 아니까. / 인형을 꼭 닮았으니까. - 「분신」(18면)
시인은 어떻게 내면의 감정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을까 - 우리의 마음은 늘 “몸부림을 치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데 말이다(「코끼리 그려 주기」). 동시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달걀」은 일상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여겨지는 사물도 새로운 시선으로 오래오래 응시하고, 희망적인 상상력으로 덧대었다는 점에서 시인의 저력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본 / 수많은 달걀, 달걀들. // 아직 한 번도 /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걸 / 못 봤지만 // 나는 믿는다. / 한 개 정도는, 지구에서 딱 한 개 정도는, // 냉장고에서 꺼냈어도 / 병아리가 깨어날 거라고. - 「달걀」(96~97면)
『레고 나라의 여왕』은 아픔 속에서도 끝내 납작하게 뭉개지지 않는 아이다움을 생생히 그려 냈다는 점에서 미더운 동시집이다. 남몰래 울며 상상 놀이를 펼치는 아이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 아픔을 다독여 준 시인의 원숙한 시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