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필가 정홍수의 산문집
글을 읽고 쓰는 모두에게 참고가 될 깊이와 유려함
일상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사유와 문장
인간과 세계를 성찰하는 경이로운 마음의 떨림
대산문학상 수상 문학평론가이자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필가인 정홍수가 두번째 산문집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를 펴냈다. 정홍수가 쓰는 유려하고도 섬세한 문장은 이미 평단을 넘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바, 이번에는 일상에서 길어 올려 밝게 빛나는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펼쳐낸다. 정홍수의 글이 시작되는 시공간은 실로 다양하다. 출근길 전철 안, 아침의 산책길, 대학 시절 거닐었던 교정, 어느 날의 극장 앞. 이러한 고유한 추억들은 저자의 방대하고도 해박한 문화적 지식과 만나 각각 한편의 깊은 울림을 준다. 들고 다니며 읽기 편한 산문집이지만, 그 안에서 위로와 감동을 얻는 것은 물론 문학·대중예술에 관한 다종다양한 지식을 섭렵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지닌 특장점이다. 또한 이 책은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독자에게는 그 자체로 훌륭한 참고서가 된다. 소박한 하루하루가 어떻게 풍성한 글로 변모하는지, 또 그것을 어떤 문장으로 쓸 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며
제1부
마음의 가난, 문학의 가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는 것
두겹의 시간
시대 안에서 산다는 것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일
연결과 거리 사이에서
어떤 껴안음, 겨울 나무와 함께
조용한 미덕
북 치는 소년과 마지막 편지
김군은 누구인가
영원성과 사라짐의 어떤 결속
태극기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이국땅에서 울리는 한국어와 한국문학
‘우리 집’이라는 말
제목으로 돌아와 끝나는 이야기
문학이라는 매체
태어남 그리고 이별을 위한 긴 망각의 여정
바보의 웃음
제2부
초행(醮行) 혹은 초행(初行)
잠시 숨을 고르며
용산, 잊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유산
87년의 기억
회고록을 읽는 시간
‘충혼’과 ‘민주’ 사이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두 질문
어머니는 행복하시다
흩어지는 시간과 얼어붙은 시간 사이에서
중단의 결단
대여행의 시대
까맣게 잊고 있던 질문
길가의 풀
하루의 시
구름 극장
제3부
‘광장’ 이야기
김윤식 선생님
‘박’ ‘상’ ‘륭’, 세 글자
소주 한병
살아 있는 한국어
기억상실의 독법
제4부
카버의 승리
지상에 남은 마지막 음향
익살과 웃음
행동의 끝, 역사의 의미를 묻는 방법
인간성의 심연
제5부
늦게 오는 시간
금색 남방의 행방
우리는 여전히 그를 통해 세상을 본다
저자
정홍수 (지은이)
출판사리뷰
유려하게 펼쳐지는 힘 있는 문장
알차고도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의 제1부는 저자의 지근거리에서 일어난 마음의 정동을 섬세하게 포착한 기록이다. 유년시절의 기억이 많이 소환되기도 하는데, 단순히 추억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역사적 사건과 접점을 찾아나간다. 「시대 안에서 산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로, 5·18민주항쟁 40년을 맞은 날 쓴 이 글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조간신문에서 ‘광주사태’라는 단어를 본 기억에서 시작한다. 작가에게 글쓰기의 중요한 화두가 된 ‘광주’는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의 글과 교차하며 “예술에 부여되는 사회적 의미”(40면)를 역설하는 식으로 맺음된다. 이런 식으로 저자의 생활감은 황석영의 소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베르메르의 그림 등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깨달음으로 번져간다.
제2부에는 저자의 내밀한 고백이 더욱 진하게 담겨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잠시 숨을 고르며」), 대학시절의 고뇌(「87년의 기억」), 군인 시절의 일화(「길가의 풀」)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화제를 모았던 영화 「1987」, 신동엽문학상 수상작 소설집 『가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 등 해당 시기 특기할 만한 작품과 작가를 순차적으로 담아내고 있는데, 이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흐름을 원거리에서 조망해보는 틀이 되기도 한다.
제3부는 한국문학에 관한 이야기다. 다만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작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가에 대한 심도 있는 감상을 써내려간다. 최인훈, 박상륭, 김소진이 그 예인데 이들의 작품이 지금 시점에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담백하고도 명쾌하게 풀어낸다. 특히 저자의 스승 고 김윤식 교수와의 이야기(「김윤식 선생님」)가 감동적인바, “선생님의 문학에서 인간을, 인간의 도리를 배웠다고, 인간의 슬픔과 존엄을 배웠다고, 인간의 고독을 배웠다고”(181면) 털어놓는 대목은 뭉클하게 다가온다.
제4부에서는 해외문학을 다룬다. 레이먼드 카버, 윌리엄 포크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루이스 세풀베다 등 여러 대가의 작품세계를 길지 않은 글로 톺아본다. 이 가운데 카버와 그의 편집자 고든 리시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글(「카버의 승리」)은 그 자체로 한편의 소설처럼 느껴질 정도로 흥미롭다. 무명인 카버가 대작가가 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에피소드들이 카버의 작품세계와 맞물려 독자에게 재미와 지식을 두루 선사한다.
제5부는 저자가 사랑하는 영화감독 홍상수, 허우 샤우셴, 에드워드 양에 관한 산문이다. 저자 스스로 “세 감독의 영화는 언제든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의 길을 열어준다”(「책머리에」)라고 밝혔을 정도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국내에서는 마니아층을 중심으로만 열광적인 인기를 얻는 허우 샤오셴과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손에 잡힐 듯 친절하게 설명해주는데, 인류학적이기도 한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은 대만 사회의 일 단면을 알게 되기도 한다.
해박한 지식, 마법 같은 필치
어디를 펼쳐도 즐거운 산문집 이상의 산문집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에는 해박한 지식이 가득 담겨 있지만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 저자의 미덕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의 사건이 수려한 글로 변모하는 마법 같은 필치가 고루 담겨 있다. 또한 문학에 대한 저자의 한결같은 애정은 이미 정평이 난바 그 뜨거운 마음을 이번에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는 기가 막힌 방식으로 적재적소에 인용된 여러 문학작품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자가 문학을 대하는 진솔하고도 깨끗한 마음이 더 큰 몫을 한다. 문학을 무겁고 난해한 평론이 아니라 짧은 글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풀어냈기 때문에 중간쯤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 읽기에도 맞춤하다. 그리고 그 어디를 펼치더라도 거기서 새로운 지식과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산문집 이상의 산문집인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작가의 말
대만 감독 에드워드 양의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 집안의 막내인 초등학생 양양은 카메라로 사람들의 뒷모습을 열심히 찍는다. 아이는 그렇게 찍은 사진을 곤경에 빠진 삼촌에게 건네며 말한다. “삼촌은 삼촌의 뒷모습을 못 보잖아요. 그래서 내가 도와주려고요.” 우리는 아이의 맑고 천진한 마음을 통해 예사롭게 지나치던 진실과 맞닥뜨린다. 영화가 감동적으로 환기하는 ‘우리의 뒷모습’은 우리의 앎이 온전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대한 지시와 은유로도 은근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一) 이(一)’라는 영화의 원제에 대한 생각으로도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나눌 수 없는 ‘하나(一)’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하나와 하나가 모인 ‘둘(二)’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살아가는 이유의 더 끈덕지고 소중한 차원이 있는 듯하다. 사회나 관계, 연대 등의 큰 언어로 말해버리고 말기에는 그 ‘둘’의 이야기는 너무 사소하고 때로 너무 번잡하기도 하다. 자주 문학이나 영화의 이야기에 몸을 기울이게 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당위의 목소리로 할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만원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무게’의 놀라운 전환도 ‘밀어붙이는 무게’의 이상한 당혹을 제대로 겪고 나서야 오지 않던가. 산문집 제목을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로 붙인 소이다.
이번 산문집에 묶인 글들도 주로는 신문에 칼럼 형식으로 발표된 것들이다. 간혹 글의 온도가 상승했다면, 지면이 주는 공적인 부담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 부담이 꼭 부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싶은 게, ‘서로의 등’처럼 평소라면 잘 가닿지 않는 곳까지 내 생각과 느낌을 확장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세편의 에세이를 함께 수록했는데, 세 감독의 영화는 내게는 언제든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의 길을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