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문학의 설레는 이름, 최은미가 선사하는 깊은 아름다움
잃어버린 마음을 마주하며 서로를 아픔에서 구해내는 환한 빛 같은 소설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동시에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할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게 하는 작가 최은미가 두번째 장편소설 『마주』를 펴냈다. 작가가 6년 만에 선보이는 반가운 장편소설이다. 밀도 높은 묘사와 정교한 서사의 축조로 찬탄받는 최은미 고유의 작법이 이번 소설에서도 빛을 발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며 모두를 불안에 떨게 했던 2020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거리두기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고립되고 단절되었던 그 시기를 건너며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들을 보듬는다. 서로를 의심하고 소외시킬 수밖에 없었던 팬데믹의 시대에 고립된 이들은 더욱 고립되고 단절된 이들은 더욱 단절될 수밖에 없었음을 세심히 짚어내며,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내고 기꺼이 마주했을 때 비로소 타인에게 가닿을 수 있는 마음을, 따가운 여름 볕 아래 익어가는 사과처럼 강렬하고도 산뜻하게 그려낸다. 내 옆에 선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게 하는 이번 소설은, 외로움이 하나의 수식어가 된 이 시대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갈 것이다.
목차
1
2
3
4
5
6
작가의 말
저자
최은미 (지은이)
출판사리뷰
건너왔으나 온전히 건너오지 못한 시절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들을 다시 마주하다
캔들과 비누를 만드는 홈 공방을 오래 운영하던 ‘나리’는 마침내 상가건물인 새경프라자에 ‘나리공방’을 개업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나리공방의 손님 중 하나이자 또래 아이들을 키우며 나리와 친해진 ‘수미’가 확진이 된다. 확진자의 동선이 하나하나 공유되던 시기, 수미의 이동 경로가 공개되며 나리공방은 주목을 받고 새경프라자의 다른 가게들에도 손님이 뜸해지게 된다. 코로나19로 소상공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취재하러 온 기자가 나리에게 질문을 건네던 순간, 나리는 과호흡으로 병원에 실려 간다. 그렇게 가게 된 병원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리가 이전에 결핵을 앓았고, 지금도 잠복결핵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결핵이 옮았을까 고민하던 나리는 어릴 적 자신을 잠시 돌봐주었던 만조 아줌마를 떠올린다. 만조 아줌마가 결핵약을 복용했던 기억이 난 것이다. 그러면서 나리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안에서의 한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비탈진 사과밭을 운영하던 부모와 그 사과밭의 일꾼으로 오던 만조 아줌마. 그리고 만조 아줌마네 팀 일꾼들이 바로 결핵 환자들이 모여 살던 ‘딴산마을’의 사람들이었다는 것까지.
한편 수미가 확진되기 이틀 전, 나리는 딸 은채의 부름에 달려가 모니터로 한 화면을 보게 된다. 학원의 줌 수업 화면이었는데, 그중 한 화면은 한뼘 정도 열린 방문을 비추며 그 집에서 나는 소리를 내보내고 있었다. 무언가를 내리치고 부수는 소리였는데, 그 화면을 송출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수미의 딸 서하였다. 서하는 수미가 거실을 깨부수는 소리를 실시간으로 송출했다. 다급히 서하를 불러낸 나리는 아이를 데리고 나리공방으로 간다. 새경프라자 앞으로 찾아온 수미가 울면서 서하를 부르지만, 나리는 공방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바로 이틀 뒤 수미는 확진 판정을 받게 되고, 그렇게 어떤 사과나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서하와 헤어진 수미는 두달 넘게 격리된다. 평소 서하에게 집착하고 서하를 억압했던 수미에게 서하와의 단절은 큰 좌절일 수밖에 없었다. 서하와 가깝게 지내며 서하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던, 끝내는 서하와의 단절에 큰 영향을 준 나리에게 수미는 적대심을 표하고 나리 역시 아이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수미에게 증오를 느낀다. 격한 감정을 가까스로 참던 두 사람이 마주한 순간, 나리는 돌연 수미에게 딴산에 가자고 말한다. 함께 만조 아줌마가 일구고 있는 사과밭에 가자고. 그 여행에서 두 사람은 과연 서로의 마음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게 될까.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경멸하는 나리와 수미의 감정이 뜨겁게 엉기는 한편 각자의 방식으로 자라나는 서하와 은채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더없이 싱그럽다. 또한 엄마 몰래 과자를 먹고 봉지를 사과밭에 묻기 급급했던 나리의 어린 시절, 그늘을 드리워주는 나무처럼 마음 한구석을 지탱해주던 만조 아줌마의 애정 어린 말들은 거칠고 유쾌하다. 인물들의 마음을 헤집어 그 밑바닥까지 드러내고야 마는 최은미의 문장들이 무겁기보다는 경쾌하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최은미는 인물들의 감정이 서로 얽히고 부딪혀 그 맨 얼굴을 드러내게 한다. 몰아치고 무너지는 감정들을 끌어안은 채 서로를 ‘마주’ 보았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마음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숨 막힐 정도로 정교하게”(황인찬, 추천사) 짚어낸다. “보라고” “포기하지 않았다고”(본문에서)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감추고 싶던 스스로의 마음까지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러면서 팬데믹으로 가시화되었을 뿐 재난 이전부터도 이미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던 단절과 소외까지 세세하게 살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그의 삶의 일부를 파괴하지는 않았는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고립시키지는 않았는지. 최은미가 소설 속에서 풀어내는 끝내 접히지 않고 타인에게로 가닿는 뜨겁고 아름다운 마음은 지금-여기 그리고 앞으로도 내내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게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온전히 그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는 “『마주』는 소중히 읽혀야 한다.”(조해진, 추천사)
작가의 말
언제부턴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새 인물을 구상할 때면 그의 2020년을 먼저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가 그해에 어떤 곳에서 잠들고 어떤 곳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누구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무엇을 제일 두려워했는지. 지난 삼년의 시간이 어떤 무늬로 그 사람의 오늘에 남아 있을지.
『마주』는 202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여기 우리 마주」에서 출발했다. 2021년 한해 동안 계간 『창작과비평』에 일부를 연재했고 2023년 봄까지 연재분 이후를 계속 썼다. 『마주』의 주 시간대는 「여기 우리 마주」의 2020년 봄 이후인 2020년 여름부터 겨울까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팬데믹 속에서 감각했던 타인들이 그 이전을 계속 살아온 사람들인 것처럼, 그리고 그 이후를 계속 살아갈 사람들인 것처럼, 나는 이 소설이 가능한 그 안에 긴 시간을 품고 있길 바랐다. (…)
횡단보도에서 사람들과 무심코 스쳐지나가다가 뒤를 돌아볼 때가 있다. 건물과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때면 거기 있는 모두가 2020년을 겪고 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라기도 한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오늘에, 내일과 모레에, 이 소설이 못 다한 이야기처럼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2023년 여름
최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