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정전협정 70주년 기념 양장본 출간
익숙한 포성이 울리던 혼돈의 서울
평화를 기원하며 어루만지는 그 여름의 상처
2023년 7월 27일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해방과 전쟁의 한반도 격동기 역사를 그린 이현의 장편소설 『그 여름의 서울』이 『1945, 철원』과 함께 양장본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다시 독자들을 만난다. 『1945, 철원』에서 1945~47년 해방 공간 철원의 모습을 그린 바 있는 이현 작가가 『그 여름의 서울』을 통해서는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직후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서울과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이들을 조명한다. 친일 경력이 있는 판사의 아들 황은국, 조국을 배신하고 세상을 떠난 변절자의 딸 고봉아. 두 주인공을 축으로 가혹한 전쟁의 와중에도 나름의 일상을 영위했던 서울의 풍경과 그 속에서 벌어지던 첨예한 이념 대립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1945, 철원』과 『그 여름의 서울』은 일본에 소개되어 큰 호평을 받았으며,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만은 않은 지금 한국의 독자들에게 다시금 깊은 울림을 전할 것이다.
목차
1950년 6월 007
그 여름의 서울 069
계절이 바뀔 때 243
1953년 7월 27일 325
작가의 말 333
양장본을 펴내며 337
저자
이현
출판사리뷰
긴급한 경보음을 전하는 마음으로
다시 불러낸 뜨거운 그 계절의 이야기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날, 친일 지주 집안 출신의 황은국은 가족들과 떨어져 피란을 가지 못하고 홀로 서울에 남게 된다. 한편 평양의 명문교인 만경대 혁명 유자녀 학원에 재학 중이던 고봉아는 서울의 감옥에 갇혀 있던 혁명가 어머니가 변절한 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도망치듯 평양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봉아와 은국은 의용군 자원을 독려하는 연합 밴드부에 참여하고 조금씩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진다. 이렇듯 폭격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서울은 조금씩 일상의 모습을 찾아간다.
하지만 공산주의자 탄압에 앞장서던 은국의 아버지 황기택과, 은국의 동무이자 극우 단체에 속해 있던 상만이 서울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들의 운명도 요동친다. 숨어 지내던 상만이 고발되어 사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황기택은 ‘빨갱이’를 때려잡겠다며 은국에게 무조건 자신을 따르라고 강요한다. 자신의 신념과 부친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은국은 난생처음 스스로 길을 선택하여 인민군에 자원한다.
인천 상륙 작전이 감행된 날, 은국은 다시 아버지와 대치한다. 아버지가 봉아의 목숨을 걸고 협박하자 은국은 할 수 없이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만다.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고 봉아와 은국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인민군 세상이던 그 여름의 서울. 뜨거웠던 그날을 떠올리며 은국과 봉아는 자신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깨달아 간다.
강요와 선동을 넘어
자기만의 운명을 개척하는 이들이 전하는 희망
『그 여름의 서울』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들이었던 은국과 밴드부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이 당시 일상 속에 스며들어 미친 영향을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인다. 좌익 활동에 매진하다 수배자가 되어 버린 학성, 극우 단체에 가입하여 학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상만, 손꼽히는 수재였다가 가혹한 운명에 휩쓸린 길재,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은국. 그들의 입장은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서로 양보할 수 없기에 먹먹하고 애달프게 다가온다.
또 다른 주인공 봉아의 이야기에서는 전쟁의 비극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평양에서는 혁명가의 자녀로 살았지만 어머니의 변절로 인해 순식간에 기댈 곳이 사라진 봉아. 다시 한번 제자리를 찾기 위해 봉아는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서 의용군 자원을 부르짖는 선동가가 된다. 하지만 전쟁은 봉아의 소중한 사람들을 앗아 가고, 거듭 상처 입은 봉아는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것은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내쉬는 숨결”과 “함께 나누는 체온”, 그리고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온기”(306면)였음을 깨닫는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삶은 계속되지만, 갈라진 이념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길 강요한다. 소설 속 은국과 봉아는 때로 주변이 떠미는 대로 밀려다니고 때로는 이념에 대한 강요를 스스로 체화하기도 하지만, 끝내 “어떠한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겠다”(324면)는 자기만의 굳은 심지를 발견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답을 찾아 나가는 주인공들의 결단이 마음을 울리며, 폐허 속에서 작은 발걸음부터 삶을 새로 쌓아 가는 모습이 지금을 살아내는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지구 한편에서 여전히 미사일이 날아오르고 폭격 소식이 들려오는 시대, 70여년 전 전쟁의 한복판을 살았던 이들의 절절한 깨달음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렬한 평화의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작가의 말
1945년의 철원에 그 실마리가 있다고 믿으며 썼다. 긴급한 경보음을 전하는 마음으로 그 여름의 서울을 썼다. 그로부터 십 년, 다시금 쓴다. 빼앗지 않아도 풍요로울 수 있고 올라서지 않아도 존엄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그리하여 이 땅의 아이들이 더불어 평화로울 수 있기를 바라며, 더 이상 이 행성의 어디에서도 포성이 울리지 않기를 기원하며. 그 여름 일본의 패망을 예상했던 이들에게도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온 기쁨이었다. 그 여름에 전쟁을 계획했던 이들에게도 그 결과는 상상치 못한 참혹함이었다. 그러니 조금 더 두려워하고, 조금 더 꿈꾸어 볼 일이다. 믿건대, 우리에게는 경애들이 있으므로.
2023년, 다시 그 여름의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