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정전협정 70주년 기념 양장본 출간
1945년 8월 15일,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의 그날
우리의 운명이 요동쳤다
2023년 7월 27일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해방과 전쟁의 한반도 격동기 역사를 그린 이현의 장편소설 『1945, 철원』이 양장본으로 다시 독자들을 만난다. 일본에 소개되어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올바른 눈을 길러 주어야 한다.” “본격 역사소설로 추리의 맛도 있고, 죽죽 읽히는 스토리이다.”와 같은 뜻깊은 반응을 얻은 데 이어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심사위원 번역 추천도서로 선정되는 등 문학성과 의의를 널리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현 작가는 번화한 도시이자 남과 북의 경계였던 해방 공간 철원을 배경으로 양반집 종살이를 하던 경애, 공산주의자 도련님 기수, 콧대 높은 양반집 딸 은혜 등 각기 다른 배경에서 저마다 꿈을 품고 있던 인물들의 면면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던 시대, 역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겪어 낸 이들의 이야기를 세밀히 펼쳐 보인 수작이다.
목차
1945 007
1946 081
1947 371
작가의 말 392
양장본을 펴내며 397
저자
이현
출판사리뷰
역사의 파도를 헤엄쳐 간 이들의 이야기
1945년 8월, 조선 땅에 해방이 찾아왔다. 삼팔선 북쪽의 철원에서는 공산당이 권력을 잡으면서 사뭇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양반집 종으로 살던 경애는 집을 되찾고 헤어졌던 작은언니와도 재회한다. 경애는 해방 전에는 말도 못 걸었던 양반집 딸 은혜와 같이 서점에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어느 날, 건들건들한 경성 출신의 모던 보이 제영이 등장하여 경애의 속을 긁어 놓지만 마냥 밉지는 않다. 경애의 걱정거리는 두 가지다. 어머니의 자살 때문에 사람들에게 기피당하는 친구 기수의 딱한 처지, 그리고 큰언니의 행방이다.
희망만이 가득해 보이던 어느 날, ‘철원애국청년단’이라는 집단이 잇달아 테러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철원은 공포에 휩싸이고 사람들은 동요한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경애, 기수, 제영이 경성으로 월남을 결심하는 가운데, 은혜는 남모를 목적을 품고 철원애국청년단과 은밀히 접촉한다.
한편 그사이에 철원에서는 큰 사건이 벌어진다. 해방의 상징이자 우상인 홍정두가 철원애국청년단의 손에 살해된 것. 경성에 다녀온 경애 일행은 홍정두의 죽음에 절망하지만, 외려 살해 용의자로 체포되고 마는데……. 이후 이야기는 홍정두의 장례식 전날 밤을 향해 급박히 흘러간다. 각자의 꿈을 지키기 위해 어두운 밤거리로 뛰어든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그 시절 꿈의 기록
『1945, 철원』은 해방을 맞은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며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45년에서 1947년까지는 한반도가 혼돈에 빠져 갈피를 못 잡던 시기였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수년 전, 삼팔선 이북의 철원에서는 숱한 반목과 갈등이 빚어진다. 오랜 동무임에도 서로 반대되는 곳을 보는 기수와 은혜, 그리운 자매지간이지만 서로의 이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경애와 미애, 그리고 지주들과 소작농들의 뒤바뀐 처지와 대립은 선악을 쉬이 가릴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깝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를 향한 진심과도 멀어져 갈등에 휘말리는 이들의 모습은 절절한 슬픔으로 와 닿는다. 공고한 분단체제하에서 전쟁이 여전히 가능한 미래로 상존하고 있는 지금,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리 민족에게 일어난 비극의 시작점뿐 아니라 전쟁과 폭력이 지나간 자리의 참상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 이현은 갈등과 슬픔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활력 가득한 도시 철원의 모습을 조사와 고증을 통해 구체적으로 되살리며,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 하나하나를 애정 어린 필치로 그린다. 이런 희망의 메시지가 주인공 경애의 독백에 집약되어 있다. “다른 건 잘 몰랐다. 그러나 어찌 살아야 하는지는 잘 알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379면) 일제 강점기에 부모를 여의고 해방을 맞아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꿈꾸었으나 사상 대립에 휘말려 언니와 동무마저 잃고 만 경애는, 그러나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나약하고 어리석고, 그래서 흔들리고 방황하지. 하지만 뭘 꿈꾸는지 잊지 않는다면, 언제고 제 길로 돌아올 수 있어.”(173면) 경애의 우상이자 철원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홍정두의 말처럼, 1945년 철원의 젊은이들은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내일을 내다보았다. 다양한 인물들과 쉴 새 없는 사건들을 마주하는 동안,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와 평화를 향한 메시지가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뜨겁게 전해질 것이다.
작가의 말
1945년의 철원에 그 실마리가 있다고 믿으며 썼다. 긴급한 경보음을 전하는 마음으로 그 여름의 서울을 썼다. 그로부터 십 년, 다시금 쓴다. 빼앗지 않아도 풍요로울 수 있고 올라서지 않아도 존엄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그리하여 이 땅의 아이들이 더불어 평화로울 수 있기를 바라며, 더 이상 이 행성의 어디에서도 포성이 울리지 않기를 기원하며. 그 여름 일본의 패망을 예상했던 이들에게도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온 기쁨이었다. 그 여름에 전쟁을 계획했던 이들에게도 그 결과는 상상치 못한 참혹함이었다. 그러니 조금 더 두려워하고, 조금 더 꿈꾸어 볼 일이다. 믿건대, 우리에게는 경애들이 있으므로.
2023년, 다시 그 여름의 서울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