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반란을 일으키자!
무대 위 헤드라이너를 꿈꾸는 청년들의
좌충우돌 분투기!
경쾌한 입담과 유머러스한 대사로 읽는 이를 한바탕 폭소로 이끄는 작가 임국영의 소설집 『헤드라이너』가 출간되었다. 2017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2021년 소(小)작품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자음과모음)를 출간한 이후 2년 만에 펴내는 신작이다. 본격적으로는 처음 선보이는 소설집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웃음과 슬픔의 기묘한 교차로 주목할 만한 흡인력과 속도를 만들어낸다”는 호평을 받은 등단작 「볼셰비키가 왔다」, 청춘의 방황과 좌절을 익살스럽게 그려내 『창작과비평』에 발표할 당시부터 화제를 모은 표제작 「헤드라이너」 등 여덟편이 수록되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온 작가는 한권의 소설집 안에서도 팔색조 같은 알록달록한 매력으로 독자들의 손을 붙든다. 「태의 열매」처럼 임국영 특유의 재치와 위트가 가득한 작품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오토바이 배달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지방 소도시 청소년들의 애환을 묘사한 「오토바이의 묘」나 변변한 직업 없이 공원을 전전하는 소설가 지망생 이야기 「비둘기, 공원의 비둘기」에서는 지금의 시대상과 청년들의 고난을 직시하며 그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단순한 신파에 그치지 않는 것은 예측을 불허하는 상상력 덕분이다. 공원에서 갑자기 돈이 솟아나는가 하면(「비둘기, 공원의 비둘기」) 오토바이들이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오토바이의 묘」)들은 현재와 공명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해 단순하지 않은 즐거움과 생각거리를 던진다.
목차
볼셰비키가 왔다
태의 열매
악당에 관하여
헤드라이너
바크
비둘기, 공원의 비둘기
오토바이의 묘
굿바이 레인보우
해설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임국영 (지은이)
출판사리뷰
재기발랄 유머 속에 감춰둔 우리의 눈물과 땀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가슴 뛰는 이야기
「볼셰비키가 왔다」는 오빠의 장례식에 나타난 수상한 무리를 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킨헤드, 가죽자켓 등 도무지 장례식과 어울리지 않는 차림으로 “조문을 왔다기보다는 무대를 찾아온 듯”(9면)한 이들은 죽은 오빠의 밴드 멤버다. 어릴 때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오빠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던 ‘나’는 이 기묘한 만남에서 오빠가 남기고 간 삶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발견해나간다. 이야기는 강렬한 구토로 끝나는데 이 구토 끝에 독자들은 삶의 허무함을 직시하는 가운데 묘한 청량감과 개운함을 느끼게 된다. 「태의 열매」는 부자 서사다. 아버지 캐릭터가 독특한데, 자동차 사고로 차가 박살 나도 멀쩡하고 술에 취해 바다에 빠져도 정신을 차려보면 집에서 태평히 잠들어 있을 만큼 생존에 특화되어 있다. 어느 날 아들은 술만 마시면 집안을 다 부수는 이 아버지와 ‘대작’을 시작한다. 아버지로 인해 숱하게 생사의 문턱을 넘나 든 아들과 자식 따위 안중에 없는 아버지, 둘 사이는 한번의 술자리로 가까워질 턱이 없다. 그때 아버지가 꺼낸 것은 자신이 숨겨놓았다고 ‘주장하는’ 특상품 대마초다. 마음 놓을 틈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가 끝내 이 둘을 어디로 데려다놓을지 짐작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표제작 「헤드라이너」는 이름난 록 페스티벌에 난입한 소년 밴드 ‘우드스톡’의 하룻밤 이야기다. 보컬 ‘로니’, 베이시스트 ‘빌리’, 기타리스트 ‘시드’, 드러머 ‘존’은 “애석하게도 모두 한국인”(94면)이다. 역할극을 즐기는 듯한 이 청소년들이 계획한 것은 페스티벌 헤드라이너의 무대에 난입한 다음 퍼포먼스를 벌이는 일이다. 리더 로니가 주도한 황당하고도 무모한 계획을 실행하려는 찰나, 로니는 한무리의 폭력배와 시비가 붙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뿔뿔이 흩어진 우드스톡 멤버들은 그날 밤 각자 인생을 변화시킬 만한 경험을 하는데, 이 엉뚱하고도 발랄한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들의 작은 반란을 응원하게 하며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이상 작품들에서 임국영 특유의 활달한 필치와 코믹한 상황이 주를 이룬다면 ‘반전 매력’이 가득한 작품들도 있다. 「바크」는 소싯적에 그래미상까지 받았지만 이제 ‘원로’ 취급을 받는 톱스타 ‘오’와 ‘비’가 아주 외진 어느 바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로 전개된다. 평소 앙숙이던 이들은 날이 바짝 서 있는 말을 쉬지 않고 농담을 섞어가며 나눈다. 일상적으로 흐르던 대화는 과거 어느 영광의 시절을 소환하고, 이들은 갑자기 같은 무대에 오른다.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두 사람의 컬래버레이션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적 화제가 되는데, 이후 펼쳐지는 미디어나 대중의 반응은 지금 언론의 세태를 반영하는 듯해 흥미롭다. 「비둘기, 공원의 비둘기」는 주인공인 ‘서’의 이야기와 그가 구상 중인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경계는 몹시 흐릿해 독자들은 어디서부터가 상상의 영역인지를 알기가 힘들다. 특별한 수입 없이 공원을 전전하는 ‘서’는 공원에서 주기적으로 돈을 줍는다. 마치 샘 솟듯이 돈이 솟아나는 공원을 둘러싸고 치밀한 먹이사슬이 생성되는데, ‘서’가 이 공원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하며 일대 혼란이 발생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경계가 모호한 이 이야기를 읽으며 어느새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체제를 돌이켜보게 된다.
「오토바이의 묘」에는 오토바이를 훔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두 소년 현도와 도림이 등장하는 가운데, 초점화자는 이들에게 도난당해 축사로 끌려온 오토바이 ‘루피’다. 루피는 현도의 차지가 되고 도림은 현도가 원래 타고 다니던 ‘할배’라는 낡은 스쿠터를 물려받는다. 서로에게 조금씩 시기와 질투를 느끼는 현도와 도림의 경쟁의식, 사랑받지 못해 외로운 할배의 루피를 향한 질투, 맹목적으로 달리는 게 싫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루피의 절규가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오토바이 절도가 성행하자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는 와중에 현도와 도림의 갈등이 폭발하며 작품은 클라이맥스를 맞이하는데 그 충격적인 결말은 우리가 방황했던 시절과 그때의 요동치는 마음을 되짚어보게 한다. 비교적 짧은 「악당에 관하여」는 소설쓰기에 관한 메타적 이야기로 작가 임국영의 고민이 응축되어 있어 소설집 전체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며, 코로나19 거리두기 상황에서 폐업하는 술집 ‘레인보우야’의 마지막 영업을 소재로 한 「굿바이 레인보우」는 아직 지나지 않은 재난의 시대를 흘러간 올드팝을 배음으로 삼아 잔잔하게 풀어낸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이런 소설을 만나는 것이!”
두근두근, 이 이야기를 읽는 순간 당신은 움직이게 된다
문학평론가 최가은이 해설에서 말하듯 이 소설집은 “수많은 레퍼런스와 다채로운 이야기로 구성되었음에도 수록작 전반은 물론, 전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와도 연속적 구조를 지”닌다. 이 의도적인 변주와 반복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독서의 재미를 높여준다. 또한 책을 덮었을 때 가죽재킷과 스킨헤드, 그리고 지나간 록 음악으로 상징되는 임국영의 세계에 우리가 한발 들어섰음을 실감하게 한다. 소설가 강영숙은 『헤드라이너』의 인물들이 원하는 자유를 현실의 독자들이 만끽하길 바라며, “얼마나 오랜만인가, 이런 소설을 만나는 것이!”라는 감탄의 추천사를 보내왔다. 또한 시인 구현우는 “농담이 묻어 있는 서사를 따라가다보면 농담조로 넘기기 어려운 기분이 뒤따른다”며 대책없이 가볍기보다는 발디딘 곳을 돌아보게 하는 『헤드라이너』의 묵직한 뒷맛을 상기시켜주었다.
삶에 지쳐 생활반경을 지켜내는 것조차 벅찬 이들, 혹은 한번쯤 인생의 궤도를 바꿔보고 싶은 이들은 반란을 꿈꾸는 「헤드라이너」 속 소년들의 “시작하는 거야?”(97면)라는 외침에 심장이 두근거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순간에 충실한 수많은 이들은 “아마 다시는 이런 순간이 오지 않겠죠”, “멍청아, 모든 순간이 그래”(「바크」 144면)라는 오와 비의 짧은 대사에서 긴 여운을 느낄 것이다. 이렇듯 젊은 소설가 임국영이 주는 감동은 웃음과 섞여 있기에 더욱 크고,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기에 더욱 넓다.
작가의 말
“악당들이 몽땅 망했으면 좋겠다.”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 수상 소감문 말미에 적은 말이다. 이 문구를 작성한 직후 손끝이 따끔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왜 그런 말을 적었는지 종종 자문했다. 어째서 스스로 그런 존재들과는 무관한 사람인 것처럼, 정말 나쁜 게 무엇인지 안다는 것처럼 굴었을까. 언제나 그렇듯 스스로 뱉은 말에 모멸감을 느꼈다. 음험하고 나약한 속내를 은닉하고자 그간 그들을 소재로 다룬 소설만 썼다. 악당은 대체로 남성의 얼굴을 했으나 나 역시 남성이다. 나는 그들과 얼마간 달랐으며 달라지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는 불가해한 삶의 모퉁이에서 매번 마주쳤고 어딘지 낯이 익은 서로의 낯을 빤히 살피며 별다른 사건 없이 교차했다.
(…)
고마운 사람들이 무수히 떠오른다. 그중에서 가장 감사한 것은, 아무래도 ‘프린스’다. 제대로 아는 곡이라곤 「퍼플 레인」 하나뿐이지만 그를 생각하는 순간이 잦았다. 과잉된 가성과 기타 플레이, 수줍음과 열의의 충돌, 「위 아 더 월드」를 부르는 군중 사이에서 막대사탕을 문 채 입을 꼭 다문 그의 얼굴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주류에서 벗어난 동시에 주류에 우뚝 선 아이러니라니. 프린스는 마치 별 모양 운석이나 찢어진 레고 같았다. 존재할 거라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조형과 질감이었다. 멋졌다. 그처럼 살 순 없겠지만 그런 삶도 있단 걸 잊지 않으려 한다.
당신은 어떤가. 나와 얼마나 다른가. 조금이나마 기시감을 느꼈으면 한다. 나는 우리가 외롭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지상의 모든 일이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당신이라는 헤드라이너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