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 시대 어른 염무웅의 신작 산문집!
궁핍한 시대에 도착한 좋은 미래에 대한 한 줌의 희망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한국문학계의 거장인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이 팔순을 맞아 산문집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를 펴냈다. 이번 산문집은 문학을 둘러싼 오늘의 삶과 현실을 통찰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간절한 마음과 깊은 사색을 담은 책이다. 지구 상황의 전면적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현재, 염무웅은 인간의 현실이 지옥으로 화하지 않기 위해 당면한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나라 안팎의 역사적 경험과 관련서들을 소개하고 나름의 귀중한 사유를 펼쳐 보인다. 팔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글마다 긴장감이 살아 있고 핵심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눈매도 한결같고 도저한 나머지 차라리 혈기 왕성하다. 문학을 사회현실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바라보아야 정당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의 입장도 변함없이 관철된다.
산문집의 제목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는 독일의 저명한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이 한국 인터뷰어에게 했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 이상이 남김없이 실현된 낙원을 억지로 건설하려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비어만의 발언에 깊이 공감한 염무웅은 우리의 현실이 지옥에 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이 책을 통해 널리 공유하고자 한다.
목차
머리말 대신에
1부
그립구나, 조태일!/천이두 선생의 추억/실향의 아픔 넘어선 문학의 큰 산/김규동 선생의 시적 행로/김용태와 함께 보낸 3년/김윤수 선생과의 30년/자유인 채현국 선생을 기억하며/권정생 선생님 영전에/『샘터』 창간 시절의 추억/열망과 방황 사이에서
2부
용산 선언문 3제/예술은 예술가의 것인가/40년 만에 공개된 김수영의 ‘불온시’/『임꺽정』에서 『국수』까지/언어들의 엇갈린 운명/던져진 땅에서 살아내는 일/무엇을 반대하고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우리 운명의 결정권자는 누구인가/문인의 역할과 작가회의의 나아갈 길/한국문학, 경계선 너머로 한 걸음 내딛다
3부
무엇이 삶을 버티게 하는가/‘압도적인 절망과 한 줌의 희망’/냉전의 시작과 끝/독일 통일의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가장 가까운 나라의 아주 낯선 풍경/언젠가 찾아올 초월의 날에/동아시아공동체·일본·한국/‘우리 문제’로서의 일본/은폐된 전쟁으로서의 분단/서경식의 질문이 우리에게 뜻하는 것
4부
두 여름을 기억하며/적군묘지 가는 길/‘10월유신’ 30년/‘임정’의 시선으로 ‘용산’을 보면/영국인 참전용사의 증언/국기는 무엇을 상징하나/3월, 4월, 6월 그리고 다시 4월에/혁명적 목표를 비혁명적 방법으로?/촛불을 들고 역사 속으로/더 나은 세상을 위한 간절함/2박 3일의 방북, 7분의 절정/우리 자신을 위한 베팅/분단시대를 넘어선다는 것
저자
염무웅
출판사리뷰
오늘날 문학이 설 자리는 어디이고
문학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한 우리 모두의 최선에 대하여
1부의 글들은 저자와 고락을 함께해온 문학예술인을 중심으로 불의한 세계에 맞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소중한 삶을 돌아본다. 문단, 출판사(창비, 신구문화사, 샘터), 문예운동단체 등에서 저자와 가깝게 지낸 동료와 선배들에 대한 추억담이기도 하다.
고집과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던 시인 조태일, 신구문화사의 『현대한국문학전집』 책임편집자로 근무하던 시절에 필자로 만난 문학평론가 천이두, 평생을 함께한 큰형님 같은 소설가 이호철,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출발하여 기성 체제에 대한 저항 시인으로 변모한 김규동, 가장 높고 가난한 삶을 실천한 아동문학가 권정생, 민예총에서 이사장과 사무총장으로 만나 속에 든 것까지 다 꺼내 보여준 화가 김용태, 창비 편집위원으로 인연을 맺어 30여 년을 함께한 미술평론가 김윤수, 원고료도 지급하기 어려웠던 초창기의 ‘창비’에 경제적 도움을 아끼지 않은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등을 만날 수 있다. 또한 1970년 4월에 창간한 월간 『샘터』의 초대 편집장 시절의 흥미로운 이야기 등이 소개된다. 청소년 시절의 독서편력을 자세히 들려주는 「열망과 방황 사이에서」는 저자가 어떻게 ‘문학’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자전적 에세이다. 당시 자신의 집에서 하숙하던 대학생과 교생실습 나온 대학생으로부터 문학세례를 받고 이들의 도움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진솔하게 그려진다.
2부는 문학예술을 사회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살펴본 칼럼 성격의 산문으로, 오늘날 문학이 설 자리는 어디이고 문학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용산 선언문 3제」는 ‘용산참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사태의 정당한 해결을 촉구하는 선언문 형식의 글로, 현실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저자의 입장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 「우리의 운명 결정권자는 누구인가」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인 통일이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인지 따져보면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본다. 「문인의 역할과 작가회의의 나아갈 길」은 한국작가회의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면서 작가회의 문학인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촉구하는 글이다. 우리 문학인들은 다시 문학이 애초에 발생했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하고,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실업자, 노인과 장애인, 이주노동자와 무주택자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문학이 그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학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3부는 냉전, 분단, 통일, 북한 등을 연구한 국내외 저작들에 대한 독서칼럼이다. 한반도의 현실과 관련된 여러 주제의 인문서들을 섭렵, 소화하여 책의 내용과 핵심논지를 알기 쉽게 소개하면서 거기에 담긴 소중한 경험들을 우리 현실에 비추어본다. 「냉전의 시작과 끝」은 냉전 초창기의 핵심적 정책 입안자였던 미국 외교관 조지 캐넌의 저서(『미국 외교 50년』)와 냉전 해체에 주도적으로 기여한 정치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자서전(『선택』)을 살펴본다. 냉전의 시작과 끝에 위치한 핵심 당사자들의 육성을 통해 그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들어보고, 중심국가 정책 입안자들의 머릿속 구상이 현실 속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고 그것들이 약소민족의 운명에 어떤 치명타를 가하는지 숙고해보게 한다. 「독일 통일의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은 두 권의 책(『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 『변화를 통한 접근』)을 통해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의 소중한 경험을 전해준다. 철저한 사전 준비야말로 통일정책 성공의 담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우리의 통일운동이 가져야 할 철학적 깊이에 대해 성찰하도록 만드는 책으로 소개된다. 특히, 독일 통일의 주역 중 하나인 시인이자 가수인 볼프 비어만에 매력을 느낀 저자는 한국의 통일문제에 대한 그의 경고성 발언에 주목한다. 즉 한국의 통일은 독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위험성을 지닌 채 우리들 앞에 다가올 것이고, 독일인들도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우리가 겪을 일에 비하면 별것 아니며, 남북통일을 추구하되 낙원을 가져오리라는 믿음보다는 지옥에 이르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희망은 천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상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하자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의 아주 낯선 풍경」은 일본에서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대중 교양서(『북한을 읽는다』)와 북한연구의 방법론에서 매우 독보적인 업적을 이룬 연구서(『극장국가 북한』)를 살펴본 글로, 북한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이해를 바로잡는 데 중요한 사실을 제공해준다. 「은폐된 전쟁으로서의 분단」은 6·25전쟁의 결과로 조성된 한반도의 현실이 어떤 고유한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가를 밝는 데 목적을 둔 책(『분단 히스테리』)을 소개한다. 한국전쟁에 관한 기왕의 저서들이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왜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는가’ ‘왜 분단은 장기 지속되는가’에 초점을 두고 국제외교 관계, 남북관계, 남북한 내부의 정치적 관계 속에서 분단체제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고 있어 현재의 남북 현실을 제대로 읽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책으로 꼽는다.
4부는 우리 역사와 현실의 여러 문제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한편, 분단극복을 위한 우리의 지난한 도정을 돌아보며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는다.
오늘날 ‘10월유신’이 박정희의 개인적 권력욕과 인권탄압을 표상하는 상징으로 굳어져버린 것을 반성하면서 미국의 세계전략이나 한반도의 분단구조와 같은 더 넓은 시야에서 심층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10월유신’ 30년」)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서 휘날리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는 태극기가 대한민국의 탄생 과정에서 민주·공화의 지향을 담고 있는 만큼,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탄핵된 자를 구하기 위해 태극기를 사용하는 것은 태극기에 대한 모욕이고 헌정질서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며, 태극기보다 큰 성조기를 대중시위 현장에 앞세우는 것은 굴욕적인 매국행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한다.(「국기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한편, 외세의 지배를 상징하는 굴욕과 수치의 땅이었던 서울 용산 한가운데 독립운동공원을 조성하여 여기저기에 초라하게 흩어진 독립지사들의 묘소를 이곳에 모신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과 정통성을 드높이는 상징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임정’의 시선으로 ‘용산’을 보면」) 마지막 글에서는 분단극복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우리가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통일의 열망을 자제하고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의 경험을 오랜 기간 축적할 필요가 있다’는 것, 즉 ‘일상적 실천과 자기희생을 동반한 점진적 성숙의 현실적 축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분단시대를 넘어선다는 것」)
이렇듯 염무웅의 냉철한 현실인식은 과거와 현재를 폭넓게 아우르며 독자로 하여금 좋은 미래를 모색하게 만든다. 항상 낮은 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는 우연히 ‘던져진 땅’에서 끝까지 잘 살아내기 위한 우리 모두의 최선을 이야기한다. 그 최선을 향해 부단히 걸어갈 때 우리는 한 줌의 희망이나마 쟁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팔순을 맞아 하나의 매듭을 짓는 이번 산문집 이후에 염무웅의 사유가 얼마나 더 깊고 멀리 뻗어나갈지 기대해본다.
머리말
책의 표제로 내세운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는 독일의 저명한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이 한국 인터뷰어에게 했던 말에서 가져온 것이다. 비어만의 아버지는 유대인 공산주의자로서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되었고 비어만 자신도 부모의 뜻을 이어받아 일찍이 소년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열일곱 살 때인 1953년 고향 함부르크를 떠나 이념의 조국이라 생각한 동독으로 넘어갔다. 거기서 그는 대학을 다니면서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으며 노동자극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의 공연은 금지되고 작품은 엄격한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동독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그의 시집을 비난하고 한동안 그를 가택에 연금시키기도 했다. 그가 꿈꾸었던 이상적 공산주의와 실재하는 독일민주공화국의 현실은 너무도 다른 것임이 드러난 것이었다. 결국 비어만은 1976년 서독 금속노조의 초청으로 쾰른에서 공연한 직후 동독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된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독일은 하나로 통일되고 그는 자신이 동독으로 건너갈 때 지녔던 꿈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기에 이른다. 머릿속에서 구상한 낙원을 억지로 지상에 건설하려는 것은 지옥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확신에 도달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본주의 체제에 투항한 것은 결코 아니었고 사회적 불의와 체제의 모순에 대한 고발을 멈춘 것도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낙원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이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막기 위해서였다.
내가 처음 비어만의 이름과 그의 노래를 들어본 것은 1980년대 중반 독일 유학에서 갓 귀국한 경북대 김창우 교수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브레히트의 발라드를 계승한 그
의 시 형식에 주로 관심을 가졌고 정치적 배경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가 중앙대 김누리 교수 등의 인터뷰집 『변화를 통한 접근』(한울 2006)을 통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비어만은 2005년 초 한국의 독문학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나서 몇 달 뒤 내한하여 동숭동 학전소극장에서 공연을 했고, 나는 가수 정태춘 선생의 초대로 운 좋게도 공연을 관람했다. 그는 혼자 기타를 쳐가며, 또 자기의 이름 Wolf (늑대)와 Bier(맥주)mann을 소재로 농담을 던져가며 유쾌하고 질펀하게 노래를 불렀다. 잊지 못할 공연이었다. 비어만의 말에서 제목을 가져오면서 그의 이력을 길게 살펴본 것은 이 책의 바탕에 깔린 내 생각이 그에게 깊이 공명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인들 앞에 가로놓인 지옥은 독일인들의 것과 다르고, 따라서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그들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인터뷰에서 말한 ‘지옥’ 자체가 지구 상황의 전면적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오늘의 기준에서는 아주 제한적인 개념으로 보인다. 그래도 어쨌든 극단적 냉전의 시대에 동독과 서독 양쪽을 모두 살아본 비어만의 경험은 한반도 분단 76년의 엄혹한 지뢰밭을 숨죽이며 건너온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부럽다고 할 만한 것이다. 그런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환경과 인간의 현실이 지옥으로 화하지 않도록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만은 비어만도 나도, 아니 이 세상 어디에 사는 누구라도 공유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