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오늘 못하면 다음에 하면 돼. 인생은 지겹도록 기니까.”
2020년 신동엽문학상 수상작가 김유담의 신작소설!
여탕에서 펼쳐지는 후끈 따뜻한 성장서사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핀 캐리」로 등단 후, 첫 소설집 『탬버린』으로 2020년 신동엽문학상을 거머쥔 든든한 신예작가 김유담의 신작소설 『이완의 자세』가 출간되었다. 창비에서 선보이는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번째 책이다. 여탕에서 사람들의 때를 밀어주며 밥벌이를 하는 세신사 엄마와, 여탕에서 자랐지만 무용가로 성공하여 여탕을 탈출할 꿈을 꾸는 딸의 이야기가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필체로 그려진다. ‘몸’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여탕을 드나드는 여자들의 고단한 삶과 내밀한 속내, ‘성공’하지 못했지만 ‘실패’하진 않은, ‘다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뒷모습까지, 김유담은 능수능란하면서도 담백하게 삶의 면면을 고루 담아낸다. 고달프고 씁쓸한 삶을 날카롭게 직시해내는 작가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면서도, ‘그래도 괜찮다’는 다독임을 얻을 수 있는 단단하고 따뜻한 작품이다.
목차
이완의 자세
해설 | 이지은
작가의 말
저자
김유담 (지은이)
출판사리뷰
세신사 엄마와 무용을 전공하는 딸,
그리고 여탕을 드나드는 고단한 여자들…
‘금남의 구역’에서 벌어지는 이 시대 여자들의 내밀한 이야기
남편을 잃고 사기까지 당해 어린 딸과 함께 사지에 내몰린 엄마 오혜자는, 어렵사리 얻은 돈으로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의 “때밀이” 자리를 산다. 단칸방조차 없이 여탕에서 자라난 딸 ‘나’는 무용을 배우게 되면서 유명한 무용가가 되어 여탕을 탈출하겠다는 꿈을 키운다. 그렇게 모녀를 중심으로, 여탕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매일 여자들의 몸을 닦아주며 사는 엄마와 몸을 써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해야 하는 무용가 딸은, ‘성공하는 삶’을 얻고자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지만 둘 사이는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아 덜그럭거린다. 멸시와 하대를 당하면서도 오랜 시간 독하게 때밀이 자리를 유지하여 딸과의 생활을 지켜온 엄마, 그런 엄마가 아프게 다가오면서도 바로 그 여탕에서 벗어나고 싶은 딸은 크고 작은 갈등을 빚으면서도 툭 내뱉듯이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민다.
오혜자의 손님으로 여탕에 등장하는 여러 여성 인물들도 소설에 재미와 활력, 공감과 의미를 불어넣는다. 동네에서 ‘회장님’으로 불리며 수입상회를 운영하는 오회장은 오혜자의 손님 중 가장 카리스마 있는 인물인데, 유방암 수술을 받아 가슴 한쪽을 절제했음에도 당당히 여탕에 출입한다. 수술 전력이 있는 여자들도 오회장으로 인해 다시 여탕을 찾게 되고, 알몸으로 서로의 수술 자국을 보이며 건강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나’에게 처음 무용을 가르친 윤원장은 경직된 몸이 춤을 통해 자유롭게 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던 인물로, ‘비혼주의자이자 연애예찬론자’이기도 하다.
“무용가로 성공해서 비즈니스 클래스 타고 다니면서 세계 곳곳에서 공연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엄마와 달리 “연애도 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라고 조언”한다. 그밖에, 바쁜 엄마 대신 ‘나’의 입학식에 참석하기도 하고 유통기한을 넘기기 직전인 우유를 몸에 좋다며 억지로 먹이기도 하는 만수불가마사우나의 사장, 입시학원 상담일을 하며 여탕 커뮤니티에서 위세를 부리다 오혜자와 한판 붙기도 하는 수리부인 등 생생한 여성 인물들은 소설을 한층 살아 있게 만든다. 여탕 한구석에서 몸을 씻다 돌아보면 만날 것 같은 현실감 넘치는 인물들을 통해, 독자는 자신도 여탕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자신의 알몸과 알몸으로 다 드러나지 않은 내밀한 속내에 대해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재능이 대수인가? 그냥 좋으면 하는 거지.”
알몸으로, 나 자신의 모습으로 이완하기
대학 시절 내내 무대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나’를, 엄마는 끝내 포기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밖에 없어 괴롭다. “엄마에게 유일한 희망이 나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만수불가마사우나에서 자란 사장집 아들 만수 역시 한때는 야구 유망주로 만수불가마사우나 입구의 커다란 액자 사진을 장식했지만, 사고로 어깨를 다친 후에는 더이상 야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은 단 한명뿐”이고, “누구든 확률적으로는 조연이나 엑스트라에 머물 비율이 훨씬 더 높다는 점을”, ‘나’와 만수는 아프게 깨우친다.
김유담은 「작가의 말」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왔다”고 고백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작가의 바람대로 ‘충분한 나’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엄마가 벌거벗은 채 잠든 여탕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로부터 “오늘 못하면 다음에 하면 돼”라는 말을 듣고는 욕탕에 홀로 몸을 담가 처음으로 온몸을 천천히 이완시켜본다. 원하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온몸이 굳도록 노력해본 적 있는 이라면, 이 작품과 함께 ‘이완의 자세’를 취하며 잠시 현실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보면 어떨까. 우스꽝스러운 모습일지라도 “온전한 자신의 몸을 살펴보기에 맞춤한 자세일 것만은 확실하다.”(해설 이지은)
작가의 말
이루지 못한 꿈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꿈꾸던 것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남은 삶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이루지 못한 꿈을 곱씹으며 후회하며 살게 될까, 아니면 또다른 꿈을 꾸면서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서게 되는 걸까. 그것은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녹록치 않았던 시절, 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
작가가 된 지금, 나는 앞으로도 작가로 살고 싶다는 꿈을 꾼다. 원하는 글을 계속 쓰고, 책을 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는 삶…… 사실 이런 행운을 누리는 작가들이 그리 많지는 않고, 내가 사랑한 몇몇 작가들을 포함해 다수의 작가들이 ‘한때의 작가’로 남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매번 마감을 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겁에 질리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원하는 무언가로 살지 못하더라도 그 삶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내가 꿈꿔온 나’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나’로 살 수 있을 거라는 낙관이 어쩌면 더 오래 쓰게 하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더 멀리 나아가고 싶다.
2021년 1월
김유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