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선명한 색깔로 빛나는 박사랑의 첫 소설집
생생하게 감각되는 긴장과 욕망의 파편
2012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날카로운 시선으로 개성 넘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젊은 작가 박사랑의 첫번째 소설집 『스크류바』가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에는 등단작 두편 「이야기 속으로」「어제의 콘스탄체」부터 2016년 여름까지 발표된 작품이 묶였다. 특히 「이야기 속으로」는 김승옥의 명단편 「서울, 1964 겨울」을 모티브로 서사를 전개하는 작품으로, ‘누구나 알 만한 우리 시대의 고전을 차용하면서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스크류바』에 수록된 각 작품에서 박사랑은 틀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방식과 주제를 통해 우리 시대의 현실과 문학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들은 박사랑의 소설에서 특히 “스크류바처럼 선명”한 감각으로 묘파되며 특유의 “문학적 신선함”(해설, 황정아)을 자아낸다.
목차
#권태_이상 / 높이에의 강요 / 스크류바 / 바람의 책 / 이야기 속으로 / 어제의 콘스탄체 / 사자의 침대 / 울음터 / 하우스 / 히어로 열전 / 해설│황정아 / 작가의 말 /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박사랑
출판사리뷰
“오늘도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
모성의 현재를 집요하게 묻는 단편들
그 뒤로 걷는 내내 스크류바 생각뿐이었다. 아이 생각보다 스크류바 생각을 더 하고 있는 내가 우스웠다.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면 오히려 어이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는데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정말이지 오늘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말도 안되는 하루였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그 때문에 가방까지 잃어버리고 오래전 사라졌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땀을 흘렸고 이 더위에 몇시간을 쉬지도 못하고 걷기만 했다. 나는 극도의 피곤 속에서 가까스로 걸었다. 여전히 눈은 뻑뻑하고 흐릿했다. 아이를 찾으면 눈물이 날 거야,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스크류바」76면)
박사랑이 여러 단편에 걸쳐 끈질기게 파고드는 주제는 바로 모성이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그토록 찬양해왔으면서, 또 그토록 천대해온 모성의 현재 안부를 묻는다. 표제작인 「스크류바」는 모성으로 귀속되지 않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아이를 잃어버리고 반나절 동안 불볕 아래에서 아이를 찾으러 종횡무진한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답게 여기저기 아이를 수소문하면서도 그녀는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이대로 자고 싶다는 생각”(64면)이나 “차갑고 단”, “딸기향이 가득 차”(66면)오르는 스크류바를 한입 물었으면 하는 생각을 억누르기 어렵다. 이처럼 ‘엄마’라는 정체성 사이를 이따금 비집고 나오는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에서, 모성이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가치를 상실한다.
아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동안 주인공은 첫 연애, 섹스, 낙태, 임신과 육아에 대해 생각하고, 어릴적 자신을 떠난 모친의 욕망과 가출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속에서 독자는 모성이 어떻게 억압으로 작용해왔으며, 왜 그녀가 모성과 어긋난 채 분열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모성의 장치들이 자신의 욕망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마다 등장하는 스크류바의 얼룩은 오감 전체로 느껴지는 감각적인 장면이면서, “선명한 색깔로 빛나는” 강력한 장면이다.
“당신은 소설가이지 않습니까?”
‘글 쓰는 자’로서의 고뇌
1964년 겨울, 서울의 거리는 추웠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바람에 옷깃을 여몄다. 안은 심드렁한 말투로 그럴 줄 알았습니다, 했고 김은 약간 과장하며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했다. 김이 나에게 이형은 알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김과 안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당신은 소설가이지 않습니까? 하는 표정 같았다. (「이야기 속으로」 119면)
소설집 『스크류바』를 관통하는 또다른 미덕은 삶과 이야기 사이의 오랜 긴장을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으로 표현하며, 그 자의식이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물음을 중심에 품은 채 펼쳐진다는 점이다. 그중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 겨울」의 서사 속으로 들어간다는 환상 체험이 담긴 「이야기 속으로」는 특별히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 그 자체이다. 주인공인 소설가는 「서울, 1964 겨울」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내’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이미 정해진 ‘소설’의 결말 속에서 ‘소설가’이면서도 ‘사내’의 죽음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사실 앞에서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또한 박사랑은 연인의 갑작스러운 실종을 다룬 「사자의 침대」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책임을 묻는다. 주인공 ‘나’는 세월호사건과 동시에 실종된 연인의 행방을 좇다가 결국 기억에서 지우게 되는데, 내내 시간적 배경으로만 암시되던 세월호사건이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정확한 날짜로 제시된다. ‘나’는 연인이 실종된 날짜를 ‘기억하는지’를 질문받는데, 이 질문은 작가가 텍스트 밖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이야기를 이야기 자신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작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문에 다름 아니다.
『스크류바』에는 오랫동안 애정으로, 삶과 이야기에 대해 고민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과 단단한 질문이 담겨 있다. 삶과 이야기 사이,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소설가 박사랑의 첫 걸음이 소설가로서의 길 곳곳에 신선한 자취를 남기게 될 것이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