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책에 담긴 10편의 이야기 중 6편이 몽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실제 6개월간 몽골에서 생활한 저자는 작품 속에서 그곳의 느낌과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들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라서도 끝나지 않는 여운을 남겨 그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곳에도 뚜렷한 적을 두지 못한 경계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은 남북문제나 이민자 사회와 같이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공중에 뜬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표현함에 있어 저자는 유쾌한 문장과 재치로 웃음을 주지만, 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사회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고민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거칠게 다가오는 부분 없이 유하게 흐르지만 날카로운 시선을 담고 있는 문장이 작품이 가진 가치를 더 돋보이게 한다.
목차
목란식당
늑대
남방식물
코리언 쏠저
두번째 왈츠
중국산 폭죽
강을 건너는 사람들
누구 내 구두 못 봤소?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
이미테이션
해설|이선우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전성태
출판사리뷰
2천년대 소설의 진화를 일러주는 최상의 지표
완벽에 가까운 문장과 구성을 추구하고 사회적 현실에 깊게 뿌리를 내리면서 독특한 작품세계를 일궈온 전성태의 세번째 소설집 『늑대』가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미 첫 소설집 『매향』(1999)에서 농촌 현실을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입담과 생생한 묘사로 그려내 이문구 선생의 뒤를 이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또한 당대 인물과 현실을 감동적으로 전달하면서 세계화시대의 ‘경계넘기’에 대한 사유를 형상화해낸 『국경을 넘는 일』(2005)은 평단의 주목과 기대를 한몸에 받은 바 있다. 4년 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집 『늑대』는 그간 그의 작가정신이 어떻게 변화하고 깊어졌는지를 확연하게 보여줄 만큼 편편이 탁월한 완성도로 다채로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문학평론가 한기욱의 말대로 “단언컨대 『늑대』는 2천년대 한국소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일러주는 최상의 지표 가운데 하나”(추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층 진보하고 성숙해진 소설세계를 일궈냈다.
경계 바깥에서 내부를 되비추는 상상력
이번 소설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총 10편의 작품 가운데 6편(「목란식당」「늑대」「남방식물」「코리언 쏠저」「두번째 왈츠」「중국산 폭죽」)이 몽골을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선택은 일차적으로 6개월가량을 몽골에서 보낸 작가의 체험과 거기에서 오는 영감이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요하게는 전작 「국경을 넘는 일」에서 보여준 ‘경계’에서 고뇌하는 문제적 인물에 대한 탐구와 상상력이 더 본격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소설적 전략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들은 몽골의 과거와 현재를 면밀하게 탐구하면서 사회 변화상과 당대의 문제를 짚어내는 한편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현안들을 고민하게 함으로써 ‘국경’의 상상력이 한층 더 세련되게 발휘되고 있다. 몽골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국외자인 동시에 완전히 국경을 넘어가지 못한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유를 철저하게 구현해내고 있다. 이 ‘바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을 따라 읽다보면 우리는 남북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신자유주의시대 자본주의 문제, 혼혈문제 등 아주 중요한 주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 작가의 상상력은 물리적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독자에게 아주 깊은 인식의 전환과 문제의식을 고민하게 해주는 것이다.
「목란식당」은 울란바타르에 있는 북한식당을 배경으로 엮인 크고작은 에피쏘드들의 이면에 경색된 남북문제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이 식당을 오가는 극우 기독교 단체, 교민사회 구성원, 타락한 386세대, 화자와 전직 화가인 화자의 삼촌, 북한 접대원 등의 관점으로 벌어지는 식당 안의 풍경은 작금의 우리의 초상화를 그대로 그려 보여준다. 얼핏 보면 황당한 한 편의 코미디 같은 일화들이 실상은 웃고 넘길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라고 깨닫게 하는 것이 전성태 소설의 매력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냉면 한 그릇에 그릇된 반공 이데올로기를 적용하는 목사 앞에서 화자가 “목란은 그냥 식당인데……”라고 던지는 쓸쓸한 한마디는 독자에게 아주 오래도록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남방식물」에서도 ‘목란식당’의 접대원이 화자에게 건넨 쪽지로 인해 파생하는,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가지는 ‘탈북(자)’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와 불안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몽골인을 통해서는 국내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예각화해서 전달한다. 두 소설의 화자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물이 아니라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갈등하는 소심한 인물들로써 소설의 심리묘사와 문제의식을 더 체감할 수 있게끔 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몽골에 체류하는 시인(교수)의 일화를 통해 오랫동안 우리 내부에 숨어 있는 군사문화를 파헤치는 「코리언 쏠저」 역시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주인공 ‘창대’는 몽골을 ‘시원(始原)의 이미지’로, 낭만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고 안식년을 보내며 시를 써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저잣거리에서 강도를 당할 뻔하고 열쇠 없이 아파트 문이 잠기는 상황에 처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자 몽골을 야만의 공간으로 파악하게 된다. 결국 몽골 군인들 앞에서 화자 자신은 “코리언 쏠저”라고 호기를 부리며 전선을 몸에 감고 30미터도 더 되는 높이에 있는 창을 통해 아파트로 들어가려고 시도한다. 이 소설 역시 결말에서 화자의 이중성을 아주 코믹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참담하게 전달해준다.
어떤 구속에서도 자유로워야 할 시인 역시 궁지에 몰리자 우리 사회의 뼛속까지 스며 있는 군사문화와 전사회의 병영화를 무의식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코미디를 순식간에 비극과 공포로, 반대로 공포를 순식간에 희화시키는 작가의 소설적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두번째 왈츠」는 사회주의 시절부터 몽골인들에게 ‘조국의 여자’라는 상징이 되어 굴레를 쓰고 사는 ‘냐마’라는 여인을 통해 몽골 사회의 과거와 현재상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한 여자의 삶을 통해 개인의 자유, 예술과 체제의 관계를 깊게 사유하고 나아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내면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묻는 수작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냐마가 기나긴 여정 끝에, 자발적 망명을 선택해서 몽골 초원에 은둔해 살아가는 북한 여인을 만나는 대목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몽골 사회에도 존재하는 부랑자 아이들의 삶과 죽음을 다루는 「중국산 폭죽」 역시 표리부동한 우리 자아와 사회의 이중성을 되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문명을 가장한 자본과 파괴되는 야생, 시원(始原)의 고독과 존재의 초원
표제작 「늑대」는 기존의 전성태 소설과는 색다른 소설적 영역을 수일하게 개척하고, 작가가 새로운 서사 실험에 성공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소설이다. 몽골 초원까지 스며든 자본과 그로 인해 파괴되는 자연과 초원의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용뿐 아니라, 사색적이고 미학적인 문체 역시 소설의 주제와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한국인 사냥꾼과 그의 여자 ‘허와’, 촌장과 그의 딸 ‘치무게’, 라마승, 늑대 등등 등장인물 각각의 1인칭 시점으로 장면과 심리묘사가 탁월하게 전환된다. 작가는 초원에 스며든 자본의 입김을 이렇게 묘파한다.
한잔 수태채가, 게르에서 하룻밤 잠이 돈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장작을 패는 노동이, 늑대를 쫓는 동행이 벌이가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게르 천창으로 빛나는 별과 스미는 달빛이, 지나는 바람과 흩날리는 눈이 역시 돈의 현영(現影)처럼 손님들을 끌어왔습니다.(…)
그새 일대의 초원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초원을 가르며 도로가 닦이고 말과 양이 달려야 하는 대지에 울타리가 쳐졌습니다. 캠프촌이 수십개로 늘었고 십여리 밖에는 서양식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나는 간혹 언덕에 올라 초원을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포장길을 내려다봅니다. 그 검은 혓바닥이 자본의 그것처럼 여겨집니다. 자본이란 게 그런 거였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을 몰고 왔지요. 초원에서 별들에게 길을 물었던 전통은 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목자들이 샘과 초지를 찾아 가축을 몰았듯 이제는 도로를 따라 이동합니다. 그들은 이제 하늘을 살피지 않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알려주는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입니다. --- p.38
‘무시무시한 검은 혓바닥’, 즉 자본에 잠식당한 초원에서의 삶은 이제 새로운 욕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그 안에서 황폐해진 영혼은 참담하게 망가지고 부서진다. 한국인 사냥꾼을 용인하는 촌장의 내면과 심리묘사를 통해 자본과 야생, 그리고 근원적인 고독과 죄의식을 동시에 상징하는 ‘검은 늑대’를 쫓아가는 과정은 아름답고 퇴폐적이라 할 만큼 탁월하게 묘사된다.
그가 나타난 뒤로 나는 하루도 몸에서 총을 떼어놓고 지내지 못합니다. 영혼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걸 느낍니다. 영혼은 명백한 범죄 앞에서보다 모호한 죄의식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지요. 영혼은 죄와 짝패가 아니라 몸과 짝패이니까요. 땡볕의 낮꿈과 같은 검질긴 악몽 속에서,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같은 불안 속에서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듯 제 영혼을 만납니다. 나는 그가 원하는 미친개를 잡을 생각입니다. 하여 놈의 사지를 지탱하는 여덟 가닥 힘줄을 끊어놓을 생각입니다. 아아, 두렵습니다. 이방인들이 돈을 믿을 때 우리 초원사람들은 길조(吉兆)를 믿었지요. 우리는 저 굴곡 없는 대지를 오가면서도 일진을 점치고 움직였지요. 초원으로 흘러가버린 저 종소리처럼 다 옛말이 되어버린 이야기이지만. --- p.40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사람과 가축이 공존하던 유목”이 사라진 초원에는 자본과 욕망만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욕망의 첨병인 한국인 사냥꾼의 늑대 추적은 욕망의 무한증식을 상징한다. 하지만 늑대는 뜻밖에 초원의 목자에게 사냥당함으로써 반전이 일어난다. 암컷 늑대를 죽여 검은 늑대를 사로잡겠다는 사냥꾼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결국에는 촌장의 딸과 사랑에 빠진 자신의 여자를 향해 총을 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욕망에 사냥당하는 꼴이 된다. 결말 부분의 총성은 초원의 질서를 거스르는 모든 죄의식과 욕망, 자본의 파국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파국을 통해 이 시대의 존재의 의미를 묻는 이 소설은 분명 전성태 소설세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면서도 작가의 또다른 재능과 가능성을 열어놓은 작품이다. 2천년대 소설에서 남다른 심리묘사와 상징과 비유를 통해 자본과 욕망에 파괴되어가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이토록 고독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순정하고 애틋하고 힘찬 전성태의 서사
이번 소설집이 유독 주목할 만한 것은 전성태가 그간에 작업해온 것들이 집약되어 있으면서도 한층더 완성도를 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참담한 탈북자들의 상황과 심경을 어느 소설보다 현실감있게 그려냈고, 자전소설격인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에서는 80년대 초 군사독재 시절 아이들의 삶을 해학적이면서도 비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도 사투리로 무장한 해학적인 일화들이 담긴 「누구 내 구두 못봤소」 역시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게 하면서 이산가족의 비극적인 삶을 드러낸다.
평생 이북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감춰오다가 북한의 부인이 사망한 것을 알고 자살하는 김선장의 삶은 분단사의 비극을 외딴섬의 일상 속에서 길어올린 또다른 수작이다. 「이미테이션」은 혼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진짜 혼혈이 아니라 혼혈처럼 생긴 오리지널 한국인 ‘게리’가 사회적 편견을 넘지 못하고 혼혈인으로 가장하고 외국인 강사로 위장할 때만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냄으로써 웃지 못할 현실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짝퉁이 물건뿐 아니라 인간과 삶에도 존재한다는 작가의 메씨지는 우리의 내면을 통렬하게 비웃고 있는 것이다.
전성태의 『늑대』는 한마디로 2천년대 젊은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작가 특유의 세밀한 묘사와 완벽에 가까운 문장과 구성이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것이다. 작가의 장점인 해학과 정곡을 찌르는 주제의식,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하는 반전, 현실의 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 치열함과 인간을 향하는 애정 등이 독자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천운영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의 소설은 “순정하고 애틋”하고 “결이 고운데도 힘이 넘친다.” 그의 소설언어는 “아닌 줄 알면서도 믿게 되고, 무작정 믿게”(추천사) 만드는 저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소설은 언제나 비평의 언어로 포섭되지 않는 법,『늑대』는 매순간『늑대』를 넘어선다”(이선우 해설)라거나 전성태 소설이 ‘2천년대 한국소설의 진화를 일러주는 최상의 지표’라는 한기욱의 단언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 마땅히 받아야 할 상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