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천운영의 세 번째 소설집으로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그녀의 눈물 사용법, 알리의 줄넘기, 내가 데려다줄게, 노래하는 꽃마차, 내가 쓴 것, 백조의 호수, 후에와 같은 단편 8편을 수록하였다. 그녀의 소설은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직시하게 만들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눈물 사용법’을 발견하게 한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에서는 일반적인 상상과 편견을 넘어서서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여주며, 표제작인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는 유약함과 보호받기 위한 무기로서의 눈물이 아니라 치유하는 적극적인 눈물의 사용법을 들려준다. 알리의 줄넘기는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분한 작품이지만 작가는 이 문제를 힘주어 제기하거나 무리하게 노출시키지 않고, 다만 소녀의 일상을 통해 경쾌하게 소설을 진행시킬 뿐이다. 제자와의 성 스캔들이 와전되어 늪지대로 도망친 사내의 이야기를 다룬 내가 데려다줄게와 상처받고 그 상처로 꽃을 피우는 여자가 등장하는 「노래하는 꽃마차」도 볼 수 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차분하게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아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다.
목차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그녀의 눈물 사용법
알리의 줄넘기
내가 데려다줄게
노래하는 꽃마차
내가 쓴 것
백조의 호수
후에
해설 | 신형철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천운영 (지은이)
출판사리뷰
한결 깊어지고 확장된 천운영의 세번째 소설집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바늘」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치열하고 아름다운 미학적 단편을 꾸준히 발표하며 한국소설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작가 천운영의 세번째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이 출간되었다. 장편 『잘 가라, 서커스』(2005) 이후 3년 만에, 소설집 『명랑』(2004)을 펴낸 지는 4년 만에 내는 작품집으로 총 8편의 단편을 묶었다. 원초적인 육식성과 여성적 생명력, 강렬하고 시적인 이미지, 그리고 면밀한 취재에서 파생되는 생생한 묘사가 압권인 『바늘』(2001)과 현실세계에 설화와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명랑』을 거친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한결 깊어진 세계인식과 다양한 문체의 변주를 들고 나와 소설영역의 확장을 일구어낸다. 작가는 세계에 혼재된 상처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상처를 대속하는 따스한 ‘눈물’, 그리고 통념을 깨는 사랑과 치유의 ‘눈물’을 통해 독자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성(性)과 시간을 초월한다
첫 작품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2007 이상문학상 우수작)의 화자는 사진관을 운영하며 젊은 여자나 예비부부의 누드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주는 사진사다. 그와 아내는 서로에게 어떠한 욕망도 느끼지 못할 만큼 부부관계가 위태롭다. 그는 체계적인 몸관리로 젊음을 유지하는 아내의 몸을 비현실적으로 느끼고, 젊은이에 대해서는 증오와 부러움이라는 양가감정을 지닌다. 아내 역시 늙어가는 그에게 권태로움과 싫증을 느낀 지 오래다. 게다가 그는 “카메라를 통해 육체를 바라볼 때만 흥분”하고, “조명을 받으며 카메라에 들어온 몸만이 피가 흐르고 온기가 도는 살아 있는 몸”(12면)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그의 일상에 열여덟살 소년이 끼여든다. 사소한 시비 끝에 소년과 싸움을 벌이다 다친 그는 합의금 대신에 일년간 소년을 조수로 고용해 일을 시키기로 한다. 그에게 소년은 새로운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아내와 소년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그는 소년의 밝고 건강한 젊음에서 동경과 질투와 증오를 동시에 느낀다. 어느날 아내에게서 이혼을 통보받은 뒤 사진관으로 향한 그는 소년이 아내의 누드를 찍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피사체로 앉은 알몸의 노파, 소년의 할머니를 보게 된다.
조명 아래 쑥스럽게 웃고 있는 여자는 아내가 아니다. 상의를 벗고 앉은 여자는 바로 늙고 야윈 노파다. (…) 그는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이 살아나는 것을 본다. 그것은 그가 여태 상상하고 단정 지은 추악하고 안쓰러운 늙음이 아니었다. (…)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은 부끄러워하고 시샘하고 달아오르는 소녀의 몸이었다.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원숙한 자연이자 소녀인 노파의 몸.(39~40면)
화자의 젊음과 늙음에 대한 편협한 사고와 뷰파인더로만 가능했던 욕망이 뒤집히는 장면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뷰파인더 안과 바깥을 넘나드는 동시에 일반적인 상상과 편견을 넘어서는, 즉 현상과 본질을 관통하는 ‘아름다움에 실체’를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녀, 늙음/젊음, 미/추’라는 도식적인 관념을 부수고 난 자리에는 성과 시간을 초월하는 미의 본질만이 남는다. 노파의 몸에서 소녀를 읽는 것이나 소년에게서 동성애적인 연민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본질과 관련된다. ‘소년 J의 허벅지’로 표상되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순수한 욕망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이러한 미의 세계에서는 성별도 시간의 흐름도 사라지고 눈부신 풍경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상처와 삶의 고통을 대속하는 눈물 사용법
표제작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 ‘그녀’가 일곱살일 때 태어난 미숙아 남동생은 인큐베이터 사용료가 없어서 장롱에 갇힌 채 단 하루를 살고 죽는다. 3년 뒤 그녀가 홍역을 앓던 어느날, ‘그애’는 우량아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7년 동안 성장하여 일곱살이 된 뒤에는 성장을 멈춘 채로 20년을 그녀의 곁에 머문다. 그애는 “서른일곱살 여자의 몸속에 살고 있는, 단 한번도 울지 않은 영원한 일곱살 소년”(52면)이다. 가족들은 그녀의 오라비가 조울증을 앓는 것도 그애의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비는 그애의 시신을 한강에 띄워 보냈노라고 뒤늦게 고백한다. 가족들은 30년 만에 때늦은 천도제를 지내고, 거짓말처럼 오라비는 평온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를 지켜주며 살게 했고 울지 않게 한 그애를 떠나보낸 것이다. 이 소설에서 우는 것은 남자들이고 여자들은 울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고, 바람나서 떠났다 돌아온 남편을 먼저 보낸 할머니도,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어머니도 울지 않는다.
이처럼 작가는 통념으로 작용하는 눈물을 거부하고 제의로서의 새로운 눈물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유약함과 보호받기 위한 무기로서의 눈물이 아니라 치유하는 적극적인 ‘눈물의 사용법’을 들려주는 것이다. ‘이중자아’라 할 수 있는 ‘그애’와의 재회나 이별을 묘사하고, 눈물에 대한 기존의 남녀상을 무너뜨리면서 친구 ‘게이년’과 같은 모호한 ‘성 정체성’을 등장시키는 것도 눈물의 영역을 넓혀 새로운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힌다. 때문에 ‘눈물 사용법’이 상처의 변주이자, 상처와 삶의 고통을 대속하는 방법, 상처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 눈물의 의미는 삶에 대한 따스함이자 연민, 또는 사랑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눈물의 맛은 그래서 ‘짜고 시고 달’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다. 이것은 자살한 아이의 천도제를 지낸 또다른 ‘여자’에 대한 ‘그녀’의 연민과 애정이 담긴 다음 장면에서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구현된다.
나는 여자에게 내 속에 살았던 소년 얘기를 해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그애가 남기고 간 양말 한짝을 선물로 주었다. 내 위에 누운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눈물이 내 눈꺼풀을 적셨다. 눈꼬리로 떨어진 눈물이 내 것인지 여자 의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여자의 눈가에 혀끝을 갖다댔다. 눈물은 짜고 시고 달았다. 나는 아직도 눈물이 나올 때면 오줌을 싼다. 오줌을 싸면서 나는 자그마한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싸는 일곱살 소년을 생각한다. 내 안에 여전히 살고 있는 울지 않는 소년.(71면)
발랄한 어법으로 치부를 파헤치다
이번 소설집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 「알리의 줄넘기」의 주인공은 혼혈소녀 ‘김알리’다. 할머니가 ‘제니’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던 시절 흑인군인과 결혼해서 혼혈아를 낳았고, 무하마드 알리에 열광한 그 아이가 자라 낳은 딸의 이름을 알리라 짓고 권투(줄넘기)를 가르쳤다. 알리는 혼혈을 왕따시키는 동급생들에게도 당당하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도 잘 보살핀다. 그녀는 아버지와 씨다른 남매이자 땀냄새에 집착해서 주로 막노동현장의 남자들과 사랑에 빠졌다가 상처받기를 되풀이하는 고모에게도 어른스럽고, 삼년째 소식이 없는 아빠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유머 있는 알리가 될 순 없어도 슬퍼하는 알리가 되어서는 안돼”(14면)라고 다짐하기도 하는 이 소녀는 소년같이 씩씩하고 철이 빨리 든 아이다.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분한 작품이지만 작가는 이 문제를 힘주어 제기하거나 무리하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다만 소녀의 일상을 통해 경쾌하게 소설을 진행시킬 뿐이다. 고모의 입을 통해 말하듯, “대부분의 농촌 총각들이 베트남 여자와 결혼하는 마당에”(93면) 민족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다. 그것은 어쩌면 아이 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몽고반점’(93면) 같은 것이다. 시종일관 유지하는 이러한 발랄한 어조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내면 깊숙이 가려진 치부를 아프게 까발린다. 그리고 그 육중한 문제들을 ‘우리’라는 간단한 말로 치환하면서 심각하지 않게 결말을 완성하는데, 여기에서 뿜어져나오는 힘이 곧 천운영 소설의 저력이기도 하다. “더블더치를 하려면 두 개의 줄넘기와 적어도 세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줄넘기를 하나 더 사러 가는 것이다. 줄넘기를 사면 손잡이에 더블더치를 할 ‘우리’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야지. 나는 지금 ‘우리’를 만나러 간다.”(103면)
음악처럼 울리는 상처와 욕망 너머의 세계
제자와의 성 스캔들이 와전되어 늪지대로 도망친 사내의 이야기를 다룬 「내가 데려다줄게」(발표 당시 제목은 ‘틈’, 2008 이상문학상 우수작) 역시 아름다우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내 죽음이 진실을 대신하리라”(106면)라는 유서를 쓰고 늪으로 들어간 사내는 늪지대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한 가족에 의해 구조된다. 안개가 자욱한 늪지대라는 공간처럼 소녀와 어머니와 할머니로 구성된 이 가족의 존재도 비현실적이다. “꿈과 생시,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 그 좁은 듯하면서 광활한 사이 혹은 틈새”(111면)라 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배경에서 사내가 증명하려는 ‘진실’이나 욕망의 본질과 대상은 무의미해진다. “글쎄다, 진실이 뭔지도 모르겠는걸.”(132면) 명확하지 않은 진실을 찾기보다는 뱀들이 “허물을 벗기 위해 흐린 안개 눈을 하고 늪으로”(115면) 오는 것처럼 사내 역시 재생과 상처의 치유를 위해 늪지대로 들어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읽으면 늪과 안개와 그를 구한 여자(소녀의 어머니)는 소생의 근원지인 셈이다. 사랑의 완성을 위해 지어진 ‘노래하는 탑’이라는 소재 역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으나 분명하게 존재하면서 ‘숨소리’나 ‘눈물 한줄기’(133면)에도 아름답게 반응하며 울리는 자연음의 근원지이다. 사내가 다시 늪으로 들어가는 결말 부분의 문장, “따뜻한 늪이 데려다줄 것이다, 안개를 피워올려, 그곳으로”(134면)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늘상 반복되는 진실찾기와 상처와 욕망 너머의 세계, 허물을 벗고 난 세계로 우리를 데려다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노래, 봄에 부르는 겨울노래
상처받고 그 상처로 꽃을 피우는 여자가 등장하는 「노래하는 꽃마차」는 모든 상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처하는 비참하면서도 역설적인 사랑이야기이다. 유년 시절 ‘그녀’의 가족은 ‘찬양사역단’이었다. 광신적인 신앙을 가진 어미에게는 ‘거인가족’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 가녀린 막내딸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애정을 바라는 소녀를 어미는 밀쳐내기만 하고 딸이 꺾어준 봄꽃으로 외려 딸을 후려친다. 소녀는 여자로 성숙하지만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어미는 자라면서 피어나기 시작하는 딸의 아름다움을 죄악의 근원이라 저주하고, 오빠는 하나님을 빙자해 그녀를 겁탈하고,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이후에는 또한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범한다. 이 상처를 이겨내게 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부르는 노래와 한 남자의 사랑이다. 12절로 구성된 각 절에서 인칭과 화자를 달리하면서 반복하는 독특한 구조를 통해 작가는 여자의 고통스러운 상처들을 극대화하거나 어루만진다. 결핍과 폭력과 상처를 드러내는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어법이 두드러진다. “초콜릿을 주던 사내애” “먹을 것을 주며 노래를 부르라던 사내” “부르기도 전에 입을 막던 사내” “시커먼 짐승을 입 안에 쑤셔넣던 사내”(159면)들에 겁탈당하고 상처받은 한 여자의 ‘사랑노래, 봄에 부르는 겨울노래’가 봄과 꽃과 대조를 이루면서 아프게 전해지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세 편의 짤막한 소설( )과 로 엮여진 독특한 구성의 「내가 쓴 것」, 애완동물을 키우다 버리는 한 여자의 허세와 가식적인 삶을 통렬하게 까발린 「백조의 호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이 무관심으로 변하는 과정과 사회의 허위의식을 아이들의 대화를 통해 고발하는 「후에」 역시 만만치 않은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천운영 소설의 성숙한 변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해설에서, 지금까지의 천운영 소설은 “90년대 여성소설의 여성상을 넘어서는 가능성”과 “리얼리즘의 갱신을 위한 단초”(252면)를 제공했고, 이번 소설집에 이르러서는 ‘욕망’과 ‘사랑’이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욕망의 서사’가 ‘사랑의 서사’로 이동하고 있음을 읽어낸다. 그는 또 천운영 소설에서 성숙한 변화를 적절하게 감지해낸다.
상처 없는 사람들은 읽지 못할 소설
천운영의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은 세계에 혼재하는 도저한 상처와 상처에 대처하는 방식이자 인간과 세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다. 그 수단이 되는 구체적인 물질이 바로 ‘눈물’이다. 그러나 이 연민과 사랑, 그리고 상처에 대한 대처와 눈물 사용법은 흔히 통용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천운영의 방법들은 한층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이다. 이 적극성을 더 잘 드러나기 위해 작가는 비범하거나 통념을 깨는 소재와 장소와 인물들을 소설에 호출해낸다. 동성애 코드와 게이, 그리고 일찍 죽은 아이(「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그녀의 눈물 사용법」), 튀기(「알리의 줄넘기」), 겁탈당한 여자(「노래하는 꽃마차」), 사실과 허구를 분간하지 못하는 소설가이자 여교수(「내가 쓴 것」), 극빈에 노출되고 버려져서 비정상적으로 공격적인 자매(「후에」), 명확했던 진실조차 흐려지는 늪지대(「내가 데려다줄게」) 등 이 모든 것들이 감춰진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훌륭하게 조합된다. 소설집 전반에 걸쳐 따스하게 흐르는 ‘눈물’ 역시 다양하게 변주된다. 눈물은 때로 오줌(「그녀의 눈물 사용법」 「후에」)이거나 피와 꽃(「노래하는 꽃마차」)이고, 땀냄새와 기름 냄새(「알리의 줄넘기)로 변하기도 하고, 늪과 안개, 음악(「내가 데려다줄게」 「노래하는 꽃마차」)이 되기도 하며, 배설물이나 호수(「백조의 호수」)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주에 호응해서 소설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에는 다양한 문체들도 큰 역할을 한다. 천운영의 기존 문체를 이어받은 치밀하고 공학적인 문장(「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내가 데려다줄게」 「내가 쓴 것」)에다 적극적으로 세계에 관여하는 대화체나 독백체(「후에」 「노래하는 꽃마차」)를 도입하기도 하고, 그 두 종류의 문체를 적절하게 혼합한 문체(「그녀의 눈물 사용법」 「알리의 줄넘기」) 등이 이번 소설의 다양성과 재미를 더해준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다양하고 특이한 인물과 소재 들로 인해 기존에 우리가 믿었던 정체성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소년과 소녀, 남과 여, 이성애와 동성애, 늙은이와 젊은이 등 모든 정체성이 혼종되어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소년의 눈물 사용법’ ‘사람의 눈물 사용법’ ‘우리의 눈물 사용법’으로 바꿔 읽어도 하등 무리가 없다. 그러다 결국에는 ‘나의 눈물 사용법’으로 읽을 때 더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한번 성숙해지고 깊어진 작가 천운영의 저력을 느끼게 한다.
소설가 박민규가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천운영의 이번 작품집은 “이 세계의 상처가 얼마나 교묘한 것인지를. 우리의 상처가 얼마나 복잡, 미묘한 것인가를. 독(毒)이 왜 독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는가”를 뛰어나게 그려내고 있어서 ‘상처가 없는 사람’(박민규 ‘추천사’)은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천운영 소설은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직시하게 만들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눈물 사용법’을 발견하게 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상처와 존재의 허물을 벗기 직전의 우리들은 ‘뱀처럼 뿌예지는 눈’(「내가 데려다줄게」)과 눈물로 그렁그렁해지는 눈으로 세계를 새롭게, 아프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