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치열한 저항의 목소리부터 삶에 대한 깊은 통찰까지
암울한 현대사 속에서 지켜온 순정과 희망의 시심(詩心)
황명걸의 시력 54년을 망라해 100편을 엮은 순도 높은 시선들
1962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이 봄의 미아(迷兒)」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등장한 이후 사회참여와 현실비판의 강력한 저항의 목소리로 1960~1970년대 한국 시단을 풍미했던 황명걸 시인의 시선집 『저희를 사랑하기에 내가』가 출간되었다. 시인의 오랜 벗 신경림 시인과 구중서 문학평론가가 첫 시집 『한국의 아이』(창작과비평사 1976), 두번째 시집 『내 마음의 솔밭』(창작과비평사 1996), 세번째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민음사 2004)에서 각 25편씩 가려 뽑은 것을 시인이 일일이 손을 보았고, 여기에 신작시 25편을 더하여 모두 100편의 시를 실었다. 지난 54년간의 시적 성취와 시 세계의 변모를 한눈에 살펴보면서 “새삼 시란 무엇이며 시를 읽는 즐거움은 어데서 오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신경림, 추천사)해보게 하는 각별한 의미가 담긴 시집이다.
목차
1부
불행한 미루나무 / 한국의 아이 / 새 주소 / 서글픈 콘트라스트 / 변기 속의 쿠테타 / 지조(志操) / 서울 1975년 5월 / 아내여, 다도해를 / 타락초(墮落抄) / 불만의 이 겨울 / 삼중절(三重節)의 삼중고(三重苦) / 실업의 계절 / 이럴 수가 없다 / 그날 호외는 / 나의 손 / 산번지의 가을 / 붉은 산 / 삼한사온 인생 / 무악재에서 / 그날의 회상 / 어느 고아의 죽음 / 이웃 / SEVEN DAYS IN A WEEK / 물빛 조반 / 가을 농가
2부
내 마음의 솔밭 / 삶의 그림 / 꽃밭에 물을 주며 / 다시 사월에 / 푸른 산 / 매립지에서 / 난지도에서 / 진눈깨비 / 대장균도 벗하면 / 서울의 봄 / 간밤의 꿈 / 해장국집에서 / 어려오는 얼굴 / 실한 낟알 / 세밑 / 고향 사람 / 기다림 / 미친 짓거리 / 저문 날의 만가 / 마술사의 새 / 방품방조림 / 저녁의 불청객 / 마이너리그 / 흑회색의 그림 / 산동네
3부
아름다운 노인 / 노인장대를 보며 / 먹의 신비 / 한일(閒日) / 참회 / 바위이끼 / 오리 가족 / 돌아가는 날 / 내 집 뜨락의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 / 비 오는 날에 / 이청운의 개 / 난곡 산동네 / 낙원시장께 / 아낙의 힘 / 명창의 목 / 밤손님 / 억새 / 두물머리에서 / 망향의 편지 / 노방에서 / 점등사(點燈師) / 흰 저고리 검정 치마 / 내 안의 사라예보 / 비시(非詩) 연습 / 명명백백한 노래
4부
우리는 / 자기애(自己愛) / 길 / 세월 / 낙락장송, 한울님이시여 / 공술 / 봉창 / 당신의 뜻 / 솔, 솔 / 매화음(梅花飮) / 매화 가지와 더불어 / 꿈 / 나의 미학 / 시 짓기 / 세월을 타다 / 떠돌이 개 / 허허무무(虛虛無無) / 쌈을 싸는 사람들 / 두 별의 우화 / 밤바다 / 어느 일지 / 허튼 소리 / 교정하여 버린 활자처럼 / 까치수염 / 새날
발문|구중서
시인의 말
저자
황명걸
출판사리뷰
치열한 저항의 목소리부터 삶에 대한 깊은 통찰까지
암울한 현대사 속에서 지켜온 순정과 희망의 시심(詩心)
황명걸의 시력 54년을 망라해 100편을 엮은 순도 높은 시선들
1962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이 봄의 미아(迷兒)」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등장한 이후 사회참여와 현실비판의 강력한 저항의 목소리로 1960~1970년대 한국 시단을 풍미했던 황명걸 시인의 시선집 『저희를 사랑하기에 내가』가 출간되었다. 시인의 오랜 벗 신경림 시인과 구중서 문학평론가가 첫 시집 『한국의 아이』(창작과비평사 1976), 두번째 시집 『내 마음의 솔밭』(창작과비평사 1996), 세번째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민음사 2004)에서 각 25편씩 가려 뽑은 것을 시인이 일일이 손을 보았고, 여기에 신작시 25편을 더하여 모두 100편의 시를 실었다. 지난 54년간의 시적 성취와 시 세계의 변모를 한눈에 살펴보면서 “새삼 시란 무엇이며 시를 읽는 즐거움은 어데서 오는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신경림, 추천사)해보게 하는 각별한 의미가 담긴 시집이다.
계집아이는 어미를 닮지 말고/사내아이는 아비를 닮지 말고/못사는 나라에 태어난 죄만으로/보다 더 뼛골이 부서지게 일을 해서/머지않아 네가 어른이 될 때에는/잘사는 나라를 이룩하도록 하여라/(…)/너무 외롭다고 해서/숙부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외숙이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그 누구도 믿지 마라/가지고 노는 돌멩이로/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정교한 조각을 쫄 줄 알고/하나의 성을 쌓아올리도록 하여라/맑은 눈빛의 아이야/빛나는 눈빛의 아이야/불타는 눈빛의 아이야(「한국의 아이」 부분)
제1부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가난과 슬픔과 역사와 미래가 응축”(구중서)된 시인의 대표작 「한국의 아이」를 비롯하여 첫 시집 『한국의 아이들』에서 뽑은 시들이 실려 있다. 판금 조치라는 수난을 겪기도 한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이불 팔아 며칠/솥 팔아 몇끼/마지막 숟갈 팔아 한끼 연명하고는/지어미가 지새끼를/지아비가 지어미를/제가 제 목숨을 끊어 일가족 집단자살”(「그날 호외는」)하고 마는 암울한 사회와 민족분단 현실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을 드러내는 한편, “신문사가 주인인 호텔엔/까맣게 높이 인부들이 매달려/값싼 임금에 유리창을 닦는”(「서글픈 콘트라스트」) 부조리한 현실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그런가 하면 “다방에 앉아 금붕어마냥 엽차만 꼴깍꼴깍 마시고/(…)/해 떨어지면 그렇고 그런 패들과 어울려/막걸리잔이나 기울이”(「이럴 수가 없다」)는 도시 소시민의 무기력한 생활을 반성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한포기 작은 풀일지라도/그것이 살아 있으면/비에 젖지 않나니/더구나 잎이 넓은/군자풍의 파초임에랴/빗방울을 데불고 논다//한마리 집오리일지라도/그것이 살아 있으면/물에 젖지 않나니/더구나 몸가짐이 우아한/왕비 같은 백조임에랴/물살을 가르며 노닌다(「지조(志操)」 전문)
제2부는 두번째 시집 『내 마음의 솔밭』에 실린 시들이다. 첫 시집 이후 20년의 침묵 끝에 펴낸 이 시집에서 시인은 동아일보사에서 집단해직된 이후 언론자유화운동 시절의 통렬한 사회비판 의식과 북한강변에서 화랑 까페를 운영하며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만년의 순진무구한 사색의 세계를 담은 시편들을 선보인다. 시인은 “사방이 꽉 막힌 세상/숨막히는 나날”(「푸른 산」)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면서 “메말라가는 내 마음에/눈물을 뿌리듯이”(「꽃밭에 물을 주며」) “하루를 아름답게 마감”(「저문 날의 만가」)하는 삶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얼음과 바람뿐인 지난 밤들”(「서울의 봄」)과 “오욕의 세월”을 “속으로 다지고 다져/영일의 새날 맞는 날/활짝 모두에게 문 열어/눌리는 자와 누르는 자로 갈리지 않게 하리라”(「매립지에서」)는 다짐을 가슴속에 새긴다.
시골에 살면서/요즈음 나의 바람은/넓도 좁도 않은 솔밭을/내 마음밭에 키우고 싶음뿐//키가 크지 않으나/대충 가지런하고/적당히 굽고 휘어서/오히려 멋스러운/비산비야 아무 데서나 마주치는/재래종 소나무떼//등이 굽어가는 늙은 아내의/쪼그라든 불두덩을 덮은/좀은 엉성해진 거웃처럼/빽빽지도 성글지도 않은 솔밭을/내 마음밭에 가꾸고 싶음뿐이로세(「내 마음의 솔밭」 전문)
제3부에 실린 시들은 세번째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에서 가려 뽑았다. 고희를 기념하여 내놓은 이 시집에서 시인은 “드문드문 검버섯 피어 있어/얼굴이 더욱 맑고/연륜과 기품이 엿보이는/아름다운 노인/벽오동이나 은백양/또는 자작나무를 닮은/향기나는 사람”(「아름다운 노인」)이 되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노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산중에 살면서도 “탱자나무 가시울타리 속/한칸 모옥이면 족하다”(「한일(閒日)」)라고 말하는 시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간은 남아 있다/아, 나 깨끗한 종생을 준비할 때”(「참회」)라고 읊는다. “제이의 고향으로 삼은 무너미 북한강”(「망향의 편지」)가에서 “제 모습으로” “제 깜냥대로”(「바위이끼」) 살아가는 시인은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져 한강이 되듯이 남과 북이 하나 되어 통일이 되는 그날을 간절하게 기다린다.
겸재의 「족잣여울」보다야 못하지만/북한강 남한강 두 물 합치며 묘를 이룬/한폭 청록설채화, 두물머리에 서면/끝내 서울은 가본적으로 남고/본향은 역시 평양, 그리움으로 살아난다//(…)//대동강가 고향 그리워 양평에 살며/아침에는 북한강 물안개에 할머니 뵙고/저녁에는 남한강 잔물결에 삼촌들 만나고/사방이 시원히 트인 두물머리에 서서 /북한강 남한강 두 물 합쳐 한강을 이루듯/남북이 하나 되어 고향길 열리길 비네(「두물머리에서」 부분)
제4부 신작시에서는 연륜의 깊이가 묻어나는 고매한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전작 시집에서 보인 냉철한 현실비판 의식보다는 인생의 황혼녘에 다다른 자로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진솔한 시편들이 감동적이다. 어느덧 팔순의 나이를 넘긴 시인은 “매사에, 사사건건, 사안시하며, 악의에 차서/깎아내리고, 욕지거리하며, 핏대를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별종/싸가지 없는 악종, 구제불능의 망종이었”(「허튼소리」)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젖기도 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자 한다. “눈부시지 않고 따갑지도 않은/겨울 아침 햇살 온몸으로 안으며” 시인은 “저 눈부심 속으로 내 한몸 던져/소멸해가라는 뜻”(「당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이 오면/나 떠나리, 이 산하 어드메에/쇠잔한 몸 추슬러 외양 단정히 매만지고/명아주 단장에 의지해/희고 가는 머리카락 날리며(「새날」 전문)
시인은 시력(詩歷) 반세기가 넘는 동안 단 세권의 시집과 한권의 시화집을 펴냈다. 엄청난 과작이지만 그 무게감은 다작의 여느 시인에 못지않다. 신경림 시인의 말대로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치열한 언어로 용기 있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그의 많은 시들은 우리 민족시의 한 전범으로 들어 손색이 없을 것이다.” 시인은 “대동강가 고향 그리워”(「두물머리에서」) 양평에 산다고 했다. “어쩌다 멍멍이가 인기척을 알리면/아, 살아 있음을 고마워”(「한일」)하면서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며, 거짓과 속임수를 모르는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시 짓기에 들어가면 갈등과 번민이 이어지고/인고의 생산에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며/작품의 완성은 언제일지 기약 없으나/그래도 늘 가슴 설레며”(「시 짓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노시인의 삶이 뭉클하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함께한다는 것/끝까지 간다는 것/목숨 다하도록 더불어 산다는 것//사내와 계집의 정애나/새끼와 어미의 은애나/나와 이웃의 친애나/모든 인연과의 사뜻한 관계까지//우리가 소슬한 바람에 쓸리고/후줄근히 궂은비에 젖으며/갖은 경우의 험한 굴곡을 넘어/감당키 어려운 습지를 헤쳐나와/절룩거리면서, 절뚝거리며 함께 간다는 것//넘어지면서도 무너지지 않고/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고/어디인가로 가는, 어딘가로 가는/아, 우리는 도반(道伴)인 것을(「우리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