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울음이 되지 못한 울음을 하나하나 줍는 손길이 있다”
끝없이 소비하며 무너지는 존재들을 향한 뼈아픈 물음
구원과 해방을 꿈꾸는 투명한 연대의 목소리
진정성으로 돌파하는 꾸밈없는 언어와 정밀한 묘사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삶을 위협하는 생명 파괴의 형상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온 이동우 시인이 첫 시집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를 출간했다. 2015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2021년 대산창작기금 수혜자로 선정되는 등 오랜 기간 시적 역량을 탄탄히 다져왔다. “기후, 동물, 노동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생명에 대해, 타자에 대해, 계급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김영희, 해설)하는 시편들이 서늘하고 묵직한 울림으로 와닿는다. 인류가 저질러온 파괴와 훼손의 “역사의 통점을 환기하며 마침내 멸절 직전인 현재와 조우”하는 이 시집은 기후 재난, 생태계 붕괴, 코로나 팬데믹 등 인류와 지구가 당면한 비극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문제의식이 깃든 “최초이자 최후의 진술서”(김해자, 추천사)이다.
목차
제1부ㆍ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꿰맨 자국
상괭이
탯줄
동물도감
당신의 죄명은 무엇입니까?
양떼구름 도축하기
침식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
방화
알
치킨은 철새다
식탐에 관한 몇가지 소문
복면의 계절
이유와 이후
묻힌 울음과 묻는 울음, 그 물음을 회피한 겨울이 지나고
제2부ㆍ슬픔 없는 나라로
담쟁이
저 작은 날개를 얼마나 파닥여야 그곳에 닿을 수 있을까요?
바다의 통점
낭독회
마지막 자장가
뼈 밭
목탄화
두 세계
먼지 차별
턱
오보
탭댄스
엑스트라
로켓 배송
개기월식
유리벽
서커스
결근
폐전선
절반의 얼룩, 말
저예산 영화
제3부ㆍ밤이라는 빈칸
악수를 풍선과 바꿀 수 있을까요?
배후
못하거나 못 하거나
매미 소리
갈증
헌팅 트로피
빗길
누수
새가슴
구조적 열패감
용서를 강요받을 때
백야
화상 자국
센서등
오르골
편두통
극의 기원
사근진 해변
해설|김영희
시인의 말
저자
이동우 (지은이)
출판사리뷰
“울음이 되지 못한 울음을 하나하나 줍는 손길이 있다”
끝없이 소비하며 무너지는 존재들을 향한 뼈아픈 물음
구원과 해방을 꿈꾸는 투명한 연대의 목소리
진정성으로 돌파하는 꾸밈없는 언어와 정밀한 묘사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삶을 위협하는 생명 파괴의 형상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온 이동우 시인이 첫 시집 『서로의 우는 소리를 배운 건 우연이었을까』를 출간했다. 2015년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2021년 대산창작기금 수혜자로 선정되는 등 오랜 기간 시적 역량을 탄탄히 다져왔다. “기후, 동물, 노동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생명에 대해, 타자에 대해, 계급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김영희, 해설)하는 시편들이 서늘하고 묵직한 울림으로 와닿는다. 인류가 저질러온 파괴와 훼손의 “역사의 통점을 환기하며 마침내 멸절 직전인 현재와 조우”하는 이 시집은 기후 재난, 생태계 붕괴, 코로나 팬데믹 등 인류와 지구가 당면한 비극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문제의식이 깃든 “최초이자 최후의 진술서”(김해자, 추천사)이다.
시집은 죽음의 구렁 속으로 수많은 생명을 매립하는 비참한 형상으로 가득하다. 곳곳에서 기후 재난의 거대한 불길로 초토화된 생명들이 “서로의 생사를 묻는”(「동물도감」)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시인은 기후 재난의 불길을 인간이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라는 의미로 ‘방화’라고 쓰고, 이러한 비극이 자본주의의 “식탐”(「방화」)과 폭력적인 난개발에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고 훼손해온 인간의 탐욕을 되짚어보며 생명의 “자맥질”(「상괭이」)을 계속할 수 있는 생명의 순환을 떠올린다.
기후 재난으로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불안전한 세상으로 내몰린 ‘새로운 노동계급’에 대해 사유한다. 시집 속에는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가 등장한다. 배달 노동자, 택배 노동자, 청소 노동자, 전기 노동자, 경비원, 콜센터 노동자 등 주로 육체노동자이다. 시인은 “제멋대로 꼬이기 일쑤”(「폐전선」)인 ‘폐전선’과 같은 이들의 생활 전선을 시공간의 교차, 모티브의 병치 같은 몽타주 기법을 활용하여 사실주의극처럼 펼쳐 보이며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노동을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는 한편 안전과 건강을 착취당하는 노동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시인은 또한 차별과 편견의 ‘턱’을 넘어서려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시인의 시선은 비단 ‘지금-여기’의 현실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4·3제주항쟁, 여순사건, 노근리양민학살사건, 세월호 참사 등 뼈아픈 과거의 흔적들을 더듬어가면서 굴곡진 역사의 통점을 환기하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국가 폭력에 희생된 죽음들을 증언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시인은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커지는 우두둑 발밑 소리”에 “뼛속이 뜨거워”(「뼈 밭」)지는 전율을 느낀다. 국가가 방치한 사회적 참사로 꽃다운 목숨들이 차디찬 물속으로 스러져간 현장에는 오늘도 “죽지 않는 바람이 불어”오고, 시인은 “기억의 벽 추모 벤치에 새겨진 이름들”을 호명하며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몸과 몸을 잇대어”(「낭독회」) 진실의 길을 내는 일을 멈추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시인은 세상의 그늘진 곳에서 “있지도 않은 세계나 오지도 않을 미래를 기다”(「저예산 영화」)리는 절실한 마음으로 시를 써나간다. 일상이 붕괴되는 위기 속에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해내며 생명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는 사뭇 경건하다. “수직으로만 자”라는 세상의 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것들”(「담쟁이」)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손길은 곧 구원의 불빛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과연 이렇게라도 살 수 있는지, 울음을 듣는 귀와 통점을 느끼는 발”(추천사)에서 발화되는 목소리로 묻는다. “무고한 죽음들 뒤에 살아남은 미소를 결말이라고 할 수 있나요?”(「저예산 영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종말을 고하듯 거대한 재앙과 죽음의 전조가 짙게 드리워진 땅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동우의 시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생태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생명의 묵시록’과 다름없다.
시인의 말
바람이 거셌다.
무너질 때 뿌옇게 날리던 게 뼛가루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2023년 3월
이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