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신동엽문학상 수상 시인 안희연 신작 시집
살아 있어서 울고 있는 존재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미더운 손길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안희연 시인의 세번째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등단 3년 만에 펴낸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 2015)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고, 2018년 예스24에서 실시한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시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요즘 젊은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이다.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부치는 ‘304 낭독회’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대중적으로 친숙한 시인이기도 하다.
소시집으로 묶은 두번째 시집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현대문학 2019)에 이어서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더욱 깊어진 시적 사유와 섬세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서정과 감성의 다채로운 시세계를 선보인다. 삶의 바닥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슬픔을 헤아리는 “깨달음의 우화와도 같은”(이제니, 추천사) 뜨겁고 간절한 시편들이 공감을 자아내며 가슴을 깊이 울린다. ‘2020 오늘의 시’ 수상작 ?스페어?를 비롯하여 57편의 시를 3부로 나누어 실었다.
목차
제1부
불이 있었다
소동
굴뚝의 기분
업힌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면벽의 유령
오후에
망종
선잠
미동
마중
연루
알라메다
사랑의 형태
추리극
제2부
자이언트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빛의 산
역광의 세계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거짓을 말한 사람은 없었다
불씨
표적
지배인
단란
폭풍우 치는 밤에
가끔의 정원
에프트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야
시
영혼 없이
풍선 장수의 노래
생선 장수의 노래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실감
아침은 이곳을 정차하지 않고 지나갔다
제3부
반려조(伴侶鳥)
그의 작은 개는 너무 작아서
덧칠
앵무는 앵무의 말을 하고
검침원
양 기르기
캐치볼
태풍의 눈
측량
묵상
스페어
몫
호두에게
알혼에서 만나
나의 규모
나의 투쟁
구르는 돌
슈톨렌
톱
열과(裂果)
해설|양경언
시인의 말
저자
안희연 (지은이)
출판사리뷰
안희연의 시는 “쇠구슬 같은 눈물”(「연루」)이 차오르는 슬픔의 자리에서 태어난다. “이렇게 많은 물웅덩이를 거느린 삶”(「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라니. 시인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려는 심정으로 시를 쓴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가엾은 존재들의 슬픔을 끌어안으며 대신해서 울어주고,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얻은 이야기들”(「구르는 돌」)을 그들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온 우주가 나의 행복을 망치려”(묵상」) 드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 있는 자체가 고통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은 견디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러니 “그게 무엇이든 무엇도 아니든” “계속 가보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구르는 돌」)다. 그리하여 시인은 “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열과(裂果)」) 다시 시작하고, 실패와 절망 끝에 남겨진 “나머지의 나머지로서의 나”(「스페어」)를 사랑하며 ‘지금-여기’에서의 삶을 살아가려 한다.
시인은 그토록 오랜 세월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동안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시인의 말)고 말한다. 그러나 “미로는 헤맬 줄 아는 마음에게만 열리는 시간”(「추리극」)임을 알기에 저 너머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계단”(「스페어」)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절망과 슬픔 속에 묻히기에는 “너무 커다란 우리의/영혼을 조망하기 위해”서 “뒤로 더 뒤로” “멀리 더 멀리 가보기로”(「자이언트」) 한다. 시인은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것”이라 자탄하지만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다. 슬퍼하다니. “물거품처럼 사라질”(「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야」) 이야기일지라도 절망 뒤에 오는 더 큰 절망을 기꺼이 껴안으며 “최선을 다해 산 척을 하는”(「업힌」) 마음으로 삶을 견디어가는 시인의 노래는 오히려 삶의 “고요한 맹렬”(양경언, 해설)이자 희망일 것이다.
안희연 시인과의 짧은 인터뷰
- ‘핀 시리즈’로 선보였던 소시집을 포함하면 세번째 시집인 셈입니다. 출간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시집이 나오는 일은 회를 거듭한다고 해서 익숙해지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여전히 떨리고, 걱정스럽고, 아득합니다. 첫 시집을 묶을 때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다신 그렇게 울 일이 없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시인의 말’ 마지막 문장을 쓰자마자 눈물이 터져나와서 스스로도 많이 놀랐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시집이 어떤 방향, 어떤 속도, 어떤 온도로 걸어가 어떤 이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 〔문학3〕 기획위원, 304낭독회 일꾼 등 평소 바쁘게 지내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외적인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과 동시에 시를 쓰는 일상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올봄부터는 대외활동이 많이 줄었고요. 보통 집에서 한끼 식사를 정성들여 해 먹거나 동네를 산책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시 쓰는 일은 혼자 해야 하는 일이고 상당한 고립을 요하는 일이다보니 외로울 때가 많아요. 그럴 땐 또 사부작사부작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안쪽과 바깥쪽의 균형을 잘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한데요, 그 균형을 유지한다는 건 언제나 어렵단 생각이 드네요.
- ‘시인의 말’ 중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것이고, 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시집을 엮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나 특징은 무엇인가요?
시집 제목처럼, 독자 분들을 ‘여름 언덕’으로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첫 시집의 마지막 시가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인데 거기 이런 구절이 있어요. “절벽이라고 한다면 갇혀 있다/언덕이라고 했기에 흐르는 것”. 고립된 절벽이 아니라 흐르는 언덕이라는 점이 제겐 중요했어요. 우리 삶의 기반이, 반복되는 하루의 끝이 매 순간 절벽 위라면 그건 너무 힘겨운 일이잖아요. 죽음의 기억에 지배당할 때, 세상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 때, 무의미와 권태, 슬픔이 제집인 듯 맹렬히 들이닥칠 때 ‘나는 절벽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보는 거죠. 여름 언덕을 오르는 일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무더위와 목마름, 그 밖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과 싸우는 일일 테지만, 언덕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머리칼이 흩날릴 테니까. 언덕 위에서 세계를 바라보다보면, 무거웠던 것들이 조금은 옅어지기도 하고, 다시 힘을 내 언덕을 내려갈 시간이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부디 이 시집이 여러분들의 언덕 행(行)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집을 덮은 뒤엔 틀림없이 무언가 달라져 있기를 바라요. 그것이 아주 사소한,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일 리 없는 변화라 하더라도.
-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와 이유를 부탁드립니다.
시집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열과」라는 시를 꼽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 한권의 시집은 「열과」의 첫 구절,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라는 문장에 도착하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집 안에는 들끓는 마음을 가진, 어느 것도 용서할 수 없는, 한없이 공허한 채로 언덕을 걷고 있는 한 사람이 수시로 출몰하지만, 시집의 마지막 장에 도착했을 땐 그가 좀 가벼워져 있기를 바랐습니다.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도 함께 가벼워질 수 있기를 바라요.
- 앞으로의 활동 방향이나 삶의 계획 등이 궁금합니다.
계속 쓰는 사람의 자리에 있겠다는 다짐 외엔 어떤 말도 사족일 것 같습니다.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생수를 내어줄 수 있는 손. 머리칼을 흔드는 바람. 의자, 혹은 나무그늘 같은 시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시집을 만나주시는 분들에게 미리 깊은 감사를 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