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금기(禁忌)를 초월한 세계는 평온하다
23도26분21초4119//지구의 기울기는/발기한//음경의, 기울기//이 기울기를/회전축으로/지구는//자전한다(「회전축」 전문)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후 줄곧 날것 그대로의 상상력과 거침없는 표현으로 ‘환멸의 끝을 향하는 극단의 시학’을 펼쳐온 김언희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보고 싶은 오빠』가 출간되었다. ‘시단의 메두사’로 불릴 만큼, 첫 시집부터 네번째 시집까지 5-6년 간격으로 시집을 낼 때마다 성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과 폭력적인 언어 구사,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매번 화제를 모으며 충격을 안겨주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예외 없이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독자적인 시세계를 선보인다. “얼음같이 찬 맨정신”으로 “눈빛 한번 흩트리지 않고, 예리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격렬한 자폭의 언사”(김사인 추천사) 속에 풍자와 해학, 유머와 위트가 감추어진 시편들이 섬뜩한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묘한 통쾌감과 시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목차
제1부
회전축
보고 싶은 오빠
캐논 인페르노
뮈, 홍해라는 이름의
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
말년의 사중주
개양귀비
비희도(?戱圖)
나보다 오래
여기
시간은 남는다
찌라시
이렇게
중천(中天)
제2부
세상의 모든 아침
이모들은 다
세컨드 라이프
불멸의 연인들
제자의 일생 1
제자의 일생 2
지상의 모든 문
…… 아닐까
도금봉을 위하여
트이다
붉은 사각형
내일의 일과
안녕들 하시다
폭서
한점 해봐, 언니
제3부
극북(極北)
스타바트 마테르
동지(冬至)
음림(?霖)
4월의 키리에
이명이 비명처럼
프랑켄후커의 초상
납이 든 어머니를
2월은
쌍십절 1
쌍십절 2
이슬 같지도, 번갯불 같지도
비름과 개비름
초혼
당신의 얼굴
귀월(歸月)
제4부
어지자지
도지다
문장들
회문(回文)
양순음(兩脣音)
방중개존물
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
스카이댄서, 영등포
모자만 보이면
건질 수 없는 자
그라시아스 2014
농(聾)
지저귀는 기계
푸른 고백
.
발문|김남호
시인의 말
저자
김언희
출판사리뷰
금기(禁忌)를 초월한 세계는 평온하다
23도26분21초4119//지구의 기울기는/발기한//음경의, 기울기//이 기울기를/회전축으로/지구는//자전한다(「회전축」 전문)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후 줄곧 날것 그대로의 상상력과 거침없는 표현으로 ‘환멸의 끝을 향하는 극단의 시학’을 펼쳐온 김언희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보고 싶은 오빠』가 출간되었다. ‘시단의 메두사’로 불릴 만큼, 첫 시집부터 네번째 시집까지 5-6년 간격으로 시집을 낼 때마다 성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과 폭력적인 언어 구사, 잔혹하고 그로테스... 더보기
금기(禁忌)를 초월한 세계는 평온하다
23도26분21초4119//지구의 기울기는/발기한//음경의, 기울기//이 기울기를/회전축으로/지구는//자전한다(「회전축」 전문)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후 줄곧 날것 그대로의 상상력과 거침없는 표현으로 ‘환멸의 끝을 향하는 극단의 시학’을 펼쳐온 김언희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보고 싶은 오빠』가 출간되었다. ‘시단의 메두사’로 불릴 만큼, 첫 시집부터 네번째 시집까지 5-6년 간격으로 시집을 낼 때마다 성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과 폭력적인 언어 구사,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매번 화제를 모으며 충격을 안겨주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예외 없이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독자적인 시세계를 선보인다. “얼음같이 찬 맨정신”으로 “눈빛 한번 흩트리지 않고, 예리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격렬한 자폭의 언사”(김사인 추천사) 속에 풍자와 해학, 유머와 위트가 감추어진 시편들이 섬뜩한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묘한 통쾌감과 시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 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지려, 하느님도 지리실걸, 낭심을 꽉 움켜잡힌 사내처럼,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보고 싶은 오빠」 부분)
김언희의 시는 불편하다. 때로는 불쾌하고 역겨운 감정마저 일으킨다. 그러나 시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명쾌한 어법으로 한치의 망설임이나 타협도 없이 “먼눈을/시퍼렇게 두리번거리면서”(「이렇게」) 온갖 비속어와 신성모독이 넘치는 극단의 세계로 시를 밀고 나간다.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철저한 자기부정, 언어에 대한 회의와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김남호, 발문) 등으로 미루어볼 때, 상투적인 것을 가차없이 베어내며 ‘느닷없는 돌기’처럼 툭 튀어나온 듯한 그의 시는 다분히 ‘전위적’이다. ‘자지’든 ‘보지’든 ‘좆’이든 ‘씹’이든, 그의 시에서는 비속어도 금기 언어도 아니고 오로지 시어로서 제 몫을 다한다. 시인은 ‘선택의 여지나 대체의 여지가 없으니 그렇게 쓸 수밖에 없노라’고 말할 뿐이다.
사내들은/입이 보지란다 얘/얼굴에 달려 있는 저게/보지야 깔깔대던/이모들은/다……//사과에 달린 돼지 꼬리/배배 꼬인 나사 자지/창틀에 올라앉아/함께 부르던/노래들은/다……//(…)//바람 부는 날/빼도 박도 못하는 말벌의 거시기를/오락기 레버처럼/쥐고 흔들던/으아리들은//언니 보지 코 고는 소리에 밤새 잠을/설쳤어! 니 보지 가래 끓는 소린/어떻고! 아침부터/왁자하던/큰꽃으아리들은(「이모들은 다」 부분)
여전히 낯선 세계와 맞서는 시인의 치열한 결의
기존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왜곡된 욕망에 억눌린 사회의 관습을 깨뜨리고자 시인은 “입에 담을 수 없는 곳에서/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눈을 뜨는”(「캐논 인페르노」) 생의 굴레를 무릅쓰며 “하는 수가 없어 나는/나의 배를 가”르기도 하고 “하는 수가 없어 나는 나의 늑골을 톱질”하기도 하고 심지어 “섬벅섬벅 뛰는 심장을/꺼내”(「푸른 고백」) 우리 손에 쥐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체념과 달관의 사이에서 시인은 권위적인 “세계와 맞서는 치열한 단독자”(김남호, 발문)로서 “찍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보고 싶은 오빠」)을 꾸기도 하면서, “값비싼 호박(琥珀) 속의 값비싼/버러지”(「말년의 사중주」) 같은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고 “나의 지저분”(「안녕들하시다」)하고 “파렴치한”(「그라시아스 2014」) 시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나는 몸만 여자지 음탕한 남자 아닐까//하이에나 암컷처럼 가짜 음경으로/발기까지 하는 건 아닐까//새끼까지 음경으로 낳다가/번번이 사산(死産)하는 하이에나는 아닐까//먹히는 척하면서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먹히는 것보다 더 빨리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내 시가 키스방에서 파는 키스는 아닐까/입술만 썰어서 파는 건 아닐까//썰어놓은 해삼 같은 입술만(「……아닐까」 전문)
시인은 “모든 것이 흘레이면서 흘레가 아닌 흘레의 나라”에서 “죽는 날까지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멍에를 안고 간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귀여운 물방울의 목소리로 시를 쓰”(「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는 시인의 탁월한 언어 감각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길고 긴 묵살의 터널 끝에 몰살이 기다리는 곳”(「르 흘레 드 랑트르고뜨」), “눈두덩이 불두덩이라도 된다는 듯이/안구가 질구라도 된다는 듯이”(「개양귀비」), “애도가 매도인 여기” “추락이 쾌락인 여기”(「여기」), “너무 흐드러진 죄, 너무 자지러진 죄”(「도금봉을 위하여」), “순교가/기교로/들통나는 밤”(「.」) 등에서 보듯 시인은 일상 단어들을 절묘하게 조합하는 자유자재한 언어유희를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계집의 불알이 하는 말”(「방중개존물」)로 부정한 사회 현실을 풍자하고 조롱한다.
비름과 개비름/쇠뜨기와 개쇠뜨기/개젓머리와 개젓벌기/별꽃과 개별꽃/개별꽃은 미치광이풀/미친 척 좀 그만해/이 미친년아! 이런/망신과 개망신/쑥갓과 개쑥갓/개물성무와 개불탕/단추와 개씹단추/소경과 개소경/개소경은 물고기/서서 노는 물고기/지느러미가 흡반이고/흡반이 다리다/박하와 개박하/개벚나무와 개버찌/개자추와 개지치/시인과 개시인(「비름과 개비름」 전문)
김언희의 시는 “아비의 낯가죽을 손톱으로 벗기”고, “어미의 뼈를 산 채 바르”고, “창자까지 게워 바치”고, “다 게운 다음에도 더 게우는 문장”(「문장들」)의 마침표이다. ‘의미고 나발이고 필요 없이’ 오로지 행위와 묘사만 있을 뿐이다. 그의 시를 읽노라면 마치 벼랑 끝에 매달린 느낌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 쓰기를 ‘모래만다라’에 비유하면서,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흔적 없이 비질해놓고 가고 싶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쓰시는지 이런 시를 이런 시로 뭘 하고 싶으신지”(「방중개존물」) 우리는 궁금할 따름인데,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훌륭한 시를,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쓰고 싶었습니다”(『요즘 우울하십니까?』 시인의 말)라고 밝혔던 시인의 이번 시집으로 비로소 “우리의 분노와 혐오가, 우리의 공포와 거룩함이 마침내 여기에 이른 것”(김사인, 추천사)이다.
나는 내 음문의/비위에/맞지/않는 건, 단 한줄도/쓰지 않았다 증오/없이는//황홀경에 다름없는 증오 없이는 단/한 문장도 쓰지/않았다 살의/없이는//고무로 된 돼지 가면/고무로 된 돼지 보지, 나는/당신의 뱃속에서 끝까지/삭지/않겠다//당신이/입과 항문을 한꺼번에 열어/당신의 구주 당신의 포주를 한꺼번에/맞이하는 그날/그 순간까지//고무로 된 돼지 보지 나는 삭지/않겠다 당신/안에서//한창 죽다가/나온, 한창 하다가 나온/지금/이/얼굴로(「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