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시단에서 하나의 사건이라 불릴만큼 화제를 불러일으킨『아픈 천국』이후 3년만에 나온 네번째 시집이다. 2011 미당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은 이영광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절정에 오른 시적 감각으로 무고한 죽음을 낳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한다. 또한 모순덩어리의 사회를 매섭게 질타하며 시대의 불합리한 폭력에 맞서는 결연한 시 정신을 보여준다.
시대를 관통하여 삶과 죽음, 사람의 본질을 꿰뚤어 보는 통찰력, 세밀한 묘사와 생동감 넘치는 정교한 언어 감각은 그의 견고한 시적 감각을 짐작케 한다.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와 깊은 공감을 자아내는 그의 이번 시집은 총 60편의 시가 실렸으며 미당문학상 수상작( 『저녁은 모든 희망을』)을 비롯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유령』 연작 2편이 특별히 눈에 띈다.
목차
제1부
이따위 곳
우물
저녁은 모든 희망을
갈깔대는 혼
웃는 사람
독도들
세한
기도
과거는 힘이 세다
유정도 무정도 없이
망가져가는 아이
구름과 나
불을 끄려고 한다
얼굴
공
살생부
개구리 지옥
하지만
구멍가게
나무는 간다
제2부
가나안
두부
치매였을까
오일장
둥지 위의 것들
기적
원수들
깊은 계곡 옹달의 당신
절망
투명
사랑이 아닌 것이 되어
타이슨
쓸쓸한 계산
천안
유언
아프면 안된다던 말
쇠똥구리야
두 악마
내려놓는다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
제3부
사랑의 하인
사랑의 발명
슬픔이 하는 일
달
골 때리는 어머니
아버지의 꽃 같은 얼굴
삼월
첫눈
천국
아득한 전ㅇ생
놀았다고, 놀고 있다고 해야겠지만
인질범
정물
동구릉
시인님
폐인 애인
뒷밭
붕어빵
시인이여
물푸레나무같이
해설 함돈균
시인의 말
저자
이영광
출판사리뷰
삶에 온몸으로 부딪는 힘센 시의 언어
2011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아온 이영광 시인의 신작시집 『나무는 간다』가 출간되었다. 2000년대 한국 시단에서 하나의 ‘사건’이라 불릴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아픈 천국』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네번째 시집이다. “짐승의 비릿함과 사람의 고독, 시인됨의 긍지와 부끄러움, 사랑과 역사가 교차하는 밀도 높은 시의 몸”(함돈균, 해설)이 담긴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절정에 오른 시적 감각으로 무고한 죽음을 낳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모순덩어리의 사회를 매섭게 질타하며 시대의 불합리한 폭력에 맞서는 결연한 시정신을 보여준다. 시대를 관통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섬뜩하리만큼 세밀한 묘사, 생동감 넘치는 정교한 언어 감각이 돋보이는 견고한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총 60편의 시가 실렸으며 미당문학상 수상작 「저녁은 모든 희망을」을 비롯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유령」 연작 2편이 특별히 눈에 띈다.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그는 병들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가만히 멈춰 있기죠/그는 병들었다, 하지만/나는 왜 병이 좋은가/왜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나/그는 버르적댄다/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침이 흐른다/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평에/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어떤 기적이 필요하다/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하지만 너무 오래 벌받고 있지 않는가, 그는/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변혁에 대한 갈망으로 불탄다/새날이 와야 한다/나는 모든 자폭을 옹호한다/나는 재앙이 필요하다/나는 천재지변을 기다린다(「저녁은 모든 희망을」 부분)
‘미당의 토착적인 서정성과 김수영의 불온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이광호) 이영광의 시는 ‘아픈 천국’에서 몸으로 쓰는 시이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이 이번 시집을 “‘몸의 시학’에 관한 한국문학사의 가장 전위적인 실천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해설)고 평가하였듯이, 시인은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나무는 간다」) “거품 같은 몸”(「깔깔대는 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건드리면 꿈틀대는”(「정물」) 가슴 밑바닥에 고인 감정을 뽑아올려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언어로 드러낸다. 몸에서 떠오르는 시적 영감을 직관으로 잡아채는 것이 그의 시의 매력이기도 하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나무는 간다」 부분)
시인은 “전력을 다해” 살아가듯이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원혼으로 가득 찬 무수한 죽음들을 두려움 없이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고 믿는다. 희망의 씨가 마른 곳에서 오히려 희망의 싹이 돋아난다고 여기는 시인은 “빛을 다 썼는데도 빛은 나타나지 않는”(「저녁은 모든 희망을」) 삶의 그늘진 곳에서 아렴풋한 빛의 세계를 응시하며 자기성찰의 기도 시간을 갖는다. “인간이란 것이 되려다/짐승 탈을”(「쇠똥구리야」) 쓴 “슬픈 몸”이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 하게 되는 “숱한 사랑의 말”(「세한」)이 바로 시인의 기도이다. 시인은 이 기도를 역설적으로 “희망이 필요 없는 희망” “절망이 필요한 절망”(「쇠똥구리야」)이라고 부른다.
나의 기도는/기도하지 않는/기도이다/기도할 수 없는 기도이다/주저앉는 기도이다/뭉개지는 기도이다/사람의,/사람이 짓는/사람이 어쩔 수 있을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기도는 말이 없다/언제나 경악보다 먼저 와서,/두려움보다 슬픔보다 분노보다 먼저 와서/두 손을 모으려 하는 나를/무슨 말을 떠올리려 하는 나를/단숨에 찔러버린다/(…)/내 기도는 언제나 기도 이전,/사람이 어쩔 수 없을 어쩔 수 있는 것에 대하여/경련하는 기도이다/모르는 기도이다/기도에 목 졸려 나는 빈다/기도보다 먼저 온 기도에 꿰여/입속에서 목구멍 속에서/빌고 빈다(「기도」 부분)
결연히 응시하는 자아, 이웃을 끌어안는 간곡한 몸짓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린 억울한 주검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유령」 연작 2편을 새롭게 선보인다. 시인이 이 자리에서 불러내는 ‘유령’은 “팔뚝에 푸른 ‘反共’을 새기고/뿔 달린 짐승을 꿰뚫은 화살 문신을 하고”서 도대체 과거 속으로 “흘러가지 않는”(「과거는 힘이 세다」) ‘어제의 용사들’과 “사고든 사격이든 사기든,/깊은 사색이든”(「천안」)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천안함 사건’의 원혼들이다.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동네로 옮겨가는데/아무도 알아보지 못”해도 오히려 “세상이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위로다”라고 여기는 “투명인간”(「투명」) 같은 존재들도 유령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소외된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좀 힘없이/잘 살”(「과거는 힘이 세다」)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 시인의 「유령」 연작은 계속될 터, 그가 또 어떤 모습의 유령을 불러들일지 자못 궁금하다.
어뢰였으면, 차라리/수중 폭발로 인한 버블제트였으면/전광석화의 두 동강이었으면//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전쟁이 나건 말건/69시간이 아니라 6.9분이었으면/6.9초였으면//아비규환이 될 겨를도 없었을 0.69초였다면/유령이 될 수도 없었을/0.069초였다면/섬광이었으면 그냥,/끝이었으면//육백구십일 같은/육십구년 같은/69시간만 아니었다면/69시간이라고, 알려주지만 않았더라면//하늘 아래 가장 안전한 곳,/天安에 내려야 하는데/天安을 지나쳐야 하는데(「천안」 부분)
이영광 시인은 “사람만이 찾아낸/분노의 거주지/혼돈의 부동산/이따위 곳”(「이따위 곳」)에서 “모든 말을 다 배운 벙어리/혀 잘린 변사”로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시인이여」)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의 부끄러움을 내비치며, “쥐새끼처럼/죽은 채로 살길을 찾아 헤”(「살생부」)매며 그저 “시늉만 하는” “시인이란 것을 들킬까봐”(「뒷밭」) 두려운 마음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시인은 “반평생 나는 시를 카피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몸을 낮추지만 “붕어빵에 정말 붕어가 들어 있었던 건지도”(「붕어빵」) 모를 일처럼 정작 그의 시 속에는 “뒤집히”고 “녹아 없어지는”(「나무는 간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빛’이 서려 있다.
시인님이라고 쓴 소포들 책들/시인님이라고 부르는/인터뷰어들/청탁 전화들//그의 꿈꾸는 어질머리와/이무는 가슴/거친 두 발 중에/사타구니를 타고 오르는 벌레처럼/동냥그릇에 떨어지는 동전처럼/시인님은, 대체 무엇을 높이려는 말일까//시인님이 되느니/땅끝까지 실종되고 말겠다/시인님이 되느니/살처분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겠다//높이지 않아도 시인은/만장처럼 드높으므로/아무리 높여도 시인은/꿇은 상주처럼 낮으므로(「시인님」 전문)
이영광의 시는 ‘불온’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불을 끄려고 한다」) 채 “독과 피가 흐르는 저주의 땅”(「가나안」), “작다고 말할 수도 없”고 “있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한점 티끌”(「쓸쓸한 계산」) 같은 세상을 ‘유령’처럼 떠도는 존재들의 헐벗은 영혼을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그의 시는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