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현장의 시인, 거리의 시인으로 이미 문단에 널리 알려진 송경동 시인이 『꿀잠』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시집. 2001년 『실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오기 전부터 그의 삶과 시의 근거지는 늘 억압받고 쫓겨나는 자들의 낮은 터전이었다. 그는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평택 대추리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복직투쟁을 벌이는 기륭전자 공장에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공연장에서, 그리고 용산참사 현장에서 내내 생활하다시피 하며 시를 쓰고, 낭독해왔다. 자본과 권력의 야만적인 폭력이 벌어지는 곳, 그에 맞서 맨몸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서 그의 시는 태어난다.
그의 언어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출발함으로써 보편적인 차원에 이르러 더욱 묵직한 힘을 얻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가 온몸으로 싸우고 있는 곳뿐 아니라 우리가 있는 이 모든 곳이 바로 현장임을 깨닫게 되고, 그에게 연대의 정신을 배우게 되고, 기꺼이 그에게 선동당하게 된다. 현실의 폭력에 저항하는 뜨거운 직설로 읽는 우리를 일깨우고 떨리게 하고 고개 돌릴 수 없게 하는 힘을 지닌 그의 시가 작금의 현실에서 더 아프고 감동적인 것은 자본과 권력에 부당하게 부서지고 깨지면서도 패배주의에 젖지 않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 부활의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과거의 언어에 기대기보다 현장의 구체성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씌어진 송경동의 시편들은 현실의 구체성에 뿌리내린 생생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비범한 시적 인식을 보여주면서 한국 노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목차
제1부
혜화경찰서에서
가두의 시
석유
오줌 누고 자!라는 말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똥통 같은 세상
무허가
첫 고료
이 삶의 고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
가리봉오거리 연가
마산항 새벽복국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
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
내 영혼의 방직소
그해 늦은 세 번의 장마
김남주를 묻던 날
미행자
제2부
어린 날의 궁전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우리들의 암송
당신의 운명
어이!
그해 겨울 돗곳
대마치 연가
재개발을 기다리는 까치들
그해 여름 장마는 길었다
돈
겨울, 안양유원지의 오후
어떤 약
생태학습
제3부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안녕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너희는 고립되었다
꿈의 공장을 찾아서
멕시코, 깐꾼에서
별나라로 가신 택시운전사께
이 냉동고를 열어라
너는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촛불 연대기
황새울 가는 길
제4부
오래 산 나무에 대한 은유를 베어버리라
난지도 쓰레기꽃
참, 좃같은 풍경
주름
경계를 넘어
아직 오지 않은 말들
셔터가 내려진 날
삶이라는 광야
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
혁명
뇌파
수조 앞에서
가을, 나무들에게
도살장은 무죄다
당신은 누구인가
해설 | 박수연
시인의 말
저자
송경동 (지은이)
출판사리뷰
가장 낮은 곳에서 흘리는 부활의 눈물
노동시의 새로운 지평과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시!
현장의 시인, 거리의 시인으로 이미 문단에 널리 알려진 송경동의 두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 출간되었다. 『꿀잠』(삶이 보이는 창, 2006)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시세계가 현실의 구체성에 뿌리내린 생생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비범한 시적 인식을 보여주면서 한국 노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실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오기 전부터 그의 삶과 시의 근거지는 늘 억압받고 쫓겨나는 자들의 낮은 터전이었다. 그는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평택 대추리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복직투쟁을 벌이는 기륭전자 공장에서,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공연장에서, 그리고 용산참사 현장에서 내내 생활하다시피 하며 시를 쓰고, 낭독해왔다. 자본과 권력의 야만적인 폭력이 벌어지는 곳, 그에 맞서 맨몸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서 그의 시는 태어난다.
용산4가 철거민 참사 현장 /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 구로역 CC카메라탑을 점거하고 / 광장에서 불법 텐트 생활을 하기도 했다 /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 퇴거 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 그런 내 삶처럼 /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 이 세상 전체가 / 무허가였으면 좋겠다(「무허가」 전문)
법과 질서로부터 ‘무허가’로 낙인찍힌 곳에서 그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을 발견한다. 이렇게 ‘무허가’라는 말을 둘러싼 관습을 뒤엎는 그의 비범한 시적 인식은 그의 구체적인 삶의 이력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의 시가 지니는 매력은 물론 작품의 배경과 바탕으로 삼고 있는 현장과 생활의 구체성에서 나온다. 그의 시는 배관공으로, 목수로, 용접공으로 살아온 그가 노동 현장의 감각을 생생하게 그려낼 때 특히 빛난다. “2인치 대못머리는 두 번에 박아야 하고 / 3인치 대못머리는 네 번엔 박아야 / 답이 나오는 생활”(「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 같은 구절은 노동으로 단련된 이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그리는 노동의 정서는 전형화되고 이상화된 노동자가 아닌 솔직하고 평범한 한 인간의 정서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들은 “타당타당 함석지붕 때리는 빗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하늘이 다 무너져 비로 내려도 / 씨멘트처럼 굳어 깨어나고 싶지 않은” 보통의 인간이며(「대마치 연가」), 실연의 아픔에 휩싸여 “태업을 하자거나 스트라이크를 하거나 / 수군거리는 소리로 숙소동이 들썩거려도 다 뒷전”으로 “분노를 담아 내려치던 오함마 / 마음속 끝까지 지지거리며 타들어오던 용접봉”에 매달리던 마음 약한 이들이다(「그해 겨울 돗곳」).
아침이면 다시 지하방에서 솟아오른 사람들이 공단으로 피와 땀을 팔기 위해 활기차게 넘던 그 고가, 그 길밖에 없었던, 젊은 날들을 다 보낸, 지금은 테크노 디지털밸리가 된 굴뚝 공단에 흉물처럼 남아 있는, 나처럼 남아 있는, 나는 아직도 그 불우하고 불온했던 삶의 고가에서 내가 잊혀질까 두렵다(「이 삶의 고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 부분)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노동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서,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외로움을 이겨내려고 시를 쓴다”고 말한 바 있다. 외롭기 때문에, 두렵기 때문에 시를 쓰고 연대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불우하고 불온한 삶으로부터 멀어질까 두려워하며, “정적 속 / 단내 나는 사람의 목소리가 사과향처럼 다디달아 / “어이!” 하고 / 괜스레 한번 더 불러보”았듯이, 그는 “지금도 가끔 누군가 / 그 철야 작업장에서 / 나를 부르는 메아리 소리를 듣는다”고 고백한다(「어이!」). 이처럼 그의 시는 노동자의 연대라는 당위나 이념이 아니라, 노동에 녹아 있는 구체적인 생활의 정서가 서로 어울리며 이루어지는 사유의 확장에 의해 씌어진다. 그의 시가 과거 노동시의 어떤 경직된 면모를 한껏 벗어던지고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의 시는 과거의 언어에 기대기보다 현장의 구체성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씌어진다. “한땐 선진노동자로 여름 볕처럼 짱짱했”던 이들이 “이젠 갈 곳 없이 변두리 운짱으로 / 일용노동자로 마찌꼬바로 떠돌며 사는”(「가리봉오거리 연가」) 이 패배의 시대에, 과거로부터 이어받아야 할 것은 현장에 직핍하는 자세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적으로 정련된 언어보다 현실의 구체성을 옹호하는 시인의 태도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노점상 강제 철거를 비관해 스몽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故 이근재)의 영전에 바치는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쓴다.
당신의 죽음 앞에서 /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줄까 /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 구조적으로 덮어줄까(「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부분)
이는 압도적인 현실을 담아낼 수 없는 관습적인 언어미학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자세이다. 해설을 쓴 평론가 박수연은 이를 “생생한 삶 자체를 지향하려는 언어” “진정한 말(의미)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언어”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읽는다.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시이자 진정한 시를 찾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자칫 비시적이기 쉬운 추도시·선전선동시의 영역에서 오히려 시적으로 가장 치열한 고민을 보여주면서 강력한 전파력과 울림을 선사한다. 그런 그의 시들이 ‘현장에서 폭력시위를 선동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출두요구서를 발부받았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시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출발함으로써 보편적인 차원에 이르러 더욱 묵직한 힘을 얻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가 온몸으로 싸우고 있는 곳뿐 아니라 우리가 있는 이 모든 곳이 바로 현장임을 깨닫게 되고, 그에게 연대의 정신을 배우게 되고, 기꺼이 그에게 선동당하게 된다.
신체가 늘어지거나 부러지거나 잘리는 것만이 산재일까 / 비정규직으로, 실업으로 쫓겨나는 것은 산재 아닐까 / 쪼들리는 삶으로부터 오는 모든 정신의 훼손과 관계의 파탄은 산재가 아닐까 // (…) / 나와 우리가 진정으로 겪고 있는 / 가장 엄중한 산재는 이것이 아닐까 / 더이상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 다른 세계를 꿈꾸지 못하는 / 이 가난한 마음들, 병든 마음들(「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부분)
이 시가 보여주는 “사유의 깊이와 깨달음”이 “한국 노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예시”한다고 상찬한 문학평론가 염무웅의 말은 거듭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송경동 시인의 서정적 주체들이 몰락과 추방과 배제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도전적인 자부심”을 표명함으로써 “개인적 차원을 뛰어넘는 의식의 비약을 성취한다”고 평가한다. 현실이 시를 압도하는, 아니 시보다 현실이 더 시적으로 첨예한 오늘, 그러한 의식의 비약과 그의 당당한 어조는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미래에 더 큰 기대를 걸게 되며, 나아가 그가 직접 언급하고 인용하는 김남주를 잇는 성취를 우리 시단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어보게 된다. 그의 시에는 시와 현실과 행동이 일치하는 빛나는 순간들이 있고, 그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절실한 순간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참사를 다룬 그의 시 「이 냉동고를 열어라」가 있다. 이 시는 평론가 박수연이 말한 것처럼 “불의한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절망의 외침”인 동시에 “냉동고는 용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있”음을 깨닫게 하는 목소리이며, “냉동고보다 더 차가운 절망의 심정으로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한 목소리”로 들린다. 그의 다른 많은 좋은 시들이 그렇듯, 현실의 폭력에 저항하는 뜨거운 직설로 읽는 우리를 일깨우고 떨리게 하고 고개 돌릴 수 없게 하는 힘을 지닌 시다. 그의 시가 작금의 현실에서 더 아프고 감동적인 것은 자본과 권력에 부당하게 부서지고 깨지면서도 패배주의에 젖지 않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 부활의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 이 냉동고에 우리의 용기가 갇혀 있다 / 이 냉동고를 열어라 / 이 냉동고에 우리의 권리가 묶여 있다 / 이 냉동고를 열어라 / 이 냉동고에 우리의 미래가 갇혀 있다 / 이 냉동고를 열어라 /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소망인 / 평등과 평화와 사랑의 염원이 주리 틀려 있다(「이 냉동고를 열어라」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