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절제된 언어로 생의 궁벽한 자리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뽑아내 애잔한 감성의 세계로 이끄는 문인수의 일곱번째 시집. 늦깎이로 데뷔한 이후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미당문학상(2007) 수상작 「식당의자」를 비롯한 총 59편이 엄선되어 실려있다. 의도한 정교함보다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을 통해 온몸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단아한 어법으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시작들은 읽는 순간 그 안으로 끌려들어가 그 시세계에 동참하고 감동을 얻게끔 하는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제1부
꼭지 / 만금이 절창이다 / 중화리 / 서정춘 / 지네 - 서정춘전 / 벽화 / 경운기 소리 / 1주기, 경운기 소리 / 주산지 / 얼룩말 가죽 / 파냄새 / 비닐봉지 / 대숲
제2부
흉가 / 줄서기 - 인도소풍 / 도다리 / 뻐꾸기 소리 / 식당의자 / 굿모닝 / 책임을 다하다 / 광장 한쪽이 환한 무덤이다 / 뫼얼산우회의 하루 / 바다 이홉 / 비둘기 / 배꼽 / 아마존 / 저수지 풍경 / 아프리카 / 도망자
제3부
수치포구 / 엉덩이 자국 / 녹음 / 골목 안 풍경 / 매미소리 / 봄 / 쇠똥구리 청년 / 다시 정선선 / 오백나한 중 애락존자의 저녁 / 헛간 서 있다 / 유원지의 밤 / 방, 방 / 없다
제4부
향나무 옹달샘 / 막춤 / 미역섬 / 방주 / 이것이 날개다 / 동백 씹는 남자 / 눈보라는 흰털이다 / 저녁이면 가끔 / 오후 다섯시 - 고 박찬 시인 영전에 / 흰 머플러! - 시인 박찬, 여기 마음을 놓다 / 기린 / 조묵단전 - 탑 / 조묵단전 - 비녀뼈 / 낡은 피아노의 봄밤 / 흔들리는 무덤 / 송산서원에서 묻다 / 고모역의 낮달
- 해설 : 김양헌
- 시인의 말
저자
문인수
출판사리뷰
절제된 절창으로 탄생한 문인수 시의 정수!
절제된 언어로 생의 궁벽한 자리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뽑아내 독자를 애잔한 감성의 세계로 이끄는 시인 문인수. 불혹을 넘긴 나이(41세)에 늦깎이로 데뷔한 이후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그가 『쉬!』(2006) 이후 2년 만에 일곱번째 시집 『배꼽』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에는 “버려진 식당의자를 소외된 존재와 연결시키는 비유적 상상력은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하되, 그곳에서 예사롭지 않은 삶의 의미를 표출”하고, “평범과 비범 사이에서 적당한 긴장과 의미를 유지”하면서 “시인의 사유와 언어는 그 의미의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팽팽한 실감과 긴장을 전달”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7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식당의자」를 비롯해 총 59편의 시를 엄선해 실었다.
그의 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수다스러워지면서 의미전달이 앞서는 작금의 산문시와 차별되는 단아한 맛과 잔잔하고 깊은 여운을 지닌 시세계를 지향한다. 사람들은 문인수의 시에서 화려하고 현란한 감각으로 채색된 작품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시집이 출간되기를 기다린다. 그가 한 편 한 편의 작품 속에 그려 보이는 풍경에는 무시무시한 활극의 역동적인 힘에 버금가는 끌어당김의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부지불식간에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하기 이를 데 없는 한적한 산중 폐가에서 사람의 짙은 향기를 맡게 해주는 빼어난 솜씨. 그간 시인 문인수가 선물해준 것은 우리가 그렇게 망각된 것에 탯줄이 이어져 있었으며, 그 지난 시간들은 쫄딱 망해버린 흔적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으며, 미래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시 속에서 화자와 대상이 서로 살을 섞고 상승해가면서, 어느 것이 먼저이며 누가 누구의 것인지를 갈라내지 않는 의식의 소산이었다. 그는 그림자에서 그림자 이전의 무엇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당위를 찾지 않는다.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행위가 우리에게 기원과 역사에 관한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대상의 과거와 그것의 흔적에 촛점을 두어 좋았던 과거의 시절을 그리기보다 현상 그대로의 모습에 집중해 비루한 삶에도 모종의 활력과 생기가 깃들여 있음을 잡아내려고 한다. 표제작인 「배꼽」이 그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한때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울고 웃고 떠들며 하루하루 생활을 영위해갔을 집, 야산에 버려진 삶의 거처에 한 사내가 들어와 사는 풍경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사람이 떠난 폐가는 생기를 잃고 버려지게 마련이다. 집이 생기를 간직하는 것은 사람이 머물고 있는 동안으로 한정된다. 사람 없는 집이 생기를 지니려면, 그곳에 살지 않더라도 누군가 끊임없이 다녀가야 한다. 어쩌면 이 시 속의 주인공 사내는 그 집에 다녀가는 정도, 그저 밤이슬을 피해 잠자리를 마련하는 정도의 삶을 그곳에 맡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사내가 머물고 있음으로 해서 집 전체가 활력을 띤다는 사실이다. 그는 매일 어딘가로 출퇴근을 한다. 곧 소외됐던 집, 버려져 있던 대상에게 소통의 길을 튼다. 침묵의 세월이 이제 새 삶을 향해 길을 나선다. 겉으로 보면 한없이 정막하고 고즈넉하지만 이면에는 질긴 생명의 끈이 미래로 문을 연다. “그 어떤 희망에도 말 걸지 않은 세월이 부지기수”이지만 “그 어떤 절망에게도 배꼽이 있”다고 믿는 시인의 아름다운 진술에서 엿볼 수 있듯, 그의 시는 지나간 과거의 향기를 맡으면서도 미래지향의 풍경을 엿보고 제시하고 있다.
벽을 지우는 것, 그것이 혁신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자신의 어둠을 발라 새로운 벽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혁신이라고 말이다. 결국 과거는 미래로 나아가는 재료가 된다. 시인의 이러한 긍정적인 시선은 대상의 남루하고 처연한 상태를 보여주는 상황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날개다」에서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 주실 거죠?)/ 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트렸다./ $#^&@^%,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로 표현되는, 언어로 분절되기 이전의 상태로 쏟아내는 뇌성마비 언어장애인의 말처럼 그것은 덩어리로 온다. 과거와 미래의 가름이 더이상 무의미한 것이다. 시인의 긍정은 부정을 통해서다. 이렇듯 문인수 시인이 깊은 성찰을 매개로 그늘진 대상 하나하나에 존재를 바치는 그 마음을 우리는 한 편 한 편의 시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 문인수는 아름다운 풍경이 빚어내는 사람을 노래하는 것에서 사람이 살을 섞고 살아가는 풍경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람이라는 기막힌 풍경은 절반이 축축한 그늘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시인의 인식이다. 그리고 시를 쓰는 일은 그 그늘을 햇볕에 내어 말리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노래할 때 슬픔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바로 그 덕분이다. 절창들도 가득 찬 이번 시집에 대해서 많은 설명은 필요없다. 황동규 시인이 추천사에서 밝히고 있듯, “문인수에게는 다른 말이 필요없다. 꿈틀거리면 질펀하게 번지는 절창 시편들을 직접 만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