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으로 등단한 황규관 시인이 7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시집이다. 고단한 일상이 곧 사랑과 싸움의 마당임을 생활과 체험에 뿌리박은 시적 혜안으로 들려주고, 일상과 삶의 진실을 꿰뚫어보기 위한 싸움의 편린들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허울 좋은 낙관과 진보, 계몽과 합리보다 탈주, 내면의 열림, 어둠을 천착하며 가난과 굴욕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길, 패배와 치욕을 웃음과 구원으로 완성하는 길, 낮은 목소리로 우회하는 길이 시어 사이에 숨어, 시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목차
제1부
흐르는 살
쌀을 푸다
발을 씻으며
아침 똥
완전한 슬픔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다
아픈 세상
문득, 집 앞에서
우회하는 길
빛나는 뼈
풍요로운 운명
새는 대지의 힘으로 난다
낮은 목소리
변명
무명
제2부
금강경을 옮겨적다
어머니의 성모상
상처에서 자라다
변두리가 되어가다
멀리 보다
다림질
어머니의 뼈를 만지다
전기콘쎈트가 망가진 게 언젯적 일이냐
자전거
쇳소리
집을 나간 아내에게
폭설
우체국을 가며
배경에 대하여
제3부
반성
장외투쟁
비창(悲愴)
패배는 나의 힘
이제는 세상의 불빛을 끌 때
자본을 읽자
청계천에 관한 사변
아이들 탓이 아니다
예감
아이를 기다리다
철조망 앞에서
세상은 나무가 바꾼다
독도
석유는 독배다
이제는 말하지 말자
제4부
사랑의 힘
더듬거리다
낫
품어야 산다
막
몸을 섞다
장다리꽃
울음들
살구나무에 대한 예의
산책선(禪)
봄비
거미를 보내며
마침표 하나
발문 / 김해자
시인의 말
저자
황규관
출판사리뷰
굴욕과 패배를 온몸으로 통과하는 길, 낮은 목소리로 우회하는 길!
1993년 전태일문학상에 시 「지리산에서」 외 9편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황규관 시인의 『패배는 나의 힘』이 출간됐다. 『철산동 우체국』(1998) 『물을 제 길을 간다』(2000)를 낸 지 7년 만에 펴내는 세번째 시집으로 시인은 고단한 삶, 그 일상이 곧 사랑과 싸움의 마당임을 구체적인 체험에 뿌리박은 시적 혜안으로 들려준다.
구로공단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구로노동자문학회 사무실에서 모여 문인의 꿈을 키우고, 또한 전국노동자문학연대 행사와 ‘공장문학의 밤’ 등 늘 거리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문학적 자양분을 섭취했다. 그의 현실인식과 시적 편력은 낙관과 이상과 진보라는 허울 좋은 말들 앞에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펜을 똑바로 쥐는 것이었다. 제도, 계몽, 합리보다 탈주, 내면의 열림, 어둠을 벗 삼아 활달하게 자신의 삶의 진실을 꿰뚫어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이 시집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진실을 보고 그것을 펼쳐 삶의 일부가 되게 하는 일은 늘 성공과 실패로 얼룩져 있다. 시인은 이 얼룩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정직한 자기고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 시인은 시 쓰기가 곧 노동하기라는 단순한 등식에 안주하지 못한다. 자신의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코앞에 있고, 때때로 찾아드는 그 좌절과 무력함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십자가를 진 자로서의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둠을 응시하고 그것을 노래하는 일로 현재의 시공간을 채색하는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숨어 있다. 이것이 변두리의 삶, 주변부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남루하고 비루한 삶을 노래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이력서는 허름하고 영혼마저 누추하기 그지 없”음을 자각하고 “남루가 빚어낸 왜곡”(‘시인의 말’)을 담아 시를 이룩하는 것, 그것이 어떤 당대적 의미를 담은 노래가 될 것인가? 이 물음을 자각하듯 반복적으로, 새롭게 던지는 일, 이것이 황규관이 버릴 수 없는 시적 화두이다. 이것이 일하는 사람이자 시 쓰는 사람으로서 겪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이자 곱절의 축복인 것이다.
시인은 흐르는 물에 발을 씻으며 “사람이 만든다는 제법 엄숙한 길을/ 언제부턴가 깊이 불신하게 되었”고 오랜 시간의 굽잇길을 넘어온 “이 고단한 발이 길”임을 깨닫는다(「발을 씻으며」). 이런 깨달음에서 시인은 이제 투쟁을 버린다. 투쟁보다 사랑의 일이 먼저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랑 앞에는 항상 만만치 않은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민주화 열망이 가득했던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까지는 정면돌파로 그 장벽을 온몸으로 부딪쳐 부수는 것이었다면, 이제 시인의 노선은 슬쩍 비켜가는 것, “부딪쳐 흘려야 할 피를 피한다고” 욕먹을 수 있으나 이것이 “강물을 따라가는 길/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길이다/ 풍경을 훔치려는 허튼 욕망을/ 끝내 버리지 못한다 해도/ 까마득한 벼랑을 옆구리에 끼고도는 길”(「우회하는 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좌절의 상황을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다. 하지만 말을 한다는 것이 세상을 바꾸거나 삶의 조건을 나아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말은 살 속에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살이 말을 녹”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인은 이 세계엔 빛이 과하다고 느낀다. 세상은 지나치게 빛을 추앙하고 흠모한다. 하지만 어둠과 무명은 빛의 배경으로만 존재하지 않을 테고, “어둠을 비추는 힘은 불빛에게 있지 않”을 터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묻는다. “가을햇빛에 드러나는 세계의 형형색색이나/ 쪽빛 하늘에 뜬 흰 뭉게구름이/ 가장 낮고 고독한/ 영혼의 눈빛에게 나타나듯/ 무명이 백광(白光)을 품”지 않던가. “바람도 함성도/ 모두 무명의 가늠할 수 없는 힘에서 나”오는 게 아니던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거대하게 일렁이는 건/ 종잡을 수 없는 무명”이 아닐 것인가(「무명」). 이러한 절절한 질문이 도달한 지점은 깊고 아프다. “한강가에 켜놓은 가로등 수만큼은 함성이 있어야/ 혁명이라 믿었던 때도 있었지만/ 백로 지나 우는 귀뚜리 울음에/ 귀가 지금껏 젖어 있다/ 퇴행이라 해도 좋으니 이제는 세상의 불빛을 끌 때”라는 것이다. “지워진 길도 내버려둘 때”이고, “내 안의 불빛도 이만 끄고 바람이 되어 숲과 울 때”라고 역설하는 것이다(「이제는 세상의 불빛을 끌 때」).
가난과 굴욕을 몸으로 통과하는 길, 패배와 치욕을 웃음과 구원으로 완성하는 길, 낮은 목소리로 우회하는 길, 이것이 시인 황규관이 숨겨놓은 길이다. 하여 이 시집은 어둠에 보내는 찬사이자 가난에 내민 악수이자 낮은 곳에 보내는 보이지 않는 포옹이자 따스함이다. 어두운 골목길 울음이며, 가슴속으로 난 길이 있어 울음도 침묵도 내면에서 공명되는 울음소리다. 저마다의 적막을 견뎌야 하는 어둠속에서 노래가 나온다. “어둠이 영혼의 솜털에 정전기를 일으키기 때문에”(「어둠은」, 『철산동 우체국』) 시인은 노래한다. 어둠이 존재하는 한 시인의, 우리의 노래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