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윤심덕과 대한해협에 동반투신하여 짧은 생을 마감한 수산 김우진의 문학과 생애를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식민지기 사회적 억압과 일상화된 통제의 현실을 폭로하고, 인간 본연의 생명력에 충실한 개인을 설정함으로써 한국 근대문학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던 수산 김우진의 미학과 세계관이 세밀하게 드러난다. 그의 삶과 문학세계 전반에 걸쳐 구상한 ‘자유로운 개인’이면서 ‘공적 인격체’로서의 ‘시민’을 통해 책의 제목이기도한 조선 시민극의 구성과 탈 계몽의 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민족적 차원의 조선독립의 과제를 넘어 세계시민권을 향했으나 때이른 죽음으로 ‘구상’에 머물렀던 수산 김우진. 저자는 이처럼 수산이 제기한 자유로운 개인이자 민중과 일체된 개인이라는 지식인상을 매개로 계몽대상을 넘어 주체로서의 인간을 호명하는 그의 미학을 지적하고 드러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김우진을 한국 희곡과 연극사 혹은 문학사의 일부로 다뤄오거나, 개별 작품에 대한 그간의 연구방식을 넘어 그의 개인사와 문학세계를 종합적으로 재조명하여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목차
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 ㅣ 21세기에 다시 쓴 간행사
책머리에 ㅣ 다시 수산문학의 현재성을 생각하며
제1장 왜 김수산인가
문제적 위치
김수산에 대한 시선들
연구대상과 목표
제2장 낭만과 동경의 기원
어머니 또는 죽음의 성형
문학, 삶과 죽음의 재생산
치명적 여성
제3장 타이쇼오 시대의 식민지 지식인
타이쇼오 데모크라시와 신원기의 시대
시라까바의 두 길
극예술협회와 동우회 순회극단
민족어의 발견과 문학어의 정립
제4장 시민적 의욕과 새로운 문학의 구상
비평가의 길에서
당대 문학의 구상
통제의 시공간과 「정오」의 꿈
춘향을 넘어서는 먼 여자의 길. 영녀
제5장 환멸과 해체
환멸의 시작
존재와의 투쟁
비루한 현실, 타락한 동지를 넘어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어린아이로
제6장 수산, 이후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윤진현
출판사리뷰
이 책은 식민지기 사회적 억압과 일상화된 통제의 현실을 폭로하고, 인간 본연의 생명력에 충실한 개인을 설정함으로써 한국 근대문학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당대 최고의 가수 윤심덕과 대한해협에 동반투신하여 짧은 생을 마감한 수산 김우진의 문학과 생애를 조명했다. 수산이 그의 삶과 문학세계 전반에 걸쳐 구상한 ‘자유로운 개인’이면서 ‘공적 인격체’로서의 ‘시민’은, 민족적 차원의 조선독립의 과제를 넘어 세계시민권을 향했으나 때이른 죽음으로 ‘구상’에 머물렀다. 저자는 이처럼 수산이 제기한 자유로운 개인이자 민중과 일체된 개인이라는 지식인상을 매개로 계몽대상을 넘어 주체로서의 인간을 호명하는 그의 미학을 지적하고 드러내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김우진을 한국 희곡과 연극사 혹은 문학사의 일부로 다뤄오거나, 개별 작품에 대한 그간의 연구방식을 넘어 그의 개인사와 문학세계를 종합적으로 재조명한다.
수산의 짧은 생애와 굴곡진 삶
1897년 전라도 장성에서 태어난 김우진은 아버지 김성규의 봉건적인 가치관과 갈등을 겪는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외로움은 그의 문학세계 전반을 죽음 지향적 경향과 현실적 가치에 대한 반항적 기질로 이끌었다. 와세다대학 재학중 2·8독립선언과 3·1운동을 겪었으며, 이듬해인 1920년 토오꾜오에서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여 집단적인 문학적 실천을 모색했다. 이들은 동우회에서 주관하는 ‘순회연극단’으로 참여하여 소인극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24년 와세다대학 영문학과 졸업 후 목포로 귀향하여 목포지역 청년회와 노동운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낭만적 문학관에서 벗어나 변혁에 필요한 개인의 각성과 계급투쟁에 주목한다. 평론 「아관 계급문학과 비평가」에서는 당대의 계급문학적 과제를 정식화했으며, 「이광수 류의 문학을 매장하라」에서는 당대 계몽적 문학관을 비판하는 등 날카로운 비평적 안목을 보여준다. 역사발전의 근본 주체를 노동자로, 변화의 가장 근본적인 동력을 노동자의 생명력으로 설정했으나 작품에서 그려지는 현실은 엄혹하기만 했다. 근대의 일상화된 통제와 가학적인 근대적 인간관계, 도달할 수 없는 근대적 욕망에 휩싸여 자본의 끝없는 착취를 감내하며 자신의 삶을 소진해가는 빈민층 여성의 모습은 이같은 그의 현실인식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비루한 당대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1926년 6월 ‘출가’하여 관부연락선 덕수환에서 당대 최고의 가수 윤심덕과 대한해협에 동반투신하여 서른의 짧은 생을 마쳤다.
자유로운 개인을 꿈꾼 수산의 문학과 작품세계
김우진의 첫 소설 『공상문학』(1913)에서 드러나는 낭만적 취향은 그의 문학 전반에 낭만적 여성관으로 잔존하는데 이는 가족관계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작품에 모성적이면서 요부(Femme Fatale)의 면모를 띤 등장인물들은 그의 여성관이 현실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작중 여성이 다른 인물의 변화와 결단에는 개입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으로 판단하건대, 수산이 구원이나 결단의 주체로서 여성을 생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수산의 이러한 낭만적 성향은 3·1운동을 겪으면서 낭만적 민족의식으로 이어진다. 일본 제국의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운동이 펼쳐지던 타이쇼오(大正) 데모크라시라는 시대 한복판에서 그는 민주주의에 대해 각성했으며, 타이쇼오 문단의 맹주로서 미적 세계를 추구한 탐미파 문학과 이상적 개인주의를 표방한 시라까바(白樺)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던 중 수산은 민족어를 발견하고 ‘일상어의 문학화’라는 문제의식 하에서 ‘희곡’이라는 장르를 선택한다. 또한 민요·속요·전설 등의 채록과 응용이라는 문학적 과제에 일정한 영향을 받은 결과, 희곡 「이영녀」를 집필하게 된다.
수산의 대표작품은 일상화된 근대적 통제의 현실을 발견한 ?정오?, 한 개인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몰락하는가를 관찰하는 「이영녀」,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일상의 질곡을 폭로하는 「두데기 시인의 환멸」 등이 있다. 또한 이렇게 도달한 현실이라는 환멸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치열한 내적 투쟁의 결과물로서 「난파」를 꼽을 수 있다. 「난파」 주인공인 ‘시인’은 기존의 모든 가치를 버리고 난파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을 얻는데 이는 「산돼지」로 형상화되고 이 작품을 수산의 문학적 시작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 ‘원봉’은 타락한 현실에 시달리는 ‘낙타’ 단계의 인물에서 시작하여 기존의 모든 가치와 불화·투쟁하는 ‘사자’ 단계를 경험한 후, 조명희의 시 「봄 잔디밭 위에」를 통해 우주적 일치를 보여주는 ‘어린이’ 단계로의 도약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니체적인 의미의 투쟁적 ?전단계를 거쳐 탄생한 새로운 인물형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이 책은 우리 동아시아 담론의 기초를 튼튼히 하자는 취지로 서남학술재단에서 지원하는 서남동양학술총서 씨리즈로 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