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1920년대 파리 생활의 회고록이다. 당시 헤밍웨이는 20대였다. 1921년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한 그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매일이 축제였던 파리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책을 펼치면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파리가 되살아난다. 이때의 ‘파리’는 단순히 공간의 의미를 넘어, 첫 번째 아내 해들리와의 행복했던 신혼 시절,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굶주렸던 일상과 가난과 전쟁을 겪은 청년이 글을 쓰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순간들을 의미한다.
대가로서의 헤밍웨이가 아니라 젊은 작가로 살아가던 시절, 완벽하지 않은 한 인간의 기록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가난 속에서 꽃피워낸 열정이다. 자신의 글에 대한 확신과 불안, 아내와 보내는 시간에 대한 만족과 공허, 좋아하는 예술가의 단점과 경멸하는 예술가의 유머러스한 점을 낱낱이 고백하며 우리를 매일이 축제였던 파리로 안내한다.
젊은 시절 헤밍웨이의 모습과 파리 풍경을 담은 화보 126점은 마치 파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헤밍웨이가 다닌 장소들을 ‘발자취 지도’로 만들어 책 앞에 실었다. 또한 당시 문화와 인물을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옮긴이가 꼼꼼한 각주와 미주를 달아 진입장벽을 없앴다. 헤밍웨이라는 돋보기로,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의 내면과 전후 파리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은이), 김보경 (옮긴이)
출판사리뷰
젊은 작가
헤밍웨이의 기쁨과 슬픔
헤밍웨이는 19세에 지역 신문사 수습기자로 일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20대가 되어 해들리와 결혼하고 『토론토 스타』의 기자 겸 해외 특파원 자격으로 파리에 도착하는데,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헤밍웨이는 파리의 가난한 동네였던 카르디날 르무안가 74번지에 집을 구한다. 실내 화장실도 없고 더운물도 나오지 않는 집이었지만 헤밍웨이 부부는 만족했다. 그는 “배고픔이란 훌륭한 정신 수련법”이라며 점심식사 대신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세잔, 마네, 모네의 작품을 감상한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결코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 우리는 우리가 잘난 사람인 줄 알았고, 우리가 무시하며 그래서 당연히 신뢰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부자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 우리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셨으며, 잠도 잘 자고 함께 있어 따뜻했고 서로를 사랑했다.
_「때늦은 봄」 중에서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적 글쓰기를 시작했다. 1922년 무렵 처음으로 시와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그는 집과 가까운 카페 ‘클로저리 데 릴라’의 구석 자리에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글을 썼다. 글 쓰는 습관을 만들어가는 과정, 글을 쓰는 데 방해가 되는 취미를 청산하는 일, 책이 잘 팔리지 않아 낙심하다가도 마음을 다잡는 모습, 써놓은 원고를 모조리 잃어버리는 비극 등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는 대문호 헤밍웨이가 분투하는 젊은 시절의 나날을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걱정할 거 없어. 지금까지 죽 써온 글이니까 이제 곧 쓰게 될 거야. 정말로 진실한 문장 하나만 쓰면 돼. 그래,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진실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한번 써보는 거야.’
_「스타인 선생의 수업」 중에서
광란의 시대 속 ‘길 잃은 세대’
다양한 예술가와 교류하는 헤밍웨이
1920년대 파리는 생활비가 저렴하고, 술과 성적인 것에 개방적이며, 카페에 모여 예술가들과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대담하고 노골적인 매력을 지닌 파리에 전 세계인이 몰려들었다.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에는 헤밍웨이가 만나 교류한 예술가들의 숨겨진 모습과 우스꽝스러운 일화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주로 등장하는 인물은 거트루드 스타인,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다. 이들과의 첫 만남, 갈등을 겪었던 에피소드,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거나 다른 예술가를 험담하는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헤밍웨이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존경하면서도 가끔 그녀가 고집을 부릴 때면 성가셔하고, 자신의 성기 크기로 고민하는 피츠제럴드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그리스 조각상을 감상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포드 매덕스 포드, 에반 시프먼, 줄스 파스킨, 어니스트 월시, 랄프 더닝 등 다양한 예술가와의 만남을 담은 헤밍웨이의 기록은 ‘죽음’이나 ‘친절’ ‘우정’과 같은 주요한 삶의 주제들을 담고 있다. 예컨대 헤밍웨이가 카페에서 우연히 줄스 파스킨을 만났을 때 그는 아름다운 두 여성 모델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브로드웨이 연극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후 파스킨이 목을 매어 자살하자 헤밍웨이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사람들이 말하길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지 결정짓는 씨앗은 우리 모두의 안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농담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에게서 자라는 씨앗은 언제나 보다 더 비옥한 토양과 보다 더 양질의 비료로 덮여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을 다친다는 건 그것과는 다르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건 마음이 없는 사람은 마음을 다치려고 해도 다칠 수가 없겠지만, 다치기 시작하면 수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린다는 것이다. 아마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_「허무 그리고 또 허무」 중에서
파리의 풍경,
걷고 여행하는 생활인 헤밍웨이
헤밍웨이에게 사람만큼 중요한 것은 파리라는 공간이었다. 파리는 헤밍웨이를 환대했고, 헤밍웨이는 그곳을 자신만의 장소로 간직했다. 이 책에서 헤밍웨이는 자신의 일상에 녹아든 장소들을 소개한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는 가난하고 신용도 없는 헤밍웨이에게 등록비는 돈이 생기는 대로 내도 된다며 그가 원하는 책을 얼마든지 빌려주는 실비아 비치와 그녀의 공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나온다. 「센강 사람들」에는 퐁뇌프 다리 밑 아름드리나무들이 서 있는 공원과 낚시하기 좋은 지점들이 등장한다. 헤밍웨이는 그곳을 거닐며 “도시 한복판에, 건전하게 낚시의 손맛도 제대로 즐기면서 가족에게 주려고 모샘치 튀김을 챙겨 집으로 가져가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했다”고 회고한다.
또한 센 강둑에 펼쳐진 와인 도매 시장, 점심 먹는 돈을 아끼기 위해 아내에게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하고 걸어다니던 옵세르바투아르 광장과 뤽상부르 미술관이 있고, 글을 쓰러 다니던 카페 ‘클로저리 데 릴라’와 친구들을 만났던 ‘카페 르 돔’ ‘카페 되 마고’가 나온다. 그 외에도 ‘미쇼 레스토랑’ ‘플뢰뤼스가 27번지 스타인의 집’ ‘아나스타지 권투 도장’ 등 파리의 많은 장소가 등장한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공간들은 지금도 파리 곳곳에 남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 앞에 ‘헤밍웨이 발자취 지도’를 실었다. 독자들이 알고 있는 파리 위로 헤밍웨이의 지도를 겹쳐, 각자 자신만의 새로운 파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고개를 들고 함께 강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모든 것이 있었다. 우리의 강과 우리의 도시, 그리고 우리 도시의 섬이.
_「때늦은 봄」 중에서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는 파리의 역동성과 젊은 헤밍웨이의 희로애락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이 시절 헤밍웨이는 사랑에 빠진 로맨티스트였다. 경마에 중독됐다가도 성실한 작가가 되기를 갈망하는 몽상가였다. 그는 예술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고 서로를 도우며 작가로서 성장한다. 복싱을 가르치기도 하고 사이클 경기를 즐기는 독특한 취미도 갖는다. 그의 산책과 여행, 그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1920년대 파리가 복원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휴가를 떠날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파리를 배회하는 휴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