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산이다. 근대 이전에도 산에 오른 옛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산에 오를 수 있던 사람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사람이거나 재조(在朝) 일본인뿐이었다. 『침묵하는 산』은 일제강점기에 산에 오른 사람들은 누구였고, 일제는 왜 등행을 장려했는지 그 이유를 파헤친다. 그 단서가 되어주는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서구 알피니즘의 방식으로 조선의 산에 올랐던 예외적이고 탁월한 산악인 김정태다. 서글픈 근대 등반사의 풍경을 마주하고 친일 부역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한 『침묵하는 산』은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책이다.
목차
산의 영원은 책의 현재가 되었다 | 책을 펴내며
1 산의 실재와 환상
1. 산과 알피니스트의 삶
2. 산의 그림자 같은 삶의 궤적
2 일제강점기 조선의 산과 제국의 브로커들
1. 산과 권력
2. 알피니스트의 기억과 글쓰기
3 인수봉 등반 사진의 비밀
1. 혈맥이 통하는 암우
2. 해석과 왜곡 사이
4 산 아래에서의 삶
1. 친일과 산
2. 재조 일본 산악인은 누구인가
3. 역사 앞에 선 인간
기억의 산, 망각의 산, 텅 빈 공간의 산 | 책을 마무리하며
미주
참고문헌
저자
안치운 (지은이)
출판사리뷰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산이다. 근대 이전에도 산에 오른 옛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산에 오를 수 있던 사람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사람이거나 재조(在朝) 일본인뿐이었다. 『침묵하는 산』은 일제강점기에 산에 오른 사람들은 누구였고, 일제는 왜 등행을 장려했는지 그 이유를 파헤친다. 그 단서가 되어주는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서구 알피니즘의 방식으로 조선의 산에 올랐던 예외적이고 탁월한 산악인 김정태다. 서글픈 근대 등반사의 풍경을 마주하고 친일 부역을 올바로 바라보기 위한 『침묵하는 산』은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책이다.
■ 58명의 얼굴들, 우울한 시선들, 웃는 이들은 없었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있다. 한국 근대 등반을 대표하는 오래된 사진이다. 때는 소화 15년, 1940년 11월 3일, 날이 춥고 흐렸다. 장소는 인수봉 정상.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국적과 이름을 알 수 없는 58명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곁눈질하면서 만나 점심을 먹고 재빨리 하강했으며, 약속한 듯 아무도 이 등반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 안치운은 “흑백의 질감이 과거의 시간을 압도하고 있는” 이 사진이 “기록을 넘어 삶의 역사적 풍경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의 산행에는 일제강점기 역사와 제국주의가 산에 가한 폭력, 재조 일본인의 풀뿌리 식민 지배 활동, 조선 산악인의 정체성과 친일 문제 등이 폭넓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친일’은 아직까지도 청산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화두다. 일본 제국주의의 산물이 많이 남아 있다. 『침묵하는 산』은 1940년 사진 속 시간으로 들어가 일제강점기 조선 산악인들의 빛과 그림자를 우리 사회의 공적 기억의 장에 올바로 세우기 위한 초석이다. 그들의 생채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의 바른 행보를 찾기 위한 것이다. 산에 오르는 이들이 산을 난도질할 때, 산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욕망을 보며 침묵하고 있었다. “산은 그렇게 억겁의 세월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으면서 자신을 오르고, 통과하는 이들을 응시하는 존재다.”
■ 조선총독부와 조선산악회의 관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제국주의 상징인 철도를 개설하고 영업했다. 철도 개설은 경제 수탈과 대륙 공략을 위한 식민지 침투의 출발점이다. 산을 허물어 토지를 확보하고 그 위에 철도를 짓기 위해서는 산을 올라야 했다. 철도국 직원들이 만든 ‘조선산악회’는 말이 산악회지 실제로는 조선의 산하를 침탈하는 제국의 브로커였다. 철도가 생기면 제반 시설이 생기고 군대가 주둔한다. 대륙으로 팽창되는 길도 생긴다. 또한 철도국은 언제나 흑자 경영으로 총독부의 금고 역할을 했다. 『침묵하는 산』은 등행이라는 이름의 산행이 일본 제국주의의 선전 스펙터클이었으며, 철도는 제국주의의 세력 확장의 지름길이었다는 것을 분석한다.
조선산악회 회장이었던 나카무라 료조는 금강산 탐승시설조사위원회 위원이었다. 금강산, 백두산 등 조선의 산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한 철도 개설은 1899년 일본 제국주의가 획득한 경인철도 부설권으로 시작된 것이다. 1905년 경부선, 1912년 군산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 1915년에 함경선이 개통됐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일제는 1907년에 남대문 성곽을 허물었다. 또한 조선총독부는 황국 신민화를 위한 체력 증진을 내세워 등행·등산을 적극 장려했다. 수많은 학교 등산부가 황민화를 목적으로 산에 올랐던 것이다. 이렇게 철도 건설은 조선을 수탈하는 일제의 광포한 폭력이었다.
■ 일제강점기 조선 산악인의 정체성
조선총독부 철도국 소속의 조선산악회에서 조선인들은 어떻게 산을 올랐을까? 일본 제국주의 권력 속에서 조선 산악인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었으며, 무슨 기록을 남겼을까?
저자 안치운은 그 당시 예외적이고 특출했던 산악인 김정태(1916-88)에게 집중한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경성에 살면서, 일제의 조선인 핍박이 극심하던 때에 일본인 중심의 조선산악회에 가입하여 조선인으로서 가장 왕성한 등반 활동을 했다. 1942년부터 해방 때까지는 김정태라는 이름을 버리고 ‘타츠미 야스오’란 이름으로 일제의 등반 행사를 주도했다. 만주 침략과 태평양전쟁 등이 일어나던 일제강점기 말기에도 강제동원되지 않고 금강산, 백두산, 북수백산 등을 초등(初登)했다. 해방 이후에는 자신이 속했던 ‘백령회’를 민족주의 등반 조직이라고 강조하며 친일 부역을 지웠다. 이승만 정부에서 김정태는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열한 번의 국토구명사업에 참여하고, 일제강점기의 등반 업적을 기반으로 한국 근대 산악계의 태산준령으로 우뚝 섰던 산악인이다.
1931년 창립된 일본인 중심의 조선산악회는 조선총독부의 허가 아래 조선의 산하를 제 집 뒷마당처럼 올랐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김정태를 비롯한 조선인들이 이 조선산악회를 이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름은 조직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인데, 조선산악회의 적자(嫡子)가 되기 위해서는 친일 혹은 반일을 따지는 것보다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조선산악회는 1948년에 한국산악회로 개칭했다.
『침묵하는 산』에서 저자 안치운은 김정태가 남긴 글과 그가 쓴 『천지의 흰눈을 밟으며』를 역사적 자료와 더불어 다시 읽고 평가한다. 과거를 합리화하며 감춘 사실들을 발견하는 데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와 조선산악회가 남긴 자료들은 서구 알피니즘을 조선에 이식해서 초등의 역사를 이룩하게 해줬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식민지 수탈의 역사부터 철도 개발, 문화 정책, 친일 기업 등에 대한 한국·일본의 자료들을 새로운 근거로 종합했다. 또한 「역사 앞에 선 인간」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조선 산악인의 정체성을 옹호하는 글에 적극적으로 반론한다.
■ 침묵하는 산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김정태는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 일본인이었다. 남긴 글을 보면 피식민지 조선인이라는 처지와 자의식을 볼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발휘되었다던 그의 등반 실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의 기록 속 등반의 기원부터 의심스럽다. 1929년,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김정태가 13세 되던 해 백운대 바위를 오르고, 그다음 해 인수봉을 등정했다고 썼다. 서양 사람들이 밧줄을 타고 오르는 것을 보았으며, 이즈음 단성사 영화관에서 두 편의 독일 영화를 보았던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침묵하는 산』에선 김정태가 등반의 기원이라고 주장한 내용 가운데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들을 지적한다. 감독, 배우, 제작사까지 과하게 열거했던 근거에 연도나 줄거리 등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김정태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등반 기원을 합리화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른 백운대·인수봉 등정 기록을 확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김정태의 흠집과 과오를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 아니라,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 조선 산악인들의 생채기를 통하여” 한국 근대 등반의 모습을 되찾고, 오늘날 우리들의 바른 행보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김정태의 삶과 기록을 파헤치면 ‘인수봉 등반 사진’의 비밀도 풀린다. 단서는 김정태가 남긴 일기다. 저자는 이 책 「해석과 왜곡 사이」에서 김정태의 일기를 번역하고 분석했다. 1940년 11월 3일 등반 행사의 주체는 엄흥섭(백령회 리더)이었고, 실무는 김정태가 맡았다. 일기에는 이날 행사의 이름이 ‘명자교환회’라고 적혀 있다. 김정태가 해방 이후 ‘민족적 대집단 등반’이라고 부풀려 말했던 이 행사를 김정태의 일기와 엄흥섭이 사후에 발표한 글로 얼개를 맞추어보면 이들이 어떻게 산을 자신의 생존 수단이자 권력으로 이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 김정태와 등반을 함께한 재조 일본인들
재조 일본인은 일본의 조선 침략에서 큰 역할을 한 ‘풀뿌리 식민지 지배’의 중심이었다. 조선 지배를 위해서는 ‘철도 부설’과 ‘일본인 이식’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침묵하는 산』에서는 이때 조선 산악인들과 함께했던 세 명의 일본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이야마 다츠오, 이즈미 세이치, 이시이 요시오, 세 인물은 배경도, 경제적 계급도 식민지에서의 역할도 달랐다.
이이야마 다츠오(1904-93)는 조선산악회 창립회원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철도 노선에 주요 관광지를 건설해서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했는데, 이이야마가 근무했던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그 일을 담당했다. 그는 백두산 종주 기록에서 “나는 늘 이런 요배와 만세에 저항심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라며 조국 일본에 대한 절망과 조선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동시에 일제의 패망 후 조선인 방현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 귀국하면서 “일본인들이 30년 혹은 40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이룩한 재산을 무턱대고 빼앗겼다”고 여긴 복잡한 식민자 2세다.
이즈미 세이치(1915-70)는 경성제국대학 출신으로 1931년 조선산악회에 가입했던 문화인류학자다. 그는 열두 살에 조선에 왔고 재조 일본인으로서 최고 엘리트 계급에 속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라틴 아메리카 탐험까지 숱한 산을 누볐다. 지금까지 이즈미는 한국의 산을 무한히 사랑했던 한국 근대 등반의 아버지라고 치켜세워지고 있다. 그는 타계하기 한 달 전까지 제주도를 방문하며 연구해 『제주도』라는 인류학 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다. 저자는 과연 재조 일본인을 이렇게 단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은지 질문을 던지며 그의 생애를 조명한다.
이시이 요시오는 조선산악회의 마천령-백두산 종주 산행의 대장이었고, 앞의 두 사람과 다르게 김정태와 사적 우정을 많이 나눈 선배였다. 김정태는 일제강점기 내내 이시이의 도움을 받았다. 김정태는 이시이를 스폰서라고 부르며 “1935년 금강산 등행 이래 자주 어울렸던 그는 큰 철공업소 경영주로 성장, 적지 않은 경비를 기꺼이 내놓았다”고 썼다. 그리고 김정태는 자신의 소속을 이시이가 운영하던 ‘석정 공업소’라고 하며 활동했다.
재조 일본인과 조선인은 갈등하고 대립했을까? 이들은 함께 조선의 산들을 올랐다. 한국 근대 등반사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재조 일본인들과 이들이 만든 조선산악회는 제국과 식민지 경계에 있다. 저자는 이들 모두 제국주의가 개인을 사회적·역사적으로 종속시킨 불행한 존재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남긴 기록에서 연원을 밝히고 당대의 의미와 현재적 의미를 동시에 규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