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반도 최초의 인플레이션, 그 이면에는 일본의 화폐 침략이 있었다. 『일본의 한국경제 침략사: 쌀·금·돈의 붕괴』는 위조, 환투기, 엔화 도입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전략적인 화폐침략이 불러온 한반도 최초의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조선을 무너뜨리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는 조선의 화폐경제 미시사다.
목차
한국과 일본의 경제 관계를 돌아보다 | 프롤로그
제1부 개항기
1 조선의 개항과 일본의 생존
2 과연 당백전이 원흉이었을까
3 돈으로 무너지는 조선
4 쌀을 내놓아라
5 대응을 안 한 것일까 못 한 것일까
6 황금의 땅 조선과 ‘지팡구’
제2부 침략기
7 탐관오리들의 역할
8 세금을 모두 돈으로 내면 개혁인가
9 조선과 일본의 이상한 합작품 ‘백동화’
10 조선의 중앙은행이 된 다이이치은행
11 조선의 땅과 일본의 돈놀이
12 화폐정리 사업과 민족자본
제3부 강점기
13 일본인들의 근대적인 조선 농장
14 3·1 운동과 엉터리 자유시장경제
15 식민지 조선이 일본에게 가르쳐준 것
16 세계 대전쟁에 동원된 조선, 그리고 남은 것
지천명을 생각하다 | 에필로그
김준보 교수 저서 목록
참고문헌
도표 및 도판 일람표
저자
김석원 (지은이)
출판사리뷰
한반도 최초의 인플레이션
그 이면에는 일본의 화폐 침략이 있었다
위조, 환투기, 엔화 도입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화폐경제 미시사
일본의 한국경제 침략사: 쌀·금·돈의 붕괴
『일본의 한국경제 침략사: 쌀·금·돈의 붕괴』는 일본의 전략적인 화폐침략이 불러온 한반도 최초의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조선을 무너뜨리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는 조선의 화폐경제 미시사다. 제국주의가 휩쓴 세계사의 영향 아래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좀더 미시적인 경제 분야에 집중해 파고들며 1945년 조선이 해방과 동시에 “철저하게 무너진 폐허 위”(279쪽)에 남게 된 과정을 샅샅이 살핀다.저자인 김석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농업경제학과를 설치하고 한국통계학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한 경제학계의 거목 고(故) 김준보(金俊輔, 1915~2007) 교수의 손자이며, 이 책은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저자가 할아버지 김준보 선생의 논문을 바탕으로 2022년의 독자를 고려해 현대적이고 편안한 문체로 풀어 쓴 책이다.
■ 쌀의 수출, 붕괴의 시작
쌀에 관한 한, 조선은 일본의 창고다(71쪽).
국내 총생산 가운데 화폐의 양은 고작 3%에 불과했던 조선에서 화폐의 역할을 했던 것은 쌀과 면포였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조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마땅한 수출품이 없었던 조선에서 이 화폐 대체품들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밀무역과 강제 개항으로 이루어진 이 과정에서 오히려 조선 경제에서 화폐의 역할은 커지기에 이른다. 이후 침략기와 강점기를 거치며 조선에서의 쌀 생산은 일본의 배만 불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풍년이 들어도 일본 상인들이 쌀을 가을에 모조리 사들이는 바람에,
조선에서는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는 쌀이 모자라서 일본에서 쌀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70쪽).
만약 조선인이 쌀 팔기를 거부하거나 난동을 부리거든 직접 대응하지 말고,
조용히 상대방을 붙잡아서 순찰 경관에게 인도하라(60쪽).
■ 유출된 금, 무너진 안정성
일본을 위시한 열강의 압박 속에 수탈당하고 있던 조선이 반격을 꾀할 기회가 있었으니, 바로 금광이었다. 평안북도 운산에 위치한 금광 지대는 동양 최대의 수익성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앞에서 본 쌀은 자국민이 먹고살기 위해 전국적으로 유통된다는 특징이 있어 통제하기 쉽지 않은 데 비해, 금은 수요의 목적이 아닐뿐더러 금광지대가 고정되어 있기에 개항 초기 조선 조정이 적극적이었다면 주요 금광에 대한 소유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역량도 의지도 없었던 조선 정부는 금광 개발을 개인에게 떠넘겨버렸고, 일본인들은 소유권이 명문화되는 것을 피해 지방 관리나 유력자 등을 내세워 본격적으로 금을 거래하게 된다.
최소 26톤의 금을 조선에서 더 들여왔으니, 일본은 신용 높은 금화를 더 많이 만들어서 세계 시장에서 무기든 기계든 원료든 얼마든지 사올 수 있었고, 이는 일본 경제가 기존 금 보유량 대비 최소 69% 이상 조선의 금을 바탕으로 추가 성장했음을 의미했다(98쪽).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한 국가의 금 보유량은 경제 안정성을 의미하고, 경제가 불안할 땐 금값이 오른다. 만일 조선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금을 사수했더라면, 세계 시장에서 안정적인 화폐를 만들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정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조선 조정의 선택은 주조 차익을 얻기 위한 액면가만 높은 화폐의 발행이었고 이 선택은 조선 경제 붕괴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 위조, 투기, 그리고 일본 화폐 도입
그간 조선이 금속화폐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 땅에 화폐로 쓸 만한 금속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화폐용 금속인 은과 구리를 수입해야만 겨우 쓸 수 있는 실정에 새로운 화폐를 만든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이었다. 조선에 상당량 매장되어 있던 금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주도권을 잃어 확보할 수 없었고, 만만한 금속은 구리였다. 그러나 주요 구리 수입원이 일본이었으며, 주조 기술이나 기술자 또한 일본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다.
요즘 오사카 지방의 금속 회사들 가운데 백동화를 만들어 완제품으로서 1개에 1전 5리 내지 2전의 가격으로 대거 밀수입을 시도하는 자가 있으며, 이제 인천과 그밖에 각지 일본 상인은 거의 이 일에 관여치 않는 자가 없는 형편이다(51쪽).
일본인 상인과 국가가 나선 조직적인 위조와 투기로 화폐 가치는 나날이 하락했다. 갖고 있는 돈이 금속 조각에 불과하다는데 어느 누가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선 사람들의 이 심리를 이용해 일본인들은 또 한번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 백동화를 가져오는 이에게 자신들이 발행한 은행권을 교환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심을 바라서는 안 될 일, “같은 동전이라도 조선인이 바꾸려 하면 1전인데, 나중에 일본인이 가져가면 ‘고객우대’ 한다며 2전 5리로 쳐주는 일”(200쪽)도 서슴없이 이루어졌다.
■ 나가며
이런 식으로 개항 전후의 위조-환투기-일본 화폐 도입이라는 화폐침략의 충격이 계속된 결과, 조선에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조선 경제는 그야말로 박살이 나버렸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조선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모든 면에서의 침략을 받게 된다. 이후 일본이 항복하며 종결된 양차 세계대전 속에서 패전국의 식민지였던 조선에 무언가 남아 있을 리는 만무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민주화운동을 거쳐 다다른 2022년의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시작엔 개항이 있었다. 민족의 역사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물리적 지반을 공유했던 150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이 살아남으려 애썼던 방식을 살펴보는 일이 지금 같은 땅을 밟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의미함은 당연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