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의 눈부신 친구』 『잃어버린 사랑』 『어른들의 거짓된 삶』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가 에세이로는 처음 국내 독자들을 찾아왔다. 엘레나 페란테는 『타임』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하는 등의 세계적 대가이지만, 필명을 사용하고 나폴리 출생의 고전 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 외에 알려진 바가 없는 미스터리한 작가다. 작품으로만 세상과 소통하기 원하는 작가인 그가 신작 『엘레나 페란테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에서 자신의 작품, 작가와 글쓰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한다.
엘레나 페란테는 글쓰기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다. 또한 최초의 영감을 놓치지 않고 잘 받아쓰고자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기준에서 훌륭한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기존의 규칙을 어기고 싶은 작가, 연대를 통해 나쁜 언어에 맞서 좋은 언어를 찾아가고 싶은 여성 작가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엘레나 페란테가 에밀리 디킨슨, 거트루드 스타인,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단테 등 위대한 작가들을 통해 터득한 통찰을 『엘레나 페란테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에서 제시한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꼭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이다.
목차
고통과 펜 · 9
아쿠아마린 · 53
역사와 나 · 97
단테의 갈비뼈 · 139
옮긴이의 말 · 179
저자
엘레나 페란테 (지은이), 김지우 (옮긴이)
출판사리뷰
“우리 시대 눈부신 보석 같은 작가
엘레나 페란테가
읽기와 쓰기에 부치는 찬가”
‘페란테 열병’(#FerranteFever)
그 비결을 밝히다
엘레나 페란테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독특하고 유명한 작가다. 모든 미디어와 만남을 거부하고 필명을 사용하는 ‘작품으로만 말하는 작가’다. 필명의 엘레나는 제우스의 딸 헬레나를, 페란테는 ‘과감한 여정’을 뜻한다. 그는 ‘나폴리 4부작’으로 맨부커 인터네셔널상과 이탈리아 스트레가상에 노미네이트되고, 2015년에 『타임』지와 BBC에서 ‘올해 최고의 소설 1위’, 『가디언』지에선 ‘작가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 등으로 언급되며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에 열광하는 모습을 일컫는 ‘페란테 열병’(#FerranteFever)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으며, 2017년 동명의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되어 하나의 현상이 된 작가다.
현재 엘레나 페란테의 많은 작품이 영상화되고 있다. ‘나폴리 4부작’은 HBO와 RAI가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했으며, 『잃어버린 사랑』은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으로 선택되어 올리비아 콜맨 주연의 『로스트 도터』로 2022년 7월 개봉했다.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어 2023년 1월 4일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될 예정이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최전선에 있는 감독과 플랫폼에서 앞다투어 영상화하는 이유는 엘레나 페란테의 이야기가 파격성과 보편성 그리고 동시대성을 두루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신작 에세이 『엘레나 페란테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은 『잃어버린 사랑』을 비롯한 ‘나쁜 사랑 3부작’과 ‘나폴리 4부작’ 그리고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집필하는 과정과 그때 얻은 깨달음을 담고 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어떤 실험과 고민 끝에 나온 것인지 낱낱이 살펴볼 수 있다.
두 가지 작법에 관한 비밀
엘레나 페란테 글쓰기의 핵심은 ‘이중성’이다. 이야기는 글쓰기에 대한 최초의 기억에서부터 시작한다. 초등학교 시절 공책에 글을 썼던 최초의 기억에는 공책의 빨간 선을 넘어가고 싶은 욕망과 넘으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공존한다. 이후로 페란테에게 글쓰기는 단정하게 좋은 글을 썼다는 만족감과 선을 넘어가지 못했다는 상실감 모두를 느끼게 하는 양면성을 지니게 된다.
엘레나 페란테는 이 책의 「고통과 펜」에서 자신이 두 가지 스타일의 작법을 구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균형 잡히고 순응적인 글쓰기다. 이러한 글쓰기 덕분에 학창 시절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고 글재주가 있음을 알게 됐다. 다른 하나는 충동적이고 균형을 잃어버리는 글쓰기다. 무엇인가 불쑥 튀어나와 종이를 엉망으로 흩트려놓아서 자신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엘레나 페란테에게 “모든 작품은 인내심의 산물”이다. 전통적인 소설 기법을 사용해 꼼꼼하게 작업하면서, 충동적인 글쓰기가 튀어나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진실을 표현하는 글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게 글쓰기는 반복되는 내면의 균형과 불균형에 형태를 부여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파편을 틀에 맞춰 정돈했다가 그것들을 다시 뒤섞는 과정의 연속이었죠.”(52쪽)
자신만의 방법으로 진실을 이야기하기
엘레나 페란테는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리얼리스트로서 현실을 재현하는 데 힘쓰고 직접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어머니의 ‘아쿠아마린’ 반지를 통해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된다. 객관적인 사물조차 변화무쌍한 ‘나’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객관적으로 현실을 담아내려고 해도 표현 속에서 본질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엘레나 페란테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방식대로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글쓰기 노선을 변경한다. 그러면서 인칭, 문학적 레퍼토리, 서술자, 현실과 문학의 관계 등에 대한 깨달음들을 얻는다. 이 내용은 이 책의 「아쿠아마린」에 정리되어 있다. 「아쿠아마린」은 엘레나 페란테의 모든 작품이 어떤 과정으로 탄생했는지 보여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고 있다. 페란테는 일인칭 화자에 대한 실험으로 『성가신 사랑』을 비롯한 ‘나쁜 사랑 3부작’을 써내려간다. 여기서 그는 작품의 주인공인 델라, 올가, 레다와 거리두기를 지양한다. 주인공 또한 자신의 이야기에 밀착해 있어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의도했다. 그래서 작가나 주인공이 타인, 외부인, 목격자의 역할에 국한되는 것을 피하고 진실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꼭 필요한 타자’의 개념을 탐구해 『나의 눈부신 친구』를 비롯한 ‘나폴리 4부작’을 써나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주인공 레누와 릴라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타자가 되어, 서로 심하게 뒤섞였지만 완전히 하나가 되지는 못하는 두 인물의 이야기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렇게 일인칭 속에 갇힌 주인공들로 진실을 전했던 전작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문학 작품은 현실을 구성하는 수많은 잔해의 소용돌이를 억지로 문법과 구문론의 법칙 속에 욱여넣는 것이 아닙니다.”(72쪽)
문학적 유산과 작가,
그리고 여성 작가
「역사와 나」에서 엘레나 페란테는 작가의 문화적 유산을 강조한다. 글쓰기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는 순간은 “우리가 너무나도 당당하게 우리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타인의 소유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라고 말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다른 이들이 쓴 모든 글을 취합해 자아의 틀 안에서 자신의 글로 만드는 것이다. 엘레나 페란테는 평범한 사람이 쓴 아름다운 작품을 과소평가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작가’가 쓴 작품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같은 문학적 유산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모든 글의 배경에는 다른 글이 있다.
“글쓰기는 과거의 모든 글을 정복하고, 서서히 그 엄청난 자산을 쓰는 법을 배워나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결코 ‘고유의 문체가 있는 작가’라는 사람들의 칭찬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글의 뒤에는 기나긴 역사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저의 충동, 경계를 넘어 여백을 침범하고픈 욕망, 글쓰기를 향한 갈망까지도 과거에 일어났고, 미래에도 계속될 폭발의 일부일 뿐입니다.”(112쪽)
엘레나 페란테는 여기서 자신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어준 문학적 유산이 본질적으로 남성의 것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자아 역시 남성의 글을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소비했으며, 자신의 작가 본능은 남성 문학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문학 전통을 위반하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졌던 여성 작가로서의 경험을 공유한다. 여기서 엘레나 페란테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언급한다. 스타인은 다루기 쉬운 문학 형식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을 통해 ‘자서전’이라는 장르 자체를 비틀었다. 페란테는 이를 두고, 자신에 대한 정직한 글을 쓰려면 문학 작품을 담는 용기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했다.
또한 여성 문학이 성공하려면 여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레누는 작가로서 좋은 글을 쓰지만 진정한 만족감을 얻지는 못한다. 레누의 글과 릴라의 글을 융합해야 나쁜 언어와 거짓된 낡은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 엘레나 페란테는 그런 결말을 쓸 수 없었다. 이를 자신의 한계였다고 고백한다. 여성 문학이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범작을 쓰는 작가와 꼭 필요한 작가를 구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페란테는 연대를 통해 새로운 문학적 유산을 쌓아가자고 말하는 것이다.
“여성은 글을 쓰려고 하는 순간, 지금까지 열거한 글쓰기에 관한 수많은 문제 외에도, 여성의 진실을 바닥까지 파헤친 글이 채 한 페이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글솜씨가 세련되었건 투박하건 말입니다. 대부분 작가는 여성의 진실 앞에 침묵합니다.”(122쪽)
“여성의 진실을 무시하는 나쁜 언어에 맞서, 우리의 재능을 융합하고 뒤섞어야 합니다. 단 한 문장도 바람에 실려 사라지게 놔두면 안 됩니다.”(137-138쪽)
다른 존재의 잠재력을 상상하는 작가,
단테와 베아트리체
마지막 장 「단테의 갈비뼈」에는 단테에게 받은 영향과, 그에게서 취해 자기 것으로 만든 깨달음을 담았다. 엘레나 페란테가 단테의 글쓰기에서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글쓰기의 성패 여부를 ‘속도 문제’로 본다는 사실이다. 마음속에서 불러주는 말이 문자의 형태로 바깥에 나오려면 작가에게 빠르게 받아쓰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능력을 위해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단테 역시 문학적 유산 위에서 글을 썼지만, 다른 작가의 언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가 그 은밀한 뜻과 아름다움을 포착한 후 자신의 글을 썼다고 페란테는 분석한다.
엘레나 페란테가 본 단테는 다른 존재의 잠재력을 상상하는 작가다. 단테는 “서양 문학을 통틀어 이토록 명예로운 역할을 한 여인은 없다”는 평을 받는 베아트리체를 만들어냈다. 『신곡』에 등장한 베아트리체는 단순히 사랑의 지성을 가진 우아한 여성 정도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을 뒤섞은 독특한 권위로 등장한다. 그녀는 연인, 어머니 그리고 장군의 말투로 이야기하는 성숙한 인격체다. 엘레나 페란테는 「단테의 갈비뼈」에서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비결을 탐구한다. 단테는 자기 학문의 정수, 즉 갈비뼈 하나를 빼주며 그녀 안으로 자신을 이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성의 잠재력을 상상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존재 속으로 들어가 그의 잠재력을 상상하는 능력이, 엘레나 페란테가 단테를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단테는 이교도의 시, 성경, 철학서, 과학서, 신화를 읽을 때 다른 작가의 언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가 그 은밀한 뜻과 아름다움을 포착해내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글을 썼습니다.”(155-156쪽)
“단테가 다른 이가 쓴 글 안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보물을 찾아 나온 후에 쓴 글에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