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땅에서 예술하기: 임옥상 보는 법』은 한국의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인 이유로 고착화되는 메커니즘을 분석?비판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보기 방법’(Ways of Seeing)을 제안한다. 1세대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그림에는 ‘땅’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땅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두 발을 딛고 살아내는 삶의 터전이자 상호 관계성의 근간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땅과 인간의 관계는 어느덧 일방적인 착취에 가까워졌다.
임옥상은 착취의 기제인 ‘성장’이라는 면죄부 아래 사회가 외면하고 소외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땅의 원소적 모티브인 ‘흙’으로 말하고자 했다.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은 여전히 자본의 논리, 능력주의라는 전가의 보도 아래 이름만 달리한 ‘성장’의 변주를 화려하게 연주하는 중이다. 그동안 임옥상이라는 작가를 설명해온 정치적 자유와 혁명이라는 방식은 시대가 취사선택한 키워드에 불과했다. 주어진 틀 바깥에서 사유할 때, 즉 우리가 ‘보는 법’을 달리할 때 세상의 장막은 걷힌다.
목차
다성성과 다시점 보기를 위한 미술 비평 | 프롤로그
낯선 긴장이 느껴지는 상징성 가득한 이미지
1 보는 방법의 탈식민지화
2
3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소재를 추구하다
4
5 의미 있는 형식에 대하여 | 임옥상 작가와의 인터뷰
6
7 임옥상 예술하기 | 작가의 말
8
내 평생의 화두는 ‘다른 보기 방법’ | 에필로그
도판 목록
저자
박소양 (지은이)
출판사리뷰
고착화된 시선을 벗어던지고 다시 보는 한국의 미술
“민중미술가는 명예인가, 족쇄인가”
『한국 땅에서 예술하기: 임옥상 보는 법』은 한국의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인 이유로 고착화되는 메커니즘을 분석·비판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보기 방법’(Ways of Seeing)을 제안한다.
저자 박소양은 그 방법론으로서 한국의 1970~80년대 민중미술가로 활동해온 ‘시대를 정의한’ 작가 임옥상을 조명한다. ‘자유’ ‘혁명’ ‘해방’ 등의 정치적 키워드로만 해석되어온 한국 고유의 미술학파인 ‘민중미술’은 정치적 프레임에 의해 규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레임 이상의 언어로 기술되지조차 못했다. 사실 1세대 민중미술가인 임옥상이 평생에 걸쳐 말해온 바는 바로 모든 것의 근간으로서의 ‘땅’이었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인위적인 국경을 넘어 대토지를 공유하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까지 닿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초의 환경 시민단체가 1993년에 이르러서야 발족되었을 만큼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작품 속에 담긴 생태적 세계관은 ‘미래적’이었다. 2022년에 이른 지금, 저자 박소양은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시선을 재고한다.
코즈모폴리터니즘 민중미술
1세대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그림에는 ‘땅’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땅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두 발을 딛고 살아내는 삶의 터전이자 상호 관계성의 근간이다. 최근 살갗으로 느껴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는 인간과 땅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고 자연을 변형시키는 관계성이 심화되면서 땅과 인간의 관계는 어느덧 일방적인 착취에 가까워졌다. 임옥상이 그린 상처 난 땅, 파헤쳐진 땅, 빨간 웅덩이가 고인 땅 등의 이미지는 이러한 암시를 불러일으킨다.
“땅은 만물의 뿌리·근본이지만, 무분별한 도시화가 이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약화시켰고, 성장 중독에 빠진 우리 사회는 땅의 내재성·생명력·반작용을 망각하고 있다. 유사한 방식으로, 이러한 성장 중독의 사회는 노동자·농민같이 사회 기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객체화시켰고, 그들의 가치를 망각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상실시킨다”_85쪽.
일방적 착취의 기제는 ‘성장’이었다. 임옥상은 성장이라는 면죄부 아래 사회가 외면하고 소외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땅의 원소적 모티브인 ‘흙’으로 말하고자 했다. 이는 비단 산업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던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은 자본의 논리, 능력주의라는 전가의 보도 아래 이름만 달리한 ‘성장’의 변주를 화려하게 연주하는 중이다. 임옥상의 생태적 세계관은 민중운동 시대를 넘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임옥상의 작품 안에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자 도리로서 토지를 바라보는 코즈모폴리터니즘적 사상이 담겨 있다.
“우리 [세계인 모두]는 ‘지구’라는 땅덩어리 [즉 거대한 흙덩어리]에 같이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우리의 연결성이고 동등성인데 우리는 주로 다른 관점으로 세계[인들의] 관계를 바라보잖아요. 민족·국가·권력의 역학 관계, 권력의 지형 지도 등과 같은 관점이 우리의 관계성을 분절해서 바라보게 하고요. 다 내려놓고 보면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 모두가 ‘대지’ 위에 살고 있다는 점이에요”(임옥상)_205쪽
민중미술에 대한 오해:
인본주의에 대한 억압과 오리엔탈리즘
한국 땅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디도 아닌 다름 아닌 ‘이 땅’이어야만 가능한 가치를 발견하고 발명해내는 것이다. 1970~80년대 고속 성장 시기의 대한민국은 국가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과정을 수반했다. 이러한 시기에 이를 비판한 민중미술은 ‘반개발주의’ ‘반산업주의’, 실효성 없는 ‘향토주의’ ‘낭만주의’로 치부되어왔다. 그러나 민중미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멈춰 서서 현상을 직시하고 대안을 내놓는 ‘반성’(critical reflection)이었다.
“인간의 고통, 인간적 필요, 자연의 고통, 생태적 파괴”(150쪽)를 우려하는 민중미술가들의 목소리는 한시라도 빨리 성장을 이룩해야만 하는 당국의 검열 대상이 되었고, 현대에도 여전히 근대화의 주역인 서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 정세와 맞물리면서 하나의 지론이 되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다.
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
이 모든 메시지를 위한 “조용한 목격자”로서의 땅, 즉 ‘흙’은 임옥상 작업의 궁극적 재료가 되기에 이른다. 1970~80년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역동적인 시기를 살아낸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예술 세계는 그동안 정치적 자유와 혁명이라는 틀거지 안에서 규정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가 임옥상이라는 작가에게서 취사선택한 키워드에 불과했다. 주어진 틀 바깥에서 사유할 때, 즉 우리가 ‘보는 법’을 달리할 때 세상의 장막은 걷힌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라고 했듯 언어에 앞선 관찰, 즉 보기 방식에 대한 질문은 곧 세계에 대한 질문이자 새로운 세계를 여는 포문이 될 것이다.
“임옥상은 발언의 미술가이지 형식의 미술가가 아니다. 직업병처럼 독립적인 시각적 체계(visual system), 시각 공식(visual formula), 혹은 의미 있는 형태(significant form)를 찾는 미술평론가들에게 임옥상은 영원한 난제(conundrum)다”_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