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진실과 정의에 대한 성찰: 검사의 검찰일기』는 한국 사회의 여러 현안에 관해 날카로운 의견을 피력해온 부산지검 검사 진혜원의 에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국 사태, 한국의 정당 정치, 정치인이 공약을 지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성찰하고, 검찰과 미디어의 현 실태에 대해 낱낱이 고발한다. 정치적 사안뿐만 아니라 성범죄의 역사, 성범죄 재판의 불공정성,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한국형 보수주의와 일신교의 유사성 등 일상의 다양한 현안들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통찰력 있는 견해를 제시한다.
저자는 미디어의 보도를 의심 없이 믿는 수동적인 태도로는 진정한 상향식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남에게 판단과 운명을 의존하는 대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책임 원칙’에 기반하여,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귀찮아야 민주주의다.’
이 책에서 저자 진혜원은 이러한 자신의 소신을 법, 정치, 종교, 문학, 생물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방향으로 개진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질문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책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대대적인 토론이 곳곳에서 벌어지길 기대해본다.
목차
민주주의와 그 적들을 대하는 자세 | 감사의 글 ㆍ 5
서론 ㆍ 11
1. ‘장검의 밤’과 표창장 ㆍ 17
2. O. J. 심슨과 표창장 ㆍ 35
3. 성범죄 주장과 진실 판단 방법: 마이클 잭슨 ㆍ 53
4. 2차 가해 프레임은 왜 문제일까 ㆍ 69
5. 성적 자기결정권 ㆍ 85
6. 역사적으로 성범죄는 무엇이고 왜 처벌하게 됐을까? ㆍ 105
7. 유혹의 전략 ㆍ 115
8. 몇 살 때부터 사랑과 관심을 표현할 수 있을까? ㆍ 125
9. 성에 대해 알 권리와 미혼모 보호 ㆍ 137
10. 성범죄 재판은 왜 불공정할까 ㆍ 147
11. 국가와 기업은 서민들 편일까 ㆍ 161
12. 저출산은 여성들 탓일까 ㆍ 175
13. 어떤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왜 약속을 안 지킬까 ㆍ 185
14. 어떤 정당이 약속을 안 지킬까 ㆍ 195
15. 리얼돌, 이브, 성모 마리아 ㆍ 211
16. 음란할 권리와 즐거울 권리, 국회의 종교분포 ㆍ 229
17. 검찰은 왜 이럴까 ㆍ 243
18. 미디어는 왜 왜곡되고, 대책은 있을까 ㆍ 265
19. 검찰과 미디어는 왜 이럴까 ㆍ 283
20. 사법절차로 역사적 진실이 왜곡될 때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ㆍ 299
21. 사람들이 배타적 종교에 빠질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ㆍ 315
22. 왜 이상해 보이는 예술품들이 비쌀까 ㆍ 329
저자
진혜원
출판사리뷰
대한민국 검찰에 돌을 던지다
진혜원은 현직 검사로서 대한민국 검찰과 검찰 제도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대한민국은 유일한 폭력적 분쟁 해결기관으로 국가의 수사기관을 두었다. 검사는 수사와 종결, 기소와 공소유지 및 형 집행을 모두 할 수 있고 내국인을 대상으로 유일무이한 폭력성을 발휘하도록 권한을 부여받았다. 저자는 한국의 검찰 제도가 과거시험과 일본 형사소송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마치 아무에게나 칼을 휘두르는 사무라이를 연상시키는 ‘메이지 형사소송법’이 일제강점기 이후 현재까지도 한국의 검찰 제도의 골격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과거시험으로 관료를 선발하고, 선발된 관료들이 사법절차를 동원해 경쟁자를 제거하는 사법살인 방식을 통해 권력 투쟁을 벌여왔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검찰은 입건·수사·불기소·구속·공소제기·공소취소 등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되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 진혜원에 따르면, 과거시험의 연장선상에서 행정고시보다 2급가량 높이 설정된 사법고시는 꽤 오랫동안 대표적인 지위 상승 방법이었고, 사법고시 합격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지위에 만족했다. 그런데 경제개발과 세계화로 빈부격차가 급격해지면서 불만이 생겼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의 과시가 주요 지위재 역할을 하는데, 직업 공무원의 급여는 부를 과시할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검사들이 손상된 자존감을 보호하려고 지위가 높은 선출직 공직자를 구속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검찰이 객관성을 준수해야 할 본분을 상실하고 격앙된 감정을 보이는 까닭은 변화된 지위 경쟁의 양상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겸 역사학자 존 달버그 액턴경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검사는 공무원으로서 낮은 서열과 지위를 명심하고 겸허하고 성실하게 객관적으로 법률가로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며, 수사와 기소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게 진혜원의 주장이다.
검찰과 미디어의 합작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빅맨’ 검찰
미디어와 특정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의 검찰 수사가 인권침해적이고 사익 추구적인데도 왜 검찰 주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가? 진혜원은 미디어에 대해 다루기 전에 ‘언론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짚고 넘어간다. 진혜원은 ‘언론의 자유’가 ‘언론사의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마셜 맥루언에 따르면, ‘신문’이라는 활자 매체는 “독자를 끌어들이기를 원하는 광고주를 위해 운영되는 무료 오락 서비스”다. 저자는 맥루언의 정의가 ‘언론사’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언론사와 언론사를 구성하는 기자들은 자금주의 이해관계를 내면화하고, 그들을 대변하며,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이익을 추종한다. 언론사의 본질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진실이 왜곡될 수밖에 없고, 편향된 시각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미디어의 편향도 결국 자금과 선거의 문제라고 분석한다. 자본과 권력에 좌우되지 않는 언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저널리즘의 본분에 충실한 기자들이 운영하는 독립 미디어에 정기적으로 후원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속칭 ‘레거시 미디어’에 의한 미디어의 편중을 방지하고 균형감을 회복하기 위해선 공동체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다수의 독립 미디어에 소액이라도 꾸준히 후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저자는 검찰에 의존하는 태도를 ‘빅매니즘’ 혹은 ‘빅맨 신드롬’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시민들이나 기자들이 검찰이 내세우는 공정 원칙이 허울과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검찰에 다른 사람의 수사를 의뢰하고, 검찰이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영웅을 기대하는 심리, 즉 ‘슈퍼히어로 신드롬’과 닮아 있다. 어떤 강력하고 막강한 존재가 힘을 행사할 것이고, 그 힘이 결국 그 존재 자체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 나와 내 이웃의 고통과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심리 말이다. 저자는 ‘빅맨’, 즉 검찰에 의존하는 심리가 빅맨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이렇게 ‘빅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검찰청을 구성하는 검사 개개인이 장차 고액 수임료를 받으려고 사건을 벌이거나 조작하며, 자신들과 친한 사람이나 자신들에게 고액의 후원을 하는 사람들의 이권을 보장해줄 힘을 더 키우게 된다고 말한다.
진실을 왜곡하는 미디어
이러한 ‘빅맨’에 대해 공중파 등 주요 미디어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현상은 ‘빅매니즘’을 더욱 강화하는데, 이렇게 가치 있는 보도를 감추고 광고주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미디어에 더 의존할수록 광고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저자는 검찰과 미디어에 의존하는 현상이 개인과 사회의 자율적 판단 영역을 축소해 결국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예방법학’이라고 불리는 분야를 교육 차원에서 적극 도입하거나, 개개인이 재산상 이익 또는 손해를 초래하는 거래를 하기 전에 미리 관련 제도를 꼼꼼히 검토함으로써 거래 상대방에게 배반당해서 수사기관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최대한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대 자본이 투입된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시민의 후원만으로 운영되는 매체를 후원 또는 구독하거나, 비영리 방식으로 운영되는 블로그나 영리 목적 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전문가들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주된 정보 분석 통로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귀찮아야 민주주의이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해야 이기적 목적으로 존재하는 기관들에 이용당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에서 ‘무혐의’로 밝혀지더라도, 실제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없다는 증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사절차 자체가 정치행위로 악용될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고, 수사의 결론을 결정하는 사람이나, 그 사람과 친분관계가 있는 변호사의 유무 등 사건의 결론을 진실과 다르게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무수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수사’나 ‘재판’에 의존하는 습관이 수사기관이라는 ‘빅맨’을 ‘빅 브라더’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사법절차라는 ‘이기적 빅 브라더’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각 영역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시민 모두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율 영역을 최대한 확보하고 자율권을 최대한 행사하며 서로 연대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범죄를 보는 새로운 프레임
진혜원은 성범죄에 대해 다양한 문학작품과 영화, 역사적 사례를 들어 다각도로 검토한다. 오늘날의 성범죄는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여성의 순결을 형사법으로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여성은 순결해야 한다는 강박은 여권해방 전 가부장적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제 여성은 더 이상 순결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성관계할 상대방을 선택하는 당당한 성욕의 주체다. 오늘날 성범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여성의 정조 보호를 위함이 아니라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역사적으로 오랜 투쟁을 거쳐 쟁취하게 된 이념이다. 인류의 성범죄 처벌은 당하는 여성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래 장인어른과 사위 될 남성 사이의 거래를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아시리아제국 3기인 기원전 950년 무렵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간당했는데도 여성까지 죽이는 것은 가혹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여성의 의사를 성범죄 처벌의 요건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페미니즘 운동이 시작되면서 성별,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성범죄를 처벌하는 이유가 피해자의 자율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라는 사유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거대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저자는 유명 정치인의 성범죄 사안을 바라볼 때, 여성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존재로 바라보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여성이 스스로 독립성을 포기하거나 성적 욕구, 성공 욕구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면 기원전 950년경 아시리아 지역에서 형성되고, 1960년대 서구 여권신장운동으로 굳건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헌법재판소 판례가 인정한 성적·자율적 결정권 자체를 뒤로 되돌리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성범죄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국가의 형사처벌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개별 사안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성적 욕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괄적인 형사처벌 규정만으로 성범죄 사안을 다루는 것은 자유를 억압하고, 자칫 전체주의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자기 의사를 당당하게 결정하도록 교육 및 훈련을 해주는 것이 아동의 건강한 성 문화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지적 역량을 길러줄 때 자유를 확보할 수 있고 형사처벌 만능주의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스스로 피해를 예방하는 능력이 커진다.
우리가 형사처벌 만능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이유는 형사처벌이 전제로 하는 수사와 재판 과정이 제도적·심리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형법은 임신·출산·양육과 관련해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법률이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출산 과정에서 생물학적·신체적 위험을 수반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다. 만일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출산했다면 그 법적 책임을 모두 혼자서 부담해야 한다. 저자는 출산이 여성 혼자서 가능하지 않은 만큼 법률적 책임 역시 친부가 함께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와 같이 형사처벌 일변도로 일단 임신만 하면 거의 무조건 출산해서 여성이 키워야 하는 부담을 안겨주는 제도로는 여성들이 점차 비출산이라는 선택을 하는 방향을 되돌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은 출산 기계가 아니다. 따라서, 임신 · 출산 · 양육과 그 결과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냉혹한 심리학적 · 법률적 현실을 모두 그대로 알려주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되, 임신 · 출산 · 양육을 진정으로 원하고, 훌륭히 직업 생활까지 해내는 여성들을 위해 경력과 소득을 희생하지 않고도 해낼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
진실과 정의에 대해 부단히 성찰하는 진정성 있는 시민들이 모일 때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시종일관 주장하는 바는 ‘귀찮아야’ 한다는 점이다. 검찰의 입장, 미디어에 의한 일방적인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을 게 아니라 매순간 의심하고 면밀히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모든 사안에 관해 성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귀찮은’ 일이다. 그럼에도 ‘귀찮아야’ 한다. 꼼꼼해야 속지 않는다. 정치철학자 레셰크 콜라코스키는 “정치에서는 속았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 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누군가가 하나의 의견만을 강요할 때 늘 판단의 자율권을 주장하고, 스스로 자료를 찾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도 ‘귀찮아야’ 지켜지는 것이다. 시민들이 거래 조건, 건강, 삶의 질 모든 측면에서 불이익한 포지션이 되도록 국가와 기업이 담합할 때, 광고나 미디어가 선동하는 이미지가 의심스러울 때 조금 더 생각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주체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귀찮아야 민주주의고, 까칠하게 잘 따져야 법치주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