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누가, 왜, 시를 읊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즐겼는가’
중국 고전시, 그 풍류를
시회의 역사로 알아보다!
문화는 창조한 자가 아니라 향유하는 자의 것이다.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가 왜 어떻게 향유하느냐, 즉 즐겼느냐다. 중국고전문학 박사 강필임 교수의 『시회의 탄생』은 중국 고전시를 문학이 아니라 문화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누가, 왜, 시를 읊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즐겼는가’.
시진핑 주석은 작년 초, ‘2015 중국 방문의 해’ 개막식 축전에서 “동쪽 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는 신라 최치원의 시구를 인용했다. 공자가 “시를 배우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가 없다”고 했듯, 중국은 가히 ‘시의 나라’다. 어떻게 중국은 시의 나라가 되었을까?
이 책은 ‘시 짓기 모임’인 시회(詩會)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낸다. 시 90편과 당대 지식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 34점은, 백거이와 원진이 우정을 나누며 지은 시, 이백과 두보가 시에 대해 주고받은 생각, 시회에서 도연명의 모습 등의 일화와 어우러지며, 시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연한다. 총 3부 중 1부는 시회의 의의와 탄생 배경을, 2부는 사회적 기능과 발전 과정을, 3부는 시회에서 주고받은 시 작품을 다룬다.
목차
시회는 문학공간이자 문화공간이었다·머리말
제1부 풍류, 시로 즐기다
1 동아시아 문화와 시회
1. 시의 맛, 시인의 멋, 시회에서 완성되다 | 2. 시의 나라, 시회에서 예술을 입히다 | 3. 과거, 시회에서 기원하다
2 시회의 개념
1. 시회의 정의 | 2. ‘시회’ 용어의 출현 | 3. 시회, 시사, 백일장, 살롱
3 시회의 기원
1. 부시언지와 시가이군 | 2. 인재집단의 운용 | 3. 문인아회의 풍류 | 4. 풍류회에서 시회로
4 시회의 탄생배경
1. 문학에 대한 가치관념의 변화 | 2. 문인의 주체의식 강화 | 3. 인물품평과 인재선발 | 4. 종이 사용의 확대 | 5. 놀이적 본능과 풍류적 삶
제2부 시의 나라가 열리다
5 시회의 재구성
1. 서원아회 | 2. 죽림아회 | 3. 금곡아회 | 4. 난정아회 | 5. 백련사아회
6 시회의 확장
1. 시회 확장의 배경 | 2. 가족 시회 | 3. 친왕 문학집단 | 4. 문인 시회
7 시회의 문화
1. 시회의 시간과 공간 | 2. 시회의 진행방식 | 3. 시회의 경쟁과 평가 | 4. 시회와 유희 | 5. 시회와 문학후원, 패트런 | 6. 시회와 문학전파
제3부 시의 맛, 시인의 멋
8 시회와 문학
1. 시회의 창작 체재 | 2. 시회와 시가 내용 | 3. 시회와 시가 형식
9 시회의 작품
1. 출사, 시로써 나를 알리다 | 2. 우리네 인생길이 같을진대 | 3. 그대 마음 이어 짓노라 | 4. 시로 맺은 인연 | 5. 함께 겨루고 배우고
느림과 여유의 소통공간·맺는말 | 주註 | 참고문헌
저자
강필임
출판사리뷰
누가, 왜, 시를 읊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즐겼는가’
중국 고전시, 그 풍류를
시회의 역사로 알아보다!
문화는 창조한 자가 아니라 향유하는 자의 것이다.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가 왜 어떻게 향유하느냐, 즉 즐겼느냐다. 중국고전문학 박사 강필임 교수의 『시회의 탄생』은 중국 고전시를 문학이 아니라 문화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누가, 왜, 시를 읊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즐겼는가’.
시진핑 주석은 작년 초, ‘2015 중국 방문의 해’ 개막식 축전에서 “동쪽 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는 신라 최치원의 시구를 인용했다. 공자가 “시를 배우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가 없다”고 했듯, 중국은 가히 ‘시의 나라’다. 어떻게 중국은 시의 나라가 되었을까?
이 책은 ‘시 짓기 모임’인 시회(詩會)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낸다. 시 90편과 당대 지식인의 모습이 담긴 그림 34점은, 백거이와 원진이 우정을 나누며 지은 시, 이백과 두보가 시에 대해 주고받은 생각, 시회에서 도연명의 모습 등의 일화와 어우러지며, 시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연한다. 총 3부 중 1부는 시회의 의의와 탄생 배경을, 2부는 사회적 기능과 발전 과정을, 3부는 시회에서 주고받은 시 작품을 다룬다.
풍류, 시로 즐기다
시회는 고대 중국 문인들이 시를 주고받으며 즐겼던 회합으로, 중국이 시의 나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대의 문인이 소설이나 시를 전문적으로 창작하는 직업인에 가깝다면, 고대의 문인은 ‘지식인’에 가깝다. 이들은 풍류를 즐겼고, 풍류를 알아야 진정한 사대부라고 생각했는데, 그림·악기·노래와 함께 ‘시’가 그 중심에 있었다.
시는 자기실현의 덕목이자 사회적 교류를 위한 필수 교양이었다. 문인들은 시회를 열고 만남·이별·축하 등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시를 지어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소통했다. 오죽하면 맹교가 “지극한 친구는 오로지 시뿐”이라거나 “백 년 인생 뜻 맞는 일 없어도 괜찮지만, 하루라도 시를 짓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라고 했을까.
시회에서는 우주·인생·자연을 주제로 하는 철학적인 담론이나 문학의 가치관과 형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시를 짓고 주고받으며 비평했다. 모임 개최자가 제시한 주제와 형식에 따라 시를 짓거나 시간차를 두고 서로 시를 주고받기도 했는데, 때론 좋은 시를 지은 사람에게는 상을,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회는 지적·문학적 재능을 겨루는 경쟁의 장이 되었고, 조정의 연회나 왕의 주연 등 공식적 자리에서 개최되면서 출세의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시 짓기 자체를 즐기려는 시회도 빈번하게 열렸다. 깊이 있는 사상보다는 산수유람이나 음주가무를 하면서 그때그때의 감정을 가볍게 표현했고, 여러 명이 단어나 구법 등의 기교에 치중하며 한 구절씩 번갈아 말해 하나의 시를 짓는 문자유희를 하기도 했다.
시회는 무거운 경쟁의 장이, 가벼운 유희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중국의 지식인은 이렇게 시를 주고받으며 삶 자체를, 그 풍류를 즐겼다.
시의 나라가 열리다
2006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은 “언젠가는 모름지기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의 작음을 굽어보리라”는 두보의 시구를 인용했는데,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대국으로 성장하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이 시구에서 드러난 것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시를 건네 마음의 뜻을 말한다’는 ‘부시언지’(賦詩言志)는 한자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문화다. 중국에서는 사신을 파견할 때나 이들을 맞을 접빈사를 뽑을 때 글솜씨가 뛰어난 문인을 선발했다. 외교에서 주고받는 시는 지은이 개인의 지적·문학적 역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의 대표로서 국가적 역량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식인에게 시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관점에서 중요했다. 시회에서 지은 시는 인재를 발탁하는 데, 특히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주요한 평가 기준이 되었다.
한나라 때에는 유학의 경전이 절대적으로 중요했고, 문학은 노래나 춤 같은 오락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은 위진 시대부터 바뀌는데, 조조의 아들로 위나라 황제에 오른 조비는 “문장은 나라를 경영하는 위대한 일이며, 영원히 썩지 않는 성스러운 일이다”라고 했다. 문학이라면 죽은 후에도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이라 여겨, 문인집단을 만들어 권력기반으로 삼고 연회에서 직접 시를 짓기도 했다. 이후 남조 시대의 문화정치와 문벌사족의 몰락, 당나라의 과거제도와 천거문화 등으로 시회문화는 크게 확장된다.
여기서 시는 어디까지나 신분상승을 위한 것으로, 개인의 문학적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권력자나 문단 핵심인사의 마음에 들기 위해 집단적·보편적 감성 위주로 창작을 했고, 결과적으로 시회는 권력에 종속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과거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당나라 중기 이후 약화되는데, 이 시기부터 문인들이 시회를 순수한 교류 행위로 인식하면서 그 정치적 권위가 희석되었다. 자연스레 시회는 순수한 정서적 교류나 문학창작 모임이 되면서 보편적이고 상시적인 문화로 자리 잡는다. 바야흐로 시의 나라가 열린 것이다.
시의 맛, 시인의 멋
중국 고전시는 한자의 특징을 십분 발휘한 정신문화 유산이다. 한 구절당 5글자, 7글자 등의 제한된 형식 내에서 풍부한 어휘를 이용해 심도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고, 단음절의 특성상 시에 운율미를 더할 수 있다. 이러한 시의 예술성은 시회를 통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궁정을 중심으로 하던 시회문화가 궁정 밖으로 확대되면서 시회는 권력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감상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위진 교체기 때의 문인집단인 죽림칠현(완적·혜강·산도 등)은 죽림, 말 그대로 대나무 숲에 모여 시를 주고받으며 유연자적했다. 이들은 자연을 벗 삼아 육체와 정신의 평화를 노래했고, 이를 시에 담았다. 당나라의 대표 시인 백거이는 막역한 원진과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었고, 가기(歌妓, 노래하는 기생)인 설도는 남성 문인들과 안부를 묻는 시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발휘했다.
중국의 지식인에게 시회는 지적·예술적 교류의 장이자 사상과 문학을 공유하는 고급 문화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성을 나누는 ‘소통공간’이었고, 이들은 서로 비평하고 경쟁하고 위로하고 그리워하고 걱정해주며 함께 삶을 즐겼다. 시의 맛에 흠뻑 빠진 중국의 지식인, 이들의 시에는 이처럼 때론 치열하게, 때론 유연자적하게 살아가는 시인과 그 삶의 멋이 담겨 있다.
소통의 문학을 꿈꾸며
지은이 강필임은 세종대학교 중국통상학과 교수로, 베이징대학교에서 중국고전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국 고전시를 현대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고전시가 지적·예술적 문화이며 ‘소통’ 문화이기 때문이다. 시회는 사상과 문학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열린 모임이었다.
소통은 단순히 의사전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교류하는 것이다. 끝을 모르고 치닫는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은 감성의 교류가 단절된 채 서로를 외면하면서, 삶은 더욱 치열해지고 각박해져만 가고 있다.
시회의 탄생 초기에는 중국의 지식인도 지금의 우리처럼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이후 시회는 서로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며 안부를 묻는, 감성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확대되면서 삶의 중심이 되었다.
단절의 시대, 고독한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감성이고, 경제가 아니라 문화다. 지은이는 옛 지식인의 ‘소통문화’에 주목하면서 문학이 소통의 공간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