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HAN JIN-SUB: ART OF STONE은 한국 조각을 이끌어가는 대표 조각가 한진섭의 작품세계를 정리한 책이다. 1981년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4년 제12회 개인전까지의 주요 작품에다 공공미술 성격의 야외 설치 조각이나 성(聖)미술인 교회 조각 중 대표 작품을 더해 작품 200여 점의 사진을 실었다. 300*360이라는 큰 판형의 장점을 살려 작품을 실물로 보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했다. 사진뿐만 아니라 한진섭의 작품세계와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글 20편에 가족들의 응원 섞인 글 5편을 더했다. 단순히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채운 ‘도록’이 아닌 ‘한 권의 책’으로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게 편집했다. 무엇보다 각 장을 시기별이 아닌 주제별로 구성해, 한 장 안에서도 다양한 작품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목차
한진섭의 해학조각│김형국
프롤로그
인간에 대한 뜨거운 긍정│윤진섭
담박한 형태 속에 깃든 한국인의 정서│감윤조
지상낙원을 실현하고 상처를 보듬는 조각│고충환
기원
동양미를 추구하는 젊은 조각가│전뢰진
한진섭 조각전에 부쳐│이경성
기하학적 단순성
새로운 미 철학에 대한 심리적 표현│전뢰진
한진섭과 이탈리아 미술세계의 만남│리노 잔니니
인간의 의문에 정열로 응답하는 작가│레나토 치벨로
자연을 쌓아 올리다
원시미술의 동경, 민속미의 조형│원동석
형상의 불길│로도비코 지에루트
해학과 유머
인위를 벗어나는 인위작업│최승훈
덩어리와 양감
돌의 사회학│오유근
하모니
장인 기질로 엮어온 환상의 변주곡│이일
동물의 천국
동물나라, 신뢰와 조화의 성채│최태만
휴머니즘
수더분한 이웃들의 초상│윤범모
한진섭의 마음을 보는 순간들│박영남
붙이는 조각
새로운 석조의 등장│고종희
교회 미술
천주교 원주교구 대화성당│고종희
요한이 두 손을 모으니 신비로운 성수대가│한진섭
조각가의 놀이터
구수한 한국 조각│한진섭
에필로그
행복한 조각가, 행복한 남편│고종희
지금에서야 더 이해하게 된 아버지│한순규
내 남편의 아버지는 조각가│최문정
아버지 한진섭 VS 조각가 한진섭│한창규
시아버지는 나의 연구과제│조혜정
연보
저자
한진섭
출판사리뷰
‘인간애’로 똘똘 뭉친 조각가 한진섭
한진섭은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공부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조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다가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실기를, 피사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나 피사대학교는 모두 피에트라산타 지방에 있는 학교인데, 이곳의 대리석은 질이 매우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세자르, 포모도르 등 수많은 거장이 거쳐 간 이유가 그것이다. 피에트라산타에서 한진섭은 10여 년간 유학하며 거장들의 기술과 노하우를 마음껏 익힐 수 있었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에도 줄곧 대리석이나 화강석을 다뤄왔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돌이 모두 모이는 그곳은 나에게 이상적인 곳이었고 제자리를 찾아온 셈이 되었다.” _ 32쪽
프랑스 디녜국제조각심포지엄(1985). 한진섭은 3등상을 받는다.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진섭은 유학 초기부터 다양한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상을 받는다. 카라라국제조각심포지엄 1등상(1983), 파나노국제조각심포지엄 특별상(1984), 프랑스 디녜국제조각심포지엄 3등상(1985), 로댕미술대상전 우수상(1990)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후 한진섭은 정통 서양 조각에 매진했을까. 물론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는 정통 서양 조각의 언어를 따라 대칭적인 기하학적 형태의 작품을 많이 만들었지만 귀국 후부터는 유기적(有機的)인 형태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유기적인 형태’는 한진섭 작품세계의 특징이다. 유학 전의 작품들도 대부분 유기적인 형태였지만 유학을 통해 더욱 밝아지고 자신감 있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유기적인 형태란 곧 유기적인 결합, 유기적인 전체를 말한다. 한진섭의 작품은 부분과 부분이 모여 전체를 이루고, 관객과 작품이 만나 특별한 경험을 만든다. 그래서 ‘유기성’은 자연스럽게 ‘인간애’로 이어진다.
“그 조각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조각을 관통하는 작가의 세계관이며 자연관이 보인다. 조각들은 부분과 부분을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조합해낸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하나의 통돌인 경우에도 대개는 머리와 몸통 그리고 다리와 같은 세 덩어리로 나뉜다. 신체의 구조를 함축하고 분화한 것이지만, 말하자면 신체의 본성 그대로를 옮긴 것이지만, 더불어 여기에는 꽤 의미심장한 의미가 탑재돼 있다. 상호 간 이질적인 기능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 통합되는 조화로운 인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_ 49쪽
“한진섭의 조각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뜨거운 긍정에서 나온다”고 한 미술평론가 윤진섭의 말처럼 한진섭은 인간애라는 영원한 가치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한다. 물론 이 인간애는 ‘인간만 사랑한다’는 종(種)적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넘어 사랑한다’는 뜻에 가까울 것이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부분과 부분이, 머리와 몸통과 다리가, 나와 네가, 사람과 동물이, 사람과 사물이, 동물과 사물이, 사람과 세계가 어우러지는 이유다. “그의 조각에선 심지어 동물과 사물에서마저 인간의 것과 같은 피가 흐른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조각가 한진섭
한진섭 조각이 품은 인간애는 형태적인 면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으로 드러난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한진섭은 이탈리아의 거장들처럼 사실적인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최근 대세인 하이퍼리얼리즘 작업을 하지도 않는다. 대신 자기만의 인간상을 창조한다. 미술평론가 윤범모는 “한진섭의 돌조각에서 잃어버린 인간상을 만난다”고 하면서 이를 ‘질박미’로 정의한다.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한국미의 전형이다. 여기서 질박미가 나온다. 사치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화려함을 즐긴다.” _ 323쪽
「봉숙이」, 1998, 대리석, 40×22×40cm.
이런 특징은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대리석은 입자가 작고 조직이 부드러워서 갈아내는 석조기술이 발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 화강석은 입자가 크고 단단해 정과 망치로 쪼아내는 석조기술이 발달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섬세하고 자세하고 날카롭게 묘사하기보다 절제하고 생략한다. 이는 여백의 미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인 고유섭의 말처럼 ‘구수한 아름다움’이다.
한진섭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누구보다 뛰어난 석조기술을 갖춘 그이지만 누구보다 자연을 존중한다. 결을 따라 정을 대고 어떤 작품은 돌의 생김새를 있는 그대로 살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망치질을 생략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는 고도의 기교가 필요하다. 진짜 기교는 기교를 부리지 않은 듯 보인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갈고닦은 석조기술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참기교는 기교가 숨어 있는, 아니 기교를 부리지 않은 기교라야 한다. 한진섭 작업의 장점은 이러한 측면에서 찾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에는 모가 나 있지 않다. 항상 둥그스름한 선으로 편안함을 제공한다. 직선의 기계적인 자태는 그의 선이 아니다. 거기다가 한진섭의 형태는 비균제(非均齊)를 이룬다. 이렇듯 비대칭의 형태는 고유섭이 말한 한국미의 특성과도 일치한다. 비균제와 곡선으로 이루어진 돌조각은 한국미의 원형과 맥락을 같이한다.” _ 324쪽
끊임없이 새로움을 시도하는 조각가 한진섭
이처럼 한진섭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한 작가다. 예술가로서 고유한 스타일을 갖췄다는 것 이상의 성취가 또 있을까. 그런데 한진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기 스타일을 끊임없이 확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붙이는 조각’이다. 붙이는 조각은 특수재질로 모형을 만든 후 표면에 돌을 깨서 만든 조각들을 붙이고 그 사이를 메지(めじ)로 메우는 방식이다. 메지는 쉽게 말해 ‘줄눈’인데 일반 모자이크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재질의 느낌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관상 조각과 모자이크를 합친 이 방식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 들이는 노력과 시간이 일반적인 조각 작품보다 세 배 이상 든다. 이 때문에라도 다른 조각가들은 선뜻 시도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한진섭은 특유의 성실함과 집요함 그리고 뛰어난 석조기술로 점점 붙이는 조각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만의 새로운 스타일이며 미술사가 고종희의 말처럼 ‘혁신’이다.
“미술에서 혁신이란 전혀 새로운 것의 발견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 하나를 보태거나 새롭게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았다. 새롭게 바라볼 수만 있어도 혁신은 가능하다. ‘붙이는 석조’ 역시 기법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석조에 적용한 것은 혁신이다.” _ 354쪽
대화성당 제단. 왼쪽부터 「독서대」 「제대」 「십자고상」 「감실」이다.성미술인 교회 조각도 한진섭이 집중하는 분야다. 급격한 근대화와 발맞춰 급격한 성장을 이뤄낸 한국교회의 특성상 십자가나 제대 등 성물(聖物)은 대부분 기성품 일색이다. 밤이 되면 빨간색 네온 불빛을 쏘아대는 십자가가 대표적이다. 물론 성물의 역할은 감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미술은 신자들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도록 해야 하고 전례상의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성미술이 아직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에서 한진섭이 교회 조각에 공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화성당은 그의 노력이 깃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가 「종탑 위의 십자가」 「십자고상」 「제대」 「감실」 「독서대」 「성수대」 「십자가의 길」을 작업한 대화성당은 이 작품들 때문에 지금은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성경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그 세상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기록한다. 이는 성경의 제일 앞부분에 나온다. 그만큼 기독교 전통에서 ‘보는 것’과 ‘아름다움’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한진섭의 교회 조각은 우리나라 성미술의 ‘창세기’를 기록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