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눔과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한 조선의 여인
『음식디미방』장계향의 실천적 삶을 조명하다!
신사임당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여성은 부모와 남편에게 순종적이며 자식을 반듯하게 길러내는 현모양처를 이상으로 여겼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뿌리 깊게 자리 잡아 7~80년대 어머니 세대까지도 남존여비의 관념이 남아 있었다. 요즘 세대는 대체적으로 여성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도 사회 각계에서는 남녀평등과 여성의 지위에 대한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지만 가정과 사회에 모두에서 여성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기, 시대에 순응하면서도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며 사랑과 나눔으로 자신만의 실천적 길을 걸었던 비범한 조선의 여성이 있다. 한글로 된 최초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계향(1598~1680)이다. 장계향은 일상생활에서 조화의 덕이 가장 잘 구현된 것이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재료로는 맛을 낼 수 없고, 한 가지 색깔만으로는 무늬를 만들 수 없으며, 똑같은 소리로는 화음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년에 쓴 『음식디미방』은 이런 그의 맛의 철학을 잘 담고 있다. 한글로 된 최초의 요리서로서, 아시아에서 여성에 의해 쓰여진 가장 오래된 조리책이라는 점에서도 극찬을 받고 있지만, 단순한 요리 방법뿐만 아니라 요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는 문화유산일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나눔과 맛味의 철학자
제 1 장 요동치는 16세기 조선
울부짓는 백성들
임진왜란이라는 재앙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존명을 부르짖는 대신들
역사의 이순신
제 2 장 성인聖人을 기다리다
파당을 지어 논쟁하는 무리들
조선의 경敬의 철학
경당 장흥효와 심학
깊어지는 학문
계향이 태어나다
제 3 장 계향桂香의 영혼에 새긴 세상풍경
퇴계의 심학
옥연정사로 유성룡을 찾아가다
질문이 많은 아이
『소학』에 담긴 뜻
노비도 백성이다
제도의 모순을 잡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제 4 장 어떻게 행할 수 있는가
「적벽부」를 노래하다
아홉 상에 첫 시를 짓다
초서의 세계
서애 유성룡이 스러지다
국경수비대로 끌려간 아들
초서로 쓴 「학발시」
「학발시」의 세계
두보와 이상사회
제 5 장 천지와 만물이 본래 나와 한 몸이니
경광서당의 시대가 열리다
남녀가 유별한가
딸을 제자로 삼다
청년 이시명의 방문
홀로 있음의 뜻을 알다
어머니가 앓아눕다
음식에는 하늘의 이치가 들어 있다
어머니가 주신 선물
운명의 소용돌이
제 6 장 나랏골의 꿈
나랏골에 터전을 잡다
사위가 되어주기를 청하다
조선의 혼례
혼례를 올리다
충효당 시대를 열다
참으로 갈망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전처 자식을 업고 다니다
사람도 재물도 흐르는 물과 같구나
나눔을 실천하다
몰려드는 빈민들
제7장 베를 짜 가난을 구제하다
여자에서 어머니까지
돕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
첫 아이를 낳다
살기 위해 인을 해치지 않는다
노복들의 처소에 간 안주인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다
번창하는 집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세상 근심 지금도 못 다 사라졌거늘
운악과 경당이 세상을 떠나다
제8장 재물이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
못 다한 효를 참회하다
애민의 참모습
글로써 자식을 모으다
재물은 구차하게 얻으려 말라
세상의 시기를 받다
소유란 과연 무엇인가
온 마을에 역질이 돌다
두 딸을 잃다
다른 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
제9장 선구자의 기쁨과 슬픔을 넘어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다
황무지를 개간하다
하늘이 낸 백성 가운데 먼저 깨달은 이 누구인가
나는 세상의 부귀를 바라지 않네
하늘의 일과 땅의 일
아내에게 바치는 제문
「갈암기」를 짓다
시에 수를 놓다
금일이 태평하기를 비나니
아버지와 아들, 시를 주고 받다
네가 맛을 아느냐
『음식디미방』 저술하다
나눔의 기적
도토리를 활용하다
노비들을 놓아주다
길고 긴 삶을 정리하다
태정부인 장계향
주
참고문헌
장계향 연보
저자
정동주
출판사리뷰
“성인의 도는 세상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데 그 궁극이 있는 것이지,
도를 닦는 한 개인의 성취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라 욕심이라 배웠습니다.”
“함께 사는 것이 우주의 질서다.
함께 사는 최고의 도덕률은 나누고 돌봐주는 것이다.”
나눔으로 애민을 실천한 조선의 여중군자 장계향
성리학을 사상적 지주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신사임당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여성은 부모와 남편에게 순종적이며 자식을 반듯하게 길러내는 현모양처를 이상으로 여겼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뿌리 깊게 자리 잡아 7~80년대 어머니 세대까지도 남존여비의 관념이 남아 있었다. 우리사회에서 여권 신장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요즘 세대는 대체적으로 여성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도 사회 각계에서는 남녀평등과 여성의 지위에 대한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지만 가정과 사회에 모두에서 여성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기, 시대에 순응하면서도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며 사랑과 나눔으로 자신만의 실천적 길을 걸었던 비범한 조선의 여성이 있다. 한글로 된 최초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계향(1598~1680)이다. 장계향은 여성의 학문적 지위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시대를 살다간 양반가의 여인이다. 어릴 적부터 시?서?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여러 작품들을 남겼으며 출가한 후에도 친정과 시댁 부모님을 정성으로 봉양하고, 어질고 바른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고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이 이조판서를 지내면서 정부인의 품계를 받았다. 장계향은 퇴계 이황과 한강 정구, 서애 유성룡의 경(敬) 사상을 이어받은 아버지 경당 장흥효에게서 성리학적 가르침을 사사 받았다. 인간의 가치와 인간다움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위해서는 성별과 신분에 따라 물적 소유의 많고 적음, 지식의 높고 낮음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시기에는 공존의 필요성을 깨닫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돌보고 나누는 일에 힘을 쏟았다. 물적 소유의 떳떳함을 선택하고 하층민의 삶에 다가가 소통하고 나눔으로써 진정한 애민(愛民)을 실천한 것이다.
소설가 정동주가 복원해낸 장계향의 실천적 삶
정동주는 그동안 시와 소설, 마당극이나 오페라 등에서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활동해온 작가이다. 조선의 막사발이나 소나무, 차(茶)와 같은 소재를 통해 민족 정체성을 드러내는 인문학적 연구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 인격적 주체로서의 여성에 주목했다. 이 책은 장계향이 남긴 시와 그림 작품, 『국역 갈암집』, 「선비 증정부인 장씨 행실기」, 『음식디미방』등의 1차적 자료에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을 더해 장계향의 삶을 재조명했다. 인문학자답게 『음식디미방』 저자로서의 장계향 뿐만 아니라 사상가, 교육자, 시인, 화가, 사회사업가 장계향의 삶을 균형 잡힌 시각과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했다. 시대를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본분과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나눔을 몸소 실천한 장계향의 일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할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배운 여성성리학자
장계향은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 한강 정구로부터 퇴계의 심학(心學)적 도통(道統)을 이어받은 경당 장흥효의 외동딸이다. 일찍부터 『소학』과 『십구사략』 등을 깨우쳤고, 열 살을 전후한 시기부터는 시?서?화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여러 작품을 남겼다. 장계향이 쓴 최초의 시 「성인음」(聖人吟)은 지적 희열을 느낀 순간 ‘성인’을 지향하며 쓴 시이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생계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병들어 누운 할머니에게 직접 죽을 쑤어주고 돌아와 쓴 「학발시」(鶴髮詩)에서는 하층민들의 처절한 삶을 깊은 통찰력으로 표현했다. 이외에도 「경신음」「소소음」「맹호도」초서체로 쓴 「적벽부」등의 작품이 있다. 현재까지 조선시대 양반 여성들이 쓴 시들이 몇 수 남아있지만 대개는 자연이나 유교적 덕목에 대한 주제로 한정되었다. 이 책에서는 학문적 감회나 철학적 사색이 느껴지는 장계향의 작품을 자세히 다루었다. 신분의 장벽을 문제로 여기지 않고 사람에게 공감하고 시대의 고통을 절감하며 남긴 작품들을 통해 여성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실천적 성리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장계향을 만날 수 있다.
배운 것을 실천하고, 가진 것을 나누다
“천하인이 다 배고프면 나 혼자 어찌 배부를 수 있겠으며 천하인이 다 악하다면 나 혼자 선하기는 어렵겠지요. 천하인이 모두 굶주리는데 나만 배부르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천하인이 다 선하다면 비록 나 혼자 악하더라도 끝내는 선으로 교화되겠지요.”
16~17세기 조선은 사회?경제적으로 혼돈과 고난의 시대였다. 지속적인 흉년과 반복되는 전란으로 기근과 질병이 만연했다. 붕당 정치로 대변되는 성리학의 변질, 관료의 부패는 평민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정유재란 이후 험난한 시기에 태어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가난한 이들을 구휼하고 나눔을 실천한 장계향의 삶에 특히 주목했다.
퇴계 심학의 근본은 지와 행의 일치였다. 지와 행의 기본이 성(誠)이라면 성을 이루려는 노력은 경(敬)이다. 장흥효는 늘 딸에게 경(敬)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만물의 관계를 살펴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 서애 유성룡의 정치적 개혁정신과 인간평등 사상 역시 장계향에게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의 제자 이시명과 혼인한 후 나랏골 충효당의 큰살림을 도맡게 된 장계향은 어른들의 허락 하에 재령 이씨의 재물을 구휼에 사용했다. 재물로 부족한 것은 도토리나무를 심어 공평하게 나누어주고 때마다 넉넉히 베를 짜서 보관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신분에 구애 받지 않고 겸손과 덕으로 노복들에게도 인격적 대우를 행했다. 이시명과 장계향은 정당하게 상속받은 재산이 있었지만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어 사는 가난한 삶을 택했다. 인류애적 나눔, 지식과 실천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물적 소유의 떳떳함을 선택한 장계향의 삶은 이기심이 만연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이웃과의 소통과 공존에 대한 교훈을 준다.
『음식디미방』, 맛의 조화는 인간 삶의 조화
장계향은 일상생활에서 조화의 덕이 가장 잘 구현된 것이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 재료로는 맛을 낼 수 없고, 한 가지 색깔만으로는 무늬를 만들 수 없으며, 똑같은 소리로는 화음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섞여 다양한 차이가 어우러지고 통일성을 이룬 것이 ‘맛’이다. 음식의 재료에도 생명이 있으므로 소중히 다루어야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식은 그 자체로도 조화로운 것이지만 인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장계향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눔을 통해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장계향이 말년에 쓴 『음식디미방』은 이런 그의 맛의 철학을 잘 담고 있다. 한글로 된 최초의 요리서로서 장계향은 특별히 이 책을 언문으로 적어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요리의 재료가 모두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며 밥상을 차려 사람을 먹여 살리는 여성도 조선의 여성이며, 이 책을 읽는 사람도 조선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음식마다 다른 맛이 모여 화(和)가 되고 화는 맛을 만들고 그 맛이 조선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외래문자로는 그 맛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 장계향의 음식철학이다. 『음식디미방』에는 146가지 음식의 조리과정이 한글 구어체로 자세히 적혀 있어 지금도 그대로 재현이 가능할 정도이며 조선시대 손님접대와 식생활문화 연구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아시아에서 여성에 의해 쓰여진 가장 오래된 조리책이라는 점에서도 극찬을 받고 있지만, 단순한 요리 방법뿐만 아니라 요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는 문화유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