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셰익스피어학회 교육이사이자 셰익스피어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권오숙이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작품을 분석한다. 영국의 시인 벤 존슨이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가 아닌 만세(萬世)를 위한 작가”라고 평했듯이, 오늘날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상연될 뿐 아니라, 현대의 많은 작가도 그의 작품을 패러디?모자이크하며 재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일반 독자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 방법론에 관한 논의는 많지 않다.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는 문학의 정전(正典)으로 알려진 셰익스피어 작품을 ‘정치·법률사’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계급 갈등’ ‘타자성’ 등 현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햄릿』 『맥베스』 『한여름 밤의 꿈』 등 기존에 많이 알려진 희·비극 외에도 『리처드 3세』『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줄리어스 시저』 등 사극(史劇)과 시집까지 포함했다. 누구라도 쉽게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에 접근할 수 있도록 총 10가지 키워드로 본문을 정리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주제로 한 명화 60점을 곁들였다.
목차
영국의 르네상스 시대, 천재작가를 낳다
1 문학계의 모나리자
『햄릿』
2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랩소디
『리어 왕』
3 어리석은 인간의 권력욕
『맥베스』 『리처드 3세』
4 의처증 3부작
『오셀로』 『겨울 이야기』 『심벨린』
5 셰익스피어의 상상력 세계
『한여름 밤의 꿈』 『폭풍우』
6 셰익스피어의 법률 희곡
『베니스의 상인』 『자에는 자로』
7 셰익스피어의 사랑극
『로미오와 줄리엣』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8 셰익스피어와 타자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폭풍우』
9 영웅 없는 영웅 이야기
『줄리어스 시저』
10 셰익스피어 정염(情炎)의 시
『소네트집』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겁탈』
주註
셰익스피어 희곡 간략 소개
셰익스피어를 알기 위해 더 읽어야 할 책
셰익스피어를 이해하기 위한 용어해설
셰익스피어에 대해 묻고 답하기
셰익스피어에 대한 증언록
셰익스피어 연보
저자
권오숙
출판사리뷰
인간들의 실존적 비극
우리는 울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바보들만 득실거리는 이 거대한 무대에 나온 것이 슬퍼서.
-『리어 왕』제4막 6장 162-63행(132쪽)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리어 왕』『맥베스』『오셀로』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비극처럼 운명이나 신탁이 아닌, 인물의 욕망으로 발생한 비극을 다룬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욕망이 비극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비이성적인 본능과 욕망이 난무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낀 햄릿은 아버지를 독살한 숙부에게 복수를 감행하다가 목숨을 잃는다. 세상에 대한 회의가 가득했던 그는 만인이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진실에 도달한다. 오셀로는 많은 이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성을 가졌지만 타인의 계략에 빠져 아내의 정절을 의심하고 질투하다가 파멸에 이른다. 리어 왕은 첫째 딸과 둘째 딸의 교언영색에 넘어가 분별력을 잃고 모든 권력을 두 딸에게 양도한다. 그러나 두 딸의 탐욕 때문에 리어 왕은 막내딸과 모든 권력을 잃고 그제야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 권력 찬탈이라는 단 하나의 야망만을 가지고 살아온 맥베스는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결국 왕이 되지만 곧 권력을 빼앗기고 허망함에 휩싸여 죽음을 맞이한다.
4대 비극의 등장인물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좇아 어리석은 선택을 하거나 유혹에 빠져 비극을 초래한다. 셰익스피어는 그들의 심리와 행동을 상세히 묘사해 탐욕, 질투, 야망, 배신 같은 인간의 본성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련한 실존적 비극까지 통찰하게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한 것과, 현대심리학이 망상성 장애를 ‘오셀로 증후군’(Othello Syndrome)이라고 일컫는 데서도 셰익스피어가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주목했음을 보여준다.
연극의 허구성과 인생의 허망함
연극이란 잘 해도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오.
서툰 연극이라도 상상으로 메우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법이오.
-『한여름 밤의 꿈』제5막 1장 208-209행(235쪽)
지배 담론에 도전하다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독특한 종류의 작품”으로 “어느 하나를 잃으면 어느 하나를 얻게 되는 세상의 이치”를 밝혀냈다고 평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본성을 다룬 비극뿐 아니라 유쾌하고 소극(笑劇)적 장면이 많은 희극도 집필했다. 그러나 그의 희극은 단순한 즐거움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다. ‘연극의 허구성’과 ‘인생의 허망함’은 그의 희극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사상이다. 셰익스피어는『폭풍우』『한여름 밤의 꿈』 등에서 비논리적인 판타지 요소인 요정과 마법 등을 활용해 연극의 허구성을 강조한다. 『폭풍우』에서 프로스페로는 마법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찬탈한 알론조 왕에게 복수한다.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요정들의 장난과 마법, 환영은 어떠한 의도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의 삶이 초자연적 존재들의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세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또 『폭풍우』『한여름 밤의 꿈』『말괄량이 길들이기』등의 희극에는 극중극이 등장해 극작가가 무대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사건이 결국 허구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환상성과 극중극을 통해 우리 인생이 연극처럼 허망한 일장춘몽임을 주장한다.
“주체는 권력이 생산해낸 담론을 통해 형성되고, 변형되고, 재생산된다”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사상의 영향을 받은 신역사주의 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지배 담론을 재생산한다고 비난했다. 반유대주의를 담은 『베니스의 상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담은 『말괄량이 길들이기』, 신대륙 원주민 지배를 담은 『폭풍우』,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담은『오셀로』 등 많은 작품이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 권오숙은 셰익스피어가 ‘타자’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작품마다 담아냈다고 말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타자는 유대인 샤일록이다. 공직이나 길드에 참여할 수 없었던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대금업뿐이었으며,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유대인을 탄압했다. 샤일록은 전 유대인, 나아가 모든 억압받는 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또 셰익스피어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여성을 상품처럼 생각하는 페트루치오를 어릿광대로 묘사해 당대의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교묘하게 비판한다.『폭풍우』에서 원주민 캘리번은 반란을 꿈꾸는데 이는 피지배계급이 권력을 전복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소외되고 핍박받는 소수집단의 “비공식적인 목소리”로 가득하다. 셰익스피어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 담론도 옹호하거나 유포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대의 지배적 담론에 질문을 던지는 도전적 자세를 취했다.
이 세상 모두가 연극 무대
Totus mundus agit histrionem
셰익스피어의 존재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에 대해 남겨진 기록이 매우 단편적이어서 어떤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관점을 통합해 중립적인 극을 썼기에 정치적 성향도 모호하다. 대학교육도 받지 못한 자가 전문 지식을 담은 작품들을 쓸 수 없었다는 것 등을 이유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나 에드워드 드 비어(Edward de Vere) 등이 진짜 셰익스피어라고 거론되기도 한다.
이처럼 생애와 정체마저 모호한 셰익스피어지만 그의 작품에서 한 가지만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며, 인간들은 모두 배우”임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는 기존의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규범을 거부해 진정한 ‘영국성’(Englishness)을 보여주었고 정형화와 인위성을 뛰어넘는 ‘자연스러움’을 연출했다. 이 ‘자연스러움’은 우리의 인생, 즉 현실을 예술로 승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가 서거한 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거나 증오한다. 부조리한 세상 안에서 욕망하고 고뇌한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또다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다.
지금부터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세에
우리의 숭고한 장면은 얼마나 자주 되풀이되어 상연될 것인가.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언어로.
-『줄리어스 시저』제3막 1장 111-13행(4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