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파농의 고뇌와 절규가 21세기 한국 독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파농의 동시대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백색 신화의 최면에 빠진 채
‘하얀 가면’을 덮어쓰고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할 때
파농과의 만남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파농: 니그로, 탈식민화와 인간해방의 중심에 서다]는 탈식민화와 인종주의 철폐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61)의 생애와 활동 그리고 사상을 다룬 책이다. 저자 이경원(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은 인종주의적 정신분석학을 날카롭게 비판한 정신과 의사이자 무장투쟁에 몸을 던진 혁명가 그리고 탈식민 이론가였던 파농의 다양한 면모를 10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오롯이 파농만을 다룬 책 중 국내 저자가 쓴 최초의 작업물이다.
‘니그로’의 의미, 정신의학, 자기소외, 흑인성, 유럽중심주의, 민족주의, 민족문화, 폭력, 여성해방, ‘새로운 인본주의’ 등 10가지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면 21세기 대한민국에 던지는 파농의 메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를 ‘탈식민’(post-colonial) 시대 특유의 안일함에 대한 경고라고 설명한다. 즉 ‘탈식민’ 시대는 ‘탈식민화된’(decolonized)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책은 우리의 탈식민화되지 못한 일상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목차
왜 다시 파농인가?
1 파농의 생애와 유산
하얀 가면을 벗고 하얀 세상에 맞서다
2 정신의학의 탈식민화
정신이상의 원인이 사회구조에 있음을 밝히다
3 니그로의 자기소외
흑인의 흑인혐오와 백인선망을 해부하다
4 흑인성의 재구성
왜 식민지 흑인은 의존적이고 폭력적인가
5 유럽 이론의 유럽중심주의
그들의 언어로 우리의 생각을 말하다
6 탈식민화의 변증법
투쟁의 현장에서 문화의 속성을 체득하다
7 폭력의 윤리학과 정치학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 역사의 주인이 되다
8 여성해방, 또 다른 미완의 혁명
민족의 지형도에서그녀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9 민족주의의 성과와 폐해
해방의 서사시가 억압의 알리바이로 전락하다
10 민족문화의 역사성
민족문화의 토대를 과거에서 현재로 옮기다
새로운 일본주의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주
파농을 알기 위해 더 보아야 할 자료
파농을 이해하기 위하 ㄴ용어 해설
파농에 대해 묻고 답하기
파농에 대한 증언록
프란츠 파농 연보
저자
이경원
출판사리뷰
“파농의 고뇌와 절규가 21세기 한국 독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파농의 동시대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백색 신화의 최면에 빠진 채
‘하얀 가면’을 덮어쓰고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할 때
파농과의 만남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파농: 니그로, 탈식민화와 인간해방의 중심에 서다]는 탈식민화와 인종주의 철폐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1925~61)의 생애와 활동 그리고 사상을 다룬 책이다. 저자 이경원(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은 인종주의적 정신분석학을 날카롭게 비판한 정신과 의사이자 무장투쟁에 몸을 던진 혁명가 그리고 탈식민 이론가였던 파농의 다양한 면모를 10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오롯이 파농만을 다룬 책 중 국내 저자가 쓴 최초의 작업물이다.
‘니그로’의 의미, 정신의학, 자기소외, 흑인성, 유럽중심주의, 민족주의, 민족문화, 폭력, 여성해방, ‘새로운 인본주의’ 등 10가지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면 21세기 대한민국에 던지는 파농의 메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를 ‘탈식민’(post-colonial) 시대 특유의 안일함에 대한 경고라고 설명한다. 즉 ‘탈식민’ 시대는 ‘탈식민화된’(decolonized)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책은 우리의 탈식민화되지 못한 일상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아류 제국주의 국가?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해 TV를 켠다. 순간 브라운관을 가득 채우는 걸그룹 또는 남자 배우를 넋 놓고 바라보다가 아차 싶다. 오뚝 솟은 코, 커다랗고 깊숙한 눈, 조그만 얼굴, 뽀얀 피부, 잘록한 허리와 늘씬한 다리 등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몸뚱이가 한없이 초라해진다.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컴퓨터 앞에 앉아 헬스장과 성형외과, 피부과를 검색한다.
그렇게 매일 밤 ‘서구화’된 미인도를 부여잡고 대대로 물려받은 ‘열성’ 유전자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보편적’ 가이드라인에 맞춰 우리는 지방을 불태우고 보정물을 집어넣고 뼈를 깎는다.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제 ‘지배자’들은 강제로 세금을 걷거나 자원을 수탈하거나 인신을 구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배는 미학(Aesthetics)적이다. 길거리를 가득 채운 성형외과(aesthetic)들이 암시하듯.
성형을 영어로 바꿔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엄마 뱃속에서 태아로 존재할 적부터 우리는 영어에 ‘노출’된다. 세포에 각인되는 수준이다. 영어 태교, 영어 유치원, 영어 초등학교, 국제중학교, 외국어고등학교, 토익, 토플 등 우리는 영어 일대기를 산다. 정말로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면 우리가 사는 곳은 과연 어디인가?
이 모든 현상에 대해 우리는 서구중심주의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피지배자는 지배자가 부과한 도덕을 지배자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다.” 외국인 노래자랑, 한글 백일장, 김장 실습 등은 더 검거나 더 누런 얼굴의 이주민에게 강요하는 ‘가면’이다. 적응과 정착이라는 미명 아래 모국의 문화적 뿌리로부터 잘려져 부유하는 다문화 정책 ‘수혜자’들의 삶은 늘 불안하다. 그 불안의 경계에서 혐오의 싹이 자라난다.
백색 신화에 취한 흑인 오르페우스
파농은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해방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파농이 활동하던 당시 식민지 알제리는 식민모국 프랑스에 대항해 해방전쟁을 벌이는데 이것이 바로 알제리전쟁이다. 8년 동안 100만 명의 알제리인이 희생된 이 전쟁에서 파농은 프랑스군과 전면전을 벌였던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 소속으로 활동한다. 무기와 은신처를 제공하던 그는 결국 추방당하는데 파리를 거쳐 튀니지로 망명한 후 FLN 홍보부에서 활발한 선전전을 벌인다. 그 와중에 전공을 살려 정신과 의사로서 인종주의적 정신분석학을 비판하고 대안적 치료체계를 구축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36세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민중을 위한 대의, 정의와 자유의 대의가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의사마저 나를 포기한 지금, 내 인생의 땅거미가 시시각각 짙어져 가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알제리 민중과 제3세계 민중을 생각하고 있다. (본문 61쪽)
짧은 생이었지만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사멸하는 식민주의] [아프리카 혁명을 향하여]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등 네 권의 책을 썼다. [파농]은 이 책들의 주요 부분을 저자가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데 전쟁과 시한부 삶이라는 긴박한 상황을 반영하듯 매우 생생하게 식민지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 글들을 읽다 보면 탈식민화를 향한 파농의 간절함뿐만 아니라 묘한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데 파농 당시의 식민지 상황과 오늘날의 ‘탈식민화된’ 상황 사이의 닮은 모습 때문이다.
우리에게 영어가 있듯 파농에게는 프랑스어가 있었다. 놀랍게도 유년시절의 파농은 심각한 백인선망에 빠져 있었다. 카리브 해에 있는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을 백인과 동일시하며 유창한 프랑스어를 자랑하고 유럽의 문화와 철학에 심취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조국’ 프랑스를 위해 자원입대한다. 그에게 ‘니그로’란 아프리카 정글 깊숙한 곳 어딘가에 있는 ‘미개인’일 뿐 절대 자신과 같은 ‘피부색’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다. 당시 파농(과 동시대 흑인들)은 ‘백인’이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습득하여 프랑스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엄청난 경외의 대상이 된다. “저 사람 좀 봐, 거의 백인이잖아.” 이런 친구를 두고 프랑스에서는 “교과서처럼 말한다”고 하지만, 마르티니크에서는 “백인처럼 말한다”고 한다. (본문 18쪽)
누더기든 최신 유행 스타일이든 그들은 무조건 유럽식 의상을 걸친다. 그들은 유럽 가구를 사용하고 유럽식 사회담론을 구사하며, 모국어를 유럽식 표현으로 윤색할뿐더러 유럽 언어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면 과장된 수사를 남발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유럽과 유럽인이 이룩한 업적과 대등한 위치로 상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본문 21쪽)
백색 신화에 취해 창공을 날던 흑인 오르페우스가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박격포 파편이 온몸에 박힐 정도로 사선을 넘나들며 프랑스를 위해 나치와 싸운 파농에게 돌아온 건 지리멸렬한 인종 차별이었다. 훈장까지 받았건만 전선의 흑인 군인들은 푸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베를린에 입성하지 못했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도 가축을 운송하던 작고 노후한 화물선을 탈 수밖에 없었다. 파농에겐 오래전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던 그의 조상들이 탔던 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렇게 파농의 백색 신화는 산산조각난다.
파농의 정신분석학,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변증하다
파농의 파란만장한 청년기는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닮아 있다. 사실 파농이 기록한 식민지 상황과 자신의 경험은 정신적으로 식민화된 흑인 엘리트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여기서 식민지 마르티니크와 한국 사회의 연속성을 확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프랑스와 프랑스어 대신 미국과 영어를 집어넣고 다시 읽어보라. 그래도 모자라면 파리와 마르세유를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로 그리고 몽테스키외, 루소, 볼테르를 푸코, 데리다, 들뢰즈로 바꾸어보라. 20세기 마르티니크의 흑인들과 21세기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
파농의 저서를 마주하면 격세지감보다 동병상련을 느끼게 된다. 파농이 태어나고 자라난 마르티니크의 서글픈 현실이 한국 사회와 중첩될 때 우리는 불안해지고 심지어 불편해진다. (본문 18쪽)
바로 이 불편함이 ‘파농의 현재성’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탈식민화된’ 세계를 만들기 위해선 파농을 깊이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살아 있는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에 맞서기 위해선 파농이 어떻게 투쟁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파농은 홀로 백인 세계와 대면하고 싶은 마음에 흑인이 드문 리옹에 자리 잡는다. 이후 인문학과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데 “요즘 식으로 말하면, 파농은 다양한 학문 간의 ‘통섭’과 ‘융합’ 또는 ‘경계선 넘어서기’를 활발하게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신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흑인 환자들에 대한 프랑스 의사들의 인종주의적 차별을 경험한 파농은 인종주의와 정신분석학의 묘한 공생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정신과 의사가 된 파농은 죽는 순간까지 인종주의적 정신분석학 비판에 몰두한다. 당시 주류 정신분석학은 흑인들의 뇌와 두개골을 헤집으며 식민지 흑인들의 게으름과 폭력성은 생리학적이고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흑인들은 교화와 훈육의 대상일 뿐이며, 심지어 흑인들 스스로 지배받기를 무의식적으로 원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당시 주류 정신분석학자인) 마노니의 주장은 “장차 지배를 당할 민족들은 이미 유럽인의 도착을 무의식적으로 예상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결국 식민화는 피지배자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본문 154쪽)
이에 대한 파농의 주장은 날카롭고 간결하다. 정신분석학에서 중요한 건 두개골 구조나 뇌의 크기가 아니라?이후 저런 것들은 아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지만?‘사회적 조건’이라는 것이다. 설사 식민지 흑인이 정말로 게으르고 폭력적이라도 그건 불균등한 권력관계에 따른 자유의 상실이 원인이지 ‘원래’ 그런 것은 아니다.
여기서 파농의 정신분석학은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주의와 연결된다. ‘자유의 상실’이 정신적인 동시에 물질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땅을 빼앗고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 곧 자유의 박탈이라는 것이다. 즉 식민지 침탈과 억압이 정신이상의 핵심이요 병인이다.” 결국 탈식민화와 민족해방이 정신과 의사 파농에게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된다. 결국 알제리전쟁에 뛰어든 그는 사회구조의 역동성에 희망을 건다.
파농에게 사회구조는 고정불변의 체계나 수동적 배경이 아니라 역동적 과정이자 잠재적 동인이었다. 그것은 인간 심리의 결정인자인 동시에 집단적 실천의 산물이었다. 요컨대 파농의 궁극적 관심은 사회변화의 가능성이었다. (본문 105쪽)
‘새로운 인본주의’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그렇다면 파농은 마르크스주의자인가? 엄밀하게 말해 파농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결정적으로 “인간의 새로운 역사 창조”에 동참하자고 파농이 호명한 “동지들” “형제들” “우리”의 범주가 계급갈등에 기초한 마르크스주의적 저항주체의 개념을 넘어선다. 바로 이때 파농은 유럽중심주의를 완전히 극복한다. 제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의 이론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럽을 모방하거나 따라가지 말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제안은 유럽 근대성이 낳은 모든 형태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자는 유토피아적 의지의 표명으로, 그 유토피아는 사회주의적 청사진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서 파농은 “새로운 인간의 창조”가 “모든 인간이 함께 걸어가는” 과정임을 분명히 밝힌다. (본문 431쪽)
이것이 파농이 제시하는 ‘새로운 인본주의’다. 기존 유럽의 인본주의가 백인 중산층 남성으로 대변된다면 파농의 인본주의는 백인과 흑인, 유럽과 아프리카, 지식인과 민중,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남성과 여성 등의 모든 인간이 이항대립적인 지배와 예속의 틀에서 벗어나 동등한 세계주의적 시민이 되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 연장선에서 파농은 바뀌지 않은 정체성을 증오했다고도 볼 수 있다. 파농이 강조한 것은 결국 새로운 인본주의 사회로 가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그 과정이 부르주아 민족주의, 아프리카 부족주의, 흑인 분리주의 등의 고착화된 정체성을 획득하는 순간 혁명은 중단될 것이다. 이것이 유럽 인본주의와 파농의 새로운 인본주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다.
실제로 파농의 삶이 그러했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정당한 대접을 받진 못했지만 전쟁 영웅이기도 했다. 정신과 의사로서 평생을 편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도 아닌 알제리의 해방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목숨을 걸고 게릴라전에 참여했으며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까지 수차례의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알제리 독립을 지지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꿰뚫어 보고 그들에게 고개 숙이지 않았다. 죽는 순간까지 그는 탈식민화와 인간해방을 염원했다. “그의 짧은 삶 자체가 혁명의 연속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파농을 다시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파농이 가졌으나 우리가 감히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은 항상 자기성찰과 자기희생을 수반했다. 이 때문에 파농과 마주 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안락의자’ 지식인들은 부채의식을 넘어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니그로’에서 인간으로 거듭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며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향해 모두 함께 ‘인간답게’ 살아가자고 외쳤던 흑인 청년을 우리가 기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윤리적 진정성이 그의 정치적 편향성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본문 4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