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생존 작가로 세계 최고가를 자랑하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명화의 비밀: 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개정판이 나왔다. 서구 미술사학계를 뜨겁게 달군 호크니의 문제작으로 그가 호기심으로 분석한 각종 증거와 단서를 토대로 과학적·시각적 증거가 하나씩 발견된다.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반 에이크, 홀바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앵그르 등의 위대한 화가들이 거울과 렌즈를 사용하여 어떻게 그림을 그렸고 어떤 방법으로 광학적 모습을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작 속의 비밀을 밝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밝혀지는 『명화의 비밀』은 초판 출간 이후 수많은 논란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호크니는 이 개정판에서 면밀하게 발견, 검토된 시각적 증거와 문헌적 증거를 통해 자신의 기존 견해를 재정리하고 그 주장을 더욱 확고히 했다. 또한 수년간 명화의 비밀을 파헤친 호크니의 노력은 그의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개정판에서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세례당이 그려진 패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밝힌다. 또 카라바조는 어떻게 그토록 역동적이고 극적인 장면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는지 그 비법을 풀어낸다. 호크니는 자신이 화가로서 이미지와 이미지 만들기(image-making)의 역사에 관해 연구하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는 궁극적으로 서양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원리인 선형 원근법과 명암법은 광학적 투영이 회화에 도입된 결과라고 이해한다. 즉 광학(光學)이 사용되기 이전의 그림에서는 명암(그림자)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호크니는 이동식 카메라 오브스쿠라를 직접 만들어서 이미지를 관찰했다. 투영된 이미지는 빛의 강도에 따라 명암의 대비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한다.
호크니는 “이 개정판에서는 내가 최근에 한 실험과 실험에서 발견한 것들의 의미를 새롭게 추가했다. 초판과 마찬가지로 이 개정판도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 천재 화가들이 언제부터 광학의 힘을 빌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어떤 그림들이 광학을 이용해 그려졌는지를 설명한다.
목차
서론│그들은 과학을 애용했다
시각적 증거
문헌적 증거
서신
참고문헌
도판 목록
찾아보기
감사의 말│옮긴이의 글
저자
데이비드 호크니
출판사리뷰
과거의 화가들은 어떻게 그토록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것일까
과거 르네상스 미술은 여전히 현대의 화가들에게도 거장의 미술이며,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천재의 영역이다. 저명한 영국의 미술사학자 곰브리치조차 르네상스 시대에 왜 그렇게 많은 천재 화가가 등장했는지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명화의 비밀』은 과거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고 생생하게 그들 주위의 세계를 묘사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내려는 호크니의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호크니는 1999년 런던내셔널갤러리에서 앵그르(Ingres)가 1829년에 그린 「루이 프랑수아 고디노 부인」 드로잉을 관찰하다 의문에 사로잡힌다. ‘눈 굴리기(eyeballing)’로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사진처럼 정밀하고 상세하게 그린 작품을 보고 놀라움과 의문에 사로잡혀 그 방법에 관심을 갖게 된다. ‘눈 굴리기’는 화가가 모델 앞에 앉아서 손과 눈만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방식, 즉 인물을 쳐다보고 종이나 캔버스에 닮은꼴을 재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초기의 많은 리터치 흔적이 보이는 드로잉이 어느 순간부터 한 번에 쓱쓱 그리는 드로잉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또한 앵그르의 그림이 1년 사이에 느낌이 크게 변한 것에도 의문을 품고 갑자기 사실성이 크게 발전한 수많은 그림을 한꺼번에 보며 분석을 시작한다.
호크니는 사진을 전사해 그 윤곽선을 베껴 그리는 기법을 쓰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을 떠올린다. 호크니는 “앵그르가 카메라 루시다(프리즘을 통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화판에 투영하는 기구)를 사용하지 않았을까”라고 의문을 갖는다. 그 결과 앵그르가 눈과 손의 재능만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도구를 이용해 정확성과 시간을 절약했다고 주장한다.
렌즈를 사용하는 초창기에는 장치가 완전히 크지 못해서 화가들은 전체 그림 가운데 부분을 따로 그려서 모았다. 즉 얼굴 따로, 몸통 따로, 탁자의 정물을 따로 그렸다. 그 결과 한 작품이 한 위치에서 본 것이 아니라 여러 위치에서 움직이면서 본 것 같은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호크니는 위대한 화가들이 카메라 루시다와 카메라 오브스쿠라(상자 안에 구멍을 뚫거나 렌즈를 부착한 다음 바깥 영상을 반대편 벽에 거꾸로 투사시키는 장치)를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복잡한 구도를 눈으로 본 대로 화판에 옮기기는 굉장히 어렵지만 거울과 렌즈 등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밑그림을 그릴 수 있기에 거울이나 렌즈를 이용해 3차원 물건의 이미지를 2차원 평면에 투영한 다음 그 영상을 따라 그렸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왜 왼손잡이를 즐겨 그렸을까
호크니는 화가들이 광학 기구를 1420~30년 무렵 본격적으로 도입했다고 본다. 1500년경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미 광학 문헌에 해박해 그가 남긴 『공책』에는 광학적 투영에 대한 내용이 풍부하다. 그가 한 실험은 알 하잔의 실험처럼 어두운 방에 못 구멍처럼 작은 구멍을 뚫는 것, 즉 카메라 오브스쿠라였다. 그보다 후배인 조르조네와 라파엘로, 렘브란트 같은 작가들도 광학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정서적 힘으로 광학이 주는 자연주의적 이미지를 초월했다.
16세기 말 렌즈의 성능이 대대적으로 개선되면서 광학적 도구의 사용은 그림에 여러 흔적을 남겼다. 왼손으로 와인을 마시거나 왼손잡이 인물이 그림 속에 부쩍 많아진 것은 이 무렵이다. 화가들이 거울 같은 광학적 도구를 사용해서 그리면 렌즈에 비친 대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상이 반전되어 오른손잡이 모델을 왼손잡이처럼 그리게 된다. 이런 장치들을 이용해 화가들은 이전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복잡한 양탄자, 옷감의 화려한 무늬, 갑옷의 번쩍거리는 질감들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기술과 장비가 발전하면서 화가들은 사실적 그림을 그리기 위해 렌즈를 다양하게 활용했다. 회화는 대상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다가 1800년대 사진이 발명되면서 회화사에는 새로운 혁명이 싹트고 있었다. 그 후 회화는 인상주의와 입체파, 표현주의 등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호크니는 입체파의 그림은 렌즈의 다양한 시점을 실험한 것으로 20세기 회화들은 렌즈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실험으로 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크니는 화학적 사진술이 발명되면서 회화에는 중대한 변화가 초래되었다면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새로운 기술적 혁명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림이 더 어설프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더 실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화가들은 입체파나 표현주의의 회화가 실제 세상에 더 닮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 입체파의 일그러진 화면이 세상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을까?
호크니는 ‘광학 이미지의 한계’를 언급한다. 카라바조의 「과일」(1596)은 사진처럼 진짜 같고 세잔의 「과일」(1877~78)은 어색하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볼수록 카라바조의 사과는 점점 알아보기 힘들지만 세잔의 사과는 선명해진다고 말한다. “세잔은 우리가 사물을 복수의 시점에서, 때로는 모순적인 위치에서 바라본다는 점을 그림에서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브루넬레스키의 역사적인 패널을 재현하다
이 개정판에서 호크니는 초판이 출간된 2001년 당시 자신은 시각적 조사를 완전히 끝내지 못했고 더 많은 것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추가 실험을 위해 호크니는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세례당이 그려진 나무 패널 실험을 실제로 재현하기 위해 피렌체로 떠난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미술사에서 최초로 시각 피라미드와 선형 원근법의 원리를 발명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브루넬레스키의 전기 작가 안토니오 마네티가 1470년대에 쓴 『브루넬레스키의 삶』에 따르면 브루넬레스키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안쪽에서 거울을 통해서 바라본 실물 세례당의 모습과 나무 패널 위에 그려진 세례당의 모습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증명했다.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실험을 재현한 호크니는 원근감 있는 완벽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시각 피라미드와 선형 원근법의 발견은 기술적인 도구, 즉 오목렌즈를 사용해서 얻은 결과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서구 미술사학계를 뜨겁게 달군 호크니의 문제작
호크니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미술 사학자들은 예술적 천재성은 타고나는 것인데 호크니가 “위대한 화가들의 작업을 단순한 테크닉의 문제 또는 색칠 공부나 베끼기 수준으로 깎아내렸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호크니는 “명화는 여전히 명화”라며 “그들은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다만 과학을 적극 이용했을 뿐”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호크니가 파헤친 명화의 비밀의 가장 큰 미덕이 바로 이것이다.
옮긴이 남경태도 호크니를 옹호한다.
“호크니가 말하듯이 광학을 이용했다고 해서 작품이 폄하되는 것도 아니고, 렌즈를 쥐어준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가의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크게 보면 그것은 미술사에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했다. 거울과 렌즈의 기법은 사진이 발명됨으로써 철퇴를 맞았고, 회화의 위기를 맞아 세잔과 고흐는 발상의 전환으로써 타개책을 찾아냈다. 그런 점에서 광학기법은 회화의 흐름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TV와 영화 등의 매체로 계승되었다는 호크니의 관점은 신선하다.”
호크니는 2차원의 그림은 복제할 수 있지만, 3차원의 그림을 2차원으로 ‘복제’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카라바조의 「매장」과 루벤스의 「매장」을 비교한다. 루벤스는 카라바조의 「매장」복제품을 그리게 되는데, 공간을 일관적이고 현실적이게 만들기 위해 그림 속 인물들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다. 카라바조의 원작과 비교해보면, 루벤스의 복제품 속 인물들이 더 큰 무게감과 생동감을 갖고 있으며 루벤스는 그림 속 인물들에게 공간의 환상을 허용한 반면 카라바조는 캔버스 위에 이미지들을 수직으로 쌓아올렸다고 설명한다.
호크니는 수백 개에 이르는 시각적 증거물들과 그 증거물을 문헌적으로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증거를 소개한다. 또 미술사학자, 광학박사, 미술관장 등의 동료들과 주고받은 편지 들을 통해 그가 명화의 비밀을 렌즈와 거울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만 밝힌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호크니는 “정적인 그림의 힘은 영원할 것이다. 걸작은 사랑받을 것이고 오래 보존될 것이다”라며 명화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명화의 비밀』에는 회화가 이용한 렌즈와 거울은 사진으로, 사진은 영화로 거듭나면서 회화는 영화로 진보했다는 새로운 발견이 담겨 있다. 서구 예술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품들을 포함한 수백 점의 회화와 드로잉이 호크니의 열정적인 해설과 함께 수록되어 책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