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전통적으로 여성은 사회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고 지성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폄훼되어왔다. 그러나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라는 나혜석의 외침처럼 여성들은 살아 있는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고 쟁취해냈다.
『그녀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했다』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세상에 도전한 12인의 여성 작가들을 다룬다. 사포(Sappho), 황진이(黃眞伊), 조르주 상드(George Sand),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히구치 이치요(?口一葉), 나혜석(羅蕙錫), 딩링(丁玲),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루이제 린저(Ruise Linser), 샤오홍(蕭紅),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에 이르기까지,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삶을 개척한 동서양의 여성 작가들의 삶은 ‘위대한 여성’이라기보다는 ‘열정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목차
세상에 도전한 위대한 여성들 | 연점숙
1 사포 레즈비언의 기원이 되다 | 권오숙
2 황진이 신분을 넘어 사대부의 지우知友가 되다 | 안정심
3 조르주 상드 사랑과 정의의 몽상가 | 박혜숙
4 조지 엘리엇 시대의 올무를 끊다 | 김문숙
5 버지니아 울프 인간의 실존적 비극을 탐색한 휴머니스트 | 김채남
6 히구치 이치요 일본 최초의 여성 직업 작가 | 이정희
7 나혜석 한국 여성의 길이 되다 | 김윤선
8 딩링 고뇌와 욕망을 넘어서 역사가 되다 | 오경희
9 시몬 드 보부아르 자유를 향한 열정 | 이화숙
10 루이제 린저 모든 생을 사랑하다 | 서유정
11 샤오홍 역사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꿰뚫다 | 오경희
12 실비아 플라스 폭풍 같은 삶, 핏빛 울음의 시 | 강문애
주註
저자
열린문학연구회
출판사리뷰
보부아르의 누드와 위대한 인간 사이
주어진 현실 세계를 자유가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다.
―시몬 드 보부아르
보부아르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08년,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신년호 표지에는 보부아르의 뒷모습을 찍은 흑백 누드 사진이 실렸다. 1952년 미국 사진작가 아트 셰이(Art Shay)의 아파트에서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문틈 사이로 찍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프랑스 여성계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녀의 사상이 아닌 “몸으로 독자를 유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잡지사는 “당대 부르주아 사회의 순응주의에 저항한 보부아르에 대한 완벽한 오마주”라고 반박했다.(본문 251쪽 참조)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작가인 보부아르의 누드가 불러일으킨 논란은, 양성 평등이 정착됐다는 서구 사회에서도 아직까지 ‘여성’과 ‘위대한 인간’의 간극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자유를 갈구한 12인의 여성 작가들
전통적으로 여성은 사회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고 지성과는 거리가 먼 존재로 폄훼되어왔다. 그러나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라는 나혜석의 외침처럼 여성들은 살아 있는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고 쟁취해냈다.
『그녀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했다』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세상에 도전한 12인의 여성 작가들을 다룬다. 사포(Sappho), 황진이(黃眞伊), 조르주 상드(George Sand),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히구치 이치요(?口一葉), 나혜석(羅蕙錫), 딩링(丁玲),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루이제 린저(Ruise Linser), 샤오홍(蕭紅),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에 이르기까지,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삶을 개척한 동서양의 여성 작가들의 삶은 ‘위대한 여성’이라기보다는 ‘열정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쉽게 쓰고 쉽게 읽는 위대한 여성들의 이야기(황진이, 조르주 상드, 히구치 이치요, 나혜석, 딩링)
가느다란 붓을 무엇에 비할까.
모젤 총으로 무장한 정예군에 비할까.
작전도가 룽산 동쪽을 향하니
어제의 문학소녀가 오늘의 전사라오.
―마오쩌둥이 국민당에 감금되었다 탈출에 성공한 딩링을 위해 지은 「임강선」(臨江仙) 중에서 | 본문 233쪽
흔히 여성을 다룬 글은 페미니즘이라는 틀에 맞춰 여성들의 삶을 ‘해석’한다. 현란한 수사와 전문 용어를 동원하며 그녀들이 얼마나 사회에 억압받고 차별받아왔는지를 논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의 삶의 궤적을 생기 있는 삶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차가운 기록으로 새기는 데 주력한다. 『그녀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했다』는 여성들을 다룬 전통적인 서술 방식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다. “그녀의 삶이 곧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중국의 여성 작가 딩링에 대한 찬사처럼, 이 책에 수록된 여성 작가들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했고 드라마틱했다. 그녀들이 위대한 이유는 억압받아서가 아니라 억압을 떨치고 행동하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황진이는 기생이었지만 양반들과 지우(知友)로서 당당히 자신을 드러냈고, 조르주 상드는 프랑스 최초로 이혼 소송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되찾은 여성이었다. 조지 엘리엇은 빅토리아 시대에 유부남과 동거하며 스캔들을 일으켰다. 히구치 이치요는 가부장적인 일본사회에서 최초로 여성 직업 작가가 되어 지금까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나혜석은 「모된 감상기」와 「이혼 고백장」으로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불합리함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딩링은 혁명 투사로서 갖은 고초를 겪었지만 죽을 때까지 문학에 대한 열정을 꺾지 않았다.
문학으로 자유를 쟁취하다(사포, 버지니아 울프, 샤오홍)
서구의 서정시 시화집의 어느 것도 사포의 시를 담지 않은 것은 없다시피 하지만 그의 개인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사포적인 면을 레즈비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에 온 심혈을 기울여온 경우가 많았다.
―마리온 기벨 | 본문 14쪽
사포는 레즈비언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시편 중 상당수가 여성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즈비언은 원래 ‘레스보스 섬 사람들’이라는 뜻이지만 사포와 그녀가 남긴 시로 인해 ‘여성들 간의 동성애’라는 의미가 된다. 사포체(Sapphic)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아테네의 솔론(Solon)조차 사포의 문체를 흉내낼 정도로 당대 최고의 서정 시인이었던 사포는 후대에 들어 방탕한 동성애자로 낙인찍혔다. 남성들 간의 동성애와 이를 통한 교육이 만연했던 시대에, 사포는 같은 방법으로 제자들을 길러냈고, 호메로스가 영웅적인 서사시를 쓸 때, 사포는 감각적이고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시를 썼을 뿐이다. 기독교와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덧칠해낸 동성애자 사포는 사실 교육자이자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낸 문인이었던 것이다.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죽음과 이복오빠의 성추행 등으로 어두운 정신세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문학에 매달렸고, 『등대로』와 같은 작품을 비롯해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불리는 『자기만의 방』과 같은 걸작을 쏟아냈다.
중국의 샤오홍은 20세기 초반, 혼란했던 중국 사회를 날카롭게 꿰뚫어본다. 그녀는 냉담한 부친과 계모 아래서 봉건적인 정혼에 반발해 가출하기도 했다. 약혼자의 유혹에 넘어가 여관에서 7개월간 동거하다 만삭의 몸으로 버림받으며 어린 나이에 많은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자신이 관찰한 중국의 모습과 핍박받는 여성, 하층민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녀의 대표작 『생사장』 「서문」에서 스승 루쉰이 평한 것처럼 “세밀한 관찰과 흔한 틀을 초월한 필치”는 샤오홍에 대한 대표적인 평이 되었다.
“빌어먹을, 중국인들은 도망가는 데는 목숨을 걸면서 항전을 한다고? 도망이나 해라.” 그는 ‘도망’이라고 말하고 나서 정거장에 행여 자기의 학생이나 아는 사람이 있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것을 보고 다 찢어진 장삼을 한번 흔들고는 말한다. “이제야 됐네, 여기는 아직 적의 그림자가 없어, 놀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구만, 끼어 죽겠어, 마치 궁둥이 뒤에서 대포가 쏘아대는 것 같아.”
―샤오홍, 「피난」 중에서 | 본문 316쪽
폭풍 같은 열정으로 엮어낸 드라마(상드, 나혜석, 루이제 린저, 실비아 플라스)
그날 밤의 야곡은 빗방울 소리로 넘친 것이었는데, 그 소리는 사원의 지붕에 소리 내며 떨어지는 빗방울이기는 했어도 그의 환상과 노래 속에, 또한 그의 마음에 떨어지는 눈물로 승화된 빗방울이었던 것입니다.
―조르주 상드 | 본문 85쪽
조르주 상드는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탄생한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유부녀였던 그녀는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 뮈세와 염문을 뿌렸고 천재 피아니스트 쇼팽과 폭풍 같은 사랑을 했다. 그녀는 공산주의자였고 유토피아를 꿈꾸는 낭만주의자이기도 했다. 사랑 이야기 안에 혁신적인 사상을 담은 그녀의 소설에 도스토옙스키와 투르게네프는 상드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녀의 소설은 러시아 혁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나혜석은 그녀의 행동과 글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여성의 삶과 현실을 비판하고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를 외쳤다. 그녀는 당대에 많은 지탄을 받았지만 그녀가 걸어간 길이 오롯이 ‘한국 여성의 길’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녀는 첫사랑인 최승구와 열렬히 사랑했고 최린과의 염문으로 인해 이혼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거나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의 당당함과 삶에 대한 열정적인 태도는 한국 여성들이 인간의 길을 가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루이제 린저는 20세기 최고의 개혁 신학자 카를 라너와 염문을 뿌리며 M.A.라 불린 또 다른 신부와 삼각관계로 유명하다. 최고의 신학자를 사랑의 힘 앞에 굴복시킨 린저는 20세기 최고의 스캔들의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또한 그녀는 윤이상과 친분을 가지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한에도 왕래하며 자신의 대표작 『생의 한가운데』처럼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실비아 플라스는 31세의 나이에 가스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했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만큼 아름다웠던 그녀는 첫눈에 반해버린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스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휴스의 외도로 인해 별거한 지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가 죽기 직전에 쓴 시들은 ‘핏빛 울음의 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 그로 인한 어머니의 실비아에 대한 집착, 수많은 자살 시도와 정신병원 치료, 격정적인 사랑, 남편의 외도와 갑작스러운 자살 등으로 점철된 그녀의 삶은 폭풍과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소설과 시 들은 그녀의 삶과 어우러져 여전히 우리에게 여운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