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미술 비평의 아버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74)는 르네상스 미술을 꽃피운 위대한 미술사가다.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의 제자로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회화, 조각, 건축에 종사한 예술가로서 간결하고 강건한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바사리가 쓴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은 서양 미술사를 통틀어 독보적인 명저로 13세기 말 조토의 스승인 치마부에부터 16세기 중반 ‘신과 같은’(divino)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동시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3세기에 걸쳐 200여 명에 이르는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기술한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전기다. “바사리가 쓴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은 가장 위대한 시대를 이해하는 데 불가결한 원전일 뿐만 아니라 가장 생생하고 재미있는 책이다”라는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의 말처럼 바사리는 고딕과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미술가들에 대해 속속들이 파헤쳤다.
옮긴이 이근배가 18년이라는 긴 기간 심혈을 기울여 번역해 세상에 내놓은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르네상스 시기 미술을 본격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미술 전공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글을 읽는 인문학적 즐거움은 물론 작품을 감상하는 시각적 즐거움까지 안겨준다. 특히 한양여자대학교 고종희 교수의 각 작가에 대한 친절한 해설과 원서에는 없는 풍부한 컬러 도판은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길사는 21세기형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2018년 5월 제1권을 출간하기 시작해 2019년 3월에 제6권을 총 3,896쪽에 이르는 역작으로 완간했다. 특히 제6권에는 옮긴이 이근배와 세대를 초월해 예술적·문학적 교감을 나눈 적이 있는 미국의 미술사학자이자 문화사학자인 데이비드 영 킴 교수의 특별기고가 실려 있다.
목차
특별기고 조르조 바사리, 이근배, 여행하는 미술사가의 『평전』| 데이비드 영 킴
아카데미 회원들의 디세뇨-화가, 조각가, 건축가들과 그들의 작품들
토스카나의 프란체스코 왕세자 혼례 축제의 아카데미아 회원들의 작품 기록
조르조 바사리의 작품에 관한 기록
저자가 디세뇨 예술가들에게 드리는 말씀
조르조 바사리가 기록한 디세뇨 예술 3종-건축, 조각, 회화의 길잡이
<부록> 르네상스 미술사 연표-피사노 출생부터 틴토레토 사망까지
맺는말
작품목록
찾아보기부록>
저자
조르조 바사리
출판사리뷰
왜 불후의 고전인가
조르조 바사리 글의 진정한 가치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작품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검증하고 분석하고 평가한 데 있다. 글의 구성은 매우 솔직담백하고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바사리 자신의 연대별 작품 목록으로도 가치가 있다.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은 단순히 미술사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정치 상황, 사회 풍습, 종교 갈등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와 함께 동시대의 문학, 음악, 신화, 민속, 무대예술 등에 대한 수많은 주제를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이 수백 년을 이어오며 끊임없이 연구와 논쟁의 대상이 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고전의 지위를 누리는 이유다.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한 시대를 증언하고 그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바사리의 역사관을 주목한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아카데미 회원들의 활약
제6권은 피렌체 아카데미 회원 중 16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피렌체 최고의 매너리즘 작가로 벤베누토 첼리니,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 조반니 다 볼로냐 그리고 브론지노 등을 다룬다. 직계 스승 폰토르모 외에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은 브론지노의 작품은 장식적이고 세련되며 귀족적이다.
아뇰로 브론지노, 「엘레오노라와 아들 조반니 메디치」, 1544~45, 115×96cm, 패널에 오일,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이 그림은 사진에 버금가는 사실적 묘사를 자랑하지만 무표정한 얼굴 표정 등으로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당대 최고의 금속세공자이자 조각가인 벤베누토 첼리니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를 위해 소금 그릇을 만들었는데 이는 르네상스 최고의 금속세공품이다.
조반니 다 볼로냐는 프랑스 출신의 조각가로 바사리와 함께 코시모 1세 대공을 위해 봉사한다. 미켈란젤로의 양식을 모방한 피렌체의 조각가들과 달리 그는 인체의 동세를 강조하고 군상을 통해 어느 곳에서 보아도 완전한 시점의 조각을 만들어냈다.
토스카나의 프란체스코 왕세자 결혼식 때 공주님을 모시는 결혼식에 합당한 모든 예식과 치장, 장관을 아카데미아 회원들이 작품으로 기록했다. 공주님이 도시로 들어오는 프라토 성문과 오니산티 거리부터 시작해 공주님이 거쳐 오는 다리와 길모퉁이 그리고 연회장까지를 최대한 아름답고 우아하게 치장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또 여섯 번에 걸친 막간극을 선보이는데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생생한 작품으로 남겼다.
조르조 바사리가 들려주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
“지금까지 나는 힘이 미치는 한 주의 깊게 또 성실하게 여러 예술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나는 하늘이 완성한 이 저작을 끝낼 단계에 이르렀다. 비록 이 저작이 내가 본래 원했던 것만큼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편견 없는 독자들은 내가 이 저술을 위해 바친 노고만큼은 인정해줄 것으로 믿는다.”
르네상스가 낳은 마지막 만능인 조르조 바사리는 자신이 어떻게 작품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으며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자세히 언급한다.
조르조 바사리,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의 초상」, 1534, 캔버스에 오일,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조르조 바사리, 「원죄 없으신 잉태」, 1541, 패널에 템페라, 58×39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아레초의 평범한 도기공이었던 바사리의 부모님은 자식 교육에 상당히 적극적이어서 바사리의 첫 미술수업을 프랑스인 색유리가 기욤 드 마르시아에게 받게 했다. 1524년 아레초를 떠나 피렌체로 간 바사리는 평생 흠모와 존경의 대상인 오타비아노 공작을 만난다. 공작은 바사리에게 메디치궁에 머무르며 메디치가의 공자들인 이폴리토와 알레산드로와 같이 수업을 받는 특혜를 베풀어준다. 이 수업은 고전학의 지식을 지니고 유려한 필치로 예술사에 얽힌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게 쓸 수 있는 인문주의자로 바사리를 키우는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조르조 바사리, 「우피치 미술관」, 1560, 피렌체.
1535년 이폴리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1537년 알레산드로 암살 사건은 바사리에게 크나큰 충격을 준다. 하지만 바사리는 1550년 메디치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으며 일취월장하고 1555년에는 피렌체의 베키오궁을 공작 주거지로 바꾸는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절대 권력을 미화하는 수단으로 바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출간하며 유명해진 바사리는 1555년 베키오궁 공사 책임자로 임명되어 코시모 1세의 가신으로 입성한 뒤 그가 죽기까지 20년간 피렌체를 무대로 절정의 활약을 보인다. 바사리는 1574년 주군 코시모가 죽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생을 마감한다.
바사리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필생의 대작이라 할 수 있는 베키오궁의 벽과 천장, 큰 홀의 그림은 물론 우피치 미술관 등을 비롯한 프레스코 대작들과 건축물을 지었다. 또한 피렌체 공국의 문화예술 사업을 주도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바사리 생애 63년간 바티칸 성좌에는 교황이 11명 거쳐간다. 그중 피우스 5세는 교회사적으로 드문 현자였고 바사리 생전의 마지막 교황은 그레고리우스 13세로 그는 피우스 5세의 유지를 이어 교회 체제를 더욱 굳건히 했으며 예수회의 해외 포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바사리 자신이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쓰게 된 과정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파르네세 추기경의 만찬에 참석했을 때 조비오 주교는 자기 박물관과 송덕 명문에 관한 자기 저작과 합쳐서 치마부에부터 현대에 이르는 유명한 예술가들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비오 주교가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예술가들의 이름, 출생, 작품들을 혼동하는 것 같았다.
“조르조, 이 작업은 정말 훌륭하고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자네가 조비오 주교를 대신해 이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정리해보게.”
파르네세 추기경은 바사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바사리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미술가 200여 명의 생애와 작품을 기술한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다.
조르조 바사리가 기록한 디세뇨 예술 3종
건축, 조각, 회화
바사리 이전에는 회화, 조각, 건축을 ‘손재주’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바사리는 회화, 조각, 건축 3종의 기예(技藝)를 하나로 묶어 인간의 창조행위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으로 확립시켰다. 이 기법론에서 바사리는 예술 작품은 매우 귀하게 여겼지만 정작 작품을 만든 예술가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풍토를 따르지 않고 3종의 디세뇨(disegno)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예술가로서의 긍지를 가진 사람들로 지위를 높이 올려놓았다. 그뿐 아니라 바사리는 기법론에서 자신이 화가로서 건축가로서 당시의 예술가들과 폭넓게 사귀면서 얻은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 조각, 건축술에 관한 풍부한 기법에 관하여 우리에게 귀중한 지식을 전해준다. 이 기법론은 다양하고도 아카데믹한 이론을 전개할 뿐 아니라 이론서로서 그 구성이 매우 현대적이고 탄탄하다.
바사리는 예술의 재생이라는 단계를 관찰하면서 건축에서만 논한 3종 예술의 기초적 원리를 회화에도 제시했다. 파노프스키(Panowski)는 바사리가 조형예술의 각 분야를 “디세뇨를 아버지로 하여 태어난 딸들”이라고 처음으로 언급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바사리가 회화와 조각의 아름다움을 여성으로 비유한 것이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주랑(바사리의 기록에 따름).
바사리는 디세뇨가 “3종 예술의 아버지며,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미와 자연에 대한 관념의 직접적 움직임”이라고 했다. 이 디세뇨는 자연의 모방에서 얻는 것인데, 자연을 예술의 어머니라고 보면 디세뇨는 예술의 아버지라고 강조하면서 자연을 연주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디세뇨를 우리말로 ‘데생’이나 ‘소묘’라고 번역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이것에 대항하면서 예술의 근본을 담당하는 이념으로서 디세뇨는 단순히 데생의 의미를 넘어 ‘조형’ 또는 ‘내적의장’(內的意匠)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파노프스키는 바사리뿐 아니라 콰트로첸토(16세기)의 예술가들은 디세뇨를 단순한 자연의 사생으로가 아니라 예술적 상상력의 고장으로 여겼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기법론에 등장하는 고딕양식, 비잔틴 양식, 매너리즘, 소묘 예술, 단축법 등의 미술 용어들은 미술사라는 영역을 새로 개척하였고 오늘날까지 미술사 전반에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21세기형 바사리 한글판 완역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은 1550년 초판본이 나오고 1568년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그 후 450년 만에 21세기형 바사리 한글판이 여섯 권으로 출간된다. 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공로자는 원서를 구할 수 없던 시절 미국에서 원서의 복사본을 힘들게 구해 18년 동안 번역하신 이근배 선생님이시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참고자료를 일일이 찾아가며 막대한 각주를 찾아서 넣어주신 이근배 선생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바사리가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저술하지 않았다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사를 연구하는 사가들은 아직 암흑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패러디해서 “이근배가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번역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이탈리아 미술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193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한국어 대신 일본어와 독일어로 학습한 옮긴이 이근배는 암울한 시절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 학문과 예술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보이는 것이었다며 “당시 시대 상황이 나로 하여금 엄청난 공부를 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특별기고문을 쓴 데이비드 영 킴 교수는 이근배가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옮긴 것은 “단순한 원전 번역이 아니며 이는 20세기 격동적인 한반도의 문화사를 투영하는 매우 값진 결과물”이라고 평했다.
이 책은 단순한 자료라기보다는 르네상스 예술을 꽃피운 독보적인 고전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