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교양과 무질서』(1869)는 19세기 유럽의 혼란상을 ‘무질서’로 바라보고 해결책으로 ‘교양’(culture, 敎養)을 제시한 책이다. 기본적으로 정치비평서이지만 근대적 개념의 교양(또는 문화)을 제시함으로써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로 이어지는 영국 문화비평의 기틀을 닦았다.
19세기 유럽은 많은 사상과 이념이 충돌하고 산업혁명으로 삶의 질적 변화가 급진적으로 이뤄지는 등 일대 변혁을 맞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사회적 모순이 분출하고 개혁 요구가 거세게 일었는데 『교양과 무질서』의 저자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 1822~88)가 살던 영국의 상황이 특히 심각했다. 이때 아널드는 많은 이가 외치는 ‘개혁’이란 것이 결국 당파적 또는 사적 이익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꿰뚫어보고 ‘사심 없음’(disinterestedness)의 덕목을 강조한다. 이 ‘사심 없음’이 바로 아널드가 말하는 ‘교양’이며 따라서 그는 단순히 개혁을 반대한 보수주의자(반동주의자)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개혁’을 고민한 ‘미래의 자유주의자’다.
목차
교양 이념의 형성과 현재적 의미ㅣ윤지관
들어가는 말
1 단맛과 빛
2 내키는 대로 학
3 야만인, 속물, 우중
4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5 그러나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6 우리의 자유주의 실천가들
맺는 말
1869년판 서문
매슈 아널드 연보
옮긴이의 말
개정판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저자
매슈 아널드
출판사리뷰
교양 이념의 정립자 매슈 아널드,
그는 누구인가
실상 이 나라에는 우리가 교양을 통해 배워 알게 된 완성의 특징 거의 전부에 맞서고 그것을 위축시키는 강력한 경향이 엄연히 존재한다. 정신과 영혼의 내적인 상태라는 완성의 이념은 우리가 높이 치는,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이 평가하는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문명과는 어긋난다. 인간 가족의 일반적인 팽창이라는 완성의 이념은 우리의 강력한 개인주의, 개개인의 인성을 속박 없이 펼치는 것에 제한을 가하는 일체의 것에 대한 증오, ‘각자 자기 뜻대로’라는 금언과 어긋난다. _ 60쪽
매슈 아널드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문학비평가이자 시인이며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였다. 그는 문학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정치·사회·종교·교육 등 당시의 모든 중요한 영역의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특히 거의 평생을 장학사로서 교육현장에서 일한 실천적인 지식인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인으로 두각을 나타내어 당대의 대표적인 시인 가운데 하나로 꼽혔으나, 1850년대 말부터 비평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문학과 사회에 대한 좀더 직접적인 발언을 하게 된다. 문학평론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두 권의 평론선집을 출간했고, 그의 비평 이념과 낭만주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860년대 후반부터 당대에 첨예해진 사회 및 종교 논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대표적인 논객 가운데 한 사람으로 떠올랐고, 특히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계급현실에 대한 처방으로 ‘교양’의 이념을 제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의 논쟁을 모은 책이 그의 대표적인 정치·사회평론서인 『교양과 무질서』다.
이처럼 ‘교양’은 19세기의 격렬한 사회적인 변화에 맞선 처방으로 제시되었던 개념이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문(文)·사(史)·철(哲)로 대표되는 인문학의 위기를 거론할 때도 반드시 대두되는 개념이자,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수강과정인 ‘교양(선택·필수)’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흔히 전인교육(全人敎育)을 말할 때의 기본 배경이 되는 이념도 ‘교양’이며, 지식인(지성인)이라는 말 대신 ‘교양인’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된 것도, 모두 아널드가 19세기에 정립했던 ‘교양’이라는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교양과 무질서』가
문제가 되는가
‘교양’이라는 단어는 비단 영국의 빅토리아 사회에서뿐 아니라 그와 유사하게 근대가 불러일으킨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에서는 늘 떠오르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교양 이념은 사실상 아널드에게서 기원한 것도 아니고 영국에 한정된 것도 아니며, 이념적으로는 18세기 이후 독일 철학에서부터 배태된 것이다. 그러나 교양 이념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19세기 영국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었으며, 이 경향은 낭만주의 시대의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20세기 중엽까지 많은 비평가와 사상가를 통해 지속되어 영국 문화비평의 전통을 낳는다. 교양 이념을 정의 내리고 사회적 의미를 정립한 아널드의 작업은 문화비평의 전통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고, 그것은 이후의 문학이나 문화와 관련한 담론에서 되풀이해 거론되고 있다.
아널드가 당시 사회적인 관심과 비평의 구실을 강조하게 된 까닭은 빅토리아 사회가 거대한 변화의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진보와 개혁의 흐름은 ‘시대정신’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1830년대부터 제1차 선거법 개정·공장법·빈민법 등 정치·경제 개혁이 진행되었고, 그가 대학생이던 1840년대에는 ‘차티스트 운동’(Chartism)으로 불리는 전국적인 노동운동이 거세게 벌어졌다. 장학사로서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에 나서던 무렵에는 ‘대박람회’가 런던에서 열렸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대영제국의 위세를 과시하고 당시 산업과 과학의 발전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사였다.
이런 변혁의 시기에 출간된 『교양과 무질서』의 중심 주장을 단순화해서 말하면, 사회적인 또는 도덕적인 ‘무질서’에 맞선 처방으로 ‘교양’을 제시하는 것이다. ‘교양과 무질서’의 관계를 평범하게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이나 무질서냐’라는 선택의 문제를 들이대는, 그런 점에서 대단히 논쟁적인 글이다. 두루 알다시피, 이 글이 씌어진 1860년대 후반의 영국 사회는 개혁 요구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 개혁을 위해 실천하라는 요구가 팽배하던 시기, 그러하기에 사회적 모순이 역동적으로 분출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인지라 사회구성원 사이의 갈등과 도덕적인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런데 아널드는 『교양과 무질서』를 통해서 이 피할 수 없는 변화의 국면을 ‘무질서’라 일컫고 그 해결책으로 ‘교양’을 제시했으니, 도대체 저의가 무엇이냐는 의혹과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당연하다. 이 책은 당시에도 실제로 문제의 책이었고, 어떤 점에서는 개혁과 그를 위한 움직임이 대세를 이루던 사회적 국면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문제의 책으로 부각될 소지가 있었다.
교양의 실천성은
어디에 있는가
아널드가 말하는 교양이란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는 ‘사심 없음’의 경지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아널드가 직접적으로는 ‘무질서’를 겨냥했지만, 더욱 깊이 보면 그것은 이 같은 파당성의 허위를 겨냥한 것이다. 또한 ‘무질서’를 불러일으킨 직접적인 계급은 새로 등장하는 노동계급이지만, 노동계급이 교양 차원에서가 아니라 파당적인 이해관계에 바탕을 두고 자기주장을 하게 되는 근본 원인도 다름 아닌 중간계급, 자신이 속한 중간계급의 파당성에 있다는 것이다. 아널드가 노동계급의 ‘무질서’적인 경향을 비난하고 거기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데는, 기득권층이 일반적으로 보이게 마련인 정서적 보수성도 작용했겠으나, 그 근본에는 자기이익 챙기기에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지배세력으로서의 중간계급에 대한 혐오와 경고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널드의 이 같은 의도를 인정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데, 그것은 바로 실천이다. 과연 그렇다면 이 같은 변화의 국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반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널드의 교양의 실천성을 어디에 있는가. ‘최상의 것’을 기준으로 해 ‘사심 없는 판단’을 내리는 것을 그 기능으로 하는 교양의 실천성은 어디에 있는가. 쉽지 않은 물음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아널드 자신이 그 답안을 마련해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교양의 정의 속에 아널드 나름의 해답이 들어 있다. 즉 사심 없는 판단을 내리는 일 자체가 아널드에게는 가장 강력하고 필요한 실천이라는 것이다. 아널드의 이러한 교양 개념은 개혁과 실천이 시대의 대세가 된 현실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지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