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민사회는 민주사회의 동력이다
시민사회 이론가 진 L. 코헨과 앤드루 아라토의 공저. 코헨과 아라토는 이 책에서 서구의 민주주의가 더 민주화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서구의 복지국가 이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국가의 역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본주의화되고 있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과거 실패한 서구 자본주의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것이 바로 코헨과 아라토가 말하는 ‘복지국가와 자유민주주의의 성찰적 지속’이라는 관념의 바탕에 깔린 질문이며, 이 책에서 그들은 ‘자기제한적 급진주의’의 실천적 장으로서의 시민사회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저자
진 L. 코헨, 앤드루 아라토 (지은이), 박형신, 이혜경 (옮긴이)
출판사리뷰
“코헨과 아라토는 그간 유럽에서 전개된 시민사회 논의에 대해 명쾌하고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런 다음 그러한 주장을 미국사회 또는 보다 일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론으로 전환시키며, 민주적 자유주의가 보다 효과적이고 더욱 확장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더 민주화될 수 없는가
진 L. 코헨은 현재 콜롬비아 대학교 정치사상 석좌교수로 있으며, 전공은 시민사회, 주권, 인권, 젠더, 종교, 민주적 입헌주의이다. 앤드루 아라토는 뉴스쿨 대학교 사회학과 정치?사회이론 석좌교수로 있으며, 사회?정치사상사, 법?헌법이론, 혁명?급진적 변동의 역사적 문제, 법사회학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코헨과 아라토가 이 책을 펴낸 1990년대 초반은, 소련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동구의 국가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모색하던 정치적 격변의 시기였다. 당시의 상황을 코헨과 아라토는 “마르크스주의, 즉 이 세기의 가장 중요한 유토피아적 해방 프로젝트가 사망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당시는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의 실험에만 사망선고가 내려진 것이 아니었다. 서구의 복지국가 자본주의 또한 신자유주의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코헨과 아라토는 서구의 민주주의가 더 민주화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서구의 복지국가 이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국가의 역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자본주의화되고 있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과거 실패한 서구 자본주의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것이 바로 코헨과 아라토가 말하는 ‘복지국가와 자유민주주의의 성찰적 지속’이라는 관념의 바탕에 깔린 질문이며, 이 책에서 그들은 ‘자기제한적 급진주의’의 실천적 장으로서의 시민사회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하지만 사회과학에서 시민사회라는 개념은 하나의 통일된 정의를 내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명 높은 개념 중 하나이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존재한다. 우선은 시민사회라는 개념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탓에, 시민사회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역사적 대상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시민사회라는 개념은 그것이 어느 시기에 사용되던 개념이냐에 따라 상이한 실체들과 결부되어 있다. 또한 시민사회 개념은 현실의 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분석적 개념도구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규범적 차원에서 현실태가 아닌 미래의 바람직한 사회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는 어떤 사회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가치의 문제와 결부되어 시민사회 개념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결국 시민사회라는 용어는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어느 시기의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규범적?정치적 관점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며, 이러한 상황이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닌 개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해왔다.
코헨과 아라토는 이 책의 제1부와 제2부에서 고전적 시민사회 담론에서부터 근대적 시민사회 담론에 등장하는 무수히 다양하고 모순적이기까지 한 시민사회 개념들을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해체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시민사회 개념이 오늘날의 사회를 과학적으로 해부할 수 있는 이론적?분석적 도구이자,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지평을 그 속에 품고 있는 비판적?실천적 개념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제3부에서 코헨과 아라토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국가-경제-시민사회라는 삼분 모델을 이론적으로 재구성하고, 자신들이 구성한 자기제한적 민주주의 이론으로서의 시민사회 이론의 실천적 의미를 탐색해 나간다.
시민사회는 민주주의를 확대할 수 있는 주된 장소
코헨과 아라토는 「서론」에서 자신들이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입장이 이 책의 전반을 관류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먼저 살펴보자.
서로 다른 용어를 사용함에도 모든 포스트마르크스주의가 지닌 공통적인 입장은 마르크스가 시민사회와 부르주아 사회를 동일시한 것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재통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그의 다양한 정치적 프로젝트들 또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람시가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아래에서 시민사회가 영속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고전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의 혁명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보존은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포스트마르크스주의는 그들이 현존하는 형태의 시민사회를 급진민주주의적으로 또는 급진다원주의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테마로 삼고자 한다는 점에서, 모든 신자유주의와 구별될 수 있다--- pp.187-188 제1권
이와 같은 코헨과 아라토의 입장은 자신들의 시민사회 이론이 민주주의 이론의 일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들은 동구와 서구를 막론하고 오늘날의 모든 사회가 더 많이 민주화될 수 있고 더 많이 민주화되어야 하며, 이러한 민주화 프로젝트의 핵심에는 시민사회가 자리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이들이 보기에 시민사회는 현존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민주주의를 잠재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주된 장소이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라는 개념 속에 역사적으로 착근되어온 부르주아와 시민의 동일시, 경제와 시민사회의 동일시에 기초한 시민사회 대 국가라는 이분법을 해체하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자유주의 사상의 전형적 특징인 시민사회 대 국가라는 이분법은 반절대주의 투쟁과 시장사회의 출현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이 모든 사회세력을 일시적으로 접합시킬 수 있었던 시기 동안에는 나름의 긍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힘들이 근대 국가의 행정권력만큼이나 사회연대, 사회정의, 자율성 그리고 민주주의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은 생존 가능한 시장경제의 확립과 민주적 시민사회의 확립이라는 과제가 별개의 분리된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지적해준다. 시민사회 개념이 비판적인 정치사회 이론과 실천적 민주화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면 그리고 만약 시민사회 개념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반권위주의적 투쟁에서뿐만 아니라 시장경제가 나름대로 자율적 논리를 이미 발전시켰거나 발전시키고 있는 사회에서도 여전히 그 비판적 잠재력을 보전하고자 한다면, 시민사회 개념은 국가뿐만 아니라 경제와도 적절히 분리되어야만 한다.
국가-경제-시민사회라는 삼분 모델
우리는 ‘시민사회’를 경제와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상호작용 영역으로, 무엇보다도 친밀한 영역(특히 가족), 결사체(특히 자발적 결사체)의 영역, 사회운동, 공적 의사소통의 형태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해한다. 근대 시민사회는 자기구성과 자기동원의 형식을 통해 창조된다. 근대 시민사회는 사회분화를 안정화하는 법률, 그리고 특히 주관적 권리들을 통해 제도화되고 일반화된다.--- pp.63-64 제1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코헨과 아라토의 국가-경제-시민사회 삼분 모델은 시민사회와 경제를 분리시키는 것이 지닌 이론적·실천적 중요성만큼이나, 이들 세 영역이 고유한 작동논리를 지닌 독자적이고 형식적인 실체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근대 사회의 분화된 구성물인 국가, 경제, 시민사회는 권력, 돈, 의사소통이라는 상이한 매체들이 작동하는 독자적 영역이다. 그들에 따르면, 자신들이 구상하는 ‘시민사회의 유토피아적 지평’은 이 세 영역 간의 경계를 보존하는 것에 기초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코헨과 아라토는 시민사회의 ‘자기제한적 민주주의’에서 그 답을 찾는다.
자기제한적 민주주의
자기제한적 민주주의라는 관념은 이들 세 영역 간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경험에서 유래한다. 코헨과 아라토에 따르면, 자기조절적 시장과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이들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역사는 각기 경제주의적인 도구적 이성과 국가중심적인 기능주의적 이성을 동력으로 한 탈분화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유토피아를 추구했을 뿐이며, 그 결과 경제를 축으로 전체 사회를 합리화하는 시장 유토피아와 국가를 축으로 전체 사회를 합리화하는 권력 유토피아 모두는 시민사회를 질식시키고 민주주의를 파괴해왔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의사소통의 유토피아가 그 영역을 허무는 것 역시 자기모순적이고 자기파괴적이다. 시민사회의 의사소통이라는 매체는 돈과 권력과는 달리 국가와 경제라는 분화된 하위체계에 쉽게 또는 자발적으로 침입해 그것을 포섭할 수 없으며, 생활세계의 근대화는 근대 경제와 국가의 분화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코헨과 아라토에 따르면 이러한 이중의 제한상황이 국가, 경제, 시민사회의 분화를 요구한다. 즉 근대 시민사회의 재구축은 국가구조 및 경제구조와의 병치를 요구하며, 시민사회는 이들 구조의 변화를 도울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자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모든 측면들을 폐지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연대를 자원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유토피아 역시 전체주의화되었거나 전체주의화될 수 있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볼 때, 시민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주주의운동들 역시 사회의 조종장치를 파괴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다원성을 억압하며, 그것들 모두를 극히 권위주의적인 수단을 통해서 재구성해왔다. 근본주의적인 민주주의 프로젝트들은 국가와 경제를 집합행위자와 집합적 운동의 권력에 복속시키려 시도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연대를 지향하는 사회적 결사를 전략적 관심을 지향하는 정치조직으로 변형시켰고, 그에 따라 시민사회의 진정한 자기조직력과 방어력을 박탈해왔다. 시민사회의 민주적 의사소통원리가 그것이 지닌 혁명적 원천에도 불구하고 혁명에 의해 위협받는다는 사실은 민주주의혁명조차 권리에 의해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 또한 분화를 기초로 독자적 시민사회가 제도화될 때에만 가능하다.
요컨대 코헨과 아라토에게 시민사회의 민주화, 이를 기초로 한 국가와 경제의 민주적 통제와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이상은 시민사회가 자기성찰적일 때, 즉 국가, 경제, 시민사회 간의 경계를 보존하고 의사소통적 행위조정을 시민사회 자체의 핵심에 한정할 때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들이 시민사회 재구성 모델로서 제기하고 있는 삼분 모델은 자기제한적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구체적인 이론적·실천적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