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단테가 읽어주는 『신곡』: 시공간을 뛰어넘는 단테의 생생한 목소리』는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신곡』의 순례 여정을 따라간다. 이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 즉 인류 문명의 전환기에 인간 존재에 대해 고민한 단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이다. 저자 박상진(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은 국내 최고의 단테 권위자로, 단테의 『신곡』뿐 아니라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번역하고, 단테와 서구의 중세 및 르네상스 문명을 다룬 책을 여러 권 썼다. 특히 『단테가 읽어주는 『신곡』』은 단테가 『신곡』 안에 담아낸 여러 의미를 요약.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위해 사용한 작법(作法) 등을 총체적으로 밝힌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단테의 순례길에 동참하도록 생생한 목소리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목차
머리말
1 단테의 시대
1 시대 속의 단테
2 『신곡』의 구조와 전개
3 순례, 보편적 가치의 고민
4 동행, 고전이 되는 과정
5 사랑과 지성의 조화
6 단테의 시대
2 기원의 목소리
1 물질로서의 책
2 작가와 독자
3 필사본으로서의 책
4 기원과 복제
5 고전이라 불리는 책
6 고전 작가라 불리는 단테
7 기원의 목소리
3 『신곡』 듣기
1 낭송가 단테
2 음독과 묵독
3 소리
4 구술
5 필사가 단테
6 번역가 단테
7 문자
8 맥락
9 언어의 분절
10 시적 언어
11 사물의 언어
12 구술성의 변용
13 기원의 소용돌이
맺는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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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상진 (지은이)
출판사리뷰
단테는 1265년에 태어나 1321년 죽었다. 1310년 ?지옥?을 집필한 뒤 죽기 직전까지 「신곡」 저술에 매달렸다. 뛰어난 문학가이자 유력한 정치가이기도 했던 그는 1302년 반대파의 쿠데타로 망명길에 올라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죽음을 맞았다.
단테는 망명자로서뿐 아니라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우선 그는 중세인이자 근대인이었다. 단테는 고대와 중세의 철학을 모두 탐독했고, 라틴어만큼이나 토스카나 속어를 사랑했으며, 교회권력(교황)과 세속권력(국왕)의 충돌, 시민계급의 등장을 직접 목격했다.
이러한 태도는 청신체 문학운동으로 표면화된다. 청신체 문학운동은 ‘사랑’을 최고가치로 삼는데, 이 사랑은 중세의 궁정적 사랑도 근대의 세속적 사랑도 아닌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힘이자 원리”다. 이 사랑을 바탕으로 단테는 인간 존재를 탐구한다.
실천하는 지식인이라는 점 역시 단테의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구성했다. 피렌체에서 나고 자란 단테는 어렸을 때부터 시민의 태도를 배운다. 즉 ‘시대와 사회에 책임의식을 져야 한다’고 배운 단테는 공직에 나아가 시민의 책무를 다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이상은 현실로 내려오기에는 너무 고매했다.”
「신곡」은 경계인으로서 단테가 맞닥뜨려야 했을 삶의 곡절과 고뇌가 그대로 담긴 자화상이자 고백서다. 「신곡」의 주인공이 단테 자신으로 「신곡」 속 단테도 순례를 떠난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신곡」의 순례자 단테 그리고 「신곡」의 저자 단테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빛과 어둠의 세계를
언어로 들려준 단테
『단테가 읽어주는 「신곡」』의 저자는 독자에게 단테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테가 살아 있을 때의 독서 방식, 저술 방법, 출판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당시는 묵독 대신 낭독으로 책을 읽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읽을 때뿐 아니라 혼자 읽을 때도 낭독했다. 저술 역시 이와 비슷했다. 글을 모르는 대부분 청중이 누군가 낭독해주는 내용을 듣고 이해하듯이 저자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받아썼다. 출판 과정에서도 듣고 받아쓰는 일은 중요했다. 당시는 인쇄술이 보급되기 전이라 저자가 글을 쓰면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는 필사만이 유일한 출판 방법이었다. 이때 눈으로 보고 옮겨 적기도 했지만, 누군가 낭독하는 걸 받아쓰기도 했다. 한마디로 「신곡」은 단테와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로 짜인 텍스트다.
그래서 유독 「신곡」은 청각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사실상 『신곡』은 소리로 가득 찬 세계다. 처음 지옥에 들어선 단테는 소리로 지옥의 본질을 순식간에 깨닫는다. 별 하나 없는 어두운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한숨과 울음 그리고 비명을 들은 단테는 울음을 터뜨린다. _ 8쪽
단테는 「신곡」의 심오하고 복잡한 내용을 정교하고 치밀한 압운과 운율구조에 담아냈다. 그의 작품이 구술성이 뛰어난 이유다.
단테는 이 수많은 소리를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속어에 담아냈다. 이를 계기로 토스카나 속어는 점차 이탈리아어를 대표하게 되었고, “이탈리아어는 처음부터 소리를 밴 언어로, 소리를 내는 언어로 성장했다.”
바로 이 ‘목소리’ 때문에 독자는 「신곡」을 마치 자기 순례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즉 단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다시 한번 자기 목소리로 읊는 과정에서 「신곡」을 멀찍이 떨어져 있는 작품으로 대하기보다 바로 지금 여기의 자기 얘기로, 자기 삶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테가 「신곡」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과연 인간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곧 ‘과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되고, 이는 「지옥」 「연옥」 「천국」에서 무수한 해석을 낳는 원동력이 된다.
이처럼 그 기원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듣는 것은 고전 『신곡』을 텍스트로 읽으면서 무한한 해석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이다. 비록 육필원고는 남아 있지 않고 그저 인쇄본으로 그의 언어를 접하지만, 우리는 살아서 울려 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단테가 천국의 소리로 상상한 다성악처럼, 독자의 목소리를 작가 단테의 목소리에 더해 여럿이 하나인 듯 조화롭게 울려 퍼지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단테가 처음부터 구상했던 구원의 순례에 성공적으로 동행하는 일이다. 『신곡』은 이런 과정을 거쳐 진정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고전으로 거듭날 것이다. _ 128~129쪽
‘지성’과 ‘사랑’은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원리
단테는 인간 존재의 근원, 즉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무엇을 꼽았을까? 물론 「신곡」은 독자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고, 단테 스스로 순례의 목적을 명시하지도 않지만, 『단테가 읽어주는 「신곡」』의 저자는 바로 ‘지성’과 ‘사랑’이라 말한다. 단테가 지치지 않고 순례를 계속할 수 있는 건 바로 신의 은총, 즉 사랑 덕분이다. 그리고 이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성이 필요하다. 지성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의지이자 소망이다. 동시에 사랑은 “천국에 오르는 인간을 감싸 안으면서 처음부터 지성의 힘을 부여하고 견지하는 근원이다.”
은총과 지성은 지옥에서 분리되고, 연옥에서 그곳 참회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천국에서 완벽한 조화에 이른다. 단테는 자신의 서사시, 즉 ‘코메디아’를 신과 인간의 합일이라 부르면서 그 둘의 조화를 구원의 궁극으로 생각했다. _ 52쪽
귀스타브 도레, 「엠피레오」(1868).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천국의 엠피레오를 나란히 서서 바라보고 있다.
단테가 「신곡」에서 보여준 지성과 사랑의 상호작용에는 두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 이 상호작용에는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단테는 고대인의 지혜를 탐독했던 근대인으로서 ‘행복’을 삶의 목표로 생각했고, 동시에 중세인으로서 그 행복은 ‘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인간은 신을 찾아낼 수 없다. 신을 찾았다 해도 그 압도적 존재 앞에서 인간은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신의 행복’”을 느낄 따름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은 신을 찾아 나서는 바로 그 여정을 지속하는 한에서, 그 미완의 과정 자체로 확보되고 이어진다.”
둘째,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다. 단테는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는 매우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도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는 신성만을 좇지도 않고, 인간성만을 좇지도 않는다. 대신 지성과 은총(사랑)을 모두 포용해 진정한 보편성의 차원을 펼쳐낸다.
단테의 문학이 고전이라 불린다면 그것은 당면한 어떤 시대의 특수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에도 부응하는 인간 보편의 문제를 던지기 때문이며, 그 깊은 목소리가 우리 시대에 더 둔중하면서도 다채롭게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_ 54쪽
중세에 지성과 은총은 목숨을 걸고 선택해야 하는 문제였다. 하지만 단테는 이를 배제가 아닌 포용의 방법으로 접근했다. 또한 이를 순례라는 끊임없이 정진하는 도정(道程)으로 그려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지혜와 인내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