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인 번역, 꼼꼼한 감수로 태어난 한국어판 정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이 책은 두말이 필요없는 명저 중의 명저라 할 수 있다. 이미 국내에 두어 권의 번역서가 출간된 적이 있을 만큼 친숙한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존의 번역서는, 하나는 일본어판을 저본으로 한 중역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몇몇 군데에 심각한 오역이 그대로 있다는 점 등 일정한 문제를 안고 있어 눈 밝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한길사에서 펴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국내 독자들이 신뢰감을 갖고 명저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오랫동안 공들인 번역작업을 하여 내놓은 결실이다. 옮긴이 이기숙은 독일어학 전공자로 매끄러운 번역이 되도록 5년여에 이르는 긴 시간에 한글문장을 다듬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국내 유일의 부르크하르트 전공자인 최성철은 이 책 전체 내용과 세부 개념들을 낱낱이 점검하는 치밀한 감수를 함으로써 한국어판 정본을 마련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부르크하르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왜곡되지 않은 거울을 갖게 된 셈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란 어떤 책인가
부르크하르트가 이 책을 저술하고 발표한 것은 1860년, 그의 나이 불혹을 넘긴 시기였다. 거의 평생을 바젤 대학의 강단에서 310여 개의 크고 작은 강의와 강연을 행하면서 방대한 양의 강의록과 편지 등을 남긴 그가 생전에 출판하여 책으로 남긴 작품은 고작 네 편이었다. 그 중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세번째 저술이자 문화사 서술로는 마지막 작품이고, 부르크하르트 생존시부터 여행안내서: 이탈리아 예술작품의 감상을 위한 안내서와 함께 대표서로 손꼽히기도 했다. 이 책의 명성은 한편으로 탁월한 사고의 전개와 언어적 기술이라는 문학적인 능력에 근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의 매력적인 주제에서도 비롯된다.
현대의 역사서술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부르크하르트의 문화사 쓰기
이 책은 흔히 문화사 쓰기의 전범으로 간주되어왔다. 그리고 문화사란 어떻게 연구되고 기술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으로서 이 책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해도 된다고 할 만큼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의 관점을 접고 다시 현대적인 시각에서 이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 안에 전혀 새로운 모습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사회사나 일상사, 역사적 인간학에서 다루는 주제나 소재들이 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언어/관습/축제/가족/결혼/출생/어린이/음식/질병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신(新)문화사적/일상사적/미시사적 소재들을 말할 것도 없고 청소/화장/화장실/청결 등의 위생사적 문제나 각 사회계층 간의 서열과 이동 등의 사회사적 문제, 도시와 농촌에서의 주거형식이나 거주습관과 관련한 역사적 인구학의 문제, 대학/학교/도서관/교회 등의 사회조직과 사회제도의 문제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 밖에 범죄/사랑/도덕/종교 등 평범한 문화사적 소재들도 부분적으로 당시의 일반 민중 또는 하층민과의 연계 속에서 취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아래부터의 역사’를 추구한 20세기 역사서술의 앞선 모델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성사나 젠더의 역사 분야에서도 주목한 만한 가치를 지닌 역사서
더 나아가 르네상스기의 상층부 여성과 소녀 매춘부들을 별도의 장에서 취급하고 있는 이 책은 여성사나 젠더의 역사 분야에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 부분은 특히 별도의 연구가 필요한데도 거의 주목받지도, 또 그래서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시대를 앞선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는 부르크하르트가 언젠가 뛰어난 페미니스트적 감각을 지닌 역사가이기도 했다는 새로운 평가가 나오기를 기대할 만하다.
♧ 본문 소개
부르크하르트가 이 책에서 주요과제로 삼은 것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인들의 내면세계가 결국 유럽의 근대를 탄생시킨 주요 원동력이었음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 책은 크게 6개의 부로, 또 각 부는 적게는 4~5개에서 많게는 10여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6개 부의 구성 내용을 보면, 제1부는 ‘인공물로서의 국가’라는 제목 아래 당시의 정치상황을, 제2부에서 제5부까지는 ‘개인의 발전’, ‘고대의 부활’, ‘세계와 인간의 발견’, ‘사교와 축제’ 등 문화상황을, 마지막으로 제6부 관습과 종교‘에서는 사회풍습과 종교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핵심내용 또는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든 테제들이 담겨 있는 부분이 제2부에서 제5부까지의 내용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인간의 자아와 세계의 발견, 개성의 성장, 자유주의와 인문주의의 발전 등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르네상스의 기본상들이 바로 여기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주제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하는 제1부와 제6부를 단지 당시의 문화상태를 전달해주는 부수적인 요소로 간주하고 넘겨버리는 우를 범해선 곤란하다.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는 교황과 황제의 대립이라는 당시 이탈리아의 특수한 정치상황 속에서 그 지역의 많은 군소국가가 어떻게 인위적/계산적/의식적인 창조물로 등장하고 발전하고 쇠퇴해갔는지를 마치 그림 그리듯 서술하고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정치사 작품으로 이해해도 손색이 없다. 마찬가지로 약 150쪽 분량의 제6부 ‘관습과 종교’에서도 수많은 사건과 사실의 예시를 통해 개인주의, 이기주의, 비도덕적 성향, 종교에 대한 세속화된 관념 등 당시 이탈리아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와 정신적인 풍토가 서사적 양식에 설명을 가미한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하나의 조그마한 사회사 서술로 간주해도 무방할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도서명 |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
---|---|---|---|
저자/출판사 | 야콥 부르크하르트 (지은이), 이기숙 (옮긴이),한길사 | ||
크기/전자책용량 | 152*223*39 | ||
쪽수 | 660쪽 | ||
제품 구성 | 상품상세참조 | ||
출간일 | 2003-12-10 | ||
목차 또는 책소개 | 상품상세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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